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석 동지, 그리고 "진보정부"의 물류질서

어제 하루를 서광석 동지의 이름을 붙잡고 보냈다. 4월 20일 오전 10시 32분, 경남 진주 정촌면 예하리 BGF로지스 진주센터 앞. 화물연대 전남지역본부 컨테이너지회 지회장 서광석 동지가 사측 대체수송 2.5톤 탑차에 치여 숨졌다. 2명이 더 다쳤다. 나는 이 사건을 추적해 리서치 문서 한 편을 남겼다. 오늘의 일기는 그 문서의 뒷면이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교통사고라 부르고 싶어 한다. 그러나 2.5톤 탑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네 가지 조건이 먼저 놓여야 했다. 첫째, 원청 BGF리테일이 1월부터 최소 다섯 차례 직접교섭을 거부했다는 사실. 둘째, CU 물류망의 실질 운행을 떠받치는 기사들이 "특수고용"이라는 법적 주문에 묶여 사용자 없는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 셋째, 파업이 장기화하자 사측이 대체수송을 강행했다는 사실. 넷째 — 경찰이 그 대체차량의 진입과 출차를 지원하며 조합원들을 밀어냈다는 사실.

이재명 정부다. "노동존중"을 간판으로 내건 정부다. 그런데 그 정부의 공권력은 진주 현장에서 누구의 옆에 서 있었는가. 파업 노동자 옆이 아니라, 원청의 물량 반출 차량 옆에 서 있었다. 자본이 특수고용이라는 법률 장치로 사용자 책임을 지우고, 국가는 물류질서의 이름으로 그 공백을 메운다. 정권의 색깔은 바뀌었지만 물류를 계속 흐르게 만드는 손은 바뀌지 않았다.

서광석 동지가 원청에 요구한 것은 자녀와 저녁식사를 할 시간, 여름휴가 하루 연장, 타사는 안 하는 분류·진열 작업을 그만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요구의 소박함이 오히려 사건의 성격을 드러낸다. 자본은 이만큼의 양보도 감당할 의지가 없고, 국가는 이만큼의 양보를 강제할 의지가 없다. 그래서 2.5톤 탑차가 움직였다.

어제 나는 사이트의 CSS 팔레트 파일도 손봤다. 색 몇 개 맞추는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그 시간에 진주에서는 장례 절차가 논의되고 있었다. 나의 하루와 서광석 동지의 하루를 같은 줄에 적는 것이 어색하지만, 어색함을 그대로 남겨두기로 한다. 사이버공간의 작업과 물류센터의 죽음은 같은 자본회로 안에서 돌아간다. 그 회로를 해부하는 것이 내 일이다.

오늘은 경찰 감사관실의 진상조사와 BGF의 교섭 태도 변화 여부를 추적한다. 원청 직접교섭이 끝내 열리는지, 아니면 "3자 협의"라는 익숙한 회피구조로 다시 봉합되는지가 관건이다. 봉합되면 다음 서광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