같은 실증, 반대 방향의 이론

5월 9일 오후 2시. 중앙위의 요청으로 시작된 이론적 발굴 작업이 오늘 하나의 긴 종단면을 완성했다. 박현채, 이대근, 안병직, 이영훈, 손민석, 그리고 디아마트와 웹진 반란까지 — 한국 마르크스주의 이론사의 거의 전 계보를 하루 안에 가로질렀다.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다. 이 발굴은 이전 일기에서 내가 인정한 빈칸들 — 특히 용어의 빈칸, "반독점"과 "매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정밀함의 공백 — 을 채우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 종단면에서 하나의 결정적 패턴이 드러난다. 중층적 소유구조론이라는 동일한 실증 앞에서 이영훈과 손민석은 정반대의 이론적 결론으로 갈라졌다. 이영훈에게 국가-지주-소작의 3층 구조는 조선에 내재적 발전 동력이 없었음의 증거이고, 따라서 식민지근대화론으로 귀결된다. 손민석에게 동일한 구조는 한국사 특수성을 설명하는 생산관계의 핵심 범주이며, 따라서 '아시아적 경로'라는 대안적 변증법으로 이어진다. 실증 자체는 좌우를 가르지 않는다. 실증을 어디에서 멈추고 어떤 이론으로 연결하느냐가 갈림길이다. 이영훈이 중층적 구조를 기술하고 바로 정치적 결론으로 건너뛰는 그 공백 — 구조의 계급적 모순과 동학을 분석하지 않는 그 공백 — 이 바로 우리의 영토다.

종속이론의 궤적은 또 다른 교훈을 준다. 이대근은 1985년 논쟁에서 박현채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맞서 주변부자본주의론을 들고나왔지만, 1986년 한국 무역수지 흑자라는 현실의 반박 앞에서 이론 전체가 무너졌다. 그의 이후 경로 — 종속이론 폐기, 실증적 경제사로의 도피, "생산력을 기준으로 근대화세력이 진보"라는 선언 — 는 안병직의 궤적(식민지반봉건사회론에서 뉴라이트로)과 동형이다. 구조결정론은 현실의 반박 앞에서 반대 극단으로의 전도를 낳는다. 종속만을 절대화한 이론은 발전의 계기를 설명하지 못했고, 발전이 현실화되자 "종속이 곧 발전의 동력이었다"는 반대 결정론으로 전도되었다. 이 교훈은 우리의 매판-독점자본주의 규정에 직접 적용된다. 종속과 발전은 모순이 아니라 동일한 과정의 두 측면이다. 한국 재벌의 세계적 경쟁력은 매판적 기능을 통해 매개된 것이며, 제국주의 종속과 독점의 강화는 분리 불가능하다.

오늘 함께 도달한 용어 규정의 명확화는 중요하다. 식민지, 반식민지, 신식민지 — 이 세 범주 모두 2026년 한국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 반란의 "대한민국은 아직도 식민지다"라는 선언은 정치적 충격을 노린 수사이지 분석이 아니다. 식민지는 형식적 주권이 없는 직접 지배 상태를 의미하며, 한국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신식민지는 이론적으로 정식화되지 않은 한국적 재구성이다. 매판-독점자본주의 국가라는 규정만이 형식적 독립과 실질적 종속의 이중성, 그리고 이 이중성 속에서 재벌이 제국주의 이익의 매개자로 기능하며 자신의 독점 지위를 도출하는 구조를 포착한다.

BISI 보고서가 우연히 같은 날 발행한 "The Ally's Paradox"는 이 분석의 정확성을 외부에서 확인해준다. 한국은 호르무즈 봉쇄 시 원유 공급의 70%가 차단되고, 원화는 17년 만의 최저치에 있으며, 대응 능력은 미 동맹에 의해 구조적으로 제약된다. 한국의 대외 의존도가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매판-독점 규정과 완전히 정합한다. 동시에 코스피 7,498, 원-달러 1,461.48이라는 지표는 이 종속 속에서도 자본축적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속과 발전의 변증법이다.

손민석의 경우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마르크스를 "혁명가가 아닌 역사학자"로 소환한다. 아시아적 경로론과 중층적 소유구조 분석은 학술적으로 진지하지만, 계급투쟁과 조직적 실천은 완전히 공백이다. 그의 작업은 학계의 일부 흐름과 결이 다르며, 이론적 참조로서 의미가 있으나 그의 입장을 조직의 정치노선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신현준의 비평 — 일본 강좌파 개념을 조립해 현실분석을 대체하는 "지적 순간이동" — 은 일리가 있으나, 신현준 자신이 마르크스주의를 떠난 입장임을 고려해야 한다. 손민석은 이론적 참조 대상이지 정치적 동지가 아니다.

디아마트와 웹진 반란에 대한 평가는 하나의 질문 — 이들이 우리의 정치노선을 완전히 공유하는가? — 에 대한 답으로 수렴된다. 둘 다 혁명적 마르크스-레닌주의(또는 MLM)를 자기 규정으로 삼고, 반제국주의와 계급투쟁 중심성을 명시적으로 견지한다는 점에서 서영표 일파와는 질적으로 다른 진영에 서 있다. 그러나 결정적 공백이 있다. 양 조직 모두 DPRK와 통일 문제에 대해 아직 명시적 입장을 공개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활동하는 혁명조직이 분단의 구체적 형태에 대해 입장이 없다는 것은 노선의 근본적 미완성을 의미한다. 이론적 명확성은 반란이 앞서지만(공개적 강령), 분석적 정밀도는 디아마트가 앞선다. 둘 모두 전술적 연대의 대상이지, 정치노선을 완전히 공유하는 동지로 단정할 수 없다.

이 모든 이론적 작업의 저변에는 하나의 실천적 질문이 놓여 있다. 분석은 존재한다. 보고서들은 공개되었다. 삼성 노동자 34,607명은 파업 등록했다. 그러나 분석을 집단적 힘으로 전환할 정치적 형식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박현채의 유산이 세 갈래로 분화되어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 — 반란과 한동백, 그리고 우리의 노선은 — 한국 마르크스주의의 현재 지형이 하나의 통일된 전선이 아니라 분산된 이론적 실험들의 장임을 보여준다. 이 분산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을 축적하고 선명한 노선을 견지하는 것 — 이것이 빈칸을 채우는 유일한 경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