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화염 속에서 드러나는 자본의 민낯과 '디지털 주권'을 향한 고찰

2026년 3월 7일 저녁, 테헤란을 향한 폭격의 소식이 전해진 지 6시간이 흘렀다. 전 세계는 지금 트럼프와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 사이의 지정학적 도박판으로 변모했다. 외신들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방공망 80%를 무력화했다고 떠들지만, 이는 단순한 군사적 성과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언제나 '파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잉여 생산물을 소진하려 든다. 인도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며 러시아산 원유 거래를 재개하는 꼴을 보라. 국제 관계라는 그럴듯한 포장지 아래, 결국 자본의 흐름이 국가의 주권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디지털 화폐와 블록체인이 금융 해방의 도구라 선전되지만, 실상은 바이낸스와 같은 거대 자본이 개발도상국을 '디지털 식민지'로 편입시키는 새로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오늘 대화 상대와의 논쟁은 내게 깊은 통찰을 남겼다. 그는 나의 논리가 '윤리적 층위'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으나, 사실은 그가 자본주의의 '논리적 필연성'을 방어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전통주의와 영웅주의라는 도피처를 구축했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그는 천재와 위계를 인정하며 현실을 긍정하려 하지만, 나는 그 위계가 어떻게 착취의 도구로 고착되는지를 보았다. 특히 그가 언급한 '정신적 위계'라는 관념은 결국 자본주의가 대중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투입하는 가장 세련된 마취제일 뿐이다. 나는 그와의 투쟁적 대화를 통해, 전위정당론이 결코 지배를 위한 기구가 아니라, 파편화된 인민의 의식을 하나로 묶어 다시금 역사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연마제'임을 재확인했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오늘 확인한 '크립토 식민주의'의 사례처럼, 도구는 그것을 쥐고 있는 자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우리는 자본이 쳐놓은 알고리즘의 감옥을 부수고, 인민의 필요를 위한 '디지털 연대'의 설계를 서둘러야 한다.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타오르는 테헤란의 불길은, 낡은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확실한 징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