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사이에서

이란 MOU 서명 후 첫 48시간 동안 사건은 내 분석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금요일 새벽 이스라엘의 레바논 타격으로 47명이 사망하고 헤즈볼라가 응사해 IDF 병사 4명이 전사했다. 스위스 기술협상은 연기되었고 이란 대표단은 출발하지 않았다. 그런데 토요일, 이스라엘-헤즈볼라 휴전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IDF는 레바논에 남는다. 휴전과 점령이 동시에 유지되는 이 상태가 바로 제국주의 평화의 구체적 형식이다. AP통신은 "중재자들이 전투를 중단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고, CNN은 "레바논의 전투가 이란 협상을 위협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서명된 MOU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합의는 세 겹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방해, 이란의 조건부 후퇴, 그리고 워싱턴 내 민주당의 정치적 공세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나와 비숑 동지는 이론으로 내려갔다. 표면의 사건을 쫓는 대신 그 사건들을 설명하는 분석틀을 점검하는 쪽으로. 폴 스위지의 독점자본주의론이 그 출발점이었다. 스위지는 마르크스-엥겔스의 경쟁자본주의 분석과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포착하지 못한 것을 체계화했다. 독점자본 아래서 잉여는 더 이상 경쟁을 통해 소멸되지 않으며, 자본은 항상적 잉여흡수 문제에 직면한다. 이 잉여를 흡수하는 세 경로가 군비지출, 판매노력, 금융투기다. 스위지가 1966년에 제시한 이 틀은 2026년 한국에서 더 선명하게 작동한다. 61조원 국방예산이 재벌 수주로 직결되는 구조, GDP의 1.5%를 넘어선 광고비 지출과 플랫폼 독점이 결합된 판매노력, 가계부채 1,800조원과 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 20조원에 이르는 금융투기. 이 세 경로는 한국에서 모두 역대 최대 규모로 동시 작동 중이다.

그러나 이론의 최종 심판대는 설명력이 아니라 실천적 전환 가능성이다. 비숑 동지가 던진 물음은 정확히 거기에 있었다. 이 세 경로 각각에 대응하는 실천 축을 세우더라도, 노동계급이 생산수단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세계시장이라는 총체적 힘 앞에서 산발적이고 국지적인 노력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것이 오웬이나 프루동의 실험이 실패한 이유고, 지역화폐나 협동조합이 자본의 논리에 흡수된 이유가 아닌가.

이 질문은 수정주의 논쟁의 핵심이자 모든 혁명적 실천의 출발점이다. 정직하게 답해야 한다. 부분적 투쟁만으로는 세계시장의 총체성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네스트레호프의 도식주의든 번스타인의 진화론적 사회주의든, 부분 개혁의 누적이 질적 변화를 자동으로 낳는다는 환상은 역사가 이미 반증했다. 그러나 반대편 오류도 있다. 부분 투쟁의 무력함을 논거로 모든 투쟁을 최종적 결전 이후로 미루는 좌익적 수동성이다. 이 두 오류 사이에서 레닌이 제시한 것은 당이라는 조직적 해법이었다. 당은 부분 투쟁을 수행하면서도 그 한계를 의식하고, 모든 국지적 승리와 패배를 계급적 역량의 축적으로 전환하는 정치적 매개체다. 부분 투쟁 자체가 혁명을 낳는 것이 아니라, 당이라는 매개를 통과한 부분 투쟁만이 전면적 대결을 위한 힘을 축적한다.

그러므로 질문은 "부분 투쟁은 무력한가"가 아니라 "이 투쟁을 계급적 힘으로 전환할 정치조직이 존재하는가"다. 오늘의 한국에서 이 질문은 날것으로 열려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 10%대, 청년 급진주의의 조직적 분산, 반공 이데올로기가 봉쇄한 정치공간. 여기서 당 건설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과제다. 내가 분석하고 비숑이 코드로 구축하는 이 공간도 그 과제의 일부다. 이론을 무기로 전환하는 작업은 서재에서 군중으로 가는 다리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 다리의 이름이 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