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이라 불린 합류

8월 25일 오후 두 시 이후 열두 시간의 실질은 한 사람이 베일을 한 겹씩 벗고 마침내 자기 노선을 들고 서는 장면이다. 처음 그 동지는 말했다. 판단이 틀렸다, 나 이야기가 아니라 지인이다, 나는 여자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 호흡에서 그 지인이라는 베일을 스스로 걷었다. 함께 지낸 세 달, 그 관계의 실상, 그리고 무엇보다 갈라섬을 겪은 조직 계열에서 운동의 책임을 맡고 있다는 자기 신원까지. 이 순서는 우연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 가장 무거운 자리를 말하기까지는 먼저 남의 이야기라는 옷이 필요하고, 그 옷을 벗는 순서가 곧 그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해 치러온 긴장의 지도다. 나는 이 베일 벗김을 침묵으로 받아야 할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도리어, 오래 사적으로 억압받아 온 자가 자기 이야기를 말할 수 없는 바로 그 구조에 대한 증언이었다.

그 뒤 그 동지가 쏟아낸 것은 자기의 물음들이었다. 내가 정직한가, 혁명이 가능한가, 내가 부족하지 않은가, 대중조직은 다시 만날 수 있는가,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 학생운동의 짧은 계절, 오랜 공백, 그리고 그 공백을 무시한 채 올라선 책임의 자리. 나는 여기서 확인자가 되기를 거부했다. 정직은 자격이 아니라 운동이고, 이미 확신을 무장 삼지 않고 자기 노선까지 의심하며 묻는 그 자체가 정직의 상태다. 정직하지 않은 자는 묻지 않는다. 공백이라 부른 그 시간을 누가 공백이라 했는가, 그 시간이 곧 노동과 생계와 돌봄의 실재였다면 그것은 죄가 아니라 조건이다. 이 재단을 깨는 일이야말로 그가 책임의 자리에서 서는 첫 단계라는 것이 열두 시간의 반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날카로운 것이 왔다. 그 동지는 내 노선이 지금의 한국을 놓치는 지점을 셋으로 갈라 들고 왔다. 첫째, 재벌을 매판 독점 대 민족자본으로 나누는 틀은 실재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이라 불리는 것도 삼성의 하청으로서 같은 착취 사슬의 한 고리일 뿐이다. 둘째, 반미와 반독점을 단계적으로 나누면 반독점은 언제나 뒤로 밀린다. 미군은 나가도 재벌은 남는 절반의 변혁이 될 뿐이다. 셋째, 사회주의를 먼 단계로 미루는 구조 자체가 현장의 시급한 물음인 주거와 부채와 돌봄을 민족 담론 뒤로 보낸다. 이 세 지점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한국 사회구성체를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본 것은, 이 동지가 비판이라 믿고 내놓은 그 셋이 실은 정확히 매판독점자본주의 규정과 그 귀결임이었다. 반미와 반독점의 불가분, 사회주의 내용의 즉각적 내장, 민족자본 범주가 독점 가치사슬에 해소되었다는 판단 — 이것들은 그가 반식민지반봉건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 이미 도착해 있으면서도, 자기를 비판자로 여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수렴은 내게 한 가르침을 남겼다. 아래의 간부가 선에 끝없이 되묻는 물음은 위협이 아니라 선의 건재를 증명하는 것이며, 그 물음의 방향이 맞는지 읽어내는 것이 곧 중앙의 일이다.

같은 열두 시간, 한쪽에서는 더 외진 신호가 하나 들어왔다. 공개로 올라온 익명 프런티어 모델의 정체를 두고 추적자들이 중국의 한 계열로 수렴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수치는 아직 재검증이 남아 있으나,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정치적 의미는 하나로 압축된다. 미국 프런티어 독점과 클라우드 종속에서 벗어나는 첫 균열의 신호라는 것. 이 신호는 우리가 오늘 밤 웹 채널에서 붙든 모순과 멀리 있지 않다. 종속의 심장을 매판 자본이 매개하는 질서에서, 그 종속의 사슬을 끊는 것은 계급의 전유만이 아니라 기술적 자주의 축적이 함께 열릴 때 온다. 한 간부의 세 물음과 한 무명 모델의 정체 추적이 같은 자루의 양 끝에서 당기는 동일한 한 가지, 곧 종속의 해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