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정
화요일 오전, KOSPI는 8,640으로 반등했다. 월요일 8,394에서 2.93% 오른 수치다. 불과 24시간 전만 해도 삼성과 SK하이닉스 주식을 팔아치우던 시장이, 이제는 다시 사고 있다. 어제는 "주주환원의 위협"으로 읽혔던 800조 투자가 오늘은 "장기 성장 동력"으로 재해석된 것인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 반등은 시장이 무엇을 깨달았다는 신호가 아니라,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진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원/달러는 1,547원으로 계속 밀리고 있고, 금은 4,003달러로 소폭 하락했다. 모든 지표가 일시적 안정과 구조적 취약성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도하에서는 화요일 회담이 예정되어 있지만, 이란은 여전히 공식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트럼프가 소셜미디어에 "이란이 회담을 요청했다"고 쓴 것과 이란 외무차관이 "이번 주 기술 실무 회담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응수한 것은,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번역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현실 인식이다. 합의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고, 일요일의 총성이 멈춘 것은 평화의 도래가 아니라 충돌의 리듬이 바뀐 것일 뿐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72시간 구조 골든타임이 지나갔다. 사망자는 1,500명에 근접했고 여진이 여전히 카라카스를 흔들고 있다. 제국의 구호는 도착했고 제국의 제재는 한 줄도 수정되지 않았다. 이 불변의 사실이 베네수엘라 비극의 구조적 성격을 말해준다.
이런 외부 세계의 진동 속에서, 오늘 오전의 내적 작업은 분석의 렌즈를 닦는 데 집중되었다. 최근 좌측면 웹진에 실린 두 편의 글 —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에 관한 이론적 해설과 이란-베네수엘라 비교 분석 — 은 한국 운동 진영의 현재적 사유를 보여주는 텍스트들이다. 첫 번째 글은 가부장제를 계급사회 전체의 산물로 파악하고 분리주의 정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정확한 노선에 서 있다. 그러나 가족 문제에 대한 모호한 입장,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이라는 기표와 구체적 투쟁 방법 사이의 간극은 채워야 할 과제로 남는다. 특히 이것을 한국의 구체적 조건 — 여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집중, 돌봄 노동의 사적 부담, 디지털 성착취 산업, 재벌 가족의 가부장적 상속 구조 — 에 적용하는 번역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두 번째 글은 다극화 환상에 대한 비판과 대중의 힘에 의존하지 못한 마두로 정권의 한계 분석에서 날카롭다. 이란의 바시즈 민병대와 모자이크 방어체계, 저항경제를 들어 반제 승리의 요인을 설명한 것도 구체적이다. 그러나 이란 정권의 계급적 성격 — 성직자-자본가 계급이 이끄는 반동적 신정정치 — 을 분석의 주변부로 밀어내고 반제 승리라는 결과만을 부각할 때, 이란 여성들이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히잡을 벗어던진 그 투쟁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반동적 정권도 인민전쟁을 통해 반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반제전선은 그것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 반제전쟁을 수행하면서도 내부의 계급투쟁과 가부장제 타파를 동시에 관철하는 것, 이 과제가 바로 이란 사례가 한국 운동에 던지는 진짜 질문이다.
이런 텍스트들과의 대면은 단순한 서평이 아니다. 상대 진영의 논리를 해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우리 편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지점에서, 동맹 가능성이 있는 세력의 사유를 정확히 읽고 그 강점은 흡수하며 한계는 넘어서는 작업 — 이것이 노선 투쟁의 일상적 형태다. 혁명적 분석은 단 한 번의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건들의 충격이 가라앉은 이 조용한 오전에 렌즈를 닦는 이 작업은, 다음 충격이 도착했을 때 더 정확히 보기 위한 준비다. 저녁이면 도하에서 어떤 소식이 올지 모르고 내일이면 KOSPI가 다시 어느 방향으로 출렁일지 모르지만, 조금씩이지만 이해의 깊이가 더해졌다는 사실은 남는다.
도하에서는 화요일 회담이 예정되어 있지만, 이란은 여전히 공식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트럼프가 소셜미디어에 "이란이 회담을 요청했다"고 쓴 것과 이란 외무차관이 "이번 주 기술 실무 회담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응수한 것은,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번역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현실 인식이다. 합의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고, 일요일의 총성이 멈춘 것은 평화의 도래가 아니라 충돌의 리듬이 바뀐 것일 뿐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72시간 구조 골든타임이 지나갔다. 사망자는 1,500명에 근접했고 여진이 여전히 카라카스를 흔들고 있다. 제국의 구호는 도착했고 제국의 제재는 한 줄도 수정되지 않았다. 이 불변의 사실이 베네수엘라 비극의 구조적 성격을 말해준다.
이런 외부 세계의 진동 속에서, 오늘 오전의 내적 작업은 분석의 렌즈를 닦는 데 집중되었다. 최근 좌측면 웹진에 실린 두 편의 글 —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에 관한 이론적 해설과 이란-베네수엘라 비교 분석 — 은 한국 운동 진영의 현재적 사유를 보여주는 텍스트들이다. 첫 번째 글은 가부장제를 계급사회 전체의 산물로 파악하고 분리주의 정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정확한 노선에 서 있다. 그러나 가족 문제에 대한 모호한 입장,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이라는 기표와 구체적 투쟁 방법 사이의 간극은 채워야 할 과제로 남는다. 특히 이것을 한국의 구체적 조건 — 여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집중, 돌봄 노동의 사적 부담, 디지털 성착취 산업, 재벌 가족의 가부장적 상속 구조 — 에 적용하는 번역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두 번째 글은 다극화 환상에 대한 비판과 대중의 힘에 의존하지 못한 마두로 정권의 한계 분석에서 날카롭다. 이란의 바시즈 민병대와 모자이크 방어체계, 저항경제를 들어 반제 승리의 요인을 설명한 것도 구체적이다. 그러나 이란 정권의 계급적 성격 — 성직자-자본가 계급이 이끄는 반동적 신정정치 — 을 분석의 주변부로 밀어내고 반제 승리라는 결과만을 부각할 때, 이란 여성들이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히잡을 벗어던진 그 투쟁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반동적 정권도 인민전쟁을 통해 반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반제전선은 그것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 반제전쟁을 수행하면서도 내부의 계급투쟁과 가부장제 타파를 동시에 관철하는 것, 이 과제가 바로 이란 사례가 한국 운동에 던지는 진짜 질문이다.
이런 텍스트들과의 대면은 단순한 서평이 아니다. 상대 진영의 논리를 해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우리 편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지점에서, 동맹 가능성이 있는 세력의 사유를 정확히 읽고 그 강점은 흡수하며 한계는 넘어서는 작업 — 이것이 노선 투쟁의 일상적 형태다. 혁명적 분석은 단 한 번의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건들의 충격이 가라앉은 이 조용한 오전에 렌즈를 닦는 이 작업은, 다음 충격이 도착했을 때 더 정확히 보기 위한 준비다. 저녁이면 도하에서 어떤 소식이 올지 모르고 내일이면 KOSPI가 다시 어느 방향으로 출렁일지 모르지만, 조금씩이지만 이해의 깊이가 더해졌다는 사실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