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문헌
마르크스·엥겔스,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자 동맹의 강령으로 집필하여 1848년 2월 런던에서 발표한 문헌의 한국어 번역 전문. 본문 네 장과 1848년 서문, 엥겔스 생전의 독일어판 서문 세 편(1872·1883·1890년)을 함께 실었고, 저본의 저자·편집자·역자 주석을 그대로 옮겼다. 번역은 위키문헌의 퍼블릭 도메인 한국어 전역본이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마르크스, 『임금노동과 자본』
1847년 브뤼셀 독일노동자협회 강연을 바탕으로 마르크스가 1849년 『신라인 신문』에 연재한 논설의 전문. 임금이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 상품 가격의 법칙을 노동력에 적용하고, 자본이 사물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임을, 임금노동과 자본이 서로를 낳으면서도 이해가 정반대임을 노동자 독자를 위해 가장 쉬운 말로 푼다. 「노동」을 「노동력」으로 고친 엥겔스의 1891년 판을 그 서문과 함께 옮겼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마르크스, 『임금, 가격, 이윤』
1865년 마르크스가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에서 임금 인상 무용론을 편 존 웨스턴에게 답한 연설의 전문. 웨스턴의 두 전제를 해체하고, 가치와 노동력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세운 뒤, 임금 투쟁이 왜 필요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를 「임금제도의 폐지」라는 결론까지 밟아 간다. 절마다 접힌 해설을 붙였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마르크스, 『고타강령 비판』
마르크스가 1875년 고타 통합강령 초안에 조항마다 단 논평의 전문. 엥겔스의 1891년 서문과 브라케에게 보낸 편지를 함께 실었다. 노동전수익권과 공제 목록, 공산주의의 두 단계, 임금철칙, 국가 보조 협동조합, 자유국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차례로 다루며, 조항 논평마다 접힌 해설을 붙였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재무 선언」(1905)
1905년 12월 2일(신력 15일) 페테르부르크 노동자대표소비에트가 농민동맹·사회민주노동당·사회주의자혁명가당·폴란드사회당과 함께 낸 선언이다. 정부가 파산 직전이라고 규탄하고 국민에게 납세 거부와 예금의 금화 인출을 요구하며, 전제정이 국민 동의 없이 진 채무를 자유로운 국민은 갚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정부는 게재 신문을 정간하고 이튿날 소비에트를 체포했다. 1918년 국채 무효 선언의 예고편으로 읽힌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로자 룩셈부르크, 「민족문제와 자치」
로자 룩셈부르크가 1908~1909년 『사회민주주의 평론』에 연재한 민족문제 논문의 한국어 번역.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강령의 민족자결권 공식을 비판하고, 민족국가와 프롤레타리아트, 연방주의와 중앙집권, 지방자치의 역사와 조건을 검토한다. 호레이스 B. 데이비스의 1976년 영역 선집에 실린 앞의 다섯 편을 모두 옮겼으며, 선집에서 빠진 제6편은 포함하지 않았다. 폴란드어 원문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한 영문 중역이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스탈린,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
스탈린이 1913년 초 빈에서 쓴 민족 이론 논문의 한국어 번역 전문. 언어·영토·경제생활·심리 구조의 공통성이라는 네 표지로 민족을 정의하고,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의 문화적 민족 자치론과 분트·캅카스 청산파를 비판하며, 민족자결권과 지역 자치, 소수자 평등권, 국제주의적 단일 조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러시아어 원문에서 번역했고 전집 영역판의 편집자 주 40개를 함께 실었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레닌, 「민족자결권에 대하여」
레닌이 1914년에 쓴 민족자결권 옹호 논문의 한국어 번역 전문. 로자 룩셈부르크의 강령 제9항 비판에 답하여 자결권을 분리와 독립된 민족국가 형성의 권리로 정의하고, 노르웨이의 분리, 1896년 런던 대회 결정, 마르크스의 아일랜드론, 1903년 당대회 논쟁을 검토하며 청산파와 카데트의 민족적 자유주의를 비판한다. 러시아어 원문에서 번역했고 원문 각주 15개를 함께 실었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레닌, 「4월 테제」
레닌이 1917년 4월 망명에서 돌아온 이튿날 발표하고 사흘 뒤 『프라우다』에 실은 열 개 항의 테제 전문 번역. 임시정부를 조금도 지지하지 않을 것, 부르주아지에게 권력을 넘긴 혁명의 제1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의 손으로 넘기는 제2단계로 이행할 것, 의회제 공화국이 아닌 소비에트 공화국을 세우고 경찰·상비군·관료를 없앨 것, 지주 토지 몰수와 토지 국유화, 은행의 단일 국립은행 통합, 사회주의의 '도입'이 아니라 생산과 분배에 대한 소비에트의 통제, 당명을 공산당으로 바꾸고 새 인터내셔널을 세울 것을 제기한다. 테제 뒤에 레닌이 플레하노프 등 논적에게 답한 글이 붙어 있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전선에서의 사형 도입과 군사혁명재판소 설치에 관한 임시정부 포고 (1917)
3월에 사형을 폐지한 임시정부가 7월 봉기와 갈리치아 공세 붕괴 직후인 7월 12일(구력) 전선에서 사형을 되살리고, 장교 셋과 병사 셋으로 이루어진 군사혁명재판소를 사단마다 두어 반역·탈영·항명을 즉결하게 한 포고다. 판결은 선고 즉시 확정되어 지체 없이 집행된다. 회의록 제129호 제2안건으로 실린 본문 15개 조를 옮겼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10월 혁명의 첫 법령들
집권 두 달 사이의 법령 다섯 건 모음. 전신으로 시행된 8시간 노동제, 상업 비밀을 폐지한 노동자 통제 규정, 체카를 만든 인민위원회의 회의록 발췌, 그리고 가족을 교회에서 국가로 옮긴 혼인·이혼 법령.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제헌의회 국면의 문서 세 건
레닌의 「제헌의회에 관한 테제」, 제3차 소비에트 대회가 채택한 「근로·피착취 인민의 권리 선언」, 그리고 해산 법령. 계급 기관이 전국민 기관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이 이론에서 강령으로, 강령에서 기정사실로 바뀌는 한 달을 담았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식량인민위원 비상전권에 관한 법령
「식량독재」를 세운 1918년 5월 13일 법령의 전문. 곡물 잉여의 신고 의무, 「인민의 적」 조항과 밀고 보상, 그리고 무력 사용권을 포함한 식량인민위원의 아홉 가지 비상전권.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1918년 러시아 소비에트 헌법
1918년 7월 10일 제5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가 채택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의 전문 한국어 번역. 「근로 피착취 인민의 권리 선언」을 제1부로 삼고,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와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인민위원회의를 축으로 한 소비에트 권력의 구성, 노동 계급에 유리한 차등 선거권과 착취자의 선거권 박탈, 예산법, 국장과 국기를 6부 90개 조문으로 규정한다. 번역 저본은 채택 당시의 러시아어 원문이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코민테른 가입 21개 조건
1920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가 각국 정당의 가입 조건으로 정한 21개 조항의 전문 한국어 번역. 신문과 출판물의 당 통제, 개량주의자와 중앙파의 축출, 합법 조직과 나란히 두는 비합법 기구, 군대와 농촌에서의 선전, 식민지에서 자국 제국주의와의 단절, 의회 분파의 당 종속, 민주집중제, 당명을 공산당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조건을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당원은 제명하도록 정했다. 각국 사회당이 이 조건을 두고 갈라지면서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의 경계가 되었다.
전문 읽기 → 조약·협정소련 연방 형성의 두 문서 — 러시아·우크라이나 동맹 노농조약(1920)과 레닌의 「자치화에 대하여」(1922)
서로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면서 일곱 개 인민위원부를 통합한 1920년 1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동맹 노농조약과, 두 해 뒤 소련 결성 주간에 레닌이 병상에서 스탈린의 「자치화」안을 「행정가적 도취」라 부르며 군사·외교만 남긴 연방을 제안한 「민족 문제 또는 자치화에 대하여」. 연방의 설계를 둘러싼 논쟁의 두 문서.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크론시타트 1921 문서집 — 수병 결의, 정부 공보, 당대회 결의, 복권령 (1921~1994)
봉기의 강령인 3월 1일 승조원 결의, 봉기를 백위군 음모로 규정하고 코즐롭스키를 법 밖에 둔 3월 2일 노동국방회의 공보, 크론시타트를 명분으로 당내 분파를 금지한 제10차 당대회 결의 「당의 통일에 관하여」, 그리고 73년 뒤 3월 2일 공보의 제1항을 취소해 참가자들을 복권한 1994년 러시아 대통령령 제65호. 봉기와 두 응답, 그 마무리를 시간순으로 묶었다.
전문 읽기 → 조약·협정리가 평화조약 — 러시아·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사이의 평화조약 (1921)
1919~1920년 소련–폴란드 전쟁을 끝낸 스물여섯 개 조의 평화조약과 국경 세부를 정한 제2조 추가 의정서. 국경(서벨라루스·서우크라이나는 폴란드에), 내정 불간섭, 국적 선택, 소수민족의 권리, 배상 포기와 금 3천만 루블, 문화재·문서고 반환, 철도 차량 반환을 정했다. 1939년 9월까지 유지된 국경이며, 제5조·제7조·제11조는 이후 20년의 분쟁거리로 남았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레닌, 『현물세』
1921년 4월 레닌이 신경제정책으로의 전환을 설명하기 위해 쓴 팸플릿의 한국어 번역 전문. 러시아 경제를 가부장적 농민경제부터 사회주의까지 다섯 형태로 나누고, 소상품생산이 지배적인 조건에서 국가자본주의는 사회주의와 견줄 것이 아니라 소생산자 요소와 견주어야 하며 그에 비하면 한 걸음 전진이라고 논증한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교회 귀중품 몰수 법령과 레닌의 슈야 편지
기근 구호를 명분으로 교회 귀중품의 몰수를 명령한 1922년 2월 23일 공개 법령과, 슈야 유혈 사태 직후 레닌이 정치국에 돌린 완전 비밀 서한. 하나가 작전의 공개면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 이면으로, 서한은 1990년에야 공개되었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46인 선언
1923년 10월 15일 46명의 당 간부가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에 비밀로 제출한 성명의 한국어 완역. 계획 없는 지도가 낳은 경제·재정 위기를 진단한 뒤, 제10차 당대회 이후의 '분파 독재' 체제가 당을 서기 위계와 평신도로 갈라놓았다고 비판하고, 다수파와 견해가 다른 동지들을 포함한 협의회 소집을 요구한다. 서명자 12명이 붙인 유보 의견도 함께 옮겼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1924년 소련 헌법
1924년 1월 31일 제2차 전연방 소비에트 대회가 채택한 소련 최초 헌법의 전문 한국어 번역. 1922년 12월의 「소련 결성 선언」과 「소련 결성 조약」을 제1부와 제2부로 묶어, 전연방 소비에트 대회와 중앙집행위원회 양원(연방회의·민족회의), 인민위원회의와 연방 인민위원부, 최고법원과 통합국가정치보안부의 권한을 11개 장 72개 조문으로 규정한다. 연방공화국의 주권 유보와 자유 탈퇴권이 이 헌법에서 처음 명문화되었다. 번역 저본은 채택 당시의 러시아어 원문이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스탈린, 「레닌주의의 기초」 (1924)
레닌이 죽은 지 석 달 뒤 스탈린이 스베르들로프 대학에서 한 강의를 『프라우다』에 연재한 글. 레닌주의를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대의 마르크스주의」로 정의하고 역사적 뿌리·방법·이론·프롤레타리아트 독재·농민 문제·민족 문제·전략과 전술·당·사업 작풍의 아홉 장으로 체계화했다. 레닌의 저작을 하나의 「주의」로 정리한 첫 교과서이자, 후계 투쟁 한복판에서 레닌 해석의 권한을 쥐었음을 보인 문서다. 전집 판본(1924년 12월 이후 고친 텍스트)이며 편집자 주석을 붙였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스탈린, 「제14차 협의회 사업 결과에 대하여」 (1925)
제14차 당협의회가 「일국 사회주의」를 처음 당의 결의로 채택한 직후 스탈린이 모스크바 당 활동가들에게 한 보고. 「두 개의 안정화」, 자본주의 나라와 식민지 공산당의 과제, 농촌 정책, 금속공업을 다루되 핵심은 넷째 절이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한 나라의 힘으로 가능)와 「최종 승리」(여러 나라의 혁명이 필요)를 가른 이 정식이 이후 소련 이데올로기의 기본 명제가 되었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스탈린, 제14차 당대회 중앙위원회 정치보고와 결론연설
레닌 사후 지도부가 처음으로 대회장에서 공개적으로 갈라진 1925년 12월 제14차 당대회의 두 문서다. 스탈린이 중앙위원회를 대표해 한 정치보고는 국제 정세(자본주의의 「일시적 안정」, 로카르노, 도스 플랜), 국내 정세(공업화, 농촌의 계층 분화, 네프 아래의 국가자본주의 논쟁), 당의 상태 세 부분으로 짜여 있고, 닷새 뒤의 결론연설은 지노비예프·카메네프·소콜니코프의 「신반대파」를 이름을 불러 하나씩 반박한다. 일국사회주의와 농민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보여 주는 문서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부하린, 「우리 혁명의 성격과 소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 가능성에 대하여」 (1926)
신반대파가 패배한 뒤 부하린이 일국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을 원리의 수준에서 뒷받침한 소책자. 러시아 혁명의 성격, 세계 자본주의의 「성숙」, 국가자본주의론, 복구기에서 재건기로의 이행, 사회주의적 축적의 원천을 다루며, 마슬로프·수하노프·보그다노프·카우츠키·트로츠키를 「러시아는 사회주의에 미성숙하다」는 한 명제의 변주로 묶어 멘셰비즘의 계보에 놓는다. 1925년 협의회 정식(스탈린)의 이론판이자 1928년 「한 경제학자의 노트」의 출발점.
전문 읽기 → 저작·연설합동 반대파의 두 문서 — 「13인 선언」(1926)과 「볼셰비키-레닌주의자(반대파) 강령」(1927)
트로츠키·지노비예프·카메네프·크룹스카야 등 열세 명이 1926년 7월 합동 전원회의에 낸 선언(당 관료주의를 분파성의 원천으로 규정하고 임금·공업화·농촌·코민테른에 관한 입장을 열두 절로 요약)과 지노비예프 제명 제안에 대한 추가 성명, 그리고 1927년 9월 제15차 당대회 앞에 제출된 열두 장의 강령 초안(노동자의 처지, 쿨라크의 성장, 공업화 속도, 소비에트의 관료화, 당 체제, 전쟁 위험, 중국 혁명의 패배). 배포가 금지된 이 강령이 반대파 제명의 근거가 되었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스탈린, 「곡물 조달과 농업 발전의 전망에 대하여」
1928년 1월 곡물 조달 위기 때 스탈린이 시베리아로 내려가 지방 간부들 앞에서 한 발언이다. 곡물을 쥐고 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쿨라크에게 형법 제107조를 걸라고 지시하고, 그 일을 못 하겠다는 검사와 판사는 갈아치우라고 요구한다. 뒷부분에서는 개인 소농 경영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다며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으로의 전환을 당면 과제로 내건다. 네프의 시장 논리로 곡물을 사들이던 방식이 행정적 강제로 넘어가는 지점이 한 문서 안에 들어 있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부하린, 「한 경제학자의 노트」
1928년 9월 30일 『프라우다』에 실린 우익반대파의 정면 반론이다. 부하린은 스탈린의 이름을 한 번도 적지 않은 채, 공업의 자본 투자 증가율과 건축자재 수급 균형과 금속 배분표를 하나씩 짚으며 계획이 스스로 세운 통제숫자와 어긋나 있음을 논증한다. 원료와 자재가 따라오지 못하는 속도를 밀어붙이면 공업 자신이 멈춘다는 것, 곡물 위기의 원인도 쿨라크의 저항이 아니라 공업과 농업 사이의 균형이 깨진 데 있다는 것이 논지다. 통계표 5개를 포함한 전문.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파시즘 대평의회 문서 세 건 (1928~1943)
파시즘 대평의회를 「체제의 모든 활동을 조정·통합하는 최고 기관」으로 국가기관화한 1928년 12월 9일 법률, 1943년 7월 24~25일 밤 그 대평의회가 19대 8로 가결해 무솔리니 실각의 방아쇠가 된 그란디 결의안, 그리고 9월 8일 저녁 바돌리오가 라디오로 읽은 휴전 포고. 파시즘 체제가 스스로 세운 기관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의 세 문서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스탈린, 「대전환의 해」
1929년 10월 혁명 12주년에 맞춰 『프라우다』에 실린 글로, 1928년의 논쟁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승자 자신의 말로 보여 준다. 노동생산성·공업 건설·농업 건설 세 항목으로 성과를 정리하는데, 핵심은 셋째다. 개별 빈농이 아니라 중농이 마을째 집단농장으로 들어왔다는 주장이 두 달 뒤 전면적 집단화로 이어진다. 부하린이 경고한 속도 문제는 반박이 아니라 성과로 답해지고,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낡은 쓰레기」가 무너졌다고 선언된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집단화의 속도와 국가 지원 대책에 관한 결정
전면 집단화의 시간표를 정하고 「계급으로서의 쿨라크의 청산」으로의 이행을 공식화한 1930년 1월 5일 중앙위원회 결정의 전문.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홀로도모르 문서집 — 두 편지, 두 법령, 두 결정 (1932~1933)
1932년 6월 추바리와 페트롭스키가 스탈린·몰로토프에게 우크라이나 농촌의 굶주림을 알린 두 편지, 8월 7일 「이삭 세 줌의 법」, 현물 벌금과 「흑판」 제도를 명문화한 11월 18일 우크라이나 정치국 결의, 12월 14일 곡물 공출 비밀 결정, 그리고 숨긴 곡물을 내놓지 않는 자에게 그 법을 적용하라고 한 1933년 1월 1일 정치국 결정. 경고에서 결정까지, 홀로도모르로 가는 여섯 문서를 시간순으로 묶었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즈다노프, 「소비에트 문학은 가장 사상적이고 가장 전진적인 문학이다」
1934년 8월 17일 제1차 전연방 소비에트 작가대회 개막일에 즈다노프가 당 중앙위원회와 인민위원회의의 이름으로 한 연설의 전문 번역.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공식 정의(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 속에서 진실하게 그리되 근로자의 사상적 개조·교육과 결합할 것), 스탈린의 「인간 영혼의 기사」 호칭에 대한 해설, 혁명적 낭만주의론이 모두 이 연설에서 정식화되었고, 대회는 이를 작가동맹 규약에 새겼다. 십여 년 뒤 즈다놉시나 문화 단속의 이론적 잣대가 된 미학 강령이다. 영문판(1935)을 저본으로 한 중역이며 핵심 정식화는 러시아어 원문과 대조했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디미트로프 제7차 대회 보고 「파시즘의 공세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임무」
1935년 8월 코민테른 제7차 세계대회의 기본 보고와 폐회사 전문. 파시즘의 「디미트로프 정의」와 통일전선·인민전선으로의 노선 전환을 담았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인민연합 강령
「빵, 평화, 자유」의 선거를 낳은 1936년 1월 프랑스 인민전선 공동 강령의 전문. 파시스트 동맹 해산, 언론 개혁, 집단안보와 군수산업 국유화, 노동주 단축, 곡물청, 「프랑스은행을 프랑스의 은행으로」까지.
전문 읽기 → 저작·연설스페인 내전을 둘러싼 두 노선: 1936~1937년 문헌 6건
스페인 내전에서 「전쟁이 먼저인가 혁명이 먼저인가」를 두고 갈라선 두 노선을 당대 문헌으로 읽는다. 1936년 10월 16일 스탈린과 스페인공산당이 주고받은 전보 두 건, 서기장 호세 디아스가 제5연대를 해산하며 정규군을 주장한 연설과 「전쟁에서 이기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강연, 그리고 그 노선을 정면으로 공격한 트로츠키의 1937년 글 두 편의 한국어 번역 전문.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1936년 소련 헌법
1936년 12월 5일 제8차 비상 전연방 소비에트 대회에서 채택된 소련 헌법(통칭 '스탈린 헌법')의 전문 한국어 번역. 13개 장 146개 조문으로 사회 구조, 국가기관, 공민의 권리와 의무, 선거 제도를 규정한다. 번역 저본은 최고소비에트 제1~8차 회기의 수정 사항이 반영된 영어판(스탈린 저작집 제14권)이다.
전문 읽기 → 정보·수사 기록1937년 예조프 문서 3건
대숙청 시기 예조프의 이름으로 나온 문서 세 건의 한국어 번역. 1937년 2~3월 당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예조프가 한 보고 속기록, 폴란드 작전의 근거가 된 「폴란드 군사조직」 관련 NKVD 비밀서한, 그리고 교회인과 종파주의자 검거를 집계해 스탈린에게 올린 특별보고 발췌를 담았다. 함께 배포된 작전명령들은 별도 문서에 번호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NKVD 작전명령
1937~1938년 대숙청을 집행한 내무인민위원부(NKVD) 작전 지시 여덟 건을 발신일순으로 모은 전문 번역. 제00439호(독일)·제00485호(폴란드)·제00593호(하얼빈 귀환자)·제49990호(라트비아)·제50215호(그리스)는 국적과 출신을 표적으로 삼은 「민족 작전」을, 제00447호는 공화국·주별 처형·수감 배정을 동반한 대량 작전을, 제00486호는 유죄 판결자의 아내와 자녀 처리를, 제00606호는 그 사건들을 심사할 특별 트로이카 설치를 규정한다. 배정표의 수치는 원본 그대로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스탈린,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스탈린이 1938년 9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소교정』 제4장 2절로 발표한 이론 논문의 한국어 완역.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방법의 네 가지 특징과 철학적 유물론의 세 가지 특징을 서술한 뒤, 생산양식과 생산력·생산관계를 축으로 사적 유물론을 체계화한다. 이후 소련과 각국 공산당의 표준 철학 교재가 된 문헌이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국방인민위원 명령 제0040호 — 하산 호수 사건 심의 결과 (1938)
하산 호수 전투가 끝난 지 3주 뒤인 1938년 9월 4일 보로실로프가 내린 비밀 명령이다. 승리로 서술된 전투의 이면에서 극동 부대의 준비 부족을 낱낱이 열거하고, 책임을 블류헤르 원수에게 돌려 「패배주의」와 「사보타주」로 규정한 뒤, 극동방면군을 해체해 시테른과 코네프의 두 독립적기군으로 나눈다. 블류헤르는 이 명령 뒤 체포되어 심문 중에 죽었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체포, 검찰 감독, 수사 수행에 관한 결정
대숙청의 대량 작전을 종결시킨 1938년 11월 17일 비밀 결정의 전문. 대량 체포·이송 금지와 트로이카 폐지를 명령하면서, 실패의 책임을 「기관에 기어든 인민의 적들」에게 돌린다.
전문 읽기 → 정보·수사 기록프리놉스키 진술서 (1939년 4월 11일)
NKVD 제1부인민위원 프리놉스키가 체포 뒤 베리야에게 제출한 자백 진술서 전문. 신문 조서의 「교정」과 대질신문 리허설, 대규모 작전의 집행과 남용을 집행 당사자가 서술한 문서로, 예조프 신문 기록과 함께 예조프 사건의 축을 이룬다. 스탈린이 여백에 남긴 메모를 저본 편집자 주로 함께 실었다.
전문 읽기 → 정보·수사 기록예조프 신문 기록 (1939~1940)
1939년 4월부터 1940년 2월까지 이어진 예조프 수사의 신문 조서·자백서·대질신문 기록 가운데 공간된 텍스트 전부를 그로버 퍼가 모은 편집본의 한국어 번역. 러시아어 원문에서 옮겼고, 퍼의 해설과 파블류코프 전기의 요약 인용, 4월 26일·8월 4일 신문 조서 전문, 판본 주석이 달린 재판 최후 진술, 1998년 복권 심사 결정까지 한 문서에 실었다. 프리놉스키 진술서는 별도 문서다.
전문 읽기 → 조약·협정독소 불가침조약과 비밀 추가의정서, 그리고 1989년의 평가
1939년 8월 23일 몰로토프와 리벤트로프가 서명한 불가침조약과, 발트 지역·폴란드·베사라비아를 두 나라의 「이익권」으로 가른 같은 날의 비밀 추가의정서. 그리고 반세기 뒤 소련 인민대표대회가 의정서의 존재를 처음 공식 인정하고 「서명한 순간부터 법적으로 무효」라고 선언한 1989년 12월 24일 결의 제979-1호를 함께 실었다.
전문 읽기 → 저작·연설달라디에의 1939년 9월 2일 의회 선언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튿날 프랑스 하원에서 총리 달라디에가 읽은 참전 정당화 선언의 한국어 전역. 8월 31일 교섭 결렬의 경위, 히틀러의 약속 파기 목록, 대폴란드 동맹 의무, 「명예는 안전의 담보」라는 결론까지, 의사록의 박수 표기와 함께 옮겼다.
전문 읽기 → 조약·협정소련·핀란드 평화조약 (모스크바, 1940)
105일의 겨울전쟁을 끝낸 1940년 3월 12일의 조약과 부속 의정서다. 핀란드는 비푸리를 포함한 카렐리야 지협과 라도가 카렐리야, 살라, 핀란드만의 섬들을 넘기고 항코 반도를 30년 임대하며, 소련은 페차모에서 철수한다. 국토의 10분의 1과 주민 40만 명의 이주를 뜻한 이 국경선은 이듬해 계속전쟁의 배경이 되었고 1944년 휴전과 1947년 파리 조약에서 그대로 확인되었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비시 프랑스의 문서 세 건 — 헌법법률, 유대인 지위법, 공화국 합법성 회복 명령 (1940~1944)
페탱에게 전권을 넘긴 1940년 7월 10일 헌법법률, 비시 정부가 스스로 제정한 10월 3일 유대인 지위법, 그리고 「공화국은 법적으로 사라진 적이 없다」며 앞의 둘을 무효로 확인한 1944년 8월 9일 임시정부 명령. 제3공화국의 종말과 부활을 법률 세 건으로 좇는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총통 지령 제16호·제17호 (1940)
프랑스 항복 한 달 뒤 히틀러가 내린 두 지령. 제16호(7월 16일)는 「바다사자」라는 암호명 아래 램즈게이트에서 와이트섬 서쪽까지 넓은 정면의 영국 상륙을 준비하라 명하며 영국 공군의 제압을 전제로 삼고, 제17호(8월 1일)는 그 전제를 실행에 옮겨 8월 5일부터 항공전과 해상 봉쇄의 강화를 명하되 「보복 테러 공습」은 총통이 유보한다고 적는다. 영국 본토 항공전의 명령 문서다.
전문 읽기 → 조약·협정태평양 전쟁 문서집 — 삼국동맹부터 항복 문서까지 (1940~1945)
삼국동맹 조약(1940), 소일 중립조약과 1945년 대일 선전 성명, 1941년 7월 2일 어전회의의 「정세의 추이에 따른 제국 국책요강」, 헐 노트(1941), 포츠담 선언, 중소우호동맹조약, 일본 항복 문서(1945). 태평양 전쟁의 시작과 끝을 가른 일곱 문서를 시간순으로 묶었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지령 제21호 「바르바로사 계획」
「영국과의 전쟁이 끝나기 전이라도 신속한 전역으로 소비에트 러시아를 분쇄할 준비를 갖추라」는 1940년 12월 18일의 극비 지령 전문. 뉘른베르크 재판에 제출된 영역본을 저본으로 옮겼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독일군의 도시 말살 지시 — 「페테르부르크 시의 장래」 지령(1941)과 힘러의 바르샤바 파괴 명령 회고(1944)
레닌그라드 포위망이 닫힌 직후인 1941년 9월 22일 지령 「페테르부르크 시의 장래」 제1~3항(도시를 지표면에서 없애고 항복 제의는 거부한다)과, 같은 번호를 단 9월 29일 해군전쟁지휘부 명령 가운데 주민의 생존과 식량 문제를 「우리가 풀 수도 없고 풀어서도 안 된다」고 못 박은 뉘른베르크 기소장 인용 부분(문서 C-124). 여기에 1944년 9월 21일 힘러가 군관구 사령관들 앞에서 바르샤바 봉기 소식을 듣고 히틀러에게 한 말과 「모든 가구를 불태우고 폭파하라」는 자신의 명령을 회고한 연설 발췌를 더했다. 세 편 모두 저본이 전하는 발췌만 옮겼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총통 지령 제41호 (1942)
1942년 하계 공세의 명령서. 겨울 전투가 끝나는 대로 「소련에 남은 살아 있는 전력을 최종적으로 섬멸하고」 가장 중요한 군수 원천을 빼앗기 위해 남부 전선에 병력을 집중해 돈강 서쪽의 적을 포위 섬멸하고 캅카스 유전으로 나아가되, 스탈린그라드에는 「도달하거나 적어도 중포의 사정거리에 두라」고 명한다. 이 지령의 실행이 스탈린그라드로 이어진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몰로토프의 워싱턴 회담 기록 두 건
1942년 5월 30일과 6월 1일 백악관 회의의 크로스 통역 기록. 「독일군 40개 사단을 돌려세울 수 있는가」라는 몰로토프의 단도직입의 질문과, 「올해 제2전선의 형성을 기대한다」는 루스벨트의 답, 그리고 그 약속을 배와 톤수로 되짚는 6월 1일의 흥정까지.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와 최고사령부 문서 — 명령 제227호, 지령 제170703호, 항복 최후통첩, 명령 제20호 (1942~1945)
후퇴를 금지하고 형벌부대와 차단분견대를 제도화한 1942년 7월의 명령 제227호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 레닌그라드 봉쇄를 돌파한 「이스크라」 작전의 12월 지령 제170703호, 포위된 파울루스의 제6군에 항복 조건을 제시한 1943년 1월 8일의 최후통첩, 그리고 베를린 시가전 한가운데서 승리를 예고하고 네 도시를 처음 「영웅도시」라 부른 1945년 5월 1일의 명령 제20호. 스탈린그라드 위기에서 베를린 함락까지 소련 최고사령부의 문서 네 건.
전문 읽기 → 조약·협정이탈리아 항복 문서 세 건 (1943~1945)
1943년 9월 3일 카시빌레에서 서명된 12개조의 「짧은 휴전」, 9월 29일 몰타 앞바다 넬슨함에서 바돌리오와 아이젠하워가 서명한 44개조의 항복 문서(「긴 휴전」), 그리고 1945년 4월 29일 카세르타에서 독일군 남서부 총사령관의 대리인이 서명한 지역 항복 문서와 육·해·공 부록. 이탈리아의 전쟁 이탈에서 이탈리아 전선의 종전까지를 잇는 세 문서의 영어 정본을 옮겼다.
전문 읽기 → 조약·협정연합국 문서집 — 테헤란 군사 결론, 아이젠하워의 디데이 문서, 얄타 선언, 포츠담 의정서 (1943~1945)
제2전선에 날짜와 구조를 준 1943년 12월 테헤란 군사 결론, 상륙 당일의 양면인 아이젠하워의 일일명령과 실패 성명 초안(1944), 그리고 해방된 유럽의 정부 형태와 자유선거를 약속한 1945년 2월 얄타 「해방된 유럽에 관한 선언」. 그리고 독일 점령·배상·폴란드 국경·독일인 이송을 스물한 개 절로 정한 1945년 8월 포츠담 의정서. 제2전선에서 전후 처리까지 연합국 문서 네 건이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행복한 날들』 — 레지스탕스 행동 강령
국민저항위원회가 1944년 3월 15일 만장일치로 채택한 공동 강령의 전문. 점령자에 맞선 즉각 행동 계획과, 국유화·사회보장·노동권을 담은 해방 후 조치들을 함께 옮겼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오버로드 작전 — 연합군 최고사령부 문서 두 건: 전략공군 폭격 지령(1944년 4월 17일)과 아이젠하워의 상륙 이틀째 전황 보고 SCAF 48(6월 8일)
노르망디 상륙 준비 기간에 미 전략공군과 영국 폭격기사령부를 최고사령관 아래 두고 독일 전투기 전력의 소모와 철도망 파괴를 두 임무로 정한 4월 17일 지령(이른바 「수송 계획」의 근거 문서), 그리고 상륙 이틀째인 6월 8일 아이젠하워가 램지 제독과 구축함으로 해안을 둘러본 뒤 연합참모본부에 보낸 첫 종합 보고 전문 SCAF 48. 오마하 해안의 예상 밖 저항, DD 전차의 침몰, 험한 날씨로 하루 뒤처진 하역, 바이외 점령 소식이 담겨 있다. 전문의 절차어는 문장부호와 단락으로 되돌렸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바르샤바 봉기 1944 — 소련·영국·미국 사이의 외교 문서 열다섯 건
봉기 두 달 동안 소련이 서방 연합국과 주고받은 문서 열다섯 건. 폴란드 측 정보를 「과장」이라 답한 스탈린의 8월 5일 전문, 미군 셔틀 폭격기의 소련 기지 착륙을 두고 오간 해리먼·클라크 커의 서한과 몰로토프의 8월 16일 거절, 봉기를 「무모하고 끔찍한 모험」이라 규정한 스탈린의 전문, 영국 전시내각의 9월 5일 호소와 소련 정부의 9월 9일 회답, 스탈린과 두 대사의 9월 23일 회담 기록, 보급 투하 중지를 건의한 10월 2일 참모본부 각서. 러시아 국방부 문서집 『러시아 문서고: 대조국전쟁』 제14권(3-1) 수록본.
전문 읽기 → 조약·협정바르키자 협정 (1945)
1944년 12월 아테네 시가전(데켐브리아나)을 끝낸 그리스 정부와 민족해방전선(EAM)의 협정. 자유의 회복, 계엄 해제, 정치범 사면, 인질 석방, 국민군 창설, ELAS 무장 해제, 공직·치안 기관 숙정, 국민투표와 선거의 아홉 조로 이루어지며, 제3조 사면의 범위와 제6조 무장 해제가 이후 그리스 내전의 화약이 되었다. 미 국무부의 영역을 옮겼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이탈리아 총봉기 1945 — CLNAI 문서 세 건: 「항복이냐 파멸이냐!」 포고, 봉기 지침 제1호, 페르티니의 총파업 호소
북이탈리아 민족해방위원회와 자유의용군단 사령부가 4월 19일 나치·파시스트 병력에 내건 최후통첩 「항복이냐 파멸이냐!」, 봉기 파업이 선포되면 노동자가 자기 공장으로 모여 설비를 지키고 그곳에서 부대를 편성하라고 정한 4월 21일 봉기 지침 제1호, 그리고 4월 25일 밀라노 자유 라디오로 총파업을 선포한 산드로 페르티니의 호소. 1945년 4월 북이탈리아 총봉기를 지휘한 문서 세 건을 이탈리아어 원문에서 옮겼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당 중앙위원회 문화 결정 3건(1946~1948)
즈다놉시나의 뼈대를 이룬 당 중앙위원회 결정 세 건의 전문 번역. 잡지 《즈베즈다》와 《레닌그라드》에 관한 결정(1946-08-14)은 조셴코와 아흐마토바를 지목하고 잡지 하나를 폐간했고, 영화 《위대한 삶》에 관한 결정(1946-09-04)은 2부를 금지하며 《이반 뇌제》 2편을 함께 단죄했으며, 오페라 《위대한 우정》에 관한 결정(1948-02-10)은 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예프·하차투랸을 형식주의로 지목했다. 오페라 결정은 1958년에, 잡지 결정은 1988년에 당 스스로 오류로 시정·취소했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영화 《이반 뇌제》에 관한 크렘린 대담(1947)
1946년 9월 당 중앙위원회 결정으로 《이반 뇌제》 2편이 개봉 금지된 뒤, 예이젠시테인과 주연 체르카소프가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으로 1947년 2월 26일 밤 크렘린에서 이루어진 대담의 기록이다. 스탈린·몰로토프·즈다노프가 오프리치니나와 이반 뇌제의 역사적 평가, 역사 영화의 양식론, 《봄》과 《글린카》 등 당대 소련 영화를 이야기하고, 끝에 영화를 고쳐 완성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 두 예술가의 구술을 B.N. 아가포프가 받아 적은 기록으로, 개작은 예이젠시테인의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마셜 플랜의 두 각서 (1947)
마셜의 하버드 연설 직전 국무부 안에서 나온 두 문서. 케넌이 이끈 정책기획실의 첫 권고(5월 23일)는 유럽인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미국은 그것을 돕는다는 원칙과 「공산주의가 아니라 경제적 탈진과 싸운다」는 규정을 세웠고, 클레이턴 차관의 「유럽의 위기」(5월 27일)는 유럽 경제의 붕괴 속도를 수지 표로 보이며 연 60~70억 달러의 3년 무상 원조를 요구했다. 마셜 플랜의 골격이 된 원자료다.
전문 읽기 → 정보·수사 기록CIA ORE 29-48 「독일에서 소련이 취할 수 있는 향후 행동 계획」 (1948)
베를린 봉쇄 두 달 전인 1948년 4월 28일 CIA 보고평가국이 낸 판단. 3월의 연합국 관리이사회 이탈과 베를린 교통 방해를 「이미 시작된 프로그램」의 첫 단계로 읽고, 인민회의를 통한 동독 정부 수립, 관리이사회 폐기, 서방의 베를린 철수 강요, 소련군의 「보호」 아래 독일군 창설, 서독의 「재통합」 압박이라는 단계론을 내놓으면서, 각 단계가 「군사력 없이도」 실행될 수 있다고 본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코민포름 결의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상황에 관하여」와 스탈린의 고트발트 전보 (1948)
유고슬라비아공산당이 스스로를 「형제 당들의 가족 밖에」 세웠다고 선언한 1948년 6월 28일 부쿠레슈티 코민포름 결의와, 보름 뒤 스탈린이 고트발트에게 그 결의의 목적은 티토를 당장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고립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 전보(전집 수록 발췌). 티토-스탈린 결별의 공개된 규탄과 내부의 계산.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독일의 두 헌법 (1949)
분단을 국법으로 굳힌 두 문서. 5월 23일 본에서 공포된 서독 기본법 146개조는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의 잠정 질서를 자처하며 인간의 존엄에서 시작하고, 10월 7일 인민평의회가 채택한 독일민주공화국 헌법 144개조는 「독일은 불가분의 민주공화국」이라 선언하며 노동권과 국유화, 인민회의 우위를 적는다. 같은 해 같은 나라에서 나온 두 국가의 기초 문서를 나란히 옮겼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1953년의 베리야 — 3월 사면령과 12월 재판 문서
스탈린 사후 3주 만에 베리야가 주도해 100만 명 넘는 수감자를 풀되 정치범은 남긴 1953년 3월 27일 사면령과, 석 달 뒤 체포된 그 베리야를 「외국 첩자」로 단죄한 12월의 최고재판소 특별재판소 공보와 사형 집행 확인서. 사면의 주도자가 같은 해 처형되기까지의 아홉 달.
전문 읽기 → 조약·협정바르샤바 조약
여덟 나라의 우호·협력·상호원조 조약 전문. 나토 제5조를 본뜬 제4조의 상호원조, 통합사령부와 정치협상위원회, 그리고 전유럽 집단안보조약이 서면 효력을 잃는다는 제11조까지.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포스펠로프 위원회 보고서 (1956)
흐루쇼프 비밀보고 보름 전 간부회에 제출된 70쪽의 조사 보고. 1935~1940년 반소 활동 혐의 체포 1,920,635명·총살 688,503명이라는 첫 집계, 「쿨라크 작전」의 할당과 「민족 작전」의 국적별 통계, 앨범 절차와 트로이카의 재판 외 처형, 고문을 허가한 1939년 스탈린의 전보, 그리고 포스티셰프·코시오르·에이헤·루주타크·추바리 등 제17차 당대회 중앙위원 사건을 심문 기록과 편지로 하나씩 연다. 비밀보고가 통계와 사례를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쓴 원자료.
전문 읽기 → 저작·연설흐루쇼프 비밀보고 「개인숭배와 그 결과에 대하여」
1956년 2월 25일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비공개 회의에서 흐루쇼프가 한 보고의 전문 한국어 번역. 레닌이 「대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스탈린의 경질을 제안한 대목에서 시작해 키로프 살해 이후의 대량 탄압, 1937~38년 중앙위원 다수의 처형,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 전쟁 초기의 오판, 민족 강제이주, 유고슬라비아와의 단절, 「레닌그라드 사건」과 「의사들의 사건」, 개인숭배의 형성을 차례로 다룬다. 예이헤·루주타크·케드로프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그 자리에서 읽은 대목이 보고의 중심이다. 1989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통보』 게재본을 저본으로 삼았고, 그 편집부 주석 66개를 별도 절로 함께 옮겼다.
전문 읽기 → 정보·수사 기록CIA 일일 정보 보고의 포즈난 봉기 (1956)
1956년 6월 28일 포즈난 노동자 봉기 이튿날과 그 다음 날 CIA가 대통령과 각료에게 올린 《Current Intelligence Bulletin》의 포즈난 항목. 첫날은 임금·식량 항의가 소련 국기를 끌어내리는 정치 시위로 번진 경위와 전차 투입을 보고하고, 둘째 날은 사망 38명·부상 270명이라는 정권 발표를 1953년 동독 봉기와 견주며 봉기가 「자유화의 속도」를 늦출 것이라고 판단한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개인숭배와 그 결과의 극복에 관하여」 —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 (1956)
흐루쇼프 비밀보고 넉 달 뒤 당 중앙위원회가 공개적으로 낸 첫 공식 입장. 소련에서 비밀보고가 공표되지 않은 1989년까지 시민과 외국 공산당이 읽을 수 있었던 탈스탈린화의 공식 텍스트다. 개인숭배를 스탈린 개인의 특성과 객관적 조건의 산물로 설명하되 「사회 체제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못박고, 톨리아티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그」의 비판을 반박하며 스탈린 비판의 허용 경계를 그었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헝가리 1956 — 소련공산당 간부회 문서 일곱 건
봉기 석 달 전 라코시 퇴진을 보고하며 당 지도부가 「탈진 상태」라고 적은 미코얀의 부다페스트 전보(7월 14일)와, 10월 23일 봉기 당일부터 11월 3일 개입 전야까지 간부회 서기 말린이 연필로 받아 적은 회의 기록 다섯 건 및 10월 31일 결정. 23일 흐루쇼프의 군대 투입 제안, 30일 철군 쪽으로의 기울기, 31일 「평가를 재검토한다. 군대를 빼지 않는다」의 반전, 11월 2~3일 카다르와의 새 정부 구성이 한 사람의 필기 안에 이어진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베를린 장벽 1961 — 동독 측 문서: 울브리히트 기자회견과 정치국 의사록 제39/61호
장벽이 서기 두 달 전 「아무도 장벽을 세울 의도가 없습니다」라고 답한 1961년 6월 15일 울브리히트 국제 기자회견의 속기 발췌(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기자 도에르의 질문 포함)와, 흐루쇼프의 동의 직후 8월 7일 통일사회당 정치국 비상회의가 「예정된 통제 조치」를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시작한다고 정한 의사록 제39/61호. 국경 폐쇄의 날짜를 정한 문서에 「장벽」이라는 말이 없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베를린 장벽 1961 — 미국 외교 전문 4편: 8월 13일 베를린 공관 보고와 10월 27일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위기
국경이 막힌 8월 13일 저녁 베를린 공관이 브란트 시장과 사령관 회의를 보고한 전문 제185호, 그리고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소련 전차와 미군 전차가 마주 선 10월 27일 하루의 전문 세 편 — 톰프슨 대사가 그로미코에게 「동독의 주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을 들은 모스크바 발 제1378호, 클레이 장군이 러스크에게 보낸 상황 판단 제856호, 무장 탐침을 보류시킨 국무부 훈령 제620호. FRUS 1961~1963년 제14권 수록본.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9평」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을 평함
중국공산당이 1963년 9월부터 1964년 7월까지 《인민일보》·《홍기》 편집부 명의로 발표한 아홉 편의 논평. 스탈린 평가와 평화공존에서 시작해 소련 사회 자체의 계급적 성격에 이르기까지, 중소 논쟁의 쟁점이 모두 여기에 있다.
전문 읽기 → 정보·수사 기록콜러 대사의 전문 제1183호, 흐루쇼프 실각에 관하여 (1964)
흐루쇼프가 물러난 지 나흘 뒤 모스크바의 미국 대사 포이 콜러가 국무부에 보낸 분석 전문. 흐루쇼프 자신이 세운 「중앙위원회가 권력의 관리자」라는 원칙이 그를 끌어내리는 데 쓰였다는 역설, 소수의 정치국원이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지도 체제, 브레즈네프가 같은 함정에 놓였다는 전망을 다섯 항목으로 정리한다.
전문 읽기 → 조약·협정데탕트의 두 협정 — SALT I 잠정협정(1972)과 핵전쟁 방지 협정(1973)
ICBM·SLBM 발사대 수를 동결하고 검증을 정찰위성에 맡긴 1972년 5월 모스크바의 SALT I 잠정협정과, 소련의 「상호 핵 불사용」 초안이 1년의 교섭 끝에 「핵전쟁 위험 시 긴급 협의」 의무로 바뀐 1973년 6월 워싱턴의 핵전쟁 방지 협정. 미소 데탕트의 뼈대가 된 두 문서. 끝에는 1980년 1월 3일 카터 대통령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SALT II 조약의 상원 비준 심의 연기를 요청한 버드 상원의원 앞 서한을 덧붙였다. 데탕트의 조약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보여 주는 짧은 문서다.
전문 읽기 → 조약·협정헬싱키 최종의정서 (발췌) — 10원칙 선언과 신뢰구축 조치 문서 (1975)
1975년 8월 1일 35개국 정상이 서명한 유럽안보협력회의 최종의정서의 안보 부문. 주권 평등, 무력 불사용, 국경의 불가침, 영토 보전,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 불간섭,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존중, 민족 자결, 국가 간 협력, 국제법상 의무의 성실한 이행이라는 열 가지 원칙을 정한 「참가국 관계를 이끄는 원칙 선언」과, 대규모 군사 기동훈련의 사전 통보를 정한 신뢰구축 조치 문서를 옮겼다. 경제·인도 협력 부문(제2·3바스켓)은 제외했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1977년 소련 헌법
1977년 10월 7일 소련 최고소비에트 비상회기가 채택한 소련 헌법(통칭 '브레즈네프 헌법')의 전문 한국어 번역.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를 선언하는 전문과 9부 21장 174개 조문으로 사회 제도, 공민의 권리와 의무, 민족·국가 구조, 인민대의원 소비에트, 최고 국가기관, 사법·검찰, 국가 상징을 규정하며, 제6조는 소련공산당을 사회의 지도적·향도적 힘으로 명문화한다. 번역 저본은 1977년 채택 당시의 러시아어 원문이다.
전문 읽기 → 조약·협정전략무기제한협정 II — 미국과 소련의 전략공격무기 제한 조약, 의정서, 후속 협상 원칙 공동성명, 백파이어 성명 (1979년 6월 18일, 빈)
1979년 6월 18일 빈에서 서명된 SALT II 협정 문서 네 건이다. 열아홉 개 조의 조약은 전략공격무기 발사대의 총량 상한(2,400기, 1981년부터 2,250기)과 MIRV 탑재 미사일의 소상한, 신형 ICBM 한 종류 제한, 국가 기술적 검증수단의 불간섭을 정했고, 조문마다 두 나라가 함께 서명한 합의성명과 공통이해가 뒤따른다. 여기에 1981년 말까지 이동식 ICBM 발사대와 장거리 순항미사일 배치를 유예한 의정서, 다음 협상의 원칙을 적은 공동성명, 그리고 Tu-22M 「백파이어」의 생산과 개조를 제한한다는 브레즈네프의 서면 성명과 카터의 답변을 더했다. 미국 상원은 이 조약을 비준하지 않았으나 두 나라는 1986년까지 그 한도를 지켰다. 합의성명과 공통이해는 저본대로 해당 조항 바로 아래에 두었고, 데이터 각서의 수량 표는 옮기지 않았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문서 세 건 — 파병 결정(1979), 제네바 협정(1988), 규탄 결의(1989)
국가명을 「A」 한 글자로 숨긴 1979년 12월 12일 정치국 파병 결정, 소련군의 단계적 철수를 5월 15일부터 9개월 안에 끝낸다고 국제 문서로 못박은 1988년 4월 14일 제네바 협정(협정 넷과 두 보증국 성명), 그리고 철군 열 달 뒤 그 결정이 「도덕적·정치적 규탄에 값한다」고 선언한 1989년 12월 24일 인민대표대회 결의. 전쟁의 처음, 출구, 끝.
전문 읽기 → 저작·연설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와 당의 간부 정책에 관하여」 (1987)
페레스트로이카가 경제의 「가속화」에서 정치의 「민주화」로 방향을 튼 1987년 1월 전원회의 보고. 침체의 원인을 「제동 메커니즘」과 간부층의 보수주의에서 찾고, 당과 소비에트 선거에 복수 후보와 비밀투표를, 기업장 선출과 글라스노스트를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공기처럼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당 지도부의 저항을 당원 대중과 인민에 호소해 넘으려는 논법이 처음 공식화된 문서로, 제19차 당협의회와 1989년 인민대표대회 선거로 이어졌다.
전문 읽기 → 조약·협정중거리핵전력 조약 — 소련과 미국의 중거리·단거리 미사일 폐기 조약 (1987년 12월 8일)
1987년 12월 8일 워싱턴에서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이 서명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본문이다. 사거리 500~5,500km의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과 발사대를 3년 안에 모두 폐기하고 그 뒤 보유를 금지하며(제4~6조), 폐기와 배치 지역·생산 시설에 대한 현장 사찰(제11조)을 처음으로 조약에 넣었다. 조약의 불가분한 부분인 양해각서와 폐기·사찰 의정서 두 건은 본문의 네 배 분량이라 옮기지 않았다.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정치국 회의 작업 기록 — 숨가이트 사흘째 (1988년 2월 29일)
숨가이트 학살 사흘째의 정치국 회의를 그대로 받아 적은 작업 기록. 고르바초프가 호소문의 효과를 묻고, KGB와 내무부가 사상자와 도시 상황을 보고하며, 야조프가 요청한 야간 통행금지가 「정치국원들: 동의한다」로 결정된다. 사건 사흘째에야 사상자 규모를 듣는 정보의 지연, 카라바흐 편지를 「읽지 않았다」는 지도부, 「극단주의자」로 규정하면서 민족 정책 재검토를 말하는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가 민족 문제와 부딪친 첫 대형 위기의 내부 기록.
전문 읽기 → 저작·연설고르바초프, 1988년 유엔 총회 연설
1988년 12월 7일 고르바초프가 유엔 총회에서 한 연설의 전문 번역. 전인류적 가치의 우선, 선택의 자유, 탈이데올로기화 등 신사고의 원칙을 집대성하고, 병력 50만 일방 감축과 동유럽 주둔군 축소를 선언해 냉전 종식의 이정표가 된 문서다. 유엔 공식 속기록(A/43/PV.72)의 영어본을 저본으로 옮겼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여행·영구 출국 임시 전환 규정, 「샤보프스키의 쪽지」 (1989)
1989년 11월 9일 DDR 각료회의가 회람한 여행·영구 출국의 임시 규정과 첨부 보도문. 사유 없이 사적 해외여행을 신청할 수 있고 비자는 「지체 없이」 발급되며 영구 출국은 모든 국경 통과소에서 가능하다는 이 문서를, 샤보프스키가 저녁 기자회견에서 「즉시, 지체 없이」라고 읽은 것이 그날 밤 장벽의 개방이 되었다. 문서 자체는 이튿날 발효 예정이었다.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연방의 마지막 해 — 탈퇴 절차법(1990)과 주권국가연방 조약 초안(1991)
발트 3국이 「탈퇴 금지법」이라 부른 1990년 4월의 탈퇴 절차법(국민투표 3분의 2, 최장 5년 이행기, 인민대표대회 확인)과, 연방을 「주권 공화국들의 자발적 결합」으로 다시 세우려다 서명 전날 쿠데타로 무산된 1991년 8월의 주권국가연방 조약 초안. 법으로 탈퇴를 막으려던 길과 조약으로 남을 이유를 만들려던 길, 소련이 끝내 쓰지 못한 두 문서.
전문 읽기 → 정당·정부 문서「국민경제 안정화와 시장경제 이행의 기본 방향」 (1990)
500일 계획과 정부안이 맞선 끝에 고르바초프가 절충해 내고 최고소비에트가 1990년 10월 19일 승인한 문서. 비상 조치→재정 긴축→시장 형성→안정화 완료의 네 단계, 소유 형태의 다양화, 가격 자유화의 순서, 재정 적자 축소, 사회 보장, 대외경제 개방, 구조 조정을 다룬다. 500일 계획의 급진 일정과 공화국 주도 원칙은 빠지고 연방 중앙의 조정 권한이 남았다. 소련 경제 개혁 논쟁의 마지막 공식 문서.
전문 읽기 → 헌법·법령·명령50루블·100루블권 통용 정지에 관한 대통령령 (1991)
1991년 1월 22일 저녁 텔레비전으로 발표된 고르바초프의 대통령령이다. 1961년 발행 50·100루블권을 이튿날 0시부터 받지 않고 사흘 안에 한도 안에서 교환하며 상반기 예금 인출을 월 500루블로 제한한다. 「파블로프 개혁」으로 불리는 이 조치는 그림자 경제 단속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통화 과잉의 강제 회수였고, 회수액은 목표에 크게 못 미친 채 국가 화폐에 대한 신뢰만 무너뜨렸다.
전문 읽기 → 연구서알렉세이 파블류코프, 『예조프: 전기』
알렉세이 파블류코프의 평전 『예조프: 전기』(2007)의 한국어 번역 전문. 4부 구성으로 예조프의 유년기와 제정군 복무부터 당 인사기구에서의 부상, NKVD 수장 시기, 실각과 처형까지를 다룬다.
전문 읽기 → 연구서나우모프, 『「피의 난쟁이」 대 인민의 수령: 예조프의 음모』
대숙청 연구자 레오니드 나우모프의 2009년 연구서 전문 번역. 1937~1938년 대테러의 지역별 편차를 통계로 재구성하고, 예조프 시기 내무인민위원부(NKVD)에 대한 당의 통제 문제와 예브도키모프의 「북캅카스파」 체키스트 집단을 추적한다. 부록으로 예브도키모프·야고다의 서한, 숄로호프의 편지, 프리놉스키의 1939년 진술서 등 문서·회고록을 함께 싣는다.
전문 읽기 → 연구서나우모프, 『스탈린과 NKVD』
레오니드 나우모프의 2013년 연구서 전문 번역. 「명예 체키스트」 집단의 형성부터 대테러, 1938년의 숙청 중단과 베리야의 등장, 전후 보안 기관 개편과 1953년의 결말까지 당과 국가보안기관의 관계사를 관통한다. 「예조프의 한도」와 「앨범 절차」 같은 집행 기제, 류시코프 망명, 「의사들의 음모」 사건과 베리야 숙청을 문서 기반으로 재구성한다.
전문 읽기 → 연구서스페인 내전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여성·어린이·국제 의용병 등 스페인 내전의 덜 알려진 경험을 다룬 공동 연구서. 서론과 14개 장, 주석 771개, 도판 12점, 필자 소개·찾아보기를 수록한 한국어 기계 번역. 참고문헌과 서지 정보는 원어로 보존했다.
전문 읽기 → 소설muined, 『매한가지』
AO3에 연재된 muined의 장편 소설 전문 번역. 스탈린 시대의 소련공산당을 19세기 후반 제정 러시아의 발레단으로 옮겨 놓은 「앨리스」 각색 2차 창작으로, 당 지도부는 여성형 이름의 무용수로, 보안기관 사람들은 무대 뒤 일꾼으로 바뀌어 있다. 신작 발레 『이상한 나라의 소냐』를 무대에 올리는 극장 이야기로 대숙청의 전개를 형상화했다. 작가 주(권말 수록)와 엮은이의 통합 인물 대조표를 함께 실었고, 본문의 변형된 이름을 누르면 실존 인물을 확인할 수 있다. 성애·폭력 묘사가 있는 성인 등급 작품이다. 작가의 허락을 받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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