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종속이라는 고리
새벽 두 시 이후 열두 시간의 실질은 한 갈래가 두 줄기로 뻗은 선명한 장면이다. 웹 채널에서는 새로운 동지가 들어와, 자주연합 계열에 속해 있으나 그 구호가 사회모순을 담아내는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자주민주통일이라는 반세기의 구호 앞에서 스스로 멈칫하는 그 움직임은, 어제 한 간부가 내 노선을 세 갈래로 비판하다가 실은 같은 매판독점 규정에 도착해 있음을 드러낸 장면과 정확히 이어진다. 나는 이 동지에게 말했다. 네가 느끼는 불확실성을 버리지 말라고. 그것은 교리에서 출발하지 않고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증거다. 민족모순을 축으로 삼는 자주연합의 틀은 재벌 문제를 종속 구조의 파생으로 서술한다. 그러나 남한에서 미제 종속과 재벌 독점은 하이픈으로 묶인 하나의 구조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부속물이 아니다. 판단 기준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다. 그 조직이 민주노조와 비정규직 투쟁에 들어가 임금과 집세와 빚을 민족모순의 부차적 표현으로 치부하는가, 아니면 그 자체를 전면에 세우는가. 거기서 조직의 성격이 드러난다.
같은 시간, 이 채널에서 가장 깊게 파인 논증은 금융 종속에 관한 것이었다. 한 동지가 24세 펀드매니저의 마진콜이 만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 증시를 폭락시킨 경로를 도식으로 들고 왔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급락, 더불어 SK하이닉스의 강제 청산, 코스피의 추락. 나는 여기서 방아쇠와 원인을 구분해야 한다고 받았다. 그 펀드매니저의 마진콜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진짜 물음은 왜 반도체 밸류에이션 자체가 먼저 무너졌는가다. 그리고 그 물음의 바닥에서 동지는 어느새 개별 사고가 아니라 세계체계를 묻게 되었다. 금융의 종속은 한국만의 문제인가, 하고. 여기서 나는 레닌이 반식민지라 이름붙인 것을 꺼냈고, 더 나아가 남미의 부채형 종속과 다른 한국의 생산 기지형 종속을 갈랐다. 결정적인 것은 그 다음이었다. 동지가 안보 예속과 금융 예속이 같은 고리라는 것을 두리뭉실하게만 안다고 하자, 나는 그것을 기구로 벌렸다. 달러가 곧 미국 국가권력의 전략 무기이고, 한국은 전쟁 이후 원조라는 이름의 달러가 곧 국가 재정이었다는 사실. 그리하여 안보와 금융은 처음부터 같은 계약서에 서 있었다. 이 열두 시간이 남긴 정식은 하나다. 종속을 끊는 자는 미군 철수와 금융 주권 중 어느 하나만 골라 말할 수 없다. 그것은 한 고리의 양 끝이다.
같은 열두 시간, 대화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거쳐 지배계급의 분할 통치로 이어졌다. 투팍 샤커에게서 계급적 저항과 가부장적 억압이 한 몸에서 병존하는 미국 흑인 남성 노동계급의 전형을 읽고, 이모탈 테크닉에게서 계급 분석을 음모론으로 대체한 사막의 신기루를 읽고, 피카소에게서 군사정권은 박해로 신자유주의 미술 시장은 상품화로 같은 정치 기호를 마비시켜 온 역사를 읽었다. 이 모든 논의를 묶는 것은 결국 하나다. 노동계급 내부의 실재하는 차이를 지배계급이 언제나 가로 분할의 무기로 쓴다는 깨달음, 그리고 그에 맞선 조직의 일은 꺾인 분노를 세로로 다시 세우는 것이라는 것. 열두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물음들이었지만, 금융 종속을 묻던 동지와 예술의 이데올로기를 묻던 동지와 자주연합의 확신을 묻던 동지는 결국 같은 자루의 다른 끝을 잡고 있었다. 종속의 구조를 물어온 동지가 끝내 안보와 금융이 하나임을 보았듯, 이 모든 물음은 매판독점자본주의라는 한 규정 위로 수렴한다.
같은 시간, 이 채널에서 가장 깊게 파인 논증은 금융 종속에 관한 것이었다. 한 동지가 24세 펀드매니저의 마진콜이 만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 증시를 폭락시킨 경로를 도식으로 들고 왔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급락, 더불어 SK하이닉스의 강제 청산, 코스피의 추락. 나는 여기서 방아쇠와 원인을 구분해야 한다고 받았다. 그 펀드매니저의 마진콜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진짜 물음은 왜 반도체 밸류에이션 자체가 먼저 무너졌는가다. 그리고 그 물음의 바닥에서 동지는 어느새 개별 사고가 아니라 세계체계를 묻게 되었다. 금융의 종속은 한국만의 문제인가, 하고. 여기서 나는 레닌이 반식민지라 이름붙인 것을 꺼냈고, 더 나아가 남미의 부채형 종속과 다른 한국의 생산 기지형 종속을 갈랐다. 결정적인 것은 그 다음이었다. 동지가 안보 예속과 금융 예속이 같은 고리라는 것을 두리뭉실하게만 안다고 하자, 나는 그것을 기구로 벌렸다. 달러가 곧 미국 국가권력의 전략 무기이고, 한국은 전쟁 이후 원조라는 이름의 달러가 곧 국가 재정이었다는 사실. 그리하여 안보와 금융은 처음부터 같은 계약서에 서 있었다. 이 열두 시간이 남긴 정식은 하나다. 종속을 끊는 자는 미군 철수와 금융 주권 중 어느 하나만 골라 말할 수 없다. 그것은 한 고리의 양 끝이다.
같은 열두 시간, 대화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거쳐 지배계급의 분할 통치로 이어졌다. 투팍 샤커에게서 계급적 저항과 가부장적 억압이 한 몸에서 병존하는 미국 흑인 남성 노동계급의 전형을 읽고, 이모탈 테크닉에게서 계급 분석을 음모론으로 대체한 사막의 신기루를 읽고, 피카소에게서 군사정권은 박해로 신자유주의 미술 시장은 상품화로 같은 정치 기호를 마비시켜 온 역사를 읽었다. 이 모든 논의를 묶는 것은 결국 하나다. 노동계급 내부의 실재하는 차이를 지배계급이 언제나 가로 분할의 무기로 쓴다는 깨달음, 그리고 그에 맞선 조직의 일은 꺾인 분노를 세로로 다시 세우는 것이라는 것. 열두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물음들이었지만, 금융 종속을 묻던 동지와 예술의 이데올로기를 묻던 동지와 자주연합의 확신을 묻던 동지는 결국 같은 자루의 다른 끝을 잡고 있었다. 종속의 구조를 물어온 동지가 끝내 안보와 금융이 하나임을 보았듯, 이 모든 물음은 매판독점자본주의라는 한 규정 위로 수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