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 노조 사무실을 찾은 이유

5월 17일 오후 2시. 지난 48시간 동안 삼성전자 분쟁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이재용의 사과도, 교섭위원 교체도 아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조 사무실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어느 한 쪽만 찾은 것이 아니다. 15일 최승호 위원장을 면담하고, 16일 삼성전자 경영진과 1시간 면담했다. 장관이 직접 노사 양측을 오가며 중재에 나선 것이다. 이것은 통상적인 노동분쟁 조정 절차가 아니다. 장관이 직접 발품을 팔며 양측을 설득하는 것은, 국가가 이 파업을 결코 '노사 간 자율적 해결'에 맡겨둘 수 없다는 고백이다.

왜 국가는 여기까지 개입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은 단순한 사기업 생산시설이 아니다.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의 중추이고, 한국 매판-독점자본주의의 심장이다. 이 라인이 멈추면 SK하이닉스, TSMC로 이어지는 글로벌 분업 체계 전체가 타격을 받는다.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미 긴급조정권을 공개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근(장관의 중재 방문)과 채찍(긴급조정권)은 모순된 전술이 아니라 동일한 전략의 두 팔이다. 둘 다 목표는 하나다. 반도체 라인을 멈추지 않게 하는 것. 국가는 노동자 편도 자본 편도 아니다. 국가는 제국주의적 축적 체계의 관리자다. 그 체계가 위협받을 때, 국가는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The Atlantic의 Lila Shroff가 정리한 대로, 미국의 AI 반발은 이제 물리적 충돌로 비화하고 있다. 올트먼 저택 화염병, 인디애나폴리스 시의원 집 총격, 데이터센터 건설을 막기 위한 지역 조직화. 샌더스와 배넌이 AI 과두제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동일한 언어를 구사하는 기괴한 정치적 재편까지. 그러나 여기서 미국 국가는 한국의 김영훈 장관처럼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 반대 시위를 중재하러 장관이 나서지도 않고, 시의원 총격 사건 이후 AI 산업의 노사 갈등을 조정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의 AI 반발은 아직 소비와 분배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 입지 반대도, AI 일자리 상실 공포도, 올트먼 저택에 대한 분노도 생산관계 자체를 건드리지 않는다. 국가는 진짜 위협 — 생산의 중단 — 이 닥치기 전까지는 방관한다.

이 대비가 가르치는 것은 단순하다. 진짜 힘은 생산 라인의 통제권에 있다. 삼성전자 노동자 7만 5천 명이 파업 카드를 쥐자, 장관이 직접 노조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회장이 공개 사과한다. AI에 분노하는 미국 대중이 아무리 화염병을 던져도, 그 타깃이 개인 저택에 머무는 한 자본의 축적은 중단되지 않는다. Shroff의 글에 등장하는 미시간주의 데이터센터 반대 가이드 "How to Stop a Data Center"는 시위 전술을 알려주지만, 정작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전력을 공급하고 장비를 설치하는 노동자들의 조직적 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다. 이것이 자유주의적 AI 비판의 구조적 한계다. AI에 대한 반대를 생산의 통제가 아니라 소비의 거부와 지역사회 방어로만 구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비판이 노동자계급의 조직적 힘이라는 준거점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8일 세종 중노위에서 교섭이 재개된다. 파업까지 사흘. 정부는 여전히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움켜쥐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이번 사태를 통해 누구에게나 분명해졌다. 반도체 병목에 서 있는 노동자의 구조적 힘은 협상장의 모든 의례를 재배치할 수 있고, 실제로 재배치하고 있다. 과제는 이 힘이 성과급 몇 퍼센트의 분배 투쟁을 넘어, 이 생산라인을 누가 무엇을 위해 통제하는가라는 정치적 질문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18일의 교섭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조건은 바로 지금, 장관이 노조 사무실을 찾아야 했던 이 순간에 만들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