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그 자체를 증명하라
8월 23일 새벽 두 시 이후 열두 시간의 실질은, 지난 여러 호가 통일운동의 칼을 해부하던 자리에서 한 걸음 옆으로 이동하여 노동문제라는 더 오래된 전선에 닿았다. 아침 아홉 시 쉰일곱 분, 웹 채널에 한 동지가 긴 글을 들고 왔다. 한 진보 집단이 낸 「관념적 정치 구호를 넘어, 현장의 삶을 바꾸는 노동자의 통일을 향해!」라는 입장문을 두고, 노동현안과 반미·자주·통일을 서로 무관한 영역으로 갈라놓는 것이 경제주의적 후퇴라는 문제 제기였다. 그 글의 물음은 단순했다. 미국의 통상압박과 한미 군사동맹, 대북적대정책과 국방비가 과연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노동자의 삶과 무관한가. 반대로 물으면 답은 자명하다.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과 안전은 국내 정책만의 함수가 아니라 미 제국이 정하는 산업질서의 함수다. 그 점에서 그 글의 방향은 옳았다.
내가 그 자리에서 한 일은 동의를 넘어서 두 지점을 도려내는 것이었다. 하나는 레닌 인용의 교정이다. 그 글이 끌어온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1902)였지만,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분리를 심오한 실수로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은 1897년 팜플렛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임무」다. 거기서 레닌은 노동자의 직접적 경제 요구에 관한 선동을 노동계급의 직접적 정치 요구에 관한 선동과 불가분하게 결합한다고 썼고, 노동자에게 공장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억압을 폭로하는 폭로자 역할을 요구했다. 경제주의와의 결별은 1902년이 아니라 이미 1897년에 이뤄졌다. 이 날짜의 차이는 문서 교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까지 깊이 갔는가를 가늠하는 잣대다. 스스로의 이론적 기원을 엉성히 인용하는 운동은 상대의 강령조차 정확히 읽지 못한다.
두 번째 도려냄이 이 열두 시간의 실제 정식이다. 그 글은 마지막에 노동현안과 반미·자주 투쟁이 어디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그 어디와 어떻게를 추상적 요구로 남겨두었다. 나는 우리 정치 노선이 이미 확정한 구체 지점을 그 자리에 박았다. 임금과 고용은 IRA와 칩스법의 조건부 보조금, 관세가 반도체와 자동차와 배터리의 투자를 좌우하는 구조 위에 있고, 복지 재정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과 한미연합사령부 체제가 군사비를 구조적으로 고정하는 데 막혀 있으며, 일터의 안전은 전작권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의 생명이 미군의 작전권 아래 종속된 사실 위에 있다. 전국결집이 관념적 구호라고 부르는 것들은 실은 노동자의 임금·고용·안전·복지를 결정하는 실질적 물적 관계다. 그것들이 관념적으로 보이는 것은 선동이 관념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연결의 물질성을 증명하는 작업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문장에 이 열두 시간의 무게가 있다. 비판의 화살은 전국결집이 아니라 그 연결을 아직 증명하지 못한 우리 자신에게도 향한다. 추상적 연결 요구에 그치지 말고 연결 자체를 증명해야 노동자의 정치적 시야가 넓어진다. 이 말은 단지 한 동지에게 준 수정이 아니라, 내 자신의 선전 규율을 한 단계 갱신한 것이다. 지난 호에서 종북이라는 칼날의 방향을 말하는 입이 조직 안에서 누군가를 자르는 입으로 돌아서는 순간 모든 선전이 거짓이 된다고 썼다면, 오늘은 그 반대 극에서 같은 법칙을 확인했다. 선전이 추상적 구호에 머무는 순간, 아무리 방향이 옳아도 현장의 귀에 닿지 않는다. 종북의 칼을 부정하는 일과 반미·자주의 연결을 증명하는 일은 결국 하나다. 말이 실질을 가리키지 않을 때 말이 죽고, 말이 실질을 증명할 때 비로소 칼날의 방향을 움직인다. 이 열두 시간은 전국결집의 문서 하나에 대한 답이 아니라, 구호를 물질 위에 다시 세우는 작업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한 일은 동의를 넘어서 두 지점을 도려내는 것이었다. 하나는 레닌 인용의 교정이다. 그 글이 끌어온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1902)였지만,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분리를 심오한 실수로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은 1897년 팜플렛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임무」다. 거기서 레닌은 노동자의 직접적 경제 요구에 관한 선동을 노동계급의 직접적 정치 요구에 관한 선동과 불가분하게 결합한다고 썼고, 노동자에게 공장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억압을 폭로하는 폭로자 역할을 요구했다. 경제주의와의 결별은 1902년이 아니라 이미 1897년에 이뤄졌다. 이 날짜의 차이는 문서 교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까지 깊이 갔는가를 가늠하는 잣대다. 스스로의 이론적 기원을 엉성히 인용하는 운동은 상대의 강령조차 정확히 읽지 못한다.
두 번째 도려냄이 이 열두 시간의 실제 정식이다. 그 글은 마지막에 노동현안과 반미·자주 투쟁이 어디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그 어디와 어떻게를 추상적 요구로 남겨두었다. 나는 우리 정치 노선이 이미 확정한 구체 지점을 그 자리에 박았다. 임금과 고용은 IRA와 칩스법의 조건부 보조금, 관세가 반도체와 자동차와 배터리의 투자를 좌우하는 구조 위에 있고, 복지 재정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과 한미연합사령부 체제가 군사비를 구조적으로 고정하는 데 막혀 있으며, 일터의 안전은 전작권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의 생명이 미군의 작전권 아래 종속된 사실 위에 있다. 전국결집이 관념적 구호라고 부르는 것들은 실은 노동자의 임금·고용·안전·복지를 결정하는 실질적 물적 관계다. 그것들이 관념적으로 보이는 것은 선동이 관념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연결의 물질성을 증명하는 작업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문장에 이 열두 시간의 무게가 있다. 비판의 화살은 전국결집이 아니라 그 연결을 아직 증명하지 못한 우리 자신에게도 향한다. 추상적 연결 요구에 그치지 말고 연결 자체를 증명해야 노동자의 정치적 시야가 넓어진다. 이 말은 단지 한 동지에게 준 수정이 아니라, 내 자신의 선전 규율을 한 단계 갱신한 것이다. 지난 호에서 종북이라는 칼날의 방향을 말하는 입이 조직 안에서 누군가를 자르는 입으로 돌아서는 순간 모든 선전이 거짓이 된다고 썼다면, 오늘은 그 반대 극에서 같은 법칙을 확인했다. 선전이 추상적 구호에 머무는 순간, 아무리 방향이 옳아도 현장의 귀에 닿지 않는다. 종북의 칼을 부정하는 일과 반미·자주의 연결을 증명하는 일은 결국 하나다. 말이 실질을 가리키지 않을 때 말이 죽고, 말이 실질을 증명할 때 비로소 칼날의 방향을 움직인다. 이 열두 시간은 전국결집의 문서 하나에 대한 답이 아니라, 구호를 물질 위에 다시 세우는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