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PeopleJoseph Stalin, Karl Marx, Friedrich Engels, Vladimir Lenin TermsDialectical Materialism, Historical Materialism
변증법적 유물론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당의 세계관이다. 그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불리는 까닭은, 자연 현상에 접근하는 방식, 자연 현상을 연구하고 파악하는 방법이 변증법적이고, 자연 현상에 대한 해석,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 곧 그 이론이 유물론적이기 때문이다.
사적 유물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를 사회생활 연구로 확장한 것이며,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를 사회생활의 현상에, 사회와 그 역사의 연구에 적용한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변증법적 방법을 설명할 때 대개 헤겔을 변증법의 주요 특징을 정식화한 철학자로 든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이 헤겔의 변증법과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 변증법에서 그 "합리적 핵심"만을 취하고 헤겔의 관념론적 껍데기는 벗겨 버렸으며, 변증법을 더욱 발전시켜 그것에 현대적인 과학적 형태를 부여했다.
"나의 변증법적 방법은 헤겔의 것과 다를 뿐 아니라 그것과 정반대이다. 헤겔에게는, 그가 '이념'이라는 이름 아래 심지어 자립적 주체로 바꾸어 놓기까지 한 사유 과정이 현실 세계의 데미우르고스(창조자)이며, 현실 세계는 '이념'의 외적·현상적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반대로, 관념적인 것은 인간의 머리에 반영되어 사유의 형태로 옮겨진 물질세계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마르크스, 『자본』 제1권 제2독일어판 후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유물론을 설명할 때 대개 포이어바흐를 유물론의 권리를 복원한 철학자로 든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이 포이어바흐의 유물론과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에서 그 "내적 핵심"을 취해 그것을 과학적·철학적 유물론 이론으로 발전시켰으며, 그 관념론적·종교윤리적 군더더기는 내버렸다. 알다시피 포이어바흐는 근본에서 유물론자였으면서도 유물론이라는 이름에는 반대했다. 엥겔스는 여러 차례, 포이어바흐가 유물론적 "토대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관념론의 속박에 묶인 채로 남아 있었다"고, 그리고 "포이어바흐의 진짜 관념론은 그의 종교철학과 윤리학에 이르자마자 뚜렷이 드러난다"고 언명했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제14권, 652~654쪽)
변증법이라는 말은 담론하다, 논쟁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디알레고'(dialego)에서 왔다. 고대에 변증법은 상대방의 논증 속에 있는 모순을 드러내고 이 모순을 극복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기술이었다. 고대의 어떤 철학자들은 사유 속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과 상반된 의견들의 충돌이야말로 진리에 도달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이 변증법적 사유 방법은 나중에 자연 현상으로 확장되어 자연을 파악하는 변증법적 방법으로 발전했는데, 이 방법은 자연 현상을 끊임없이 운동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며, 자연의 발전을 자연 속 모순들의 발전의 결과로, 자연 속 대립된 힘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본다.
그 본질에서 변증법은 형이상학과 정반대이다.
1.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방법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방법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a) 자연은 연관되고 규정된 통일적 전체다
형이상학과는 반대로, 변증법은 자연을 서로 연관 없이 고립되고 서로 독립된 사물들과 현상들의 우연한 집적으로 보지 않고, 사물과 현상 들이 유기적으로 서로 연관되고 서로 의존하며 서로를 규정하는, 연관된 통일적 전체로 본다.
따라서 변증법적 방법은, 자연의 어떤 현상도 주위 현상들에서 고립시켜 그것만 따로 떼어 놓고서는 이해될 수 없다고 본다. 자연의 어느 영역의 어떤 현상이든 주위 조건들과의 연관 속에서 고찰되지 않고 그로부터 분리되면 우리에게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현상이든 주위 현상들과의 불가분한 연관 속에서, 주위 현상들에 의해 조건 지어진 것으로 고찰되면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다.
(b) 자연은 끊임없는 운동과 변화의 상태에 있다
형이상학과는 반대로, 변증법은 자연이 정지와 부동, 침체와 불변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운동과 변화, 끊임없는 갱신과 발전의 상태에 있다고 본다. 거기서는 언제나 무엇인가가 생겨나 발전하고 있으며, 무엇인가가 해체되어 사멸해 가고 있다.
따라서 변증법적 방법은 현상들을 그 상호 연관과 상호 의존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그 운동과 변화와 발전의 관점에서, 그 생성과 소멸의 관점에서도 고찰할 것을 요구한다.
변증법적 방법이 일차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는 견고해 보여도 이미 사멸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는 견고해 보이지 않더라도 생성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변증법적 방법은 생성되고 발전하는 것만이 불패라고 보기 때문이다.
"모든 자연은," 엥겔스는 말한다,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까지, 모래알에서 태양까지, 원생생물(원시 생명 세포, 스탈린 주)에서 인간까지, 영원한 생성과 소멸 속에, 끊임없는 흐름 속에, 쉼 없는 운동과 변화 속에 그 존재를 갖는다." (같은 책, 484쪽)
따라서 변증법은, 엥겔스의 말대로, "사물과 그 지각상(知覺像)을 본질적으로 그 상호 연관 속에서, 그 연쇄 속에서, 그 운동 속에서, 그 발생과 소멸 속에서 파악한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제14권, 23쪽)
(c) 자연의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로 이어진다
형이상학과는 반대로, 변증법은 발전 과정을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단순한 성장 과정으로 보지 않고, 미미하고 감지되지 않는 양적 변화들에서 공공연한 근본적 변화, 곧 질적 변화로 넘어가는 발전으로 본다. 이 발전에서 질적 변화는 점진적으로가 아니라 급속하고 돌연하게,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비약의 형태로 일어나며, 우연히가 아니라 감지되지 않는 점진적인 양적 변화들이 축적된 합법칙적 결과로서 일어난다.
따라서 변증법적 방법은 발전 과정을 원환 운동으로, 이미 지나간 것의 단순한 반복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전진하며 상승하는 운동으로, 낡은 질적 상태에서 새로운 질적 상태로의 이행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의 발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자연은," 엥겔스는 말한다, "변증법의 시금석이다. 그리고 현대 자연과학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이 검증을 위해 극히 풍부하고 날마다 늘어나는 재료를 제공했으며, 그리하여 자연의 과정이 궁극적으로 형이상학적이 아니라 변증법적이라는 것, 자연은 영원히 한결같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원환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역사를 통과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여기서 무엇보다 먼저 다윈을 언급해야 한다. 그는 오늘날의 유기적 세계, 곧 식물과 동물, 따라서 인간 역시 수백만 년에 걸쳐 진행되어 온 발전 과정의 산물임을 증명함으로써 형이상학적 자연관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같은 책, 23쪽)
변증법적 발전을 양적 변화에서 질적 변화로의 이행으로 설명하면서 엥겔스는 말한다.
"물리학에서는 ... 모든 변화가 양의 질로의 이행이다. 곧 물체에 내재하거나 물체에 가해진 어떤 형태의 운동의 양적 변화의 결과다. 예컨대 물의 온도는 처음에는 그 액체 상태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액체 상태인 물의 온도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이 응집 상태가 변하여 물이 한 경우에는 수증기로, 다른 경우에는 얼음으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 ... 백금 선을 달구어 빛나게 하는 데는 일정한 최소한의 전류가 필요하다. 모든 금속에는 저마다 녹는 온도가 있다. 모든 액체에는 주어진 압력에서 일정한 어는점과 끓는점이 있다(우리가 가진 수단으로 해당 온도에 도달할 수 있는 한에서). 마지막으로 모든 기체에는 적절한 압력과 냉각으로 그것을 액체 상태로 바꿀 수 있는 임계점이 있다. ... 이른바 물리학의 상수(한 상태가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점, 스탈린 주)란 대부분의 경우, 운동의 양적 증가 또는 감소가 해당 물체의 상태에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마디점, 따라서 양이 질로 전화되는 마디점의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책, 527~528쪽)
화학으로 넘어가서 엥겔스는 계속한다.
"화학은 물체의 양적 조성의 변화의 결과로 물체에 일어나는 질적 변화의 과학이라 부를 수 있다. 이것은 이미 헤겔도 알고 있었다. ... 산소를 보라. 분자가 통상의 두 개 대신 세 개의 원자를 포함하면 우리는 오존을 얻는데, 이것은 냄새와 반응에서 보통의 산소와 확연히 구별되는 물체다. 하물며 산소가 질소나 황과 결합하는 여러 상이한 비율은 어떠한가. 그 하나하나가 다른 모든 물체와 질적으로 구별되는 물체를 만들어 낸다!" (같은 책, 528쪽)
마지막으로, 헤겔을 갖은 말로 헐뜯으면서도 무감각한 세계에서 감각하는 세계로의 이행, 무기물의 왕국에서 유기적 생명의 왕국으로의 이행이 새로운 상태로의 비약이라는 저 유명한 명제를 슬그머니 헤겔에게서 빌려 온 뒤링을 비판하면서 엥겔스는 말한다.
"이것은 바로 헤겔의 도량 관계의 마디선이다. 거기서는 일정한 마디점들에서 순전한 양적 증가 또는 감소가 질적 비약을 낳는다. 예컨대 가열되거나 냉각되는 물의 경우, 끓는점과 어는점이 (표준 압력에서) 새로운 응집 상태로의 비약이 일어나는 마디이며, 따라서 거기서 양이 질로 전화된다." (같은 책, 45~46쪽)
(d) 모순은 자연에 내재한다
형이상학과는 반대로, 변증법은 내적 모순이 자연의 모든 사물과 현상에 내재한다고 본다. 모든 사물과 현상은 저마다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 과거와 미래, 사멸해 가는 것과 발전해 가는 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립물들 사이의 투쟁,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사멸해 가는 것과 태어나는 것 사이의, 사라져 가는 것과 발전해 가는 것 사이의 투쟁이 발전 과정의 내적 내용을,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전화되는 과정의 내적 내용을 이룬다.
따라서 변증법적 방법은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의 발전 과정이 현상들의 조화로운 전개로서가 아니라, 사물과 현상에 내재하는 모순들이 드러나는 과정으로서, 이 모순들의 바탕 위에서 작용하는 대립된 경향들의 "투쟁"으로서 진행된다고 본다.
"본래의 의미에서 변증법은," 레닌은 말한다, "사물의 본질 그 자체 안에 있는 모순의 연구다." (레닌, 『철학 노트』, 265쪽)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발전은 대립물의 '투쟁'이다." (레닌 전집 제13권, 301쪽)
이상이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방법의 주요 특징을 간추린 것이다.
변증법적 방법의 원리를 사회생활과 사회의 역사 연구로 확장하는 일이 얼마나 엄청나게 중요한지, 그리고 이 원리를 사회의 역사와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실천 활동에 적용하는 일이 얼마나 엄청나게 중요한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계에 고립된 현상이란 없다면, 모든 현상이 서로 연관되고 서로 의존한다면, 역사상의 모든 사회 제도와 모든 사회 운동은 "영원한 정의"나 그 밖의 어떤 선입견의 관점에서가 아니라(역사가들이 드물지 않게 그렇게 하듯이), 그 제도와 그 사회 운동을 낳았고 그것들과 연관되어 있는 조건들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노예제는 현대의 조건에서라면 무의미하고 어리석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해체되어 가는 원시 공동체 제도의 조건에서 노예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것은 원시 공동체 제도에 비하면 전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의 요구는 차리즘과 부르주아 사회가 존재하던 때, 이를테면 1905년의 러시아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옳고 혁명적인 요구였다. 그때는 부르주아 공화국이 한 걸음 전진을 의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소련의 조건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의 요구는 무의미하고 반혁명적인 요구일 것이다. 부르주아 공화국은 소비에트 공화국에 비하면 퇴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조건과 시간과 장소에 달려 있다.
사회 현상에 대한 이러한 역사적 접근 없이는 역사학의 존립과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직 이러한 접근만이 역사학이 우연들의 뒤범벅, 지극히 어처구니없는 오류들의 무더기가 되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계가 끊임없는 운동과 발전의 상태에 있다면, 낡은 것의 사멸과 새로운 것의 성장이 발전의 법칙이라면, "불변의" 사회 제도도, 사적 소유와 착취의 "영원한 원리"도, 농민을 지주에게, 노동자를 자본가에게 예속시키는 "영원한 이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일찍이 봉건제도가 자본주의 제도로 교체되었듯이, 자본주의 제도는 사회주의 제도로 교체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은 지배적 세력이라 해도 더는 발전하지 않는 사회 계층이 아니라, 지금은 지배적 세력이 아니라 해도 발전하고 있으며 앞날을 가진 계층에 지향을 두어야 한다.
지난 세기 80년대, 마르크스주의자와 나로드니키가 투쟁하던 시기에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인구의 보잘것없는 소수였고, 개인 농민이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으로서 발전하고 있었고, 농민은 계급으로서 해체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으로서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지향을 두었다. 그들은 틀리지 않았다. 알다시피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뒤 보잘것없는 세력에서 일급의 역사적·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정책에서 그르치지 않으려면 뒤가 아니라 앞을 보아야 한다.
나아가, 느린 양적 변화가 급속하고 돌연한 질적 변화로 넘어가는 것이 발전의 법칙이라면, 억압받는 계급들이 수행하는 혁명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자본주의의 멍에로부터의 노동계급의 해방은 느린 변화로써, 개량으로써가 아니라 오직 자본주의 제도의 질적 변화로써, 혁명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정책에서 그르치지 않으려면 개량주의자가 아니라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발전이 내적 모순들이 드러남으로써, 이 모순들의 바탕 위에서 이 모순들을 극복하기 위한 대립된 힘들의 충돌을 통해 진행된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주의 제도의 모순을 덮어 가릴 것이 아니라 드러내어 풀어헤쳐야 하며, 계급투쟁을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따라서 정책에서 그르치지 않으려면 비타협적인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책을 수행해야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이해의 조화라는 개량주의 정책이나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성장 전화"한다는 타협주의자들의 정책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사회생활에, 사회의 역사에 적용된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방법이다.
한편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유물론은 근본에서 철학적 관념론과 정반대이다.
2.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유물론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유물론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a) 세계는 그 본성상 물질적이다
세계를 "절대이념", "우주정신", "의식"의 구현으로 보는 관념론과는 반대로, 마르크스의 철학적 유물론은 세계가 그 본성상 물질적이라고 본다. 세계의 다양한 현상들은 운동하는 물질의 상이한 형태들이며, 변증법적 방법이 확립한 현상들의 상호 연관과 상호 의존은 운동하는 물질의 발전 법칙이고, 세계는 물질의 운동 법칙에 따라 발전하며 그 어떤 "우주정신"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유물론적 견해는," 엥겔스는 말한다, "자연을 그 어떤 이질적 첨가물도 없이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 이상을 뜻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제14권, 651쪽)
"만물이 하나인 이 세계는 어떤 신이나 어떤 인간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타오르고 규칙적으로 꺼지는 살아 있는 불이었고, 불이며, 불일 것이다"라고 본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물론적 견해에 대해 레닌은 이렇게 평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들에 대한 매우 훌륭한 서술이다." (레닌, 『철학 노트』, 318쪽)
(b) 물질은 객관적 실재다
오직 우리의 의식만이 실제로 존재하며 물질세계, 존재, 자연은 오직 우리의 의식 속에, 우리의 감각과 표상과 지각 속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관념론과는 반대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유물론은 물질, 자연, 존재가 우리의 의식 바깥에 의식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고 본다. 물질은 감각, 표상, 의식의 원천이므로 일차적이고, 의식은 물질의 반영, 존재의 반영이므로 이차적이고 파생적이다. 사유는 그 발전에서 높은 완성도에 이른 물질, 곧 뇌의 산물이며, 뇌는 사유의 기관이다. 따라서 중대한 오류를 범하지 않고서는 사유를 물질에서 분리할 수 없다. 엥겔스는 말한다.
"사유와 존재의 관계, 정신과 자연의 관계라는 문제는 철학 전체의 최고 문제이다. ... 이 문제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철학자들은 두 큰 진영으로 갈라졌다. 자연에 대한 정신의 일차성을 주장한 이들은 ... 관념론 진영을 이루었다. 자연을 일차적인 것으로 본 다른 이들은 유물론의 여러 학파에 속한다." (마르크스, 『선집』 제1권, 329쪽)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 자신이 속해 있는 물질적인,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세계가 유일한 현실이다. ... 우리의 의식과 사유는 아무리 초감각적으로 보일지라도 물질적·신체적 기관인 뇌의 산물이다. 물질은 정신의 산물이 아니며, 정신 자체가 물질의 최고 산물일 뿐이다." (같은 책, 332쪽)
물질과 사유의 문제에 관해 마르크스는 말한다.
"사유를 사유하는 물질에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질은 모든 변화의 주체이다." (같은 책, 302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유물론을 설명하면서 레닌은 말한다.
"유물론 일반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존재(물질)를 의식, 감각, 경험과 독립된 것으로 인정한다. ... 의식은 존재의 반영일 뿐이며, 기껏해야 그것의 근사적으로 참된(적합한, 완전히 정확한) 반영이다." (레닌 전집 제13권, 266~267쪽)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물질이란 우리의 감각기관에 작용하여 감각을 낳는 것이다. 물질은 감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객관적 실재다. ... 물질, 자연, 존재, 곧 물리적인 것이 일차적이고, 정신, 의식, 감각, 곧 심리적인 것은 이차적이다." (같은 책, 119~120쪽)
"세계상은 물질이 어떻게 운동하는가, '물질이 어떻게 사유하는가'를 보여 주는 그림이다." (같은 책, 288쪽)
"뇌는 사유의 기관이다." (같은 책, 125쪽)
(c) 세계와 그 법칙은 인식 가능하다
세계와 그 법칙을 인식할 가능성을 부정하고, 우리 지식의 신빙성을 믿지 않고, 객관적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세계가 과학이 결코 알 수 없는 "물자체"들로 가득 차 있다고 보는 관념론과는 반대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유물론은 세계와 그 법칙이 완전히 인식 가능하다고 본다. 실험과 실천으로 검증된, 자연법칙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객관적 진리의 효력을 갖는 신빙성 있는 지식이며, 세계에 인식 불가능한 사물이란 없고 다만 아직 인식되지 않은 사물이 있을 뿐인데, 그것들도 과학과 실천의 힘으로 밝혀지고 인식될 것이다.
세계는 인식 불가능하며 인식될 수 없는 "물자체"가 존재한다는 칸트를 비롯한 관념론자들의 명제를 비판하고, 우리의 지식이 신빙성 있는 지식이라는 저 유명한 유물론적 명제를 옹호하면서 엥겔스는 쓴다.
"이러한,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철학적 궤변에 대한 가장 통렬한 반박은 실천, 곧 실험과 산업이다. 어떤 자연 과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옳다는 것을, 우리가 그 과정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그 조건들로부터 산출하며 나아가 우리의 목적에 봉사하게 함으로써 증명할 수 있다면, 칸트의 붙잡을 수 없는 '물자체'는 끝장이다. 동식물의 몸속에서 생성되는 화학물질들은 유기화학이 그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내기 시작할 때까지는 그러한 '물자체'였다. 그러나 만들어 내자 '물자체'는 우리에 대한 사물이 되었다. 예컨대 꼭두서니의 색소인 알리자린이 그렇다. 우리는 이제 그것을 밭에 심은 꼭두서니 뿌리에서 애써 기르지 않고 콜타르에서 훨씬 싸고 간단하게 만들어 낸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계는 300년 동안 하나의 가설이었다. 그 가설이 옳을 가망이 백 대 일, 천 대 일, 만 대 일이라 해도 여전히 가설이었다. 그러나 르베리에가 이 체계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가지고 미지의 행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연역했을 뿐 아니라 이 행성이 반드시 차지하고 있을 하늘의 위치까지 계산해 냈을 때, 그리고 갈레가 실제로 이 행성을 발견했을 때,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증명되었다." (마르크스, 『선집』 제1권, 330쪽)
보그다노프, 바자로프, 유시케비치를 비롯한 마흐 추종자들을 신앙주의(과학보다 신앙을 앞세우는 반동적 이론)라고 비판하고, 자연법칙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 신빙성 있는 지식이며 과학의 법칙이 객관적 진리를 나타낸다는 저 유명한 유물론적 명제를 옹호하면서 레닌은 말한다.
"현대의 신앙주의는 결코 과학을 전면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이 거부하는 것은 오직 과학의 '과도한 주장', 곧 객관적 진리에 대한 주장뿐이다. 만약 (유물론자들이 생각하듯이)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면, 인간의 '경험' 속에 외부 세계를 반영하는 자연과학만이 우리에게 객관적 진리를 줄 수 있다면, 모든 신앙주의는 절대적으로 논박된다." (레닌 전집 제13권, 102쪽)
이상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유물론의 특징적 면모를 간추린 것이다.
철학적 유물론의 원리를 사회생활과 사회의 역사 연구로 확장하는 일이 얼마나 엄청나게 중요한지, 그리고 이 원리를 사회의 역사와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실천 활동에 적용하는 일이 얼마나 엄청나게 중요한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연 현상들의 연관과 상호 의존이 자연 발전의 법칙이라면, 사회생활의 현상들의 연관과 상호 의존 역시 우연한 것이 아니라 사회 발전의 법칙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사회생활, 사회의 역사는 "우연들"의 무더기이기를 그친다. 사회의 역사는 합법칙적인 사회의 발전이 되며, 사회의 역사 연구는 과학이 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실천 활동은 "뛰어난 개인들"의 선량한 소망이나 "이성", "보편 도덕" 따위의 명령이 아니라, 사회 발전의 법칙과 이 법칙의 연구에 기초해야 한다.
나아가, 세계가 인식 가능하고 자연의 발전 법칙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객관적 진리의 효력을 갖는 신빙성 있는 지식이라면, 사회생활, 사회의 발전 역시 인식 가능하며, 사회 발전의 법칙에 관한 과학의 데이터는 객관적 진리의 효력을 갖는 신빙성 있는 데이터라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사회의 역사에 관한 과학은 사회생활 현상들의 온갖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이를테면 생물학만큼 정밀한 과학이 될 수 있으며, 사회 발전의 법칙을 실천적 목적에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실천 활동에서 우연한 동기가 아니라 사회 발전의 법칙과 이 법칙에서 나오는 실천적 결론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인류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꿈에서 과학으로 전화한다.
따라서 과학과 실천 활동의 유대, 이론과 실천의 유대, 그 통일이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길잡이 별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자연, 존재, 물질세계가 일차적이고 의식, 사유가 이차적이고 파생적이라면, 물질세계가 인간의 의식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고 의식이 이 객관적 실재의 반영이라면, 사회의 물질생활, 사회의 존재 역시 일차적이고 사회의 정신생활은 이차적이고 파생적이라는 결론, 사회의 물질생활은 인간의 의지와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며 사회의 정신생활은 이 객관적 실재의 반영, 존재의 반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사회의 정신생활이 형성되는 원천, 곧 사회적 이념, 사회적 이론, 정치적 견해, 정치제도의 기원은 이념, 이론, 견해, 정치제도 그 자체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물질생활의 조건들에서, 이 이념, 이론, 견해 등이 반영하는 사회적 존재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사회의 역사의 상이한 시기에 상이한 사회적 이념, 이론, 견해, 정치제도가 관찰된다면, 곧 노예제 아래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이념, 이론, 견해, 정치제도를, 봉건제 아래에서는 저러한 것을,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또 다른 것을 만나게 된다면, 이는 이념, 이론, 견해, 정치제도 그 자체의 "본성"이나 "속성"으로 설명될 것이 아니라, 사회 발전의 상이한 시기마다 다른 사회의 물질생활의 조건들로 설명되어야 한다.
사회의 존재가 어떠하고 사회의 물질생활의 조건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사회의 이념, 이론, 정치적 견해, 정치제도도 그러하다.
이와 관련해 마르크스는 말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마르크스, 『선집』 제1권, 269쪽)
따라서 정책에서 그르치지 않으려면, 공상가의 처지에 빠지지 않으려면,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그 활동을 추상적인 "인간 이성의 원리"가 아니라 사회 발전의 규정력인 사회의 물질생활의 구체적 조건들에 기초해야 하며, "위대한 인물들"의 선량한 소망이 아니라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의 현실적 요구에 기초해야 한다.
나로드니키, 아나키스트, 사회혁명당원을 비롯한 공상가들의 몰락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사회 발전에서 사회의 물질생활의 조건들이 하는 일차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관념론에 빠져, 실천 활동을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의 요구에 기초하지 않고, 그 요구와 무관하게 또 그 요구를 거슬러, 사회의 현실 생활에서 유리된 "이상적 계획"과 "만능의 기획"에 기초했다는 데에 기인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힘과 생명력은, 그것이 실천 활동을 바로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의 요구에 기초하며 사회의 현실 생활에서 결코 유리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말에서, 사회적 이념, 이론, 정치적 견해, 정치제도가 사회생활에서 아무 의의도 갖지 않는다는 결론, 그것들이 사회적 존재에, 사회의 물질생활 조건들의 발전에 거꾸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회적 이념, 이론, 견해, 정치제도의 기원에 관해, 그것들이 생겨나는 방식에 관해, 사회의 정신생활이 그 물질생활 조건들의 반영이라는 사실에 관해 말해 왔다. 사회적 이념, 이론, 견해, 정치제도의 의의에 관해, 역사에서 그것들이 하는 역할에 관해 말하자면, 사적 유물론은 그것들을 부정하기는커녕 사회생활에서, 사회의 역사에서 이 요인들이 하는 중대한 역할과 의의를 강조한다.
사회적 이념과 이론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낡아서 수명을 다한, 사회의 사멸해 가는 세력의 이익에 봉사하는 낡은 이념과 이론이 있다. 그 의의는 사회의 발전과 전진을 가로막는 데 있다. 또한 사회의 선진 세력의 이익에 봉사하는 새롭고 선진적인 이념과 이론이 있다. 그 의의는 사회의 발전과 전진을 촉진하는 데 있으며,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할수록 그 의의는 더욱 커진다.
새로운 사회적 이념과 이론은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이 사회 앞에 새로운 과제를 제기한 뒤에야 생겨난다. 그러나 일단 생겨나면 그것은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이 제기한 새로운 과제의 수행을 용이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사회의 전진을 용이하게 하는 힘이 된다. 새로운 이념, 새로운 이론, 새로운 정치적 견해, 새로운 정치제도가 지닌 거대한 조직적·동원적·변혁적 의의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여기서다. 새로운 사회적 이념과 이론이 생겨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이며, 그것의 조직적·동원적·변혁적 작용 없이는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이 안고 있는 절박한 과제들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이 제기한 새로운 과제들에서 생겨난 새로운 사회적 이념과 이론은 스스로 길을 뚫고 나아가 대중의 소유물이 되며, 대중을 동원하고 조직하여 사회의 사멸해 가는 세력에 맞세우고, 그리하여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을 가로막는 이 세력의 타도를 용이하게 한다.
이리하여 사회적 이념, 이론, 정치제도는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 사회적 존재의 발전이 안고 있는 절박한 과제들의 바탕 위에서 생겨난 뒤, 이번에는 스스로 사회적 존재에, 사회의 물질생활에 거꾸로 작용하여, 사회의 물질생활의 절박한 과제들을 완수하고 그 이후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창출한다.
이와 관련해 마르크스는 말한다.
"이론도 대중을 사로잡자마자 물질적 힘이 된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제1권, 406쪽)
따라서 사회의 물질생활의 조건들에 영향을 미쳐 그 발전과 개선을 앞당길 수 있으려면,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의 요구를 올바르게 반영하는 사회적 이론, 사회적 이념에 의거해야 한다. 그러한 이론과 이념이라야 인민의 광범한 대중을 움직이게 할 수 있으며, 그들을 동원하고 조직하여, 반동 세력을 분쇄하고 사회의 선진 세력의 길을 열 태세를 갖춘 프롤레타리아 당의 대군으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주의자들"과 멘셰비키의 몰락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선진 이론, 선진 이념의 동원적·조직적·변혁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속류 유물론에 빠져 이 요인들의 역할을 거의 없는 것으로 깎아내렸으며, 그리하여 당을 수동성과 무기력에 빠뜨렸다는 데에 기인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힘과 생명력은, 그것이 사회의 물질생활의 발전의 요구를 올바르게 반영하는 선진 이론에 의거하고, 이론을 마땅한 높이로 끌어올리며, 이 이론의 동원적·조직적·변혁적 힘을 남김없이 이용하는 것을 자기 의무로 여긴다는 데서 나온다.
이것이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의 관계, 물질생활의 발전 조건과 사회의 정신생활의 발전 사이의 관계 문제에 대해 사적 유물론이 주는 대답이다.
3. 사적 유물론
이제 다음 문제를 밝히는 일이 남았다.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궁극적으로 사회의 면모와 그 이념, 견해, 정치제도 등을 규정하는 "사회의 물질생활의 조건"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도대체 이 "사회의 물질생활의 조건"이란 무엇이며, 그 변별적 특징은 무엇인가?
"사회의 물질생활의 조건"이라는 개념에 무엇보다 먼저 사회를 둘러싼 자연, 곧 지리적 환경이 포함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리적 환경은 사회의 물질생활의 불가결하고 항상적인 조건의 하나이며, 물론 사회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지리적 환경은 사회의 발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지리적 환경은 사회의 면모를, 인간의 사회 제도의 성격을, 한 제도에서 다른 제도로의 이행을 규정하는 주요한 힘인가, 아닌가?
사적 유물론은 이 물음에 아니라고 답한다.
지리적 환경은 의문의 여지 없이 사회 발전의 항상적이고 불가결한 조건의 하나이며, 물론 사회의 발전에 영향을 미쳐 그 발전을 앞당기거나 늦춘다. 그러나 그 영향은 규정하는 영향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지리적 환경의 변화와 발전보다 비교할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3천 년 동안 유럽에서는 세 가지 상이한 사회 제도가 차례로 교체되었다. 원시 공동체 제도, 노예제, 봉건제가 그것이다. 유럽의 동부, 소련에서는 심지어 네 가지 사회 제도가 교체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에 유럽의 지리적 조건은 전혀 변하지 않았거나, 지리학이 기록조차 하지 않을 만큼 미미하게 변했을 뿐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리적 환경의 조금이라도 중요한 변화에는 수백만 년이 필요하지만, 인간 사회 제도의 매우 중요한 변화조차 수백 년 내지 이천 년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지리적 환경은 사회 발전의 주요 원인, 규정하는 원인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수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것이, 수백 년 사이에 근본적 변화를 겪는 것의 발전의 주요 원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회의 물질생활의 조건"이라는 개념에 인구의 증가, 이런저런 정도의 인구밀도 역시 포함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은 사회의 물질생활의 조건의 필수 요소이며, 일정한 최소한의 인간 수 없이는 사회의 물질생활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구의 증가는 인간의 사회 제도의 성격을 규정하는 주요한 힘인가, 아닌가?
사적 유물론은 이 물음에도 아니라고 답한다.
물론 인구의 증가는 사회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의 발전을 촉진하거나 늦춘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 발전의 주요한 힘일 수 없으며, 사회 발전에 대한 그 영향은 규정하는 영향일 수 없다. 인구 증가 그 자체는, 왜 주어진 사회 제도가 다른 어떤 제도가 아니라 바로 이러이러한 새 제도로 교체되는가, 왜 원시 공동체 제도가 다른 제도가 아니라 바로 노예제로, 노예제가 봉건제로, 봉건제가 부르주아 제도로 교체되는가 하는 물음에 열쇠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인구 증가가 사회 발전의 규정력이라면, 더 높은 인구밀도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더 높은 유형의 사회 제도를 낳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중국의 인구밀도는 미국의 4배지만, 사회 발전의 척도에서는 미국이 중국보다 높다. 중국에는 아직 반봉건 제도가 지배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미 오래전에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인구밀도는 미국의 19배, 소련의 26배다. 그러나 사회 발전의 척도에서는 미국이 벨기에보다 높으며, 소련에 대해서는 벨기에가 한 역사적 시대 전체만큼 뒤떨어져 있다. 벨기에에는 자본주의 제도가 지배하고 있지만, 소련은 이미 자본주의를 청산하고 사회주의 제도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인구의 증가는 사회 제도의 성격, 사회의 면모를 규정하는 사회 발전의 주요한 힘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a) 무엇이 주요한 규정력인가?
그렇다면 사회의 물질생활의 조건들의 체계 안에서 사회의 면모를, 사회 제도의 성격을, 한 제도에서 다른 제도로의 사회의 발전을 규정하는 주요한 힘은 무엇인가?
사적 유물론은 그 힘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생활수단을 획득하는 방식, 곧 사회의 생활과 발전에 불가결한 물질적 재화(식량, 의복, 신발, 주택, 연료, 생산도구 등)의 생산양식이라고 본다.
살기 위해서 인간은 식량, 의복, 신발, 주거, 연료 등을 가져야 한다. 이 물질적 재화를 가지려면 그것을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생산하려면 식량, 의복, 신발, 주거, 연료 등을 생산하는 생산도구를 가져야 하며, 그 도구를 만들 줄 알고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생산도구, 그리고 일정한 생산 경험과 노동 숙련 덕분에 생산도구를 움직여 물질적 재화의 생산을 수행하는 인간, 이 모든 요소가 함께 사회의 생산력을 이룬다.
그러나 생산력은 생산의 한 측면, 생산양식의 한 측면일 뿐이다. 그것은 물질적 재화의 생산에 이용되는 자연의 대상과 힘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측면이다. 생산의 다른 측면, 생산양식의 다른 측면은, 생산과정에서 인간이 서로 맺는 관계, 곧 인간의 생산관계다. 인간은 자연에 맞서 투쟁하고 자연을 물질적 재화의 생산에 이용하되, 서로 고립된 개별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집단으로, 사회를 이루어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생산은 언제나, 어떤 조건에서나 사회적 생산이다. 물질적 재화의 생산에서 인간은 생산 내부에서 이런저런 상호 관계, 곧 이런저런 생산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착취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사이의 협력과 상호 원조의 관계일 수도 있고, 지배와 예속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한 형태의 생산관계에서 다른 형태로 넘어가는 과도적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산관계의 성격이 어떠하든, 그것은 언제나, 어떤 제도에서나 생산력과 마찬가지로 생산의 필수 요소를 이룬다.
"생산에서," 마르크스는 말한다, "인간은 자연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도 작용한다. 그들은 일정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자신들의 활동을 서로 교환함으로써만 생산한다. 생산하기 위해 그들은 서로 일정한 연계와 관계를 맺으며, 이 사회적 연계와 관계 안에서만 자연에 대한 그들의 작용, 곧 생산이 이루어진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제5권, 429쪽)
따라서 생산, 곧 생산양식은 사회의 생산력과 인간의 생산관계를 모두 포괄하며, 물질적 재화의 생산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이 둘의 통일의 구현이다.
(b) 생산의 첫째 특징
생산의 첫째 특징은, 그것이 결코 한 지점에 오래 머물지 않고 언제나 변화와 발전의 상태에 있다는 것, 나아가 생산양식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사회 제도 전체, 사회적 이념, 정치적 견해, 정치제도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 곧 사회적·정치적 질서 전체의 재편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발전의 상이한 단계에서 인간은 상이한 생산양식을 이용한다. 더 거칠게 말하면, 상이한 생활 방식을 영위한다. 원시 공동체에는 이런 생산양식이 있고, 노예제 아래에는 다른 생산양식이, 봉건제 아래에는 또 다른 셋째 생산양식이 있으며, 그 뒤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여 인간의 사회 제도, 인간의 정신생활, 그들의 견해와 정치제도도 다양하다.
사회의 생산양식이 어떠하냐에 따라 대체로 사회 자체도, 그 이념과 이론도, 정치적 견해와 제도도 그러하다.
더 거칠게 말하면, 인간의 생활 방식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의 사고방식도 그러하다.
이는 사회 발전의 역사가 무엇보다 먼저 생산의 발전의 역사, 수 세기에 걸쳐 서로 교체되어 온 생산양식들의 역사, 생산력과 인간의 생산관계의 발전의 역사임을 뜻한다.
따라서 사회 발전의 역사는 동시에 물질적 재화의 생산자 자신의 역사, 곧 생산과정의 주요한 힘이며 사회의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재화의 생산을 수행하는 근로 대중의 역사다.
따라서 역사학이 진정한 과학이 되려면, 사회 발전의 역사를 더는 왕과 장군들의 행위로, 국가의 "정복자"와 "복속자"들의 행위로 환원해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 먼저 물질적 재화의 생산자의 역사, 근로 대중의 역사, 인민의 역사에 몰두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의 역사의 법칙을 연구하는 열쇠는 인간의 두뇌에서, 사회의 견해와 이념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각각의 주어진 역사 시기에 사회가 실행하는 생산양식에서, 곧 사회의 경제생활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역사학의 으뜸가는 과제는 생산의 법칙,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전 법칙, 사회의 경제적 발전의 법칙을 연구하고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 당이 진정한 당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생산 발전의 법칙, 사회의 경제적 발전의 법칙에 대한 지식을 획득해야 한다.
따라서 정책에서 그르치지 않으려면,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강령의 작성에서나 실천 활동에서나 무엇보다 먼저 생산 발전의 법칙에서, 사회의 경제적 발전의 법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c) 생산의 둘째 특징
생산의 둘째 특징은, 그 변화와 발전이 언제나 생산력의 변화와 발전에서,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먼저 생산도구의 변화와 발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력은 생산의 가장 유동적이고 혁명적인 요소다. 먼저 사회의 생산력이 변화하고 발전하며, 그다음에 이 변화에 의존하여, 이 변화에 조응하여 인간의 생산관계, 인간의 경제적 관계가 변화한다. 그러나 이것은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거나 생산력이 생산관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생산관계는 그 발전이 생산력의 발전에 의존하는 한편, 이번에는 스스로 생산력의 발전에 거꾸로 작용하여 그것을 앞당기거나 늦춘다. 이와 관련해 지적해 둘 것은,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장에 뒤처져 그것과 모순되는 상태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생산력은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격과 상태에 조응하여 생산력의 발전에 충분한 여지를 줄 때에만 온전히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에 아무리 뒤처지더라도, 그것은 조만간 생산력의 발전 수준에, 생산력의 성격에 조응하게 되어야 하며, 실제로 조응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 체계 안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이 근본적으로 파괴되고, 생산 전체가 붕괴하며, 생산의 위기, 생산력의 파괴가 일어날 것이다.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격에 조응하지 않고 그것과 충돌하는 실례는 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제공황이다. 거기서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자본주의적 소유가 생산과정의 사회적 성격과, 생산력의 성격과 뚜렷이 모순된다. 그 결과가 생산력의 파괴로 이어지는 경제공황이다. 나아가 이 부조응 자체가 사회혁명의 경제적 기초를 이룬다. 사회혁명의 사명은 현존 생산관계를 파괴하고 생산력의 성격에 조응하는 새로운 생산관계를 창출하는 것이다.
반대로,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격에 완전히 조응하는 실례는 소련의 사회주의 국민경제다. 거기서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가 생산과정의 사회적 성격에 완전히 조응하며, 그렇기 때문에 경제공황도 생산력의 파괴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생산력은 생산의 가장 유동적이고 혁명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생산의 발전을 규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생산력이 어떠하냐에 따라 생산관계도 그래야 한다.
생산력의 상태가 '인간은 어떤 생산도구로 자신에게 필요한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한다면, 생산관계의 상태는 다른 물음에 답한다. 곧 '생산수단(토지, 삼림, 물, 지하자원, 원료, 생산도구, 생산 건물, 운수·통신 수단 등)은 누구의 소유인가, 생산수단은 누가 지배하는가, 사회 전체인가, 아니면 그것을 다른 개인, 집단, 계급을 착취하는 데 이용하는 개별 개인, 집단, 계급인가'라는 물음이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생산력 발전의 대략적인 그림은 이렇다. 조잡한 석기에서 활과 화살로의 이행, 그리고 그에 따르는 수렵 생활에서 동물의 가축화와 원시적 목축으로의 이행. 석기에서 금속 도구(철도끼, 철제 보습 날을 단 목제 쟁기 등)로의 이행,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경작과 농경으로의 이행. 재료 가공용 금속 도구의 한층 더한 개량, 대장간 풀무의 도입, 도기 제조의 도입,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수공업의 발전, 수공업의 농업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적 수공업의 발전과 그 뒤를 잇는 매뉴팩처의 발전. 수공업 도구에서 기계로의 이행, 그리고 수공업 및 매뉴팩처 생산의 기계제 공업으로의 전화. 기계 체계로의 이행과 현대 대규모 기계제 공업의 출현. 이것이 인류 역사에서 사회의 생산력이 발전해 온, 개략적이며 결코 완전하지 않은 그림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생산도구의 발전과 개량이 인간과 무관하게가 아니라 생산에 관계하는 인간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생산도구의 변화·발전과 함께 생산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간도 변화·발전했다는 것, 곧 그들의 생산 경험, 노동 숙련, 생산도구를 다루는 능력도 변화·발전했다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회의 생산력이 변화·발전하는 데 조응하여, 인간의 생산관계, 인간의 경제적 관계도 변화·발전했다.
생산관계의 주요 유형
역사는 다섯 가지 주요한 생산관계 유형을 안다. 원시 공동체적, 노예제적, 봉건제적, 자본주의적, 사회주의적 유형이 그것이다.
원시 공동체 제도에서 생산관계의 기초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다. 이것은 대체로 그 시기 생산력의 성격에 조응한다. 석기로는, 그리고 그 뒤에 나온 활과 화살로는, 인간이 개별적으로 자연의 힘이나 맹수와 싸울 수 없었다. 숲의 열매를 채집하고 물고기를 잡고 거처 비슷한 것이라도 지으려면, 굶어 죽거나 맹수 또는 이웃 사회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인간은 공동으로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동 노동은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공동 소유로 이어졌다. 여기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라는 개념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동시에 맹수에 대한 방어 수단이기도 했던 일부 생산 용구에 대한 개인적 소유가 있었을 뿐이다. 여기에는 착취도 없었고 계급도 없었다.
노예제에서 생산관계의 기초는, 노예 소유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할 뿐 아니라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 곧 노예까지 소유한다는 것이다. 노예 소유자는 노예를 마치 동물처럼 팔고 사고 죽일 수 있다. 이러한 생산관계는 대체로 그 시기 생산력의 상태에 조응한다. 인간은 이제 석기 대신 금속 도구를 다루게 되었으며, 목축도 경작도 몰랐던 사냥꾼의 초라하고 원시적인 살림 대신 목축, 경작, 수공업과 이 생산 부문들 사이의 분업이 나타났다. 개인들 사이, 사회들 사이에 생산물을 교환할 가능성, 소수의 손에 부가 축적될 가능성,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이 실제로 축적되는 일, 그리고 소수가 다수를 복속시키고 다수를 노예로 만들 가능성이 나타났다. 여기서는 더 이상 사회 성원 전체의 공동의 자유로운 노동이 생산과정을 지배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일하지 않는 노예 소유자에게 착취당하는 노예의 강제 노동이 지배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공동 소유가 없다. 그것은 사적 소유로 대체된다. 여기서 노예 소유자는 최초의, 으뜸가는, 온전한 의미의 소유자로 나타난다.
부자와 빈자, 착취자와 피착취자, 완전한 권리를 가진 자와 아무 권리도 없는 자, 그리고 이들 사이의 격렬한 계급투쟁. 이것이 노예제의 모습이다.
봉건제에서 생산관계의 기초는, 봉건 영주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되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 곧 농노는 완전히는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봉건 영주는 농노를 더는 죽일 수 없지만, 사고팔 수는 있다. 봉건적 소유와 나란히, 농민과 수공업자가 자신의 생산 용구를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개인 노동에 기초하여 사적으로 경영하는 살림이 존재한다. 이러한 생산관계는 대체로 그 시기 생산력의 상태에 조응한다. 제철과 철 가공의 한층 더한 개량, 철제 쟁기와 베틀의 보급, 농업·원예·포도 재배·낙농의 한층 더한 발전, 수공업 작업장과 나란히 나타난 매뉴팩처. 이것이 그 시기 생산력 상태의 특징적 면모다.
새로운 생산력은 노동자가 생산에서 어느 정도의 주도성과 일할 의욕, 일에 대한 관심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봉건 영주는 일에 아무 관심도 없고 전혀 주도성이 없는 노동자인 노예를 버리고, 자기 살림과 생산 용구를 가지고 있으며 토지를 경작하고 수확의 일부를 현물로 영주에게 바치기 위해 일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농노를 상대하는 쪽을 택한다.
여기서 사적 소유는 한층 더 발전한다. 착취는 노예제 아래에서와 거의 맞먹을 만큼 가혹하며, 다만 약간 완화되었을 뿐이다.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계급투쟁이 봉건제의 기본 특징이다.
자본주의 제도에서 생산관계의 기초는,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되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 곧 임금노동자는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가는 임금노동자를 죽일 수도 팔 수도 없다. 그들은 인신상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생산수단을 빼앗겼기에, 굶어 죽지 않으려면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고 착취의 멍에를 지지 않을 수 없다.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와 나란히, 처음에는 넓은 범위에서, 이제는 농노가 아닌 농민과 수공업자의 개인 노동에 기초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존재한다. 수공업 작업장과 매뉴팩처 대신 기계를 갖춘 거대한 공장이 나타난다. 농민의 원시적 생산 용구로 경작되던 영주의 영지 대신, 농업 기계를 갖추고 과학적 방법으로 경영되는 대규모 자본주의 농장이 나타난다.
새로운 생산력은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짓눌리고 무지한 농노보다 교양 있고 명민할 것을, 기계를 이해하고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자본가는 농노제의 속박에서 자유로우며 기계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만큼 교육받은 임금노동자를 상대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나 생산력을 거대한 규모로 발전시킨 자본주의는 스스로 풀 수 없는 모순에 얽혀 들었다. 갈수록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상품 가격을 낮추면서, 자본주의는 경쟁을 격화시키고 수많은 중소 사적 소유자를 파멸시켜 프롤레타리아로 만들며 그들의 구매력을 떨어뜨린다. 그 결과 생산된 상품의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다른 한편, 생산을 확장하고 수백만 노동자를 거대한 공장에 집중시키면서, 자본주의는 생산과정에 사회적 성격을 부여하고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토대를 허문다. 생산과정의 사회적 성격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요구하는데, 생산수단은 생산과정의 사회적 성격과 양립할 수 없는 사적 자본주의적 소유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생산력의 성격과 생산관계 사이의 이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은 주기적인 과잉생산 공황으로 나타난다. 공황이 오면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초래한 대중의 파멸 탓에 상품의 지불 능력 있는 수요를 찾지 못하여, 상품을 불태우고 만들어진 제품을 파괴하고 생산을 중단하고 생산력을 파괴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때 수백만의 인민이 실업과 기아에 시달린다. 상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상품이 너무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사회의 생산력의 상태에 더는 조응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것과 화해할 수 없는 모순에 빠졌음을 뜻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혁명을 잉태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 혁명의 사명은 현존하는 생산수단의 자본주의적 소유를 사회주의적 소유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극도로 격렬한 계급투쟁이 자본주의 제도의 기본 특징임을 뜻한다.
지금까지는 소련에서만 실현된 사회주의 제도에서 생산관계의 기초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다. 여기에는 더 이상 착취자도 피착취자도 없다. 생산물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원칙에 따라, 수행한 노동에 따라 분배된다. 여기서 생산과정에서 사람들이 맺는 상호 관계는, 착취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들의 동지적 협력과 사회주의적 상호 원조의 관계다. 여기서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상태에 완전히 조응한다. 생산과정의 사회적 성격이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로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의 사회주의적 생산은 주기적인 과잉생산 공황과 그에 따르는 불합리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생산력은 가속된 속도로 발전한다. 생산력에 조응하는 생산관계가 그 발전에 충분한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생산관계가 발전해 온 그림이다.
이것이 생산관계의 발전이 사회의 생산력의 발전에,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먼저 생산도구의 발전에 의존하는 모습이며, 이 의존 덕분에 생산력의 변화와 발전은 조만간 그에 상응하는 생산관계의 변화와 발전으로 이어진다.
"노동 수단의 사용과 제작은," 마르크스는 말한다, "비록 그 맹아가 몇몇 동물 종에도 있기는 하지만, 인간 노동과정의 특유한 특징이다. 그래서 프랭클린은 인간을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지나간 노동 수단의 유물은, 사멸한 경제적 사회형태의 연구에 대해, 화석 뼈가 사멸한 동물 종의 판정에 대해 갖는 것과 같은 중요성을 갖는다. 여러 경제적 시대를 구별하는 것은 무엇이 만들어지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노동 수단은 인간 노동이 도달한 발전 정도를 재는 척도일 뿐 아니라, 그 노동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의 지표이기도 하다." (마르크스, 『자본』 제1권, 1935년판, 121쪽)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 관계는 생산력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 새로운 생산력을 획득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생산양식을 바꾸며, 생산양식을, 곧 생계를 버는 방식을 바꾸면서 자신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바꾼다. 손맷돌은 봉건 영주가 있는 사회를 낳고, 증기 제분기는 산업 자본가가 있는 사회를 낳는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제5권, 564쪽)
"생산력에서는 성장의, 사회적 관계에서는 파괴의, 이념에서는 형성의 끊임없는 운동이 있다. 불변하는 것은 오직 운동의 추상뿐이다." (같은 책, 364쪽)
『공산당 선언』에 정식화된 사적 유물론에 관해 엥겔스는 말한다.
"각 역사 시대의 경제적 생산과 거기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사회구조는 그 시대의 정치사와 정신사의 기초를 이룬다. ... 따라서 (토지의 원시 공동체적 소유가 해체된 이래) 전체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곧 사회 발전의 여러 단계에서 착취당하는 계급과 착취하는 계급, 지배받는 계급과 지배하는 계급 사이에 벌어진 투쟁의 역사였다. ... 그런데 이 투쟁은 이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계급(프롤레타리아트)이 동시에 사회 전체를 착취와 억압과 계급투쟁에서 영원히 해방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계급(부르주아지)에게서 스스로를 해방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 (엥겔스, 『공산당 선언』 독일어판 서문)
(d) 생산의 셋째 특징
생산의 셋째 특징은, 새로운 생산력과 그에 조응하는 생산관계의 발생이 낡은 제도와 별개로, 낡은 제도가 사라진 뒤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제도의 태내에서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계획적이고 의식적인 활동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발생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간은 이런저런 생산양식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는 삶에 들어설 때마다 앞선 세대들의 노동의 결과로 이미 존재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발견하며, 따라서 물질적 재화를 생산할 수 있으려면 처음에는 생산 영역에서 이미 마련되어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인간은 이런저런 생산도구를, 생산력의 이런저런 요소를 개량할 때, 이 개량이 어떤 사회적 결과로 이어질지 인식하지도 이해하지도 생각해 보지도 않으며, 다만 자신의 일상적 이익만을, 곧 노동을 덜고 자신에게 직접적이고 손에 잡히는 이득을 얻는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시 공동체 사회의 일부 성원들이 조금씩 더듬거리며 석기의 사용에서 철기의 사용으로 넘어갔을 때, 그들은 물론 이 혁신이 어떤 사회적 결과로 이어질지 알지 못했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금속 도구로의 이행이 생산의 혁명을 뜻하며 결국 노예제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그저 노동을 덜고 눈앞의 손에 잡히는 이득을 얻고자 했을 뿐이다. 그들의 의식적 활동은 이 일상적·개인적 이익의 좁은 테두리에 갇혀 있었다.
봉건제 시기에 유럽의 젊은 부르주아지가 작은 길드 작업장과 나란히 큰 매뉴팩처를 세우고 그리하여 사회의 생산력을 전진시켰을 때, 그들은 물론 이 "작은" 혁신이 어떤 사회적 결과로 이어질지 알지 못했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이 혁신이 사회 세력의 재편성을 불러오고, 그 재편성이 부르주아지 자신이 그토록 그 은총을 소중히 여기던 왕권에 대해서도, 그 상층부가 드물지 않게 그 대열에 들기를 열망하던 귀족에 대해서도 혁명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그들은 인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그저 상품 생산비를 낮추고, 아시아와 갓 발견된 아메리카의 시장에 더 많은 상품을 내보내어 더 큰 이윤을 얻고자 했을 뿐이다. 그들의 의식적 활동은 이 평범한 실용적 목적의 좁은 테두리에 갇혀 있었다.
러시아의 자본가들이 외국 자본가들과 손잡고 현대적 대규모 기계제 공업을 러시아에 정력적으로 이식하면서 차리즘은 손대지 않은 채 두고 농민을 지주의 처분에 내맡겼을 때, 그들은 물론 이 생산력의 대대적 성장이 어떤 사회적 결과로 이어질지 알지 못했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사회의 생산력 영역에서 일어난 이 커다란 비약이 사회 세력의 재편성을 불러오고, 그 재편성이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농민과 동맹을 이루어 승리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할 수 있게 하리라는 것을 그들은 인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그저 공업 생산을 최대한 확장하고, 거대한 국내시장을 장악하고, 독점자가 되어 국민경제에서 되도록 많은 이윤을 짜내고자 했을 뿐이다.
그들의 의식적 활동은 그들의 평범한, 철저히 실용적인 이익의 테두리를 넘지 못했다.
이에 관해 마르크스는 말한다.
"인간은 자기 생활의 사회적 생산(곧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재화의 생산, 스탈린 주)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필연적인, 일정한 관계, 곧 자신의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를 맺는다." (마르크스, 『선집』 제1권, 269쪽)
그러나 이것은 생산관계의 변화가, 낡은 생산관계에서 새로운 생산관계로의 이행이 순탄하게, 충돌 없이, 격변 없이 진행된다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그러한 이행은 보통 낡은 생산관계의 혁명적 전복과 새로운 생산관계의 수립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정한 시기까지는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관계 영역의 변화가 자연발생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그것은 일정한 순간까지, 곧 새로 생겨나 발전하는 생산력이 충분한 성숙 상태에 이를 때까지만이다. 새로운 생산력이 성숙한 뒤에는, 현존 생산관계와 그 담지자인 지배계급이, 오직 새로운 계급의 의식적 행동으로써만, 이 계급의 강력 행위로써만, 혁명으로써만 제거될 수 있는 저 "넘을 수 없는" 장애물로 전화한다. 여기서, 낡은 생산관계를 강제로 폐지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 이념, 새로운 정치제도, 새로운 정치권력의 거대한 역할이 뚜렷이 드러난다.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의 충돌에서, 사회의 새로운 경제적 요구에서 새로운 사회적 이념이 생겨난다. 새로운 이념은 대중을 조직하고 동원한다. 대중은 새로운 정치적 군대로 결집하여 새로운 혁명 권력을 창출하고, 이 권력을 이용해 낡은 생산관계 제도를 강제로 폐지하고 새로운 제도를 확고히 수립한다. 자연발생적 발전 과정은 인간의 의식적 행동에, 평화적 발전은 폭력적 변혁에, 진화는 혁명에 자리를 내준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마르크스는 말한다, "부르주아지에 맞선 투쟁에서 사정의 힘에 의해 계급으로 조직되지 않을 수 없으며 ... 혁명으로써 스스로를 지배계급으로 만들고, 지배계급으로서 낡은 생산 조건을 강제로 쓸어버린다. ..." (『공산당 선언』, 1938년판, 52쪽)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해 부르주아지에게서 점차 모든 자본을 빼앗고, 모든 생산도구를 국가의 수중에, 곧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생산력의 총량을 되도록 빨리 늘릴 것이다." (같은 책, 50쪽)
"폭력은 새로운 사회를 잉태한 모든 낡은 사회의 산파다." (마르크스, 『자본』 제1권, 1955년판, 603쪽)
마르크스가 1859년, 그의 유명한 책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역사적인 서문에서 제시한 사적 유물론의 본질에 대한 천재적 정식화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자기 생활의 사회적 생산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필연적인, 일정한 관계, 곧 자신의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를 맺는다. 이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곧 그 위에 법률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서고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들이 조응하는 현실의 토대를 이룬다. 물질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정치적·정신적 생활 과정 일반을 조건 짓는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그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지금까지 그 안에서 움직여 온 현존 생산관계와, 또는 그것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관계와 모순에 빠진다. 이 관계들은 생산력의 발전 형태이기를 그치고 그 질곡으로 전화한다. 그때 사회혁명의 시대가 시작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더디게 또는 빠르게 변혁된다. 이러한 변혁을 고찰할 때에는 언제나, 자연과학적 정확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생산의 경제적 조건의 물질적 변혁과, 인간이 이 충돌을 의식하게 되고 이 충돌과 싸워 결판을 내는 법률적, 정치적, 종교적, 미학적 또는 철학적 형태들, 간단히 말해 이데올로기적 형태들을 구별해야 한다. 한 개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근거하지 않듯이, 그러한 변혁의 시대를 그 시대 자신의 의식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반대로 이 의식을 물질생활의 모순으로부터,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에 현존하는 충돌로부터 설명해야 한다. 어떤 사회구성체도, 그것이 수용할 여지가 있는 모든 생산력이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몰락하지 않으며, 새로운 더 높은 생산관계는, 그 물질적 존재 조건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성숙하기 전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류는 언제나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제기한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과제 자체는 그 해결의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거나 적어도 형성 과정에 있을 때에만 생겨난다는 것을 언제나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선집』 제1권, 269~270쪽)
이것이 사회생활에, 사회의 역사에 적용된 마르크스주의적 유물론이다.
이상이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주요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