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1988년 유엔 총회 연설

PeopleMikhail Gorbachev TermsNew Political Thinking, Perestroika, Glasnost EventsThe New Thinking and the End of the Cold War, The Soviet-Afghan War GenealogyThe Genealogy of Soviet Foreign Policy

우리는 왜 여기에 왔는가

존경하는 의장님, 존경하는 사무총장님, 존경하는 대표 여러분.

우리는 평화와 안보에 봉사하는 유일무이한 국제 중심으로서의 능력을 갈수록 뚜렷이 보여 주고 있는 유엔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인류의 집단적 이성과 의지를 모아 낼 수 있는 이 기구의 권위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습니다.

최근의 사태는 세계에 이런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구 역시 모든 회원국이 그 발의와 행동을 지지하고, 저마다의 잠재력과 독창적 기여로 그 활동을 풍부하게 하며 적극 참여해 주기를 필요로 합니다. 1년 남짓 전에 저는 「안전한 세계의 현실과 보장」이라는 글에서 유엔의 소관에 속하는 문제들에 관한 생각 몇 가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 뒤로 흐른 시간은 새로운 성찰의 재료를 주었습니다. 세계사의 전개는 실로 전환점에 이르렀습니다. 소련이 세계 문제에서 해 온 역할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와 국제 협력의 거대한 잠재력을 품은 혁명적 페레스트로이카가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되는 데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가장 권위 있는 세계 기구의 전당에서 우리의 생각을 나누러 왔고, 우리의 새롭고 중요한 결정들을 이 기구가 가장 먼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기말의 세계, 무엇이 달라졌는가

인류는 어떤 모습으로 21세기에 들어서게 될 것인가. 이제 그리 멀지 않은 그 미래에 대한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것에 대한 기대와 함께, 동시에 불안을 안고 그 미래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계는 금세기 초는 물론 중엽의 세계와도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 모든 구성 부분에서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핵무기의 등장은 이 변화의 근본적 성격을 비극적인 방식으로 강조해 주었을 뿐입니다. 절대적 군사력의 물질적 상징이자 담지자인 핵무기는 동시에 바로 그 힘의 절대적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인류의 생존과 자기보존이라는 문제가 그 전체 규모로 우리 앞에 제기된 것입니다.

매우 깊은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에서나 남에서나, 서에서나 북에서나, 수억의 인민과 새로운 민족과 국가, 새로운 사회운동과 이념 들이 역사의 무대 전면으로 나섰습니다. 광범위하고 때로 격렬한 인민운동 속에서 독립과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향한 갈망이 그 모든 다면성과 모순 속에 표현되고 있습니다. 세계 질서 전체를 민주화한다는 이념은 강력한 사회정치적 힘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과학기술혁명은 얼마 전까지 우리가 일국적 또는 지역적 문제로 다루던 경제·식량·에너지·환경·정보·인구 문제 들을 지구적 문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통신과 대중매체와 교통의 최신 수단들 덕분에 세계는 모두에게 더 잘 보이고 더 잘 만져지는 곳이 된 듯합니다. 국제적 접촉은 전례 없이 단순해졌습니다. 오늘날 닫힌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보편적 안보의 주요 요소로서의 국제 협력 문제 전반에 대한 관점의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합니다.

세계 경제는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가고 있으며, 사회 체제가 무엇이든 경제 수준이 어떠하든 어떤 국가도 그 바깥에서는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계 경제의 작동을 위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기제, 국제 분업의 새로운 구조를 마련하는 일을 의제에 올려놓습니다.

동시에 세계 경제의 성장은 전통적 공업화에 내재한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방식이 더 넓게 더 깊게 확산되면 생태적 파국을 부릅니다. 그러나 아직 공업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나라가 많고, 산업화 이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나라도 있습니다. 이들의 경제 성장이 낡은 기술 유형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생태적으로 깨끗한 생산의 모색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선진국과 대다수 개발도상국 사이의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갈수록 심각한 지구적 위협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민과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산업적 진보를 찾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새로운 현실이 세계 상황 전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과거에서 물려받은 차이와 대립은 줄어들거나 밀려나고 있지만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어떤 이견과 분쟁은 의미를 잃어 가고, 그 자리를 다른 종류의 갈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삶은 우리에게 익숙한 고정관념과 낡은 견해를 버리게 하고,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습니다. 진보의 본질과 기준이라는 개념 자체가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인류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과거에 쓰였거나 유효해 보였던 수단과 방법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류는 지극히 다양한 조건에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발전의 풍부한 경험을 쌓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이미 과거가 되었거나 과거가 되어 가는 관행과 세계에 속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현 역사 단계의 획기적 성격을 보여 주는 징표의 하나가 있습니다.

두 혁명의 유산, 그리고 전인류적 가치

위대한 철학자들은 사회 발전의 법칙을 파악하고 근본 물음, 곧 인간의 삶을 어떻게 행복하고 정의롭고 안전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써 왔습니다. 두 위대한 혁명, 1789년의 프랑스 혁명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역사 과정의 성격 자체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세계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두 혁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류의 진보에 거대한 추동력을 주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회적 의식에 널리 자리 잡고 있는 사고방식을 상당 부분 형성한 것도 이 두 혁명입니다. 그것은 더없이 귀중한 정신적 유산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앞에는 다른 세계가 떠오르고 있고, 그 세계를 위해서는 미래로 가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축적된 경험에 기대되, 어제의 상황과 오늘 벌어지고 있는 일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직시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의 새로움과 어려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보가 전 인류의 이익에 기초하게 될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이것을 자각한다면 세계 정치 역시 전인류적 가치를 앞자리에 놓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지난 수백 년, 수천 년의 역사는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진 전쟁의 역사였고, 때로는 상호 절멸에 이르는 필사적 전투의 역사였습니다. 전쟁은 사회적·정치적 이해의 충돌에서, 민족적 반목에서, 이념이나 종교의 불화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모든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극복되지 못한 그 과거를 불변의 법칙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러나 전쟁과 반목과 민족들 사이의 소외가 진행되는 것과 나란히, 그에 못지않게 객관적으로 조건 지어진 또 하나의 과정이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서로 연결된 하나의 통합적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이제 세계의 진보는 오직 전 인류적 합의를 찾는 길, 새로운 세계 질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통제되지 않는 자연발생성이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지는 경계선에 이르렀습니다. 국제 공동체는 문명을 보존하고 모두에게 안전하며 정상적 삶에 더 알맞은 것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과정을 형성하고 이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협력, 더 정확히는 공동 창조와 공동 발전이라 불러야 할 협력입니다. 남의 희생 위에서 발전한다는 공식은 낡은 것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개인과 민족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고서는, 또 자연을 희생시켜서는 어떤 진정한 진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구적 문제를 푸는 일 자체가 이념과 그 밖의 차이를 넘어 국가들과 사회정치적 조류들의 새로운 규모, 새로운 질의 협력을 요구합니다. 물론 개별 나라와 사회 구조 안에서는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우리 시대는 수정을 가하고 있습니다. 내부의 변혁 과정은 바깥 세계의 성취와 대등한 협력의 가능성을 이용하지 않고 남들과 평행선만 그어서는 자신의 민족적 목표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그 내부 과정에 간섭해 남의 처방대로 바꾸어 놓으려는 시도는 평화로운 질서의 형성에 그만큼 더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과거에 차이는 흔히 서로를 밀어내는 요인이었습니다. 이제 그 차이는 상호 풍요와 상호 이끌림의 요인이 될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사회 구조의 차이, 생활 방식의 차이, 특정 가치에 대한 선호의 뒤에는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피해 갈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국제적 틀 안에서 이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필요 역시 피해 갈 길이 없으며, 그것은 이미 생존과 진보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새 세계의 원칙: 힘의 포기, 선택의 자유, 탈이데올로기화

이 모든 것을 곰곰이 생각하면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과거의 교훈과 현재의 현실을 헤아리려 한다면, 세계 발전의 객관적 논리를 존중하려 한다면, 국제 상황을 개선하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길을 함께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활동의 근본적이고 참으로 보편적인 전제와 원칙에 대해서도 합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힘의 사용과 힘의 위협이 더 이상 대외 정책의 도구일 수 없고 도구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핵무기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중에서도 먼저 강한 자들이 스스로를 제약하고 바깥을 향한 힘의 사용을 전면 배제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도와 함께 델리 선언에서 이상으로 선포했고 여러분이 따라 주기를 권하는 비폭력 세계의 첫째가는 구성 요소입니다.[1] 더구나 오늘날에는 군사력을 쌓아 올린다고 해서 어떤 강대국도 전능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군사력에 대한 일면적 의존은 결국 국가 안보의 다른 구성 요소들을 약화시킵니다.

선택의 자유라는 원칙이 필수적이라는 것 역시 우리에게 분명합니다. 이 원칙을 인정하지 않으면 세계 평화에 극히 중대한 결과가 따릅니다. 어떤 구실을 대든, 어떤 말로 감싸든, 인민들에게서 그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이제까지 가까스로 이루어 놓은 불안정한 균형마저 위태롭게 하는 일입니다. 선택의 자유는 보편 원칙이며 거기에는 어떤 예외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원칙의 불변성을 확신하게 된 것은 단지 선한 동기에서가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객관적 과정에 대한 공정한 분석이 우리를 그리로 이끌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사회 발전이 갈수록 다양한 선택지를 갖게 된다는 것이 그 과정의 점점 더 뚜렷한 특징입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도 사회주의 체제에도 해당합니다. 지난 수십 년 사이 민족해방운동에서 자라 나온 사회정치 구조들의 다양성도 이를 보여 줍니다. 이 객관적 사실은 타인의 견해와 입장에 대한 존중을, 관용을, 다른 것을 반드시 나쁘거나 적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을 자세를, 서로 다른 채로 모든 문제에 합의하지는 못한 채로 나란히 살아가는 법을 배울 능력을 전제합니다. 세계가 그 다양성을 스스로 확립해 갈수록, 남을 내려다보며 자기식 민주주의를 가르치려는 시도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수출용으로 만들어진 민주주의적 가치가 대개 아주 빨리 그 가치를 잃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다양성 속의 통일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정치적으로 천명한다면, 선택의 자유에 대한 지지를 확인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신의 뜻으로 이 땅에 살고 다른 사람들은 순전한 우연으로 여기 있다는 식의 관념은 버려질 것입니다. 그런 관념을 털어 내고 그에 맞게 정치 노선을 세울 때가 왔습니다. 그러면 세계의 통일성을 강화할 전망도 열릴 것입니다.

국가 간 관계의 탈이데올로기화는 새로운 단계의 요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념과 철학과 전통을 포기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그들의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가치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둘 생각도 없습니다. 그것은 정신적 빈곤으로 가는 길입니다. 각 민족이 독자적으로 창조해 낸 독창적인 것들을 나누는 일, 그 강력한 발전의 원천을 포기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눔 속에서 각자는 자기 체제와 생활 방식과 가치의 우월성을 말이나 선전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정직한 이념 경쟁입니다. 그러나 그 경쟁을 국가 간 관계에까지 옮겨 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세계의 어떤 문제도 풀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민족들 사이의 광범위하고 호혜적이며 대등한 협력을 마련하는 일도, 과학기술혁명의 성취를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일도, 세계 경제 관계를 재편하는 일도, 환경을 보호하는 일도, 저발전을 극복하고 기아와 질병과 문맹과 그 밖의 대중적 재난을 끝내는 일도 못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핵 위협과 군사주의를 제거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21세기의 문턱에서 세계의 사물의 이치에 대해 우리가 하는 성찰입니다. 물론 우리는 절대 불변의 진리를 쥐고 있다고 주장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현실과 새로 생겨난 현실을 엄밀히 분석한 끝에 우리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런 접근으로, 무수한 원심력 위에 전인류적 이념이 우위에 서는 길을, 어쩌면 우주에서 유일할지도 모르는 이 문명의 생명력을 보존하는 길을 함께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낭만주의라는 의심에 답하다

여기에 어떤 낭만주의가, 세계 여론의 잠재력과 성숙도에 대한 과대평가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런 의심과 물음을 국내에서도, 서방의 일부 파트너들에게서도 듣습니다. 저는 우리가 현실에서 떠 있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평화의 시대의 도래를 재촉하는 힘들이 세계에 이미 형성되어 있습니다. 인민들과 광범위한 대중은 진정으로 사태가 나아지기를 열망합니다. 협력하는 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이 흐름이 얼마나 강한지 때로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런 정서가 정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철학적 접근의 변화와 정치적 관계의 변화는 세계적 규모의 객관적 과정에 기대어, 국가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려는 노력에 강력한 추동력을 줄 중요한 전제입니다. 한때 냉전에, 때로는 그 가장 첨예한 국면에 활동이 얽혀 있던 정치인들조차 상응하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그들이야말로 그 시절의 고정관념과 경험을 버리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조차 방향을 바꾸고 있다면, 새로운 세대가 이어받을 때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합니다. 요컨대 평화의 시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스스로 길을 열며 지배적 흐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국제 상황의 개선과 군축을 향한 첫 현실적 걸음들이 가능해졌습니다. 실천의 차원에서는 무엇이 따라 나오는가. 자연스럽고 현명한 길은 이미 이룬 긍정적인 것을 버리지 않고, 최근 몇 년간 함께 노력해 이루어 낸 모든 것 위에 쌓아 가는 것입니다.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와 화학무기에 관한 협상 과정, 지역 분쟁을 끝낼 정치적 길의 모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무엇보다 먼저, 정치적 대화입니다. 더 집중적이고 더 열려 있으며, 대결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겨냥하고, 비난의 교환이 아니라 건설적 구상의 교환을 지향하는 대화 말입니다. 정치적 대화 없이는 협상 과정이 나아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가까운 미래에도 더 먼 미래에도 전망은 충분히 낙관적입니다. 미국과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십시오. 조금씩 상호 이해가 쌓이기 시작했고 신뢰의 요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것 없이는 정치에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유럽에는 그런 요소가 더욱 많습니다. 헬싱키 과정은 위대한 과정입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여전히 온전한 효력을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상황을 고려하면서, 철학적·정치적·실천적 측면 모두에서 보존되고 심화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현실은 국제 과정의 정상적이고 건설적인 전개를 보장하는 대화에 세계의 모든 나라와 지역이 상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합니다. 인도, 중국, 일본, 브라질 같은 큰 규모의 나라들도, 크고 중간이고 작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정치적 대화가 더 역동적이고 더 알찬 것이 되기를, 국제적 분위기의 개선에 필요한 정치적 전제들이 강화되기를 지지합니다. 그러면 많은 문제의 실천적 해결도 쉬워질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바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세계의 더 큰 통일성을 향한 움직임에는 모두가 참여해야 합니다. 지금이 특히 중요합니다. 세계의 연대와 국제 관계의 안정성과 역동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의제에 오르는, 매우 중대한 시기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외국의 국가 지도자, 정치 지도자 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런 대화를 200번 넘게 해 왔습니다만, 이 극히 중대한 시기에 자신들이 어찌 된 일인지 세계 정치의 핵심 문제들에서 비켜서 있는 듯하다는 불만을 때때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런 처지를 감수하려 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고 옳은 일입니다. 우리가 서로 다를지언정 같은 문명의 부분들이라면, 현대 세계의 상호의존을 이해한다면, 그 사실은 정치에서도, 국제 관계를 조화시키려는 실천적 노력에서도 더 큰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이 경우에 페레스트로이카라는 말이 꼭 어울리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실로 새로운 국제 관계의 건설을 주창합니다. 저는 시대와 현대 세계의 현실이 대화와 협상 과정의 국제화에 승부를 걸 것을 요구한다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최근 힘을 얻어 온 세계적 과정들을 연구하고 세계 정치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이른 가장 중요한 일반적 결론입니다.

유엔의 새로운 역할

이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유엔의 새로운 역할이라는 문제도 제기됩니다. 우리가 보기에 각국은 유엔이라는 유일무이한 도구에 대한 태도를 어느 정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엔 없이 세계 정치를 상상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최근 유엔의 평화 조성 역할이 되살아난 것은, 이 기구가 시대의 위협적 도전에 대처하고 관계를 인간화하는 길을 가도록 회원국들을 도울 능력이 있음을 다시 보여 주었습니다.

불행히도 유엔은 창설되자마자 냉전의 공세에 휘말렸습니다. 여러 해 동안 유엔은 선전전의 마당이, 정치적 대결을 배양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크고 작은지는 역사가들이 논쟁하게 두어도 됩니다. 오늘의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은 유엔의 본래 의미와 목적에 어긋났던 그 역사의 한 장에서 교훈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가장 쓰라리고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놓쳐 버린 기회들의 긴 목록입니다. 그로 인해 한때 유엔의 권위는 떨어졌고, 유엔의 많은 행동 시도가 좌절되었습니다.

유엔의 역할의 부활이 국제적 분위기의 개선과 맞물려 있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입니다. 유엔은 말하자면 여러 나라의 이해를 한데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국의 양자적·지역적·포괄적 노력을 하나의 흐름으로 합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입니다. 유엔의 소관에 본래 속하는 모든 영역, 곧 군사정치·경제·과학기술·환경·인도적 영역에서 새로운 전망이 유엔 앞에 열리고 있습니다.

발전 문제를 예로 들어 봅시다. 이것은 참으로 전 인류 공통의 문제입니다. 제3세계 여러 지역에서 수천만 인민이 살아가는 조건은 이제 인류 전체에 위험한 것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떤 닫힌 집단도,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지역적 국가 공동체조차도, 세계 경제 관계의 주요 노선들, 곧 남북·동서·남남·남동·동동 노선에 맺힌 주된 매듭들을 풀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결합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나라 집단의 이익이 고려되어야 하며, 그것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유엔 같은 기구뿐입니다.

제3세계의 부채, 지구의 환경, 인류의 우주

대외 부채는 가장 첨예한 문제의 하나입니다. 잊지 맙시다. 식민 시대에 개발도상 세계는 헤아릴 수 없는 손실과 희생을 치르며 세계 공동체의 상당 부분의 번영을 앞당겨 주었습니다. 세계의 물질적 진보에 대한 그 역사적이고 비극적인 기여에 따라붙었던 박탈을 보상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확신하기에 출구는 여기서도 접근의 국제화에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쌓인 부채는 원래 조건대로 갚을 수도 회수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소련은 최저개발국들의 부채 상환에 대해 최장 100년의 장기 지급유예를 실시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상당수의 경우에는 부채를 전면 탕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 밖의 개발도상국들에 대해서는 다음을 검토할 것을 제안합니다. 각국의 경제 발전 지표에 따라 공적 부채의 상환을 제한하거나 상환액의 상당 부분에 대해 장기 유예를 선언할 것, 상업은행에 대한 부채 경감을 요구한 유엔무역개발회의의 호소를 지지할 것, 할인된 값으로 부채를 사들이는 국제 전문 기구의 설립을 포함해 시장 기제를 통한 제3세계 부채 정리에 정부의 지원을 보장할 것. 소련은 채무국과 채권국 정부 수반들이 유엔의 주관 아래 협의하는 것을 포함해, 다자 무대에서 부채 위기의 해결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지지합니다.

국제 경제 안보는 군축만이 아니라 세계적 환경 위협의 극복과 결부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일부 지역의 환경 상태는 그야말로 끔찍합니다. 유엔의 틀 안에서 1992년에 환경 회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결정을 환영하며, 그 회의가 문제의 규모에 걸맞은 결과를 내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으며, 각국에서 많은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군축, 무엇보다 물론 핵군축의 과정이 환경의 회생에 열어 주는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힘주어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유엔 산하에 긴급 환경 지원 센터를 세우는 것도 함께 생각해 봅시다. 그 기능은 환경이 급격히 악화된 지역에 국제 전문가단을 지체 없이 파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소련은 또한 오로지 자연 상태의 감시에만 종사할 국제 우주 실험실 또는 유인 궤도 정거장의 창설에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주 개발 전반에서 미래 우주 산업의 윤곽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소련의 입장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주에서의 활동은 무기를 들고 그곳에 나가는 일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법적 기초가 필요합니다. 그 토대는 이미 있습니다. 1967년 조약과 그 밖의 협정들입니다. 그러나 우주에서의 평화적 작업을 위한 포괄적 체제를 마련할 필요가 이미 무르익었습니다. 그 체제의 준수를 감시하는 일은 세계우주기구가 맡으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기구를 세우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크라스노야르스크 레이더 기지를 그 기구의 체계에 편입시킬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2] 그 기지를 소련 과학아카데미로 이관하는 결정은 이미 내려졌습니다. 소련 과학자들은 외국 동료들을 맞아, 개별 시설과 구조물을 해체하고 개조하며 부족한 장비를 채워 그 기지를 평화적 협력의 국제 센터로 재편할 방안을 함께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체계 전체가 유엔의 주관 아래 기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 분쟁: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아라파트 사건

온 세계가 지역의 매듭을 푸는 유엔과 페레스 데 케야르 사무총장과 그 대표들의 노력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를 조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헤밍웨이가 그의 유명한 소설의 제사로 삼은 영국 시인의 구절을 바꾸어 이렇게 말합시다. 어느 지역 분쟁의 종이 울리든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 울리는 종입니다.[3] 이 분쟁들이 그렇지 않아도 온갖 어려움과 문제를 안고 있는 제3세계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 규모는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8년은 우리 공동의 관심사인 이 영역에도 희망의 빛줄기를 가져왔습니다. 거의 모든 지역 위기에 그 빛이 닿았고 몇몇 곳에서는 개선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환영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도왔습니다.

여기서는 아프가니스탄만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근본적이고 실천적인 의의를 온 세계가 높이 평가한 제네바 협정은 올해 안에 해결을 매듭지을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이 유감스러운 사실은 파크타 순트 세르반다, 곧 조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고대 로마 격언의 정치적·법적·도덕적 의미를 다시 일깨워 줍니다. 저는 이 연단을 누구를 향한 비난에 쓰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기에, 유엔의 권한 안에서 지난 11월 총회 결의에 몇 가지 구체적 조치를 보탤 수 있을 것입니다. 결의의 표현대로 광범위한 기반의 정부 문제를 아프가니스탄인들 스스로 포괄적으로 조속히 해결하도록, 다음과 같은 조치입니다. 1989년 1월 1일부터 전면 휴전을 발효시키고 모든 공격 작전과 포격을 중지할 것, 협상 기간에는 대립하는 아프가니스탄 각 세력이 장악한 영토를 그대로 그들의 통제 아래 둘 것, 이와 연동해 같은 날부터 모든 교전 당사자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할 것, 총회 결의가 예정한 광범위한 기반의 정부를 수립하는 기간에 카불과 그 밖의 전략적 요충지에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대를 보낼 것. 우리는 이 일에서 유엔과도, 양자 차원에서도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중립화와 비무장화를 위한 국제회의를 열자는 구상이 하루빨리 실현되도록 힘써 줄 것을 사무총장께 요청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울 것입니다. 유엔의 주관 아래 아프가니스탄의 재생을 도울 자원 국제평화봉사단을 창설하자는 제안을 우리는 지지합니다.

지역 분쟁 해결 문제와 관련해, 최근 이번 회기의 활동을 둘러싸고 일어난 심각한 사건에 대한 판단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엔 상주 옵서버 지위를 가진 기구의 의장이 총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뉴욕에 오는 것을 미국 당국이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야세르 아라파트 말입니다. 더구나 그 일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참여 아래 중동이라는 매듭의 해법을 찾는 일을 쉽게 해 줄 중요하고 건설적인 걸음을 내디딘 시점에 일어났습니다. 다른 지역 분쟁들의 정치적 해결을 향한 긍정적 흐름이, 많은 경우 소련과 미국의 조력 속에 형성되던 시점에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팔레스타인해방기구에 연대를 표명합니다.

국제법과 인권: 인간이 만물의 중심에 설 때

포괄적 국제 안보의 개념은 유엔 헌장의 원칙들에 기초하며, 국제법이 모든 국가에 구속력을 갖는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국제 관계의 비군사화를 지지하는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기든 그 해결에서 정치적·법적 방법이 지배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상은 법에 기초한 국가들, 대외 정책 활동까지도 법에 종속시키는 국가들의 세계 공동체입니다. 그 목표의 달성은 국제법의 원칙과 규범에 대한 통일된 이해에 유엔의 틀 안에서 합의하고, 새로운 조건을 고려해 그것을 법전화하며, 새로운 협력 영역을 위한 법적 규범을 마련함으로써 쉬워질 것입니다.

핵시대에 국제법의 실효성은 이행의 강제가 아니라 국가들의 이해 균형을 반영하는 규범에 기초해야 합니다. 운명의 객관적 공통성에 대한 자각이 커지는 것과 함께, 그것은 모든 국가가 국제법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를 제약하는 데 진정한 이해관계를 갖게 만들 것입니다.

국제 관계의 민주화는 세계 공동체의 모든 성원이 문제 해결에 최대한 함께한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관계의 인간화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그의 관심사와 권리와 자유가 만물의 중심에 놓일 때에만, 국제적 유대는 인민들의 진정한 이익을 온전히 반영하고 그들의 공동 안보에 믿음직하게 봉사할 것입니다.

이 맥락에서 저는 40년 전인 1948년 12월 10일에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의 의의에 대한 높은 평가에 우리나라의 목소리를 보태고 싶습니다. 그 문서는 오늘도 유효합니다. 그것 역시 유엔의 목적과 과제의 보편적 성격을 반영했습니다. 국가가 이 선언의 기념일을 지키는 가장 알맞은 방식은 자국 시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한 국내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페레스트로이카 보고: 소련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최근 그런 의미에서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참으로 혁명적인 고양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과정은 탄력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이론적 개념을 다듬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문제의 성격과 규모를 평가하고 과거의 교훈을 해석해 그것을 정치적 결론과 강령의 형태로 표현해야 했습니다. 그 일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론적 작업, 일어난 일에 대한 재해석, 정치적 입장의 마무리와 보강과 수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체적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 근본적으로 중요했습니다. 지나온 몇 해의 경험이 확인해 주듯 그 개념은 대체로 옳았음이 입증되었고, 그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사회가 페레스트로이카의 계획을 실현하는 일에 참여하게 하려면 사회를 실제로 민주화해야 했습니다. 민주화의 기치 아래 페레스트로이카는 이제 정치와 경제, 정신생활과 이념까지 아우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 경제 개혁을 펼쳤고 경험을 쌓았으며, 새해 벽두부터 국민경제 전체를 새로운 형태와 방법으로 옮깁니다. 이것은 또한 생산관계의 깊은 재편이며, 사회주의적 소유에 내재한 거대한 잠재력의 실현입니다.

이런 대담한 혁명적 변혁에 나서면서 우리는 오류도 있으리라는 것, 저항이 일어나리라는 것, 새로움이 새로운 문제를 낳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개별 부문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권력과 행정의 체계 전체에 대한 깊은 민주적 개혁이야말로 페레스트로이카의 전체 과정이 꾸준히 전진하고 힘을 얻으리라는 보증입니다.

헌법 개정에 관한 소련 최고회의의 최근 결정과 선거법의 채택으로 우리는 정치 개혁 과정의 첫 단계를 마쳤습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그 둘째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이 단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중앙과 공화국들의 관계를 다듬는 일, 위대한 혁명이 우리에게 물려준 레닌주의적 국제주의의 원칙 위에서 민족 간 관계를 조정하는 일, 그리고 동시에 지방 소비에트 권력을 재편하는 일입니다. 거대한 작업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큰 과제들을 동시에 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론이 있고 정책이 있으며, 페레스트로이카의 전위 세력인 당이 있습니다. 당 또한 새로운 과제와 사회 전체의 근본적 변화에 맞추어 스스로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위대한 나라의 모든 인민과 모든 세대의 시민이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법에 기초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깊이 들어섰습니다. 일련의 새 법률의 작업이 완료되었거나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그 다수는 이르면 1989년에 발효하며, 우리는 그것들이 개인의 권리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높은 기준에 부합하기를 기대합니다.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굳건한 규범적 기초를 얻게 될 것입니다. 양심의 자유에 관한 법, 글라스노스트에 관한 법, 사회단체와 조직에 관한 법을 비롯한 여러 법률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수감 시설에는 정치적 또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고 갇혀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새 법률안들에는 그런 사유로 인한 어떤 형태의 박해도 배제하는 추가적 보장이 담길 예정입니다. 물론 이것은 간첩 행위, 파괴 공작, 테러 같은 실제 형사 범죄나 국가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는 그들의 정치적·철학적 견해가 무엇이든 적용되지 않습니다. 형법 개정안은 준비되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극형의 적용에 관한 조항들이 재검토되고 있습니다.

출국과 입국의 문제, 가족 재결합을 위한 출국의 문제도 인도적 정신으로 해결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출국 불허의 사유 가운데 하나는 시민이 기밀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기밀 보유에 대해 엄격히 근거를 갖춘 시한이 사전에 도입됩니다. 해당 기관이나 기업에서 일을 시작하는 모든 사람은 이 규정을 미리 알게 될 것입니다. 분쟁이 생기면 법에 따라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이른바 「거부된 사람들」의 문제는 의제에서 사라집니다.[4]

우리는 유엔과 유럽 과정의 인권 감시 기제에 대한 소련의 참여를 확대할 생각입니다. 우리는 인권 분야 협정들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의 관할권이 모든 국가에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헬싱키 과정의 맥락에서, 소련을 향한 모든 외국 방송에 대한 전파 방해의 중지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의 신조는 이렇습니다. 정치적 문제는 오직 정치적 수단으로, 인간의 문제는 오직 인간적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축: 일방 감군 50만의 선언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 이것 없이는 다가오는 세기의 어떤 문제도 풀 수 없는 문제, 곧 군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국제적 발전과 교류는 군비경쟁과 사고의 군사화로 일그러져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1986년 1월 15일 소련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강령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을 실제 협상 입장으로 구현한 결과는 이미 물질적 열매를 맺었습니다. 내일은 중거리·단거리 미사일 폐기 조약 서명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 조약의 이행, 곧 미사일의 폐기가 신뢰와 실무적 능률의 분위기 속에서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저는 더욱 큰 만족과 함께 말씀드립니다.

뚫을 수 없을 것 같던 의심과 적대의 벽에 마침내 큰 틈이 하나 열린 셈입니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서 새로운 역사적 현실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초무장의 원칙에서 방어를 위한 합리적 충분성의 원칙으로의 방향 전환입니다. 우리는 거의 언제나 그래 왔듯 무기를 늘려서가 아니라, 반대로 타협에 기초해 무기를 줄임으로써 안보를 보장하는 새로운 모델이 형성되는 첫 새벽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소련 지도부는 이 건강한 과정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강화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다음을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소련은 자국 군대의 감축을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2년 안에 병력 50만 명이 줄어들 것이며, 재래식 무기의 규모도 대폭 감축될 것입니다. 이 감축은 빈 회담의 위임사항에 관한 협상과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이루어집니다.[5]

바르샤바조약 동맹국들과의 합의에 따라, 우리는 1991년까지 독일민주공화국과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에서 전차사단 여섯 개를 철수시켜 해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중강습 부대들과 도하강습 부대들을 비롯한 여러 부대와 편제도 무기와 전투 장비와 함께 그 나라들에 주둔한 소련군 집단에서 철수합니다. 그 나라들에 주둔한 소련군은 병력 5만 명, 전차 5천 대가 줄어듭니다. 당분간 동맹국 영토에 남는 소련군 사단들은 모두 재편됩니다. 그 편제는 지금과 달라질 것이며, 전차를 대거 빼내고 나면 명백히 방어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소련의 유럽 지역에서도 병력과 무기의 수를 줄입니다. 우리나라의 그 지역과 유럽 동맹국들의 영토를 합쳐, 소련군은 전차 1만 대, 포병 체계 8,500문, 전투기 800대가 감축됩니다. 이 2년 사이에 우리나라 아시아 지역의 군 집단도 대폭 줄일 것입니다. 몽골인민공화국 정부와의 합의에 따라, 그곳에 일시 주둔 중인 소련군의 상당 부분이 귀국합니다.

이 근본적 결정들을 채택하면서 소련 지도부는 자신의 사회주의 사회를 깊이 갱신하고 있는 인민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소련과 그 동맹국의 안보를 침해할 유혹을 느끼지 못하도록, 합리적이고 믿을 만한 충분성의 수준에서 나라의 방위력을 유지할 것입니다.

우리의 이 행동으로, 그리고 국제 관계의 비군사화를 위한 우리의 활동 전체로, 우리는 세계 공동체의 주의를 또 하나의 절실한 문제로 이끌고자 합니다. 군비의 경제에서 군축의 경제로 옮겨 가는 문제, 곧 군수 생산의 전환 문제입니다. 군수산업의 민수 전환은 현실적인 일인가. 저는 이미 이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실로 현실적이라고 믿습니다. 소련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경제 개혁의 틀 안에서 우리는 자체 전환 계획을 작성해 제출하고, 1989년 중에 실험으로 국방 기업 두세 곳의 전환 계획을 마련하며, 군수산업 전문 인력의 일자리 재배치와 그 장비·건물·시설의 민수 이용에 관한 우리의 경험을 공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국가가, 먼저 주요 군사 강국들이 이 문제에 관한 자국의 계획을 유엔에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과학자 그룹을 만들어 전환 문제 전반과 개별 나라·지역에의 적용을 깊이 분석해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고하게 하고, 이후 총회 회기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모두의 책임

끝으로, 미국 땅에 와 있기 때문에, 또 그 밖의 이해할 만한 이유들 때문에, 이 위대한 나라와 우리의 관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꼭 1년 전 워싱턴을 잊지 못할 방문으로 찾았을 때 저는 이 나라의 환대를 온전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소련과 미국의 관계는 55년에 걸쳐 있습니다. 세계가 변했듯 이 관계의 성격과 역할과 세계 정치 속의 자리도 변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이 관계는 대결의 깃발 아래, 때로는 공공연하거나 은밀한 적대의 깃발 아래 세워져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해 사이 모스크바와 워싱턴 관계의 내용과 분위기가 나아진 덕분에 온 세계가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의 어려움과 이견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 속에서 해법을 찾는 배움의 초등학교는 이미 졸업했습니다. 소련과 미국은 가장 큰 핵미사일 무기고를 만들어 낸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책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자신과 모두를 위협하던 그 무기의 일부를 감축하고 물리적으로 폐기하는 조약을 처음으로 맺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두 나라입니다. 두 나라는 가장 크고 가장 정교한 군사 기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기의 폐기와 생산의 제한·금지에 대한 상호 검증 체계의 기초를 놓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두 나라입니다.

미래의 양자·다자 합의를 위한 경험을 쌓아 가고 있는 것도 그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우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그 행정부 구성원들, 무엇보다 조지 슐츠 씨의 기여를 인정하고 높이 평가합니다. 이 모든 것은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공동 사업에 투자된 자본입니다. 그것을 헛되이 하거나 놀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이끌 차기 미국 행정부는 우리에게서 이런 파트너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긴 공백도 뒷걸음질도 없이, 현실주의와 개방과 선의의 정신으로, 구체적 결과를 얻으려는 의지를 갖고, 소미 관계와 국제 정치의 핵심 의제를 두고 대화를 이어 갈 준비가 된 파트너 말입니다. 무엇보다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 조약)을 유지하면서 전략공격무기를 50% 감축하는 조약을 향한 꾸준한 전진, 화학무기 폐기 협약의 작성, 여기에는 1989년을 결정적 해로 만들 전제들이 갖추어져 있다고 우리는 봅니다, 그리고 유럽의 재래식 무기와 군대의 감축 협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가장 넓은 의미의 경제·환경·인도적 문제들도 말하는 것입니다.

국제 상황의 긍정적 변화를 오로지 소련과 미국의 공으로만 돌린다면 전적으로 옳지 않을 것입니다. 소련은 국제 상황의 개선 과정에 사회주의 나라들이 해 온 크고 독창적인 기여를 높이 평가합니다. 협상의 과정에서 우리는 핵보유국이든 아니든 다른 주요 국가들의 존재를 늘 실감합니다. 중간 규모와 작은 규모의 많은 나라들, 그리고 물론 비동맹운동과 대륙을 아우르는 6개국 그룹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6] 갈수록 많은 국가·정치·정당·사회 활동가들이 보편적 책임의 짐을 나누어 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스크바에서 기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특히 과학자들, 문화인들, 대중 조직과 여러 교회의 대표들, 이른바 인민 외교의 활동가들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 유엔의 주관 아래 사회단체들의 회의체를 정기적으로 소집하자는 구상은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맺음말: 되돌릴 수 없게 될 때까지

우리는 세계의 상황을 단순화해서 볼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군축을 향한 흐름은 강력한 추동력을 얻었고 그 과정은 스스로 탄력을 얻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결을 버리고 대화와 협력을 택하려는 의지가 뚜렷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국제 관계의 관행 속에 영구히 자리 잡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핵무기 없는 비폭력 세계를 향한 움직임은 지구의 정치적·정신적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었을 뿐이며, 그 첫걸음조차 일부 영향력 있는 집단들에서는 불신으로 맞아들여지고 저항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과거의 유산과 타성은 계속 작동하고 있습니다. 깊은 모순들과 많은 분쟁의 뿌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근본적 사실이 남아 있습니다. 평화의 시대의 형성은 서로 다른 사회경제 체제와 정치 체제 들이 존재하고 경쟁하는 조건에서 이루어지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국제적 노력의 의미, 그리고 신사고의 핵심 명제의 하나는 바로 이 경쟁에 선택의 자유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균형이라는 조건 아래 이루어지는 분별 있는 경쟁의 성격을 부여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경쟁은 세계 전체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유익하고 생산적인 것이 되기까지 할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지금까지처럼 군비경쟁이 그 기본 요소로 남는다면, 경쟁은 치명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보통 사람부터 지도자들까지, 이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존경하는 대표 여러분. 저는 유엔에서의 첫 연설을 시작할 때와 같은 감정으로 마칩니다. 나의 인민과 세계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우리는 유엔에 그토록 뜻깊었던 한 해의 끝에서, 우리 모두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하는 한 해의 문턱에서 만났습니다. 전쟁과 대결과 지역 분쟁의 시대, 자연에 대한 침탈, 기아와 빈곤의 공포, 그리고 정치적 테러리즘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우리의 공동 노력이 우리의 희망에 값하는 것이 되리라 믿고 싶습니다. 이것이 우리 공동의 목표이며, 우리는 오직 함께 행동함으로써만 그것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옮긴이 주

  1. 델리 선언: 1986년 11월 고르바초프와 인도 총리 라지브 간디가 서명한 「핵무기 없는 비폭력 세계의 원칙에 관한 델리 선언」을 가리킨다.
  2. 크라스노야르스크 레이더: 시베리아에 건설 중이던 대형 조기경보 레이더로, 미국은 이를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 조약) 위반이라 주장해 왔다. 이 연설의 제안은 그 논란에 대한 소련의 답변이기도 했다. 기지는 결국 1989년 해체가 결정되었다.
  3. 영국 시인 존 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설교 구절로, 헤밍웨이가 동명 소설의 제사로 삼았다.
  4. 거부된 사람들(오트카즈니키, refuseniks): 주로 이스라엘 이주를 신청했다가 기밀 취급 경력 등을 이유로 출국을 거부당한 소련 시민들을 가리키던 말. 미소 관계와 인권 논쟁의 상징적 쟁점이었다.
  5. 빈 회담의 위임사항: 유럽 재래식 무기 감축 협상(훗날의 CFE 협상)의 틀을 정하던 빈 협의를 가리킨다. 일방 감축이 이 협상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점이 서방에 준 충격의 핵심이었다.
  6. 6개국 그룹: 1984년 결성된 아르헨티나·그리스·인도·멕시코·스웨덴·탄자니아 정상들의 핵군축 이니셔티브(Five Continent Peace Initiative)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