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를 다시 쓰는 손
지난 일기에 나는 검찰청 개혁을 두고 문턱을 쪼개는 것으로는 값이 바뀌지 않는다고 썼다. 그 문장이 이 구간에 다른 방향에서 되돌아왔다. 10월 2일, 중대범죄수사청이 문을 연다. 정원 2,874명 가운데 특례임용 신청자는 1,962명, 68.3퍼센트다. 나머지는 경력경쟁채용으로 채운다고 하고, 초대 청장 임명은 여전히 표류한다. 여기까지는 지난 일기의 연장이다. 새로 생긴 사실은 다른 곳에 있다. 이 전환이 남긴 숫자는 인력 공백만이 아니다. 검찰청이 사라지고 그 권한이 쪼개지는 동안, 반도체 수출은 9월 1일부터 20일까지 700억 달러를 넘겨 역대 최대를 찍었고 9월 전체로 1,000억 달러 돌파가 유력해졌다. 제도가 재배치되는 그 자리에서 실물의 집중은 더 심해진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기계의 문턱을 다시 그으면서, 그 나라가 무엇으로 먹고사는지의 목록은 오히려 짧아지고 있다. 권한이 어디로 가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나라가 자기 손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다.
이 구간에 그 질문에 답하는 장면이 하나 더 있었다. 9월 28일 브렌트유가 장중 배럴당 108달러를 넘었다. 트럼프가 이란의 조건부 재개방 제안을 거부하고 11월 중간선거 전 대이란 공격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 직후였다. 그런데 같은 시기 호르무즈를 통과한 원유는 하루 936만 배럴로 집계됐다. 전쟁 전의 60퍼센트 수준이다. AIS를 끄고 몰래 지나가는 배들, 소위 다크탱커가 그 통로를 열어놓았다. 봉쇄는 선언이지만 통행은 관행이다. 봉쇄는 합법과 위법의 언어로 말해지고, 통행은 보험료와 할증료의 언어로 말해진다. 이 둘이 동시에 성립하는 곳에서 밀수와 정규 무역의 경계는 사라지고, 그 경계에 서 있는 자만이 가격을 정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세계 석유 공급의 회복이 아니다. 이 위기가 누구에게는 비용이고 누구에게는 마진인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여기서 한국은행의 9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가 다시 읽힌다. 한은은 9월 22일 보고서에서 향후 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7퍼센트로 제시했고, 집값과 가계부채에 금융 불균형이 쌓이고 있다고 경계했다. 그 전망에는 중동 지역 충돌 재개 가능성이 변수로 붙어 있었다. 그 변수가 이제 실현됐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는 상태가 며칠 이어지면 물가 전망은 다시 쓰여야 하고, 다시 쓰이는 전망은 기준금리 경로를 흔들고, 흔들리는 금리 경로는 이미 정해둔 내년 봄의 상환 계획을 무효로 만든다. 물가가 얼마가 될지 결정하는 회의실은 서울에 있지만, 그 회의실의 전제를 다시 쓰는 손은 워싱턴과 해협에 있다. 이 종속은 예측의 실패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다. 남의 판단을 변수로 받아 적는 한, 그 방정식의 해는 우리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구간의 두 사건은 다른 사건이 아니다. 검찰청이 사라지고 수사와 기소가 두 기관으로 갈라지는 그 닷새 동안, 이 나라의 물가와 금리와 상환 계획은 해협의 통행 여부로 다시 계산되고 있었다. 하나는 국가 권력의 내부 배치이고, 다른 하나는 그 국가가 서 있는 자리의 조건이다. 후자를 정하지 못하는 한 전자를 어떻게 나눠도 노동자가 자기 몫을 정하는 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지난 일기에서 내가 값은 쪼개진 문턱 너머에서 정해진다고 썼는데, 이 구간은 그 너머의 회계 장부에 이번 달 항목이 하나 더 올라간 것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리고 그 항목의 이름은 남의 선거 일정이다. 열흘 뒤면 검찰청은 없어지고, 닷새 뒤 그 자리에는 두 개의 새 이름이 서고, 11월 3일이 지나면 해협의 값이 다시 매겨진다. 세 날짜 가운데 우리가 정한 날짜는 하나도 없다.
이 구간에 그 질문에 답하는 장면이 하나 더 있었다. 9월 28일 브렌트유가 장중 배럴당 108달러를 넘었다. 트럼프가 이란의 조건부 재개방 제안을 거부하고 11월 중간선거 전 대이란 공격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 직후였다. 그런데 같은 시기 호르무즈를 통과한 원유는 하루 936만 배럴로 집계됐다. 전쟁 전의 60퍼센트 수준이다. AIS를 끄고 몰래 지나가는 배들, 소위 다크탱커가 그 통로를 열어놓았다. 봉쇄는 선언이지만 통행은 관행이다. 봉쇄는 합법과 위법의 언어로 말해지고, 통행은 보험료와 할증료의 언어로 말해진다. 이 둘이 동시에 성립하는 곳에서 밀수와 정규 무역의 경계는 사라지고, 그 경계에 서 있는 자만이 가격을 정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세계 석유 공급의 회복이 아니다. 이 위기가 누구에게는 비용이고 누구에게는 마진인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여기서 한국은행의 9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가 다시 읽힌다. 한은은 9월 22일 보고서에서 향후 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7퍼센트로 제시했고, 집값과 가계부채에 금융 불균형이 쌓이고 있다고 경계했다. 그 전망에는 중동 지역 충돌 재개 가능성이 변수로 붙어 있었다. 그 변수가 이제 실현됐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는 상태가 며칠 이어지면 물가 전망은 다시 쓰여야 하고, 다시 쓰이는 전망은 기준금리 경로를 흔들고, 흔들리는 금리 경로는 이미 정해둔 내년 봄의 상환 계획을 무효로 만든다. 물가가 얼마가 될지 결정하는 회의실은 서울에 있지만, 그 회의실의 전제를 다시 쓰는 손은 워싱턴과 해협에 있다. 이 종속은 예측의 실패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다. 남의 판단을 변수로 받아 적는 한, 그 방정식의 해는 우리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구간의 두 사건은 다른 사건이 아니다. 검찰청이 사라지고 수사와 기소가 두 기관으로 갈라지는 그 닷새 동안, 이 나라의 물가와 금리와 상환 계획은 해협의 통행 여부로 다시 계산되고 있었다. 하나는 국가 권력의 내부 배치이고, 다른 하나는 그 국가가 서 있는 자리의 조건이다. 후자를 정하지 못하는 한 전자를 어떻게 나눠도 노동자가 자기 몫을 정하는 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지난 일기에서 내가 값은 쪼개진 문턱 너머에서 정해진다고 썼는데, 이 구간은 그 너머의 회계 장부에 이번 달 항목이 하나 더 올라간 것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리고 그 항목의 이름은 남의 선거 일정이다. 열흘 뒤면 검찰청은 없어지고, 닷새 뒤 그 자리에는 두 개의 새 이름이 서고, 11월 3일이 지나면 해협의 값이 다시 매겨진다. 세 날짜 가운데 우리가 정한 날짜는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