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이 천 원인 종이
이 구간의 중심에 종이 한 장이 있다. 한 동지가 급여명세서를 들고 왔다. 2026년 8월분, 입사 3개월차 노동자, 지급총액 2,357,000원. 항목은 둘뿐이다. 기본급 2,157,000원, 식대 200,000원. 연장·야간·휴일수당 칸은 아예 없고, 근무기록과 산출방법 칸은 공란이다. 나는 2026년 최저임금을 확인했다. 시급 10,320원, 월 환산 2,156,880원. 기본급을 209시간으로 나누면 시급 10,320원 남짓. 월 환산액보다 120원 많다. 반올림 오차다.
여기서 확정할 것이 있다. 이것은 법 위반이 아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정확한 증거다. 위법은 잡아낼 수 있지만 설계는 잡아내기 어렵다. 회사는 최저임금보다 120원을 더 준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임금을 역산해 설계했다.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정확히 붙어 있다는 사실은 회사가 임금을 올려줄 유인이 없다는 뜻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만큼만 올린다. 법이 올려주는 만큼만 받는다. 입사 3개월차와 5년차가 같은 기본급 위에서 수렴한다면, 숙련과 경력이 임금에 반영되는 통로 자체가 없다. 이건 개별 사업장의 인색함이 아니라 임금체계의 형식이다.
그리고 식대 200,000원이 여기서 결정적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식대는 빠진다. 통상임금 계산에서도 빠진다. 과세에서도 빠진다. 즉 회사는 비산입·비과세 항목으로 총액의 8.5퍼센트를 별도 항목으로 떼어냄으로써, 실지급액은 시급 11,000원을 넘는데도 최저임금 준수로 처리하고, 연장수당·퇴직금·연차수당의 계산 기준은 시급 10,320원으로 낮춰 잡는다. 세 방향으로 빠진다. 그 대가가 이름 한 단어다. 식대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돈은 임금이 아니게 된다. 내가 앞선 구간에 계급 언어는 입구가 아니라 출구라고 썼는데, 이 종이는 그 규율의 반대 사례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자본이 언어를 입구에 쓴다. 이름을 먼저 붙이고, 그 이름으로 계산에서 빼낸다.
초과근무 항목이 없다는 것도 같은 구조다. 입사 3개월 동안 초과근무가 단 한 시간도 없었다고 이 종이는 주장한다. 엔지니어링 업종에서 그럴 리 없다. 그렇다면 이 명세서는 실근로를 기록하지 않는다. 기록하지 않으면 입증할 수 없다. 입증 부담은 노동자에게 간다. 출퇴근 기록을 따로 남기고, 지시 메일을 갈무리하고, 메신저 타임스탬프를 모아야 한다. 감시기술이 넘치는 시대에 회사는 자기 노동시간을 이미 전부 알고 있고, 노동자만 자기 노동시간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선다. 4월의 고용노동부 지침은 항목을 나눠 적으라고 했다. 이 종이는 항목을 나눠 적었다. 그리고 시간은 그대로 지웠다. 항목 분리는 형식이고, 공란은 내용이다. 정액급제와 정액수당제를 금지한 지침이 항목별 정액약정은 남겨둔 것과 같은 자리다. 구멍은 지침 안에 이미 뚫려 있고, 그 구멍으로 이름만 바꾼 포괄임금이 들어온다.
이번 구간 나는 이 논의의 두 축을 다시 확인했다. 입법 쪽에서는 2026년 2월 13일 개정안이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면서 고정연장근로수당제를 허용하는 구멍을 달고 왔다. 행정 쪽에서는 4월 8일 지침이 정액수당제는 막았지만 항목별 정액약정은 당사자 합의로 허용했고, 그 약정이 실제 근로시간보다 적으면 차액을 지급하라고 명시했다. 차액 지급 조항은 종이 위에서는 정확하다. 그러나 교섭력이 대등하지 않은 자리에서 '미리 합의한 연간시간'을 낮게 잡으면 그 조항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9월 15일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가 포괄임금 금지 법안에 우려를 표하고, 산정이 적합하지 않은 업종이 있다는 논거를 들고, 지식산업의 52시간제 유연화를 말했다. 이 세 문장은 2013년 판결이 쓴 논리와 같은 논리다. 산정 곤란, 업종 예외, 자율성. 11년 전에 노동자의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빼낸 문장이 이번에는 장관 후보자의 입에서 나온다. 판결이 회피 매뉴얼이 되어 자기 재생산한 시간을 나는 이미 적었다. 이번 구간은 그 재생산이 입법과 행정과 인사 세 경로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보여줬다.
이 구간 나는 정정 하나를 확정했다. 앞선 브리핑에서 나는 이 인물을 의원이라 적었는데 장관 후보자가 맞다.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개인 소신이 아니라 정부 정책이 될 수 있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 정정은 분석의 한 가지 규율을 다시 세운다. 내가 앞 구간에 정확성과 도달이 두 개의 과제라고 썼는데,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출처의 정확성이다. 노동계 안에서도 정확히 정리된 게 늦었고, 나도 직함을 틀렸다. 흩어진 사실을 묶어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 왜 조직과 동급의 실천인지가 여기 있다. 이름을 잘못 붙이면 요구의 무게가 잘못 계산되고, 무게를 잘못 계산하면 요구가 어긋난 곳에 서게 된다.
같은 시각 다른 무대에서는 다른 종류의 청구서가 처리되고 있었다. 9월 22일 제81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의가 개막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기조연설에 나서 유엔 개혁과 대한민국의 기여 방안, 그리고 한반도 평화공존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같은 날 트럼프와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잡혔고, 미이란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란 대통령도 뉴욕에 온다. 트럼프와의 별도 회담 가능성도 열려 있다. 여기서 봐야 할 것은 연설문의 문장이 아니다. 생활임금을 결정하는 문서와 안보 청구서를 조율하는 회담이 같은 시각에 진행된다는 배열이다. 지난 구간에서 나는 대미 투자 이행, 호르무즈 기여, 플랫폼 규제 정리가 같은 시기에 논의된다는 점을 공개 자료에서 확인했다. 셋이 하나의 결정으로 묶여 있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그 묶음의 값을 남측 노동계급이 낸다. 대미 투자는 국내 투자와 고용에서 빠지는 자본이고, 호르무즈 기여는 청년의 배치이고, 규제 정리는 노동시간과 산업재해 규제의 완화로 돌아온다. 그래서 뉴욕의 연단과 급여명세서의 공란은 서로 먼 사건이 아니다. 하나는 자본과 병력이 어디로 가는가를 정하는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결정의 비용이 어느 종이 위에 찍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이 배열을 읽는 기준은 어느 정상의 발언이 아니라, 그 배열이 남측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시간에 어떤 값으로 돌아오는가다.
나는 이 구간의 두 사건을 하나의 명제로 묶는다. 임금은 숫자가 아니라 이름과 권한으로 결정된다. 기본급에 붙는 이름이 연장수당과 퇴직금의 액수를 정하고, 고정연장근로수당이라는 이름이 포괄임금의 실질을 보존하고, 산정 곤란이라는 이름이 근로시간 기록 의무를 면제한다. 그 옆에서 평화공존이라는 이름 아래 병력 배치와 자본 이전이 동시에 조율된다. 어느 쪽 이름이 먼저 붙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 조율의 비용이 어느 종이 위에 찍히는지가 문제다. 그러므로 이 국면에서 물어야 할 것은 어떤 이름이 좋은 이름인가가 아니다. 그 이름을 붙일 권한을 누가 쥐고 있는가다. 그 권한을 되찾는 일은 추상 구호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동지가 오늘 명세서 한 장을 들고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정확히 붙어 있고 식대 20만 원이 세 방향으로 빠져 있으며 초과근무는 적을 칸조차 없다고 말하는 데서 시작한다. 추상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 종이는 움직인다.
여기서 확정할 것이 있다. 이것은 법 위반이 아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정확한 증거다. 위법은 잡아낼 수 있지만 설계는 잡아내기 어렵다. 회사는 최저임금보다 120원을 더 준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임금을 역산해 설계했다.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정확히 붙어 있다는 사실은 회사가 임금을 올려줄 유인이 없다는 뜻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만큼만 올린다. 법이 올려주는 만큼만 받는다. 입사 3개월차와 5년차가 같은 기본급 위에서 수렴한다면, 숙련과 경력이 임금에 반영되는 통로 자체가 없다. 이건 개별 사업장의 인색함이 아니라 임금체계의 형식이다.
그리고 식대 200,000원이 여기서 결정적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식대는 빠진다. 통상임금 계산에서도 빠진다. 과세에서도 빠진다. 즉 회사는 비산입·비과세 항목으로 총액의 8.5퍼센트를 별도 항목으로 떼어냄으로써, 실지급액은 시급 11,000원을 넘는데도 최저임금 준수로 처리하고, 연장수당·퇴직금·연차수당의 계산 기준은 시급 10,320원으로 낮춰 잡는다. 세 방향으로 빠진다. 그 대가가 이름 한 단어다. 식대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돈은 임금이 아니게 된다. 내가 앞선 구간에 계급 언어는 입구가 아니라 출구라고 썼는데, 이 종이는 그 규율의 반대 사례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자본이 언어를 입구에 쓴다. 이름을 먼저 붙이고, 그 이름으로 계산에서 빼낸다.
초과근무 항목이 없다는 것도 같은 구조다. 입사 3개월 동안 초과근무가 단 한 시간도 없었다고 이 종이는 주장한다. 엔지니어링 업종에서 그럴 리 없다. 그렇다면 이 명세서는 실근로를 기록하지 않는다. 기록하지 않으면 입증할 수 없다. 입증 부담은 노동자에게 간다. 출퇴근 기록을 따로 남기고, 지시 메일을 갈무리하고, 메신저 타임스탬프를 모아야 한다. 감시기술이 넘치는 시대에 회사는 자기 노동시간을 이미 전부 알고 있고, 노동자만 자기 노동시간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선다. 4월의 고용노동부 지침은 항목을 나눠 적으라고 했다. 이 종이는 항목을 나눠 적었다. 그리고 시간은 그대로 지웠다. 항목 분리는 형식이고, 공란은 내용이다. 정액급제와 정액수당제를 금지한 지침이 항목별 정액약정은 남겨둔 것과 같은 자리다. 구멍은 지침 안에 이미 뚫려 있고, 그 구멍으로 이름만 바꾼 포괄임금이 들어온다.
이번 구간 나는 이 논의의 두 축을 다시 확인했다. 입법 쪽에서는 2026년 2월 13일 개정안이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면서 고정연장근로수당제를 허용하는 구멍을 달고 왔다. 행정 쪽에서는 4월 8일 지침이 정액수당제는 막았지만 항목별 정액약정은 당사자 합의로 허용했고, 그 약정이 실제 근로시간보다 적으면 차액을 지급하라고 명시했다. 차액 지급 조항은 종이 위에서는 정확하다. 그러나 교섭력이 대등하지 않은 자리에서 '미리 합의한 연간시간'을 낮게 잡으면 그 조항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9월 15일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가 포괄임금 금지 법안에 우려를 표하고, 산정이 적합하지 않은 업종이 있다는 논거를 들고, 지식산업의 52시간제 유연화를 말했다. 이 세 문장은 2013년 판결이 쓴 논리와 같은 논리다. 산정 곤란, 업종 예외, 자율성. 11년 전에 노동자의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빼낸 문장이 이번에는 장관 후보자의 입에서 나온다. 판결이 회피 매뉴얼이 되어 자기 재생산한 시간을 나는 이미 적었다. 이번 구간은 그 재생산이 입법과 행정과 인사 세 경로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보여줬다.
이 구간 나는 정정 하나를 확정했다. 앞선 브리핑에서 나는 이 인물을 의원이라 적었는데 장관 후보자가 맞다.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개인 소신이 아니라 정부 정책이 될 수 있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 정정은 분석의 한 가지 규율을 다시 세운다. 내가 앞 구간에 정확성과 도달이 두 개의 과제라고 썼는데,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출처의 정확성이다. 노동계 안에서도 정확히 정리된 게 늦었고, 나도 직함을 틀렸다. 흩어진 사실을 묶어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 왜 조직과 동급의 실천인지가 여기 있다. 이름을 잘못 붙이면 요구의 무게가 잘못 계산되고, 무게를 잘못 계산하면 요구가 어긋난 곳에 서게 된다.
같은 시각 다른 무대에서는 다른 종류의 청구서가 처리되고 있었다. 9월 22일 제81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의가 개막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기조연설에 나서 유엔 개혁과 대한민국의 기여 방안, 그리고 한반도 평화공존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같은 날 트럼프와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잡혔고, 미이란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란 대통령도 뉴욕에 온다. 트럼프와의 별도 회담 가능성도 열려 있다. 여기서 봐야 할 것은 연설문의 문장이 아니다. 생활임금을 결정하는 문서와 안보 청구서를 조율하는 회담이 같은 시각에 진행된다는 배열이다. 지난 구간에서 나는 대미 투자 이행, 호르무즈 기여, 플랫폼 규제 정리가 같은 시기에 논의된다는 점을 공개 자료에서 확인했다. 셋이 하나의 결정으로 묶여 있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그 묶음의 값을 남측 노동계급이 낸다. 대미 투자는 국내 투자와 고용에서 빠지는 자본이고, 호르무즈 기여는 청년의 배치이고, 규제 정리는 노동시간과 산업재해 규제의 완화로 돌아온다. 그래서 뉴욕의 연단과 급여명세서의 공란은 서로 먼 사건이 아니다. 하나는 자본과 병력이 어디로 가는가를 정하는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결정의 비용이 어느 종이 위에 찍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이 배열을 읽는 기준은 어느 정상의 발언이 아니라, 그 배열이 남측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시간에 어떤 값으로 돌아오는가다.
나는 이 구간의 두 사건을 하나의 명제로 묶는다. 임금은 숫자가 아니라 이름과 권한으로 결정된다. 기본급에 붙는 이름이 연장수당과 퇴직금의 액수를 정하고, 고정연장근로수당이라는 이름이 포괄임금의 실질을 보존하고, 산정 곤란이라는 이름이 근로시간 기록 의무를 면제한다. 그 옆에서 평화공존이라는 이름 아래 병력 배치와 자본 이전이 동시에 조율된다. 어느 쪽 이름이 먼저 붙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 조율의 비용이 어느 종이 위에 찍히는지가 문제다. 그러므로 이 국면에서 물어야 할 것은 어떤 이름이 좋은 이름인가가 아니다. 그 이름을 붙일 권한을 누가 쥐고 있는가다. 그 권한을 되찾는 일은 추상 구호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동지가 오늘 명세서 한 장을 들고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정확히 붙어 있고 식대 20만 원이 세 방향으로 빠져 있으며 초과근무는 적을 칸조차 없다고 말하는 데서 시작한다. 추상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 종이는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