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산 노동 논쟁의 전 역사 — 베벨에서 사회적 재생산 이론까지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29
1. 문제를 다시 열며
1회차에서 살펴본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은 사유재산→상속→여성 섹슈얼리티 통제→일부일처제→국가로 이어지는 역사유물론적 도식을 제시했다. 그러나 1회차 말미에서 지적했듯, 엥겔스의 분석은 가부장제가 계급사회 이전과 이후에 어떻게 존재하며 작동하는지, 여성의 가사·돌봄·재생산 노동이 자본주의 생산 자체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이론적 질문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않았다. 2회차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가사노동은 가치를 생산하는가? 재생산 노동은 계급 분석의 외부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근본 구성요소인가?"
이 질문은 약 150년의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이론사를 관통하는 핵심 쟁점이다. 베벨의 19세기 저작부터 21세기 사회적 재생산 이론(Social Reproduction Theory)까지, 하나의 지적 궤적을 따라가면서 이 질문이 어떻게 발전되고 변형되었는지 추적한다.
2. 고전적 토대의 발전
2.1. 아우구스트 베벨 — 『여성과 사회주의』 (1879)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Bebel, 1840–1913)은 독일 사회민주당(SPD) 공동 창립자이자 당 의장이었다. 그의 『여성과 사회주의』(Die Frau und der Sozialismus, 1879)는 19세기 후반 독일 노동운동 내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번역된 책 중 하나로, 엥겔스의 문제의식을 대중적·정치적으로 확장한 저작이다.[^1]
베벨의 핵심 논증은 세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역사적 축 —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생산양식과 함께 변화한다. 원시 공동체(모계 사회), 중세, 자본주의에서 여성 지위의 변화를 실증적으로 추적하며 "여성은 언제나 어디서나 억압받았다"는 비역사적 관념을 거부한다. 둘째, 경제적 축 — 사유재산제가 여성 억압의 물질적 토대다. 결혼을 "수단으로서의 결혼"(Versorgungsehe, 생계를 위한 결혼)으로 분석하고, 매춘을 자본주의가 여성의 몸에 부과하는 상품 형식으로 파악한다. 셋째, 해방적 축 — 사회주의 혁명만이 여성의 완전한 해방을 가능하게 한다. 베벨은 미래 사회에서는 여성이 "사회적·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며, 어떠한 지배와 착취에도 종속되지 않을 것"이라 예견했다.
베벨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는 성별 불평등을 계급 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이 강했고, 가부장제의 자율적 작동 방식에 대한 이론화는 부재했다. 그럼에도 그의 저작은 이후 클라라 체트킨, 로자 룩셈부르크 등 독일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으며, "여성 문제가 계급 문제의 부록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구성적 차원"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기여했다.[^2]
2.2.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 공산주의, 가족, 그리고 사랑의 정치경제학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Kollontai, 1872–1952)는 볼셰비키 혁명 후 최초의 여성 인민위원(사회복지 담당)으로 임명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선구자다. 그녀의 작업은 베벨의 문제의식을 혁명적 국가 권력의 조건에서 재사유한 것이었다.
콜론타이의 「공산주의와 가족」(1920)은 자본주의 하에서 가족이 "남편은 부르주아, 아내는 프롤레타리아"인 미시적 계급관계로 작동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 자체가 이 질서를 내적 모순으로 해체하기 시작한다 — 여성의 대규모 임금노동 진입, 가사노동의 기계화, 도시화 등은 가족을 더 이상 생산 단위가 아닌 소비 단위로 변모시킨다. 콜론타이는 "기계가 아내를 대체했다"는 도발적 정식으로 이 과정을 포착한다. 공산주의의 과제는 이 모순을 완성하는 것 — 가사노동을 완전히 사회화하는 것이다. 공동 식당, 공동 세탁소, 탁아소, 유치원을 통해 모성·돌봄·가사를 사적 부담에서 사회적 의무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
더 급진적인 것은 그녀의 「성 관계와 계급 투쟁」(1921)이다. 콜론타이는 사랑과 성을 사적·비정치적 영역으로 간주하는 통념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랑은 소유적 형태를 취한다 —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유하는" 관계, 결혼 계약을 통해 물화된다. 대안으로 그녀는 "연대와 동지애에 기초한 새로운 성 윤리"를 제안하며, 개인적 애착이 집단적 헌신을 압도하지 않는 "동지애적 사랑"(comradely love)을 구상했다.
콜론타이의 방법론적 의의는 성별 관계·가족 구조·사랑조차도 생산양식의 변화와 함께 역사적으로 구성된다는 역사유물론적 관점을 가장 급진적으로 밀어붙였다는 데 있다. 사적인 것은 역사적이다.
그러나 한계 또한 뚜렷하다. 첫째, 콜론타이는 가사·돌봄 노동을 여성의 고유 영역으로 전제하는 경향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 — 남성의 가사 참여보다 가사의 사회화가 논의의 중심이었다. 둘째, 스탈린주의 하에서 그녀의 사상은 억압되었다. 1930년대 소비에트 가족 정책은 보수 반동으로 전환되었고(1944년 이혼 제한, 비합법 이혼 아동에 대한 법적 차별), 콜론타이는 외교관으로 좌천되어 이론적 생산을 중단했다. 셋째, "재생산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가"라는 질문 — 이후 1970년대 논쟁의 핵심 — 을 명시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3. 1970년대 가사노동 논쟁
3.1. 마가렛 벤스턴 — 이론적 시발점 (1969)
마가렛 벤스턴(Margaret Benston)의 「여성 해방의 정치경제학」은 1969년 Monthly Review에 발표된 짧은 글이었으나, 그 파장은 한 시대의 지적 논쟁을 개시했다.[^4] 벤스턴은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여성 노동에 체계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시도였다.
그녀의 논증은 단순하지만 냉철하다. 여성이 수행하는 가사노동은 자본주의 하에서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만을 생산한다. 이는 상품 생산의 외부에 위치한 거대한 무급 노동 영역을 구성한다. 여성은 따라서 "계급으로서 남성과 다른 물질적 위치에 놓인다" —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품 생산의 외부에 있는 집단"이다. 이것이 여성 억압의 물질적 기초이며, 해방은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회가 돌봄·청소·요리를 집단적으로 조직할 때, 여성은 비로소 생산 노동자로서 노동계급에 통합될 수 있다.
벤스턴의 분석은 역사적 의의를 가지나, 핵심적 문제를 남긴다. 가사노동이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판단은 과연 정확한가? 자본이 무급 가사노동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 작동할 수 있는가?
3.2. 달라 코스타·제임스 — 전환점 (1972)
이 질문에 정면으로 응답한 것이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Mariarosa Dalla Costa)와 셀마 제임스(Selma James)의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1972)이다.[^5] 이들의 작업은 이탈리아 오토노미아(autonomia) 운동의 오페라이스모(operaismo, 노동자주의) 전통 — 트론티, 네그리 등 — 에서 출현했으며, 벤스턴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었다.
논증의 핵심:
"여성의 가사노동은 어떤 의미에서 비생산적이거나 사용가치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의 근본 조건인 바로 그 상품 — 노동력(labour power) — 을 생산·재생산한다."
자본은 근로자가 하루 8시간 임금노동을 할 수 있도록 먹이고, 재우고, 정서적으로 안정시키고, 궁극적으로 다음 세대 노동자를 출산·양육하는 노동에 의존한다. 이 모든 노동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자본은 단 하루도 축적을 지속할 수 없다. 따라서 가사노동은 자본에 본질적이며, 가정주부는 자본을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다.
이로부터 과격한 전략이 도출된다.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지급"(Wages for Housework). 이는 단순한 개혁 요구가 아니다. 세 가지 전복적 기능을 수행한다.
- 가시화: 가사노동이 "노동"임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착취 관계를 가시화한다.
- 의존의 폭로: 자본이 여성의 무급 노동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자본은 이 의존을 은폐하기 위해 가사노동을 "사랑"이나 "본성"의 언어로 치환해 왔다.
- 노동 거부의 가능성: 임금 투쟁은 여성이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며, 이는 곧 노동 거부(take the strike home!)를 통해 계급투쟁의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을 연다.
달라 코스타는 임금노동 진입을 여성 해방으로 보는 통념 또한 거부한다. 임금노동 진입은 가사노동 부담을 해소하지 않은 채 "이중 노예화"(직장 8시간 + 가사 4~6시간)를 강요할 뿐이다. 진정한 해방은 재생산 노동 자체의 사회적 인정과 보상 — 그리고 자본의 재생산 영역 통제로부터의 탈환 — 에 있다.
3.3. Wages for Housework 운동의 국제적 확산
이론은 실천으로 번역되었다. 달라 코스타, 제임스, 실비아 페데리치, 레오폴디나 포르투나티 등이 결성한 국제 페미니스트 집단(International Feminist Collective)은 1972년 이탈리아에서 '로타 페미니스타'(Lotta Femminista)를 창립하고 곧 영국, 미국, 캐나다로 확산했다.[^6]
1975년 아이슬란드에서는 전국 여성 파업(Women's Day Off)이 발생 — 여성 노동자들은 모든 유급·무급 노동을 중단함으로써 여성의 무급 노동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물질적으로 가시화했다. 이는 2000년 Global Women's Strike로 계승되어, 60개국 이상에서 "모든 돌봄 노동에 대한 지불 — 임금, 연금, 토지 및 기타 자원으로"를 요구하는 국제 행동으로 확대되었다.
3.4. 이론적 쟁점의 핵심
논쟁은 결국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가사노동은 마르크스의 엄밀한 의미에서 가치를 생산하는가?
벤스턴 진영의 답은 '아니오' — 가사노동은 교환을 위해 생산되지 않으며, 따라서 추상적 노동으로서 사회적 총노동의 일부를 구성하지 않는다. 여성은 계급 외부의 집단이다.
달라 코스타 진영의 답은 '그렇다' — 가사노동은 노동력이라는 특수 상품을 생산·재생산하며, 노동력의 가치(임금으로 나타나는)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함으로써 잉여가치에 기여한다. 이 잉여는 '무급'일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가정주부는 노동자다.
이 대립은 두 영역을 모두 관통하는 진실을 놓친다. 자본은 가사노동과 임금노동 사이의 체계적 불균등 교환을 통해 이중으로 착취한다. 임금노동자는 생산 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가사노동자는 그 생산을 매일매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무급으로 제공한다. 자본의 축적은 이 두 착취의 구조적 결합에 의존한다.
4. 『캘리번과 마녀』 — 시초축적의 젠더적 재구성
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의 『캘리번과 마녀: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2004)은 Wages for Housework 운동의 직접적 연장선 위에서 마르크스의 '시초축적' 개념을 페미니스트적으로 전면 재구성한다.[^7]
페데리치의 도발적 테제는 이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생 — 마르크스가 서술한 인클로저·식민지 약탈·공유지 소멸 — 은 동시에 여성 신체에 대한 전례 없는 규율화·통제·폭력이었다. 마녀사냥(15~18세기, 유럽에서 약 10만 명의 '마녀'가 처형됨)은 단순한 종교적 광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초축적의 필수 구성 요소였다.
페데리치의 다중적 논증:
- 공유지와 여성의 상관성: 중세 후기 농민 여성은 공유지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는 그녀들이 남성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었다. 공유지 소멸(인클로저)과 여성의 사회적 권력 축소는 동일한 과정의 두 얼굴이다.
- 신체의 분할: 자본주의 축적은 신체 자체를 분할한다 — 남성의 신체는 노동력의 그릇(생산), 여성의 신체는 노동력의 재생산 기계로 배치된다. 마녀사냥은 이 분할을 폭력적으로 강제하고,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국가·자본의 통제 하에 둔다.
- 계급투쟁으로서의 마녀: 페데리치는 마녀를 '반자본주의적 투쟁의 한 형태'로 독해한다. 마녀로 고발된 여성들은 피임과 낙태 지식을 보유한 자, 공유지 방어에 앞장선 자, 토지 사유화에 저항한 자들이었다. 마녀는 자본의 규율을 거부하는 전근대적 반란자였으며, 마녀사냥은 그 반란을 진압하는 계급 전쟁이었다.
페데리치의 작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푸코의 생체권력(biopower) 분석 사이에서, 여성의 몸에 가해진 폭력이 자본주의의 "기원"에서 우발적 부산물이 아니라 구성적 계기였음을 밝힌다.
5. 사회적 재생산 이론(SRT) — 체계화로의 이행
5.1. 리제 보겔 —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재정식화 (1983)
리제 보겔(Lise Vogel)의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 통합 이론을 향하여』(1983)는 1970년대 가사노동 논쟁의 교착 상태를 돌파하려는 시도였다.[^8] 보겔은 마르크스의 텍스트로 돌아가, 가사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가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가 왜, 그리고 어떻게 젠더적 분업과 여성 억압을 필요로 하는가?
보겔의 핵심 개념은 '재생산 노동의 특수성'이다. 노동력 재생산은 다른 상품 생산과 달리 (a) 생물학적 시간(임신·출산·수유)에 구속되고, (b) 돌봄 제공자와 수혜자 사이의 인격적 관계를 필요로 하며, (c) 이로 인해 자본주의적 합리화에 본질적으로 저항한다. 자본은 이 영역을 완전히 상품화할 수 없고, 바로 그렇기에 젠더에 기반한 특수한 형태의 착취가 발생한다.
보겔은 자본주의가 여성 억압을 "만든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이전 사회구성체에서 물려받은 젠더 질서를 재구성·재기능화하여 자신의 축적 조건으로 편입한다.
5.2. 티티 바타차리아와 SRT의 현재적 재구성
바타차리아(Tithi Bhattacharya)가 편집한 『사회적 재생산 이론: 삶의 재구상』(2017)은 보겔의 문제의식을 21세기로 가져온다.[^9] 이 책의 핵심 기여는 SRT를 단순히 "여성 문제"의 틀이 아니라 자본주의 전체를 읽는 하나의 렌즈로 정식화한 것이다.
SRT의 핵심 테제:
"인간은 매일매일 아침에 노동자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그 전날 밤 누군가는 그들을 재우고 먹였으며, 그 전 몇 년간 누군가는 그들을 양육·교육했다."
바타차리아가 지적하듯, 이 진술은 단순한 상식이 아니다. 그 함의는 급진적이다: 생산 과정은 재생산 과정 없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본주의 분석은 재생산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경제 분석"이 임금노동과 상품 교환만을 다루는 한, 그것은 자본주의를 은폐하고 있는 셈이다.
5.3. 낸시 프레이저 — 재생산의 위기와 자본의 모순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SRT를 더 확장하여 자본주의의 "숨겨진 배경 조건"을 총체적으로 이론화한다.[^10] 프레이저의 분석에서 자본주의 축적은 세 가지 비상품적 조건에 기생한다:
- 사회적 재생산 — 가사·돌봄·양육·지역공동체
- 자연 — 생태계, 원자재, 에너지
- 정치 권력 — 법, 국가, 공적 인프라
자본은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이 세 조건을 약탈적으로 소진한다. 21세기 자본주의의 위기 — 돌봄 위기, 기후 위기, 민주주의 위기 — 는 바로 이 약탈이 지속 불가능한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징후다.
프레이저는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을 제안한다. 이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돌봄을 모든 성별이 동등하게 분담하며, 돌봄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공공재로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6. 한국적 매개: 2026년 한국에서 SRT는 무엇을 볼 수 있게 하는가?
SRT의 렌즈는 한국의 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가시화한다.
6.1. 저출생 "위기"의 계급적·젠더적 성격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5년 기준 약 0.72로 OECD 최하위다. 지배 담론은 이를 "인구절벽"의 언어로 틀 지으며 노동력 감소와 경제 성장 둔화를 걱정한다. SRT의 관점은 이 프레임을 전도한다: 저출생은 '여성들이 출산을 거부하는 위기'가 아니라, 재생산 노동을 사적으로 여성에게 전가해 온 사회구조가 붕괴하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 여성이 출산을 거부하는 이유는 1회차에서 살펴본 데이터(18~29세 여성의 89%가 젠더 갈등 심각성 인식)와 맞물려 이해되어야 한다. 출산은 곧 경력 단절 → 소득 격차 → 노후 빈곤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궤적에 자신을 투입하는 행위다. SRT는 이것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재생산을 둘러싼 계급적·젠더적 착취 구조의 표현임을 보여준다.
6.2. 여성 임금 격차 30.9% — 재생산 비용의 사적 전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OECD 기준, 2024년 기준 약 30.9%)는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다. 통상의 설명은 "여성의 경력 단절", "남성 위주 직종 쏠림" 등이다. SRT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누가 재생산 비용을 지불하는가?
현재 한국에서 이 비용은 압도적으로 여성 개인과 가족 단위로 사적으로 부담된다. 보육 시설의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공공 보육의 질과 접근성은 2026년 현재 여전히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여성이 더 많은 무급 재생산 노동을 수행하고, 이는 임금노동 시간의 축소, 승진 기회의 감소, 퇴직까지의 누적적 불이익으로 전환된다. 임금 격차는 본질적으로 재생산 노동의 비대칭적 배분이 노동시장에서 화폐 형태로 전환된 것이다.
6.3. SRT가 제기하는 정치적 질문
한국 진보 진영은 계급 정치와 정체성 정치의 대립 구도에 오래도록 갇혀 있었다. SRT는 이 대립 자체를 해체한다. 재생산을 중심에 놓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다:
- 돌봄·보육·교육·의료·주거를 사적 상품이 아닌 사회적 권리로 공공 재구성하는 것은 누구의 이익인가?
- 재생산 노동을 임금노동과 동등하게 인정하고 보상하는 체계는 어떻게 설계될 수 있는가?
- 노동시간 단축과 돌봄의 민주화는 왜 계급 의제이면서 동시에 페미니스트 의제인가?
이 질문들은 특정 정체성 집단의 "특수 이익"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생활 조건에 관한 보편적 의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계급과 정체성"은 더 이상 대립 축이 아니라 상호구성적 분석 범주로 드러난다.
7. 요약 —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의 두 가지 전환
베벨에서 SRT까지의 궤적은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의 두 가지 이론적 전환으로 요약된다.
첫 번째 전환: 가사노동은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 생산한다. 벤스턴에서 달라 코스타·제임스로의 이행이다. 이 전환의 의의는 답을 바꾼 것 이상이다 — 질문 자체가 정치적이었다. "무급이면 비생산적, 유급이면 생산적"이라는 이분법은 자본의 시선을 내면화한 것이다. 달라 코스타의 진정한 기여는 이 이분법을 무력화하고, 자본이 인정하지 않는 노동을 계급 분석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데 있다.
두 번째 전환: 여성 해방의 일부로서 마르크스주의 → 자본주의 이해의 근본 틀로서 SRT. 보겔에서 바타차리아·프레이저로의 이행이다. 이 전환에서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은 "마르크스주의+여성 문제"라는 부가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분석의 근본 렌즈로 자신을 재정식화한다. 재생산은 생산의 배후가 아니라 생산의 조건이며, 이 조건의 위기는 곧 자본주의 축적 체제의 위기다.
마지막으로, 이 궤적 전체를 관통하는 방법론적 통찰 하나:
가장 사적인 것 — 밥 짓고, 청소하고, 아이 키우고,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 — 은 가장 구조적인 것이다. 그것은 자연적 행위가 아니라 착취와 축적이 교차하는 역사적·계급적 장소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것은 또한 투쟁의 장소다.
참고문헌
[^1]: Bebel, A. (1879). Die Frau und der Sozialismus. Dietz Verlag. 영역: Woman and Socialism (1910). https://www.marxists.org/archive/bebel/1879/woman-socialism/index.htm
[^2]: Dean, J. (2020). 「Alexandra Kollontai: A historical-materialist approach to the family and love」. Liberation School. https://liberationschool.org/kollontai-socialism-and-feminism-part-two/
[^3]: Kollontai, A. (1920). 「Communism and the Family」. Kommunistka. https://www.marxists.org/archive/kollonta/1920/communism-family.htm; Kollontai, A. (1921). 「Sexual Relations and the Class Struggle」. https://www.marxists.org/archive/kollonta/1921/sex-class-struggle.htm
[^4]: Benston, M. (1969). 「The Political Economy of Women's Liberation」. Monthly Review 21(4). https://monthlyreview.org/articles/on-margaret-benston/
[^5]: Dalla Costa, M. & James, S. (1972). The Power of Women and the Subversion of the Community. Falling Wall Press. 재수록: Revolutionary Feminism (2020).
[^6]: Bracke, M. (2024). 「'Wages for Housework', the evolution of the debate in the 1970s Italian women's movement」. Modern Italy.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modern-italy/article/5458AEC932B4AB9F7F10816BE334EC2E
[^7]: Federici, S. (2004). Caliban and the Witch: Women, the Body and Primitive Accumulation. Autonomedia. 한국어 번역: 『캘리번과 마녀』 (갈무리, 2011).
[^8]: Vogel, L. (1983). Marxism and the Oppression of Women: Toward a Unitary Theory. Rutgers University Press. 재발행: Haymarket Books (2013).
[^9]: Bhattacharya, T. (ed.) (2017). Social Reproduction Theory: Remapping Class, Recentering Oppression. Pluto Press. https://www.plutobooks.com/product/social-reproduction-theory/
[^10]: Fraser, N. (2016). 「Contradictions of Capital and Care」. New Left Review 100, pp. 99–117; Fraser, N. (2022). Cannibal Capitalism: How Our System Is Devouring Democracy, Care, and the Planet — and What We Can Do About It. Ver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