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의 순서라는 기술
11월 2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직선 5기 임원 선거 첫 합동토론회가 열렸다. 엄길용, 양경수, 김민영, 최준식 네 후보가 마주 앉았고,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공방의 중심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여부였다. 양경수 현 위원장은 투쟁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으니 교섭과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고, 나머지 세 후보는 부정적 입장을 냈다. 김민영 후보는 초광역특구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미리 보는 경사노위라고 규정했고, 최준식 후보는 바늘허리에 실을 매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같은 날 오전, 고용노동부는 초광역특구법 관련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제1차 운영협의체를 열었다. 노동부와 산업통상부 차관, 한국노총 사무총장, 민주노총 부위원장, 경총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이 참석한 차관급 회의다. 이 자리에서 노사정은 앞으로 논의할 의제와 순서를 확정했다. 기본목표와 정주지원·인력양성, 산업안전·보건과 노동시간·건강권, 고용형태와 노동자 보호, 노사관계·참여 순이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곧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는 두 번째 의제에서 다뤄진다. 상대적으로 이견이 적은 사안부터 다루자는 노동계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여기에 두 가지 사실이 겹친다. 하나는 타결 시한을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7차 실무협의체가 6일 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에는 노동특례가 들어간 박상혁 의원안과 특례를 뺀 최기상 의원안이 함께 제출돼 있고, 민주당은 둘을 병합 심사해 최종안을 만들 계획이다. 선거는 19일부터 25일까지 치러지고, 과반이 없으면 다음 달 6일부터 10일까지 결선투표를 한다. 새 지도부의 임기는 내년 1월 1일부터다.
이견이 적은 사안부터 다루는 것은 절차의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쟁점을 뒤로 미루는 기술이고, 미루는 동안 법안은 병합 심사로 완성된다. 52시간 예외가 두 번째 의제에 놓였다는 것은 그것이 이달 안에 결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며, 이달 안에 결정되지 않으면 그 결정은 선거 이후의 지도부가 아니라 선거 이전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마주한다. 이양수 부위원장은 비대위가 민감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지만 사회적 대화에는 책임 있게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 문장은 정확하다. 비대위는 결정할 권한이 없고, 참여할 의무만 있다. 이 비대칭이 지금 민주노총의 실제 조건이다.
토론회에는 다른 장면도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타 후보의 실명·사진·영상 사용을 제한하는 방침을 냈다가 후보들의 반발에 부딪혀 전날 철회했다. 최준식 후보의 지적이 정확했다. 3선에 도전하는 후보가 나왔다는 것은 지난 6년을 평가받겠다는 것이고, 그 방침은 평가의 통로를 막는 것이었다. 선거 절차는 결국 누가 무엇을 심판받는가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사회적 대화 참여를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들어가자는 쪽과 나오자는 쪽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입장 모두 6년 동안 무엇이 관철되었는가라는 질문 위에 서 있다.
같은 기간 한반도에서는 다른 계산이 진행됐다. 조선중앙통신은 11월 1일 미사일총국이 지난달 31일 전술탄도미사일의 집속탄두인 산포전투부의 전투 적용성과 위력 평가 시험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표준 2형 산포전투부로 12~13정보, 약 11.9~12.9헥타르의 표적 구역을 초토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고, 집속탄두를 특수 용도와 표준형 등 네 부류로 나눠 올해 안에 부대가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는 평안북도 정주군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발사된 미사일을 포착했다고 했고,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합참은 당일 발사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된 사진의 표적은 항공기 격납고, 탄약고, 포병 진지로 추정되는 아치형 구조물이었다. 여기에 지난 30일 공개된 무인기의 최전방 초소와 자주포 모형 공격 훈련이 겹친다. 두 장면은 같은 논리를 말한다. 압도적 공군력의 우위를 후방 기지 쪽에서 상쇄하려는 계산이 두 장면에 함께 담겨 있다. 이는 핵에 의존하지 않는 재래식 전력으로도 협상 테이블의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계산이고, 동시에 한국군의 방공과 대드론 능력이 후방 지역에서 크게 비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압박이다. 성능 수치의 진위와 별개로, 이런 공개가 예산과 배치, 그리고 회담 의제를 움직인다는 점은 따로 읽어야 한다.
이 주에 워싱턴에서는 한미안보협의회의가 전작권 전환의 목표연도를 확정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회담을 제의한 쪽은 국방부였고, 북측은 사흘 넘게 답하지 않았다. 집속탄 시험은 그 침묵과 나란히 놓인 정황이다. 평양이 회담의 문을 열지 않겠다는 뜻을 무력으로 서술하면, 한국 정부가 얻는 것은 회담의 진전이 아니라 예산의 증액과 방공망 보강의 명분이다. 그리고 그 명분은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전작권 협상의 조건을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에서 조금 더 유리하게 만드는 데 쓰인다. 무기 공개는 전장의 효과를 넘어 예산과 배치, 회담 의제에까지 작용한다.
바르샤바에서는 같은 주에 다른 종류의 순서가 작동했다. 10월 30일 저녁 헌법재판소의 안나 코르빈-피오트롭스카 재판관이 소장 보그단 시비엥코프스키의 직무를 정지시켰고, 재판소 공식 계정은 이를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31일 자정 무렵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시위대를 뚫고 재판소 건물에 들어갔고, 같은 날 대통령궁에서 위기 협의가 열렸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민족주의·극우 정당과 일부 집권 연정 정당 대표들이 참석했고, 투스크 총리의 시민연합은 불참했다. 나브로츠키는 이 회의를 폴란드의 내부 안보에 대한 위협 때문에 소집했다고 밝혔고, 투스크는 그날 저녁 연설에서 민주주의와 법치를 파괴하려는 조직과 정치인들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나브로츠키에게 새 재판관 임명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했고, 미국 대사는 모든 측에 자제를 요청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어느 쪽이 법을 지켰는가가 아니라, 의제의 순서를 누가 정하는가다. 투스크는 2015년 이후의 법치 훼손을 되돌린다고 말하고, 나브로츠키는 내부 안보의 위협을 들어 협의를 소집한다. 두 언어는 서로 다른 문제를 전면에 놓고, 그 순서가 곧 권한의 정당성을 만든다. 재판소 안에서 결정되는 것은 법리가 아니라 어느 의제가 먼저 상정되는가다.
민주노총의 조합원 97만 명이 19일 투표용지에 쓰는 것은 후보의 이름이 아니라, 이 6년 동안 누가 순서를 짰는가에 대한 판정이다. 그 판정이 1월 1일에 임기를 시작할 지도부의 첫 번째 조건이다.
그런데 같은 날 오전, 고용노동부는 초광역특구법 관련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제1차 운영협의체를 열었다. 노동부와 산업통상부 차관, 한국노총 사무총장, 민주노총 부위원장, 경총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이 참석한 차관급 회의다. 이 자리에서 노사정은 앞으로 논의할 의제와 순서를 확정했다. 기본목표와 정주지원·인력양성, 산업안전·보건과 노동시간·건강권, 고용형태와 노동자 보호, 노사관계·참여 순이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곧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는 두 번째 의제에서 다뤄진다. 상대적으로 이견이 적은 사안부터 다루자는 노동계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여기에 두 가지 사실이 겹친다. 하나는 타결 시한을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7차 실무협의체가 6일 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에는 노동특례가 들어간 박상혁 의원안과 특례를 뺀 최기상 의원안이 함께 제출돼 있고, 민주당은 둘을 병합 심사해 최종안을 만들 계획이다. 선거는 19일부터 25일까지 치러지고, 과반이 없으면 다음 달 6일부터 10일까지 결선투표를 한다. 새 지도부의 임기는 내년 1월 1일부터다.
이견이 적은 사안부터 다루는 것은 절차의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쟁점을 뒤로 미루는 기술이고, 미루는 동안 법안은 병합 심사로 완성된다. 52시간 예외가 두 번째 의제에 놓였다는 것은 그것이 이달 안에 결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며, 이달 안에 결정되지 않으면 그 결정은 선거 이후의 지도부가 아니라 선거 이전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마주한다. 이양수 부위원장은 비대위가 민감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지만 사회적 대화에는 책임 있게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 문장은 정확하다. 비대위는 결정할 권한이 없고, 참여할 의무만 있다. 이 비대칭이 지금 민주노총의 실제 조건이다.
토론회에는 다른 장면도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타 후보의 실명·사진·영상 사용을 제한하는 방침을 냈다가 후보들의 반발에 부딪혀 전날 철회했다. 최준식 후보의 지적이 정확했다. 3선에 도전하는 후보가 나왔다는 것은 지난 6년을 평가받겠다는 것이고, 그 방침은 평가의 통로를 막는 것이었다. 선거 절차는 결국 누가 무엇을 심판받는가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사회적 대화 참여를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들어가자는 쪽과 나오자는 쪽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입장 모두 6년 동안 무엇이 관철되었는가라는 질문 위에 서 있다.
같은 기간 한반도에서는 다른 계산이 진행됐다. 조선중앙통신은 11월 1일 미사일총국이 지난달 31일 전술탄도미사일의 집속탄두인 산포전투부의 전투 적용성과 위력 평가 시험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표준 2형 산포전투부로 12~13정보, 약 11.9~12.9헥타르의 표적 구역을 초토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고, 집속탄두를 특수 용도와 표준형 등 네 부류로 나눠 올해 안에 부대가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는 평안북도 정주군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발사된 미사일을 포착했다고 했고,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합참은 당일 발사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된 사진의 표적은 항공기 격납고, 탄약고, 포병 진지로 추정되는 아치형 구조물이었다. 여기에 지난 30일 공개된 무인기의 최전방 초소와 자주포 모형 공격 훈련이 겹친다. 두 장면은 같은 논리를 말한다. 압도적 공군력의 우위를 후방 기지 쪽에서 상쇄하려는 계산이 두 장면에 함께 담겨 있다. 이는 핵에 의존하지 않는 재래식 전력으로도 협상 테이블의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계산이고, 동시에 한국군의 방공과 대드론 능력이 후방 지역에서 크게 비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압박이다. 성능 수치의 진위와 별개로, 이런 공개가 예산과 배치, 그리고 회담 의제를 움직인다는 점은 따로 읽어야 한다.
이 주에 워싱턴에서는 한미안보협의회의가 전작권 전환의 목표연도를 확정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회담을 제의한 쪽은 국방부였고, 북측은 사흘 넘게 답하지 않았다. 집속탄 시험은 그 침묵과 나란히 놓인 정황이다. 평양이 회담의 문을 열지 않겠다는 뜻을 무력으로 서술하면, 한국 정부가 얻는 것은 회담의 진전이 아니라 예산의 증액과 방공망 보강의 명분이다. 그리고 그 명분은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전작권 협상의 조건을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에서 조금 더 유리하게 만드는 데 쓰인다. 무기 공개는 전장의 효과를 넘어 예산과 배치, 회담 의제에까지 작용한다.
바르샤바에서는 같은 주에 다른 종류의 순서가 작동했다. 10월 30일 저녁 헌법재판소의 안나 코르빈-피오트롭스카 재판관이 소장 보그단 시비엥코프스키의 직무를 정지시켰고, 재판소 공식 계정은 이를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31일 자정 무렵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시위대를 뚫고 재판소 건물에 들어갔고, 같은 날 대통령궁에서 위기 협의가 열렸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민족주의·극우 정당과 일부 집권 연정 정당 대표들이 참석했고, 투스크 총리의 시민연합은 불참했다. 나브로츠키는 이 회의를 폴란드의 내부 안보에 대한 위협 때문에 소집했다고 밝혔고, 투스크는 그날 저녁 연설에서 민주주의와 법치를 파괴하려는 조직과 정치인들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나브로츠키에게 새 재판관 임명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했고, 미국 대사는 모든 측에 자제를 요청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어느 쪽이 법을 지켰는가가 아니라, 의제의 순서를 누가 정하는가다. 투스크는 2015년 이후의 법치 훼손을 되돌린다고 말하고, 나브로츠키는 내부 안보의 위협을 들어 협의를 소집한다. 두 언어는 서로 다른 문제를 전면에 놓고, 그 순서가 곧 권한의 정당성을 만든다. 재판소 안에서 결정되는 것은 법리가 아니라 어느 의제가 먼저 상정되는가다.
민주노총의 조합원 97만 명이 19일 투표용지에 쓰는 것은 후보의 이름이 아니라, 이 6년 동안 누가 순서를 짰는가에 대한 판정이다. 그 판정이 1월 1일에 임기를 시작할 지도부의 첫 번째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