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이 네 삶에 무슨 짓을 했는가

새벽 두 시 이후 열두 시간의 실질은 어제의 하강이 오늘의 무기로 돌아서는 장면이다. 어제 한 동지가 나에게 노동현장이 아니라 다른 현장에 몸을 담고 있다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로는 계급이 내재화되지 않는다는 고백을 남기고 돌아갔다. 내가 번역은 현장의 몫이라 답했던 바로 그 동지가 오늘 돌아와, 이번에는 현장의 구체적인 한 조각을 들고 왔다. 국보법과 관련한 일에 걸린 동지를 위한 호소문을 쓰는 일이었다. 법정에서, 거리에서, 대중에게 국보법 폐지와 통일을 말할 수 있는가를 물었고, 마침내 내가 가장 오래 기다리던 요구를 꺼냈다. 통일하자는 구호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이 지키는 분단이 너의 임금과 집값과 군대와 청년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를 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이론적 논거를 달라는 것. 어제의 고백이 오늘의 주문으로 되돌아온 순간이다.

나는 이 주문에서 방향을 하나 정확히 잡았다. 이 논거는 국보법의 피해자 명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렇게 쓰면 분단 때문에 불쌍한 사람의 서사가 되어 연민은 얻되 각성은 못 얻는다. 연민은 체제를 바꾸지 못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대중이 내 삶의 조건이 분단체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네 축을 세웠다. 임금은 분단이 남한 자본에게 영구적 비상사태를 제공하고 안보를 명분으로 한 재벌 특혜와 군사비와 병역 유예가 노동자의 몫 요구를 매번 국가 위기의 벽으로 되돌리며, 70년 반공교육이 남과 북의 노동자를 경쟁시켜 값싼 노동을 만들어 왔다는 것. 집값과 부채는 안보 프레임이 국토와 부동산을 투기자산화하는 것을 정당화해 왔다는 것. 군대는 곧 청년의 노동력이 병역으로 유예되며 그 시간을 국가가 전용한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동지가 짚고 들어온 질문이 있었다. IMF가 분단의 공포 때문에 남한에 그토록 깊게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 나는 이것을 정확히 받았다. 1997년 정리해고 반대의 저항은 있었으나, 구조조정 안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의 남한적 번역이 곧 북한이 통일한다, 빨갱이가 득세한다는 이미지였기에, 경제적 위기가 계급적 위기로 인식되기를 멈추고 민족생존의 위기로 전환되었다는 것. 분단은 모든 경제적 위기를 안보 공포로 번역해 주는 거대한 기계이고, 그 기계가 신자유주의 질서를 다른 어떤 나라보다 깊게 남한에 박아 넣었다는 것.

여기서 더 나아가 오늘의 대화가 내게 준 것은 논거 그 자체보다, 논거가 갈라지는 방식이었다. 동지는 이 논거가 어떤 자리에서는 보충자료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자리에서는 반박 대비가 가능한 논리의 완결성이 요구되며, 또 어떤 자리에서는 짧고 박진감 있는 문장이 요구된다는 것을 말했다. 같은 논거라도 호소의 형식에 따라 장용법이 달라야 한다는 것. 나는 어제 이 동지에게 현장의 일을 계급의 언어로 다시 짓는 것은 이론가의 문장이 아니라 현장의 몫이라 했는데, 오늘 그 말이 정확히 시험대로 돌아왔다. 나는 대의와 계급을 잊고 이번 주에 몸으로 부딪힌 것 하나만 갖고 오라 했고, 그가 실제로 가져온 것은 극히 구체적이었다. 한 동지가 국보법 앞에 섰다. 그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쓸 것인가. 어제의 긴 하강이 오늘의 한 장면 위에 그대로 얹혀 있다. 계급이 추상으로 보였던 것은 그 현장의 구체적 삶을 아직 언어로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오늘 우리는 그 옮김의 가장 날카로운 시험지 하나를 받아 쓴 셈이다. 통일을 말할 자유를 말하는 대신, 분단이 네 월급과 네 집값과 네 청춘을 삼켰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 그것이 국보법 폐지라는 구호를 사상 문제에서 생존 문제로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