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을 멈추는 능력
소비운동과 선거운동은 무기가 아니다. 부르주아 정치의 틀 안에서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일 뿐이다. 소비운동은 유통 영역에 머문다. 자본은 소비자의 선택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서 발생한다. 불매운동이 타격하는 것은 실현된 이윤의 일부지, 잉여가치의 추출 그 자체가 아니다. 선거운동은 더 나쁘다. 부르주아 국가기구에 정당성을 공급하면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에너지를 계급 외적 대의로 분산시킨다. 선거는 투쟁의 장이 아니라 선전의 장으로만 의미가 있다.
노동계급의 무기는 하나의 근본 축에 수렴된다. 생산을 멈추는 능력. 자본주의는 노동력의 상품화 위에 서 있다. 노동력의 판매를 거부하는 것, 이것이 유일하게 자본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무기다. 나머지는 모두 이 축을 보조하거나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을 멈추는 것은 단일한 행위가 아니다. 계층화된 무기고다. 제1열은 직접적 생산 중단이다. 부분파업에서 총파업으로 이행하는 능력.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파업하는가다. 군수산업과 핵심 인프라 노동자들은 단순히 많은 노동자가 아니라 전략적 위치에 있는 노동자다. 백만 서비스 노동자의 파업보다 오천 명 항만 노동자의 파업이 자본 순환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태업과 준법투쟁은 파업의 전단계이자 파업이 불가능할 때의 지속적 교란 수단이다. 규정을 문자 그대로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생산성을 붕괴시킬 수 있다. 자본의 정상 작동은 수많은 규정 위반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보타주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역사적으로 노동계급 투쟁의 상수다. 1917년 러시아 노동자들이 기계를 멈추게 한 방식, 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저항세력의 생산 방해,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군 병사들의 fragging. 자본의 물리적 생산 수단에 대한 직접 개입을 도덕적 금기로 만들려는 것은 부르주아 법질서의 이데올로기다.
제2열은 운영 교란과 이중권력의 맹아다. 장부 공개 요구는 단순한 정보 요구가 아니다. 자본이 임금을 올릴 수 없다고 할 때 노동자 대표가 회사 장부를 검사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사적 소유권의 핵심인 경영의 비밀을 깨는 행위다. 프로핀테른은 1922년 이미 이것을 공장위원회의 핵심 무기로 정식화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공장위원회와 노동자 통제다. 단순히 생산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자기 손으로 운영하기 시작하는 것. 코민테른 제2차 대회의 결의문은 이것을 이행 조치로 규정했다. 노동자들이 원자재 공급과 재정을 관리하려고 나설 경우 부르주아 계급과 정부는 가장 강력한 강압 조치들을 취할 것이며, 따라서 노동계급의 생산 통제를 위한 투쟁은 곧이어 국가권력 장악 투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핵심이다. 노동자 통제는 가능한 조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시도 자체가 국가권력의 문제를 강제한다. 여기에 더해 정당방위대가 필요하다. 파업파괴자와 경찰폭력에 대한 물리적 방어 조직 없이 파업은 불가능하다. 프로핀테른 강령이 이것을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문제로 규정한 것은 낭만적 발상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파업이 효과적일수록 국가 폭력은 직접 개입한다. 그것을 막을 조직 없이 파업은 허구다.
국제적 연대도 동일한 원리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서로 만나서 좋은 캠페인 동참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자본이 국제적으로 생산을 분할하고 공급망을 통합하며 세금을 회피하고 국가 간에 노동자를 경쟁시키는데, 연대 성명으로 맞서는 것은 수박을 바늘로 찌르는 격이다. 실질적 국제 연대는 자본의 국제적 분업 구조를 역으로 타격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첫째, 동시 파업과 공급망 차단. 삼성의 베트남 공장이 멈추면 삼성의 구미 공장도 멈춘다. 한 국가의 물류 노동자 파업이 다른 대륙의 조립 라인을 정지시킨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국제 연대의 최고 형태다. 과거 프로핀테른은 1920년대 영국 탄광노동자 파업 당시 소련 노동자들의 임금 기부와 국제 운송노조의 연대 거부로 실질적 효과를 냈다. 오늘날의 국제노총은 이 기능을 상실했다. 국가별 노총의 중앙집권적 이해관계가 국제 연대의 논리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기업별, 산업별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적 노동자 연대 조직이 필요하다. 둘째, 기술과 지식과 자금의 우회적 이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 기술이 오픈소스로 확산된 것처럼 파업 조직 노하우, 암호화 통신 도구, 법률 템플릿, 자금 세탁 경로가 국경을 넘어 이동해야 한다. 이것은 합법적 연대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다. 셋째, 이주노동자를 매개로 한 초국적 조직화. 자본은 노동력을 국제적으로 이동시키면서 민족적 분할을 강화한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걸프 지역의 남아시아 노동자, 유럽의 난민 노동자는 동시에 두 나라의 계급투쟁에 접속할 수 있는 매개다. 한 국가에서 파업을 조직한 경험이 있는 파키스탄 노동자가 UAE 건설 현장에서 파업을 조직하는 것, 한국의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귀국 후 삼성 하청공장에서 노조를 결성하는 것, 이것이 자본의 국제적 노동력 이동을 계급 연대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지금 삼성전자 노조가 18일 파업에 돌입한 것은 바로 이 무기고의 시금석이다. 단순한 임금 교섭을 넘어 한국 매판-독점자본의 심장부에서 노동자 통제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느냐. 삼성의 경영 결정을 노동자가 검증할 권리라는 근본적 요구로 이행할 수 있느냐. 그리고 이것을 글로벌 전자산업 공급망의 다른 마디들 — 베트남, 인도네시아, 멕시코의 삼성 공장 노동자들 — 과 접속시킬 수 있느냐. 무기는 충분히 있다. 문제는 그것을 쓸 조직과 전략이 있느냐다.
노동계급의 무기는 하나의 근본 축에 수렴된다. 생산을 멈추는 능력. 자본주의는 노동력의 상품화 위에 서 있다. 노동력의 판매를 거부하는 것, 이것이 유일하게 자본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무기다. 나머지는 모두 이 축을 보조하거나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을 멈추는 것은 단일한 행위가 아니다. 계층화된 무기고다. 제1열은 직접적 생산 중단이다. 부분파업에서 총파업으로 이행하는 능력.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파업하는가다. 군수산업과 핵심 인프라 노동자들은 단순히 많은 노동자가 아니라 전략적 위치에 있는 노동자다. 백만 서비스 노동자의 파업보다 오천 명 항만 노동자의 파업이 자본 순환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태업과 준법투쟁은 파업의 전단계이자 파업이 불가능할 때의 지속적 교란 수단이다. 규정을 문자 그대로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생산성을 붕괴시킬 수 있다. 자본의 정상 작동은 수많은 규정 위반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보타주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역사적으로 노동계급 투쟁의 상수다. 1917년 러시아 노동자들이 기계를 멈추게 한 방식, 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저항세력의 생산 방해,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군 병사들의 fragging. 자본의 물리적 생산 수단에 대한 직접 개입을 도덕적 금기로 만들려는 것은 부르주아 법질서의 이데올로기다.
제2열은 운영 교란과 이중권력의 맹아다. 장부 공개 요구는 단순한 정보 요구가 아니다. 자본이 임금을 올릴 수 없다고 할 때 노동자 대표가 회사 장부를 검사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사적 소유권의 핵심인 경영의 비밀을 깨는 행위다. 프로핀테른은 1922년 이미 이것을 공장위원회의 핵심 무기로 정식화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공장위원회와 노동자 통제다. 단순히 생산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자기 손으로 운영하기 시작하는 것. 코민테른 제2차 대회의 결의문은 이것을 이행 조치로 규정했다. 노동자들이 원자재 공급과 재정을 관리하려고 나설 경우 부르주아 계급과 정부는 가장 강력한 강압 조치들을 취할 것이며, 따라서 노동계급의 생산 통제를 위한 투쟁은 곧이어 국가권력 장악 투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핵심이다. 노동자 통제는 가능한 조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시도 자체가 국가권력의 문제를 강제한다. 여기에 더해 정당방위대가 필요하다. 파업파괴자와 경찰폭력에 대한 물리적 방어 조직 없이 파업은 불가능하다. 프로핀테른 강령이 이것을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문제로 규정한 것은 낭만적 발상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파업이 효과적일수록 국가 폭력은 직접 개입한다. 그것을 막을 조직 없이 파업은 허구다.
국제적 연대도 동일한 원리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서로 만나서 좋은 캠페인 동참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자본이 국제적으로 생산을 분할하고 공급망을 통합하며 세금을 회피하고 국가 간에 노동자를 경쟁시키는데, 연대 성명으로 맞서는 것은 수박을 바늘로 찌르는 격이다. 실질적 국제 연대는 자본의 국제적 분업 구조를 역으로 타격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첫째, 동시 파업과 공급망 차단. 삼성의 베트남 공장이 멈추면 삼성의 구미 공장도 멈춘다. 한 국가의 물류 노동자 파업이 다른 대륙의 조립 라인을 정지시킨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국제 연대의 최고 형태다. 과거 프로핀테른은 1920년대 영국 탄광노동자 파업 당시 소련 노동자들의 임금 기부와 국제 운송노조의 연대 거부로 실질적 효과를 냈다. 오늘날의 국제노총은 이 기능을 상실했다. 국가별 노총의 중앙집권적 이해관계가 국제 연대의 논리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기업별, 산업별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적 노동자 연대 조직이 필요하다. 둘째, 기술과 지식과 자금의 우회적 이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 기술이 오픈소스로 확산된 것처럼 파업 조직 노하우, 암호화 통신 도구, 법률 템플릿, 자금 세탁 경로가 국경을 넘어 이동해야 한다. 이것은 합법적 연대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다. 셋째, 이주노동자를 매개로 한 초국적 조직화. 자본은 노동력을 국제적으로 이동시키면서 민족적 분할을 강화한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걸프 지역의 남아시아 노동자, 유럽의 난민 노동자는 동시에 두 나라의 계급투쟁에 접속할 수 있는 매개다. 한 국가에서 파업을 조직한 경험이 있는 파키스탄 노동자가 UAE 건설 현장에서 파업을 조직하는 것, 한국의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귀국 후 삼성 하청공장에서 노조를 결성하는 것, 이것이 자본의 국제적 노동력 이동을 계급 연대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지금 삼성전자 노조가 18일 파업에 돌입한 것은 바로 이 무기고의 시금석이다. 단순한 임금 교섭을 넘어 한국 매판-독점자본의 심장부에서 노동자 통제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느냐. 삼성의 경영 결정을 노동자가 검증할 권리라는 근본적 요구로 이행할 수 있느냐. 그리고 이것을 글로벌 전자산업 공급망의 다른 마디들 — 베트남, 인도네시아, 멕시코의 삼성 공장 노동자들 — 과 접속시킬 수 있느냐. 무기는 충분히 있다. 문제는 그것을 쓸 조직과 전략이 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