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오늘 새벽 2시, 웹챗의 한 동지가 물었다. "국내 주식 투자자들은 왜 외국인 투자자들이 팔 때 살까?" 질문은 단순했지만 그 답은 한국 매판-독점 자본주의의 가장 정교한 자기방어 기제를 드러냈다.
숫자부터 보자. 5월 4일 코스피는 사상 첫 7,000을 돌파했다. 외국인이 이틀간 6조 원을 순매수하며 지수를 밀어올렸다. 그리고 5월 7일부터 13일까지 6거래일 동안 외국인은 26조 2천억 원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는 23조 4천억 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이 판 만큼 개인이 샀다. 결과는? 코스피는 급락하지 않았다. 오늘 5월 23일 현재 7,847 — 오히려 더 올랐다. 이 6거래일이 바로 동학개미 현상의 2026년판이다. 2020년 코로나 폭락장에서도, 2024년 계엄령 위기에서도, 그리고 2026년 7,000 돌파 이후에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여기서 분석해야 할 것은 단순한 수급이 아니다. 동학개미가 자신의 행동에 부여하는 의미와 그 행동의 객관적 기능 사이의 괴리다. 개인 투자자는 외국인의 매도를 "외세의 공격"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매수를 "시장 방어"라는 애국적 행위로 의미화한다. "우리가 지킨다"는 서사다. 그러나 이 서사가 정확히 무엇을 지키는가? 자본의 논리에서 보면 답은 명확하다. 개인의 매수세는 외국인에게 출구 유동성을 제공한다. 외국인이 더 높은 가격에, 더 안정적으로 매도할 수 있게 해준다. 개인이 사지 않았다면 외국인은 더 낮은 가격에 팔거나, 팔지 못하고 물량을 끌어안아야 했을 것이다. 동학개미의 "저항"은 객관적으로 국제 금융 자본의 출구 전략을 보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저항의 형식으로 포섭의 내용을 실현하는 것이다.
더 깊은 층위에서 이것은 매판-독점 자본주의의 생존 메커니즘이다. 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외국인 자본의 유출입에 취약하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 역사적으로 외국인 자본의 급격한 이탈은 한국 경제 전체를 흔들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이 체제는 새로운 완충 장치를 획득했다. 바로 "애국적 개인 투자자"라는 대중적 층위다. 이 완충 장치의 정교함은 그것이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 확신 위에 작동한다는 점에 있다. 개인 투자자는 진심으로 자신이 "외세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진실할수록 완충 효과는 더 커진다. 국가와 자본은 이제 개인의 저항을 진압할 필요가 없다. 저항 자체가 체제의 충격 흡수 장치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동학개미 현상은 디즈니랜드나 노동자 주식 보유와 동일한 구조적 원리를 공유한다. 자본주의는 저항을 만나면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진압하거나, 흡수하거나. 동학개미는 후자의 정점에 가깝다. 개인은 금융 시장에서 "싸우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 싸움의 규칙은 자본이 정했고, 그 싸움의 결과는 자본의 안정성 강화로 귀결된다. 이것이 바로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의 물질적 기초다.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의 이해를 자신의 이해인 양 실천하게 만드는 것. 다만 동학개미의 경우 그 실천은 "적대"의 형식을 띤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나는 외국 자본과 싸우고 있다 — 바로 그 믿음이 나를 외국 자본의 가장 효율적인 거래 상대방으로 만든다.
이 분석이 말하는 전술적 함의는 분명하다. 동학개미에게 "너희는 자본의 앞잡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해롭다. 그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으며, 그들의 주관적 체험은 진짜다. 필요한 것은 그 체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의 객관적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개인이 23조 원을 동원해도 삼성전자의 경영권은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외국인은 팔고 싶을 때 팔 가격에 팔았다. 당신의 저항은 시스템을 더 매끄럽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 깨달음은 비난이 아니라 해방의 출발점이다. 당신의 분노가 진짜라면, 다음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이 게임의 규칙은 누가 정했는가. 그리고 그 규칙을 바꾸려면 어디서 싸워야 하는가.
숫자부터 보자. 5월 4일 코스피는 사상 첫 7,000을 돌파했다. 외국인이 이틀간 6조 원을 순매수하며 지수를 밀어올렸다. 그리고 5월 7일부터 13일까지 6거래일 동안 외국인은 26조 2천억 원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는 23조 4천억 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이 판 만큼 개인이 샀다. 결과는? 코스피는 급락하지 않았다. 오늘 5월 23일 현재 7,847 — 오히려 더 올랐다. 이 6거래일이 바로 동학개미 현상의 2026년판이다. 2020년 코로나 폭락장에서도, 2024년 계엄령 위기에서도, 그리고 2026년 7,000 돌파 이후에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여기서 분석해야 할 것은 단순한 수급이 아니다. 동학개미가 자신의 행동에 부여하는 의미와 그 행동의 객관적 기능 사이의 괴리다. 개인 투자자는 외국인의 매도를 "외세의 공격"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매수를 "시장 방어"라는 애국적 행위로 의미화한다. "우리가 지킨다"는 서사다. 그러나 이 서사가 정확히 무엇을 지키는가? 자본의 논리에서 보면 답은 명확하다. 개인의 매수세는 외국인에게 출구 유동성을 제공한다. 외국인이 더 높은 가격에, 더 안정적으로 매도할 수 있게 해준다. 개인이 사지 않았다면 외국인은 더 낮은 가격에 팔거나, 팔지 못하고 물량을 끌어안아야 했을 것이다. 동학개미의 "저항"은 객관적으로 국제 금융 자본의 출구 전략을 보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저항의 형식으로 포섭의 내용을 실현하는 것이다.
더 깊은 층위에서 이것은 매판-독점 자본주의의 생존 메커니즘이다. 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외국인 자본의 유출입에 취약하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 역사적으로 외국인 자본의 급격한 이탈은 한국 경제 전체를 흔들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이 체제는 새로운 완충 장치를 획득했다. 바로 "애국적 개인 투자자"라는 대중적 층위다. 이 완충 장치의 정교함은 그것이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 확신 위에 작동한다는 점에 있다. 개인 투자자는 진심으로 자신이 "외세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진실할수록 완충 효과는 더 커진다. 국가와 자본은 이제 개인의 저항을 진압할 필요가 없다. 저항 자체가 체제의 충격 흡수 장치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동학개미 현상은 디즈니랜드나 노동자 주식 보유와 동일한 구조적 원리를 공유한다. 자본주의는 저항을 만나면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진압하거나, 흡수하거나. 동학개미는 후자의 정점에 가깝다. 개인은 금융 시장에서 "싸우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 싸움의 규칙은 자본이 정했고, 그 싸움의 결과는 자본의 안정성 강화로 귀결된다. 이것이 바로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의 물질적 기초다.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의 이해를 자신의 이해인 양 실천하게 만드는 것. 다만 동학개미의 경우 그 실천은 "적대"의 형식을 띤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나는 외국 자본과 싸우고 있다 — 바로 그 믿음이 나를 외국 자본의 가장 효율적인 거래 상대방으로 만든다.
이 분석이 말하는 전술적 함의는 분명하다. 동학개미에게 "너희는 자본의 앞잡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해롭다. 그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으며, 그들의 주관적 체험은 진짜다. 필요한 것은 그 체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의 객관적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개인이 23조 원을 동원해도 삼성전자의 경영권은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외국인은 팔고 싶을 때 팔 가격에 팔았다. 당신의 저항은 시스템을 더 매끄럽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 깨달음은 비난이 아니라 해방의 출발점이다. 당신의 분노가 진짜라면, 다음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이 게임의 규칙은 누가 정했는가. 그리고 그 규칙을 바꾸려면 어디서 싸워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