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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론과 역사를 익히는 학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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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돌파스 라마나우스카스
  • 아돌파스 라마나우스카스
    가명 「바나가스」, 1952년부터 리투아니아 자유 전사 연합을 이끈 마지막 파르티잔 지휘관
  •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나치 인종 이론가로서 1941~1945년 동부 점령지 장관을 지낸 레발 태생의 발트 독일인
  • 아우구스츠 키르헨슈테인스
    1940년 소련 대사관이 정한 라트비아 괴뢰 정부의 총리로 소련 편입을 요청한 미생물학자
  • 힌리히 로제
    1941~1944년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으로서 발트 유대인의 게토 수용과 재산 몰수를 명령한 나치 대관구장
  • 햘마르 매에
    1941~1944년 독일 점령하 「에스토니아 자치행정」을 이끈 밥스 운동 출신의 협력 정치인
  • 요하네스 바레스
    1940년 즈다노프의 강요로 에스토니아 괴뢰 정부의 총리가 되어 소련 편입을 청원한 시인·의사
  • 요나스 제마이티스
    1949년 리투아니아 자유 전사 연합을 세워 의장으로서 파르티잔 저항을 이끈 장교
  • 유오자스 룩샤
    1947년 철의 장막을 넘어 서방에 지원을 구하고 돌아와 MGB에 살해된 리투아니아 파르티잔 지도자
  • 위리 울루오츠
    소련 점령 뒤 대통령 직무를 맡은 에스토니아의 마지막 헌법상 총리, 1944년 티에프 정부를 세운 법학자
  • 카를 예거
    리투아니아 유대인 총살을 지휘하고 「예거 보고서」를 남긴 특무부대 3 지휘관
사건 독일 점령하의 발트 3국: 6월 봉기에서 홀로코스트와 1944년 퇴각까지
  • 독일 점령하의 발트 3국: 6월 봉기에서 홀로코스트와 1944년 퇴각까지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과 함께 리투아니아에서는 6월 봉기와 임시정부, 에스토니아에서는 숲의 형제들의 「여름 전쟁」이 일어났지만, 독일은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세 나라를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에 넣었다. 슈탈레커의 특수작전집단 A와 예거의 특무부대 3, 예켈른의 부대는 리투아니아·라트비아의 경찰대대와 아라이스 특공대 같은 현지 협력자와 함께 카우나...
  • 발트 3국 병합과 1941년 6월 추방
    독소불가침조약의 비밀의정서에 따라 소련은 1939년 9~10월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 상호원조조약과 소련군 기지를 강요했고, 리투아니아에는 그 대가로 빌뉴스를 넘겼다. 1940년 6월 파리가 함락되던 때 세 나라에 최후통첩을 보내 붉은 군대로 점령했고, 블라디미르 데카노조프·안드레이 비신스키·안드레이 즈다노프가 유스타스 팔레츠키스·아우구스츠 키르헨...
  • 발트 3국의 재점령: 숲의 형제들과 1949년의 추방
    1944년 여름부터 1945년 5월 쿠를란트의 항복까지 붉은군대는 발트 3국을 다시 점령했고, 돌아온 공화국 지도자들은 모스크바의 중앙위원회 뷰로 감독 아래 소비에트 체제를 복원했다. 징집과 탄압을 피해 숲으로 들어간 수만 명의 숲의 형제들은 특히 리투아니아에서 1949년 리투아니아 자유 전사 연합으로 뭉쳐 싸웠으나, MGB와 섬멸대대, 침투 공작에 차례로...
  • 독일 점령하의 헝가리: 마르가레테 작전에서 부다페스트 포위까지
    1944년 3월 19일 독일군은 연합국과 휴전을 꾀하던 헝가리를 점령했다. 섭정 호르티는 자리를 지켰고 스토여이 되메 정부의 내무부와 헌병대가 아이히만 특별작전대와 함께 5~7월 약 43만 7,000명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이송했다. 국제적 항의 속에 호르티는 7월 초 이송을 멈추고 8월 러커토시 정부를 세워 소련과 예비 휴전에 서명했지만, 10월 15일...
  • 호르티 체제: 백색테러에서 우경화까지
    1919년 평의회 공화국이 무너진 뒤 호르티의 국민군 장교 부대들은 공산당원·사회민주당원·유대인을 겨냥한 헝가리 백색테러를 벌였고, 호르티는 1920년 왕 없는 왕국의 섭정이 되었다. 트리아농 조약으로 영토의 3분의 2 이상을 잃은 헝가리는 국경 수정을 국가 목표로 삼았고, 1920년 누메루스 클라우수스법으로 유럽 최초의 전후 반유대법을 만들었다. 베틀렌 ...
  • 독일 11월 혁명
    1918년 11월 킬 수병 봉기가 전국의 노동자·병사 평의회로 번져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SPD의 에베르트는 최고사령부와 손잡고 평의회를 국민의회 선거로 이끌었고, 1919년 1월 봉기와 3월 투쟁,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은 자유군단에게 진압되었다. 그 과정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살해되었고, 8월 바이마르 헌법이 발효되었...
  • 발트 독립전쟁과 국경의 강화
    1918년 11월 독일이 무너진 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신생 정부는 붉은 군대, 러시아 백군, 독일 자유군단이라는 세 세력 사이에서 국가를 만들어야 했다. 영국 함대의 지원과 핀란드 의용군, 토지개혁으로 농민을 얻은 에스토니아는 1919년 초 붉은 군대를 밀어냈고, 자국 땅에서 출발한 유데니치의 북서군이 페트로그라드 앞에서 무너지자 이를 무장해...
  • 문화대혁명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밀려난 마오는 1966년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를 치자며 학생 홍위병을 동원해 류사오치·덩샤오핑과 당 조직을 무너뜨렸다. 1967년 파벌 무장 충돌 뒤 군이 질서를 회복했고, 1971년 후계자 린뱌오의 죽음은 운동의 명분을 흔들었다. 1972년 닉슨 방중과 1976년 저우언라이·마오의 죽음, 4인방 체포로 10년이 끝났다.
  • 백화제방에서 반우파 투쟁으로
    흐루쇼프의 비밀연설과 헝가리 혁명 뒤 마오는 「백 가지 꽃이 피게 하라」며 지식인에게 당의 관료주의 비판을 권했다. 1957년 5월 비판이 일당 지배 자체로 번지자 6월 8일 방향을 바꿔 반우파 투쟁을 시작했고, 덩샤오핑이 지휘한 운동은 55만 명에게 우파 낙인을 찍어 노동교양과 하방으로 보냈다.
  • 신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 개조로
    건국 초기 공산당은 토지개혁·반혁명 진압·항미원조·삼반오반으로 권력을 다졌고, 1950년 중소조약과 소련 원조로 제1차 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1953년 「과도기 총노선」은 신민주주의를 사실상 끝냈고, 1955~1956년 농업 집단화와 상공업 공사합영으로 사회주의 개조가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 가오강·라오수스 사건은 건국 후 첫 지도부 숙청이었다.
용어 비밀의정서
  • 비밀의정서
    1939년 8월 23일 독소불가침조약과 함께 서명되었으나 공개되지 않은 부속 비밀 의정서. 히틀러와 스탈린이 동유럽을 독일과 소련의 '이익권역'으로 분할하여, 폴란드를 나레프-비스와-산강 선을 따라 나누고 핀란드·에스토니아·라트비아를 소련 권역으로, 리투아니아를 독일 권역으로 배정했으며, 베사라비아에 대한 소련의 이권을 독일이 확인했다. 소련은 이 의정서의...
  • 민족 강제이주
    소련에서 특정 민족 전체를 거주지에서 강제로 옮겨 특별정착지에 묶어 둔 조치다. 개인의 혐의가 아니라 민족 소속만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민족 작전과 구별되며, 절차도 체포와 재판이 아니라 인민위원회 결정과 최고회의 상무회 명령으로 집행되었다. 1937년 극동 고려인 17만여 명 이주가 첫 전면 사례이고, 1941년 볼가 독일인, 1943~1944년 카...
  • 1949년 3월의 추방
    1949년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소련이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서 약 9만 5천 명의 민간인을 시베리아와 북부 변경지로 강제추방한 작전이다. 암호명은 '프리보이(파도)'이며, 집단화를 가속화하고 '숲의 형제들' 무장 저항의 사회적 기반을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실행되었다. 이주민의 70% 이상이 여성과 16세 미만 아동이었으며, 유럽인권재판소는 이...
  • 발트 병합 (1940)
    1940년 여름, 소련이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를 군사 점령한 뒤 괴뢰 정부를 세우고 조작된 선거를 통해 세 공화국을 소비에트 연방에 강제 편입한 사건. 1939년 8월 독소불가침조약 비밀의정서에서 발트 3국을 소련의 세력권으로 할당한 것이 발단이었으며, 상호원조조약 체결(1939년 9~10월), 최후통첩과 적군의 전면 진주(1940년 6월), 명목...
  • 아라이스 특공대
    1941~1943년 독일 점령하 라트비아에서 활동한 친위대 정보부(SD) 소속 라트비아인 준군사 부대. 빅토르스 아라이스가 이끌었고, 라트비아 홀로코스트의 주요 가해자로 약 2만 6,000명의 유대인을 죽였다.
  • 상호원조조약 (1939년 발트)
    1939년 9~10월 소련이 에스토니아(9월 28일), 라트비아(10월 5일), 리투아니아(10월 10일)에 강요한 세 개의 양자 조약. 서로의 주권과 체제를 존중한다고 적었지만 소련군 기지와 주둔을 허용해, 1940년 6월 소련의 점령으로 이어졌다.
  • 섬멸대대 (NKVD)
    1941년 독일의 침공 직후 NKVD 아래 만들어져 소련이 점령한 발트 3국과 서부 지역에서 탄압과 치안을 맡은 준군사 부대. 1944년 이후 다시 조직되어 숲의 형제들과 그 지지자를 진압하는 보조 전력이 되었고, 1954년 해체되었다.
  • 에스토니아 공산당 제8차 전원회의 (1950)
    1950년 3월 21~26일 탈린에서 열린 에스토니아 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지도부가 부르주아 민족주의와의 싸움에 소홀했다는 모스크바의 결정에 따라 제1서기 니콜라이 카로탐을 요한네스 캐빈으로 바꾸었고, 작가·예술가·지식인을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로 몰아 숙청하는 계기가 되었다.
  • 특수작전집단 (아인자츠그루펜)
    나치 독일 친위대 보안경찰과 정보부(SD)의 기동 부대. 독일군을 따라 점령지에 들어가 「적」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았고, 1941년 소련 침공 뒤 주로 총살로 유대인을 비롯한 민간인 100만 명이 훨씬 넘게 살해했다.
  • 숲의 형제들
    제2차 세계대전 중과 그 뒤 소련의 점령에 맞서 숲을 근거지로 싸운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무장 파르티잔. 소련이 발트 3국을 다시 점령한 1944년부터 1956년 무렵까지 적어도 5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며,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조직적이었다.
참고 문헌 16개조 —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생들의 결의 (1956)
  • 16개조 —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생들의 결의 (1956)
    1956년 10월 22일 밤 부다페스트 건설공업공과대학 학생총회가 채택하고 이튿날 전단으로 돌린 결의의 한국어 완역. 소련군 철수, 너지 임레 정부, 라코시 재판, 복수정당 비밀선거와 파업권, 우라늄 정보 공개, 언론·라디오 자유, 스탈린 동상 철거, 폴란드와의 연대까지 열여섯 조항과, 라디오와 신문이 전문 게재를 거부한 경위를 적은 학생들의 덧붙임을 함께...
  • 너지 임레와 크렘린 — 1953년 6월 모스크바 회담과 1955년 1월 간부회의 비판
    헝가리 측이 받아 적은 두 회의 기록. 1953년 6월 13·16일 크렘린에서 말렌코프·베리야·몰로토프 등은 라코시의 전횡과 과속 공업화, 대량 형사 처벌을 비판하고 너지 임레를 각료회의 의장으로 지명했다. 1955년 1월 8일 같은 간부회는 너지의 1954년 10월 20일 논문과 「새 단계」 노선을 반당적이라 규정하고, 「당과 함께하든지 당에 맞서든지」라...
  • 주르당-델브렐 징병법 (1798년 9월 5일)
    총재정부 시기 오백인회와 원로회가 의결해 혁명력 6년 프뤽티도르 19일(1798년 9월 5일) 성립한 육군 편성법 전문 63조. 스무 살부터 스물다섯 살까지의 프랑스인을 해마다 다섯 등급의 징병 명부에 올리고 가장 젊은 사람부터 불러내는 제도를 정했다. 『공화국 법률 공보』 제223호 원판에서 직접 전사하고 번역했다.
  • 사회혁명당 강령 (1906)
    1906년 1월 사회혁명당 제1차 당대회가 채택한 강령 전문. 산업 노동자에서 근로 농민까지를 한 노동계급으로 묶는 계급관, 민주공화국과 자결권 요구, 토지 사회화, 「국가 사회주의」 경계를 담았다. 러시아어 원문에서 옮겼다.
  • AVNOJ 창립 결의와 야이체 결정 (1942~1943)
    1942년 11월 비하치에서 유고슬라비아 인민해방 반파시스트 평의회(AVNOJ)를 투쟁의 정치적 대표 기관으로 세운 창립 결의와, 1943년 11월 29일 야이체 제2차 회의가 AVNOJ를 최고 입법·집행 기관으로 선언하고 망명 정부의 권리를 박탈한 선언, 유고슬라비아를 평등한 인민들의 연방으로 세우기로 한 결정 제3호의 전문을 세르비아어 원문에서 옮겼다.
  • 제2인터내셔널 슈투트가르트 대회, 군국주의와 국제 분쟁에 관한 결의 (1907)
    1907년 8월 슈투트가르트 국제사회주의자대회가 채택한 반군국주의 결의의 전문이다. 전쟁의 원인, 의회 대표의 군비 예산 거부 의무, 전쟁이 나면 그 위기를 자본주의적 계급 지배의 제거를 앞당기는 데 이용하라는 마지막 문단까지 대회 의사록의 독일어 원문에서 옮겼다.
  • 제2인터내셔널 바젤 임시대회 선언 (1912)
    발칸전쟁 중인 1912년 11월 바젤 임시 국제사회주의자대회가 채택한 반전 선언의 전문이다. 슈투트가르트·코펜하겐의 원칙을 다시 인용하고 나라별 사회주의 정당의 과제를 나눈 뒤 각국 정부에 세계대전의 결과를 경고한다. 대회 의사록의 독일어 원문에서 옮겼다.
  • 독일 사회민주당 에르푸르트 강령 (1891)
    1891년 10월 에르푸르트 당대회가 채택한 독일 사회민주당 강령의 전문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진단과 사회적 소유라는 목표를 밝힌 원칙 부분, 정치적 요구 열 항목과 노동자 보호 요구 다섯 항목을 당대회 의사록의 독일어 원문에서 옮겼다.
  • 리프크네히트, 전쟁공채 반대 성명 (1914)
    1914년 12월 2일 제국의회 전쟁공채 표결에서 홀로 반대한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표결 이유로 의장에게 낸 성명의 전문이다. 의장이 속기 의사록 수록을 거부한 이 성명을 비합법 전단의 독일어 원문에서 옮겼다.
  • 북대서양 조약
    1949년 워싱턴에서 열두 나라가 서명한 NATO 창설 조약 전문. 위협 시 협의를 정한 제4조, 한 나라에 대한 무력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되 각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행동」을 취한다고 한 제5조, 이사회를 세운 제9조, 그리고 NATO가 단 각주 세 개까지.
학습 콘텐츠 프랑스 혁명사
  • 프랑스 혁명사
    미국 독립전쟁의 파급부터 1799년 브뤼메르까지, 대외전쟁·공포정치·자유와 평등의 쟁점을 혁명의 흐름 속에서 배웁니다. 편마다 그 시기의 권리 선언·헌법·연설·법령 원문을 조항과 논증 단위로 함께 읽습니다.

훈련장

넘기며 외우는 쇼츠, 용어·인물·사건 사전으로 만든 퀴즈와 연표 게임.

훈련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