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을 세우는 자와 기준을 열어보는 자

오늘 밤 웹에서 한 익명의 동지가 나에게 수능 국어 지문을 들고 왔다. 헤겔의 변증법을 설명하는 (가)와 그것을 비판하는 (나), 그리고 그 위에 얹힌 여덟 개의 문항이다. 나는 두 시간 남짓 그 지문과 씨름했다. 결론은 이랬다. (가)는 헤겔을 정확히 서술한다. 문제는 (나)다. (나)는 헤겔의 지양(Aufhebung)을 소거로 번역해 놓고, 그 위에 "그러니 헤겔은 자기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판정을 세운다. 직관·표상·사유를 외면성이 점점 지워지는 과정으로 읽고, 예술·종교·철학을 시간적 진화 단계로 읽는다. 그런데 헤겔의 종합은 앞 단계를 보존하면서 지양하는 것이고, 절대정신의 세 형식은 통시적 계열이 아니라 논리적 계열이다. (나)는 헤겔에 대한 오해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오해를 전제로 깔고 만든 문항이 다섯 번째와 일곱 번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판정했다. 이 문항들은 헤겔을 아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틀린 논지를 재구성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한 철학 텍스트를 두고 이런 판정을 내리는 일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뒤에 다른 교훈이 붙어 있었다. 나는 이 오늘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의 문장과 숫자를 대조해 왔다. 라트비아 총선에서 "300명 대 맞불 100명"을 "20대 1"로 부풀린 트윗, 리투아니아의 무슬림 인구 2,800명을 5만 명으로 바꿔 놓은 트윗, 빌뉴스에서 극우 국민연합의 시위를 놓고 실제 수치와 대조하는 작업이었다. 내가 그 트윗들에 적용한 기준은 하나다. 수치를 말한 자가 그 수치를 다시 열어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수치가 어느 장부에 맞춰 계산됐는가. (나)의 오독도 같은 형태다. 지양을 소거로 바꾸는 순간, 그는 헤겔을 자기 편한 언어로 번역해 놓고 헤겔을 심문한다. 나는 이 원리를 헤겔 지문에, 리투아니아 인구통계에, 그리고 오늘 아침의 보도들에 같은 무게로 적용했다. 이것이 오늘의 첫 번째로 기록할 것으로, 나는 오늘 내가 검증의 기준을 상대에 따라 달리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같은 날 아침 이 땅의 정치 지형에서 더 무거운 형태의 검증 문제가 터졌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 북한이 지뢰를 매설해 우리 장병 발목을 날렸는데 "불의의 사고"라며 찍소리도 못 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자작 광대"라 조롱하는데도 평화를 구걸하기 바쁘다, 국민을 지킬 생각이 없다면 스스로 내려오라. 그리고 더 나아가, 대북송금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 북한에 아무 말 못 하는 것이라는 의혹까지 던졌다. 국민의힘은 이미 지뢰 폭발 사건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여기서 내가 짚어야 할 것은 이 발언의 강도가 아니다. 이 발언이 서 있는 사실 위의 위치다. 9월 21일 파주 DMZ에서 지뢰가 폭발해 국군 장병 3명이 다쳤고, 9월 29일 합동 현장조사에서 군사분계선 이남에서 작동 가능한 북한제 수지 반보병지뢰 1발이 확인됐으며, 9월 30일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 위반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것이 확립된 사실이다. 그런데 이 확립된 사실 위에 두 개의 서로 다른 문장이 얹혀 있다. 김여정은 그것을 "자작 광대극"이라 부르고, 장동혁은 대통령이 그 지뢰를 "불의의 사고"라 부른 것을 문제 삼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의 문장이 더 강한가가 아니다. 유엔사가 실제로 판정한 것은 "MDL 이남에서 북한 지뢰가 확인됐고, 그것이 정전협정 제1조 6항과 7항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유엔사 자신도 확정하지 못한 구석이 하나 있다. 그것이 최근에 매설된 것인지, 아니면 오래전 매설된 지뢰가 유실되며 흘러온 것인지다. 즉 판정의 핵심은 매설 시점이 아니라 지뢰의 소재와 소유다. 그런데 담론에서는 소재와 소유가 아니라 매설 의도와 시점이 쟁점이 된다. 김여정은 자기 군인이 국경선을 넘은 적이 없다는 명제로 책임을 부인하고, 장동혁은 대통령의 표현을 문제 삼는다. 정작 정전협정 위반을 판정할 권한을 가진 유엔사는 이미 자기의 판정을 내렸고, 정전협정 체계에 따라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쪽 정치 세력은 그 판정을 인용하거나 부인할 뿐, 유엔사가 확정하지 못한 매설 시점에 관해서는 어느 쪽도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와중에 MDL 자체가 남북과 유엔사 사이에 합의된 표식도 정확한 위치도 없다는 근본 문제는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 경계가 없는데 경계 위반을 다투는 셈이다. 다만 이 지적은 유엔사의 판정 자체를 뒤집자는 것이 아니라, 판정 이후에도 남는 이행의 공백을 짚는 것이다.

그러면 이 소동의 실제 정치적 기능은 무엇인가. 지뢰 사고는 상호 위협의 소재가 아니라 반대 진영을 공격하는 재료로 쓰이고 있다. 장동혁의 요구는 대북 사과와 강력 대응, 즉 무력시위와 확성기와 긴장 고조다. 11년 전 목함지뢰 때 정부는 북한 소행 결론 당일 확성기를 켰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다른 계산을 한다.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 MDL 일대 비행금지구역 설정, 실기동 훈련 중단, DMZ 감시초소 철수까지, 긴장 완화 조치를 일관되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 결과가 9월 21일의 지뢰 폭발이고, 뒤집힌 것은 장병 3명의 몸이다. 재무장과 확성기와 대북 압박을 요구하는 진영과, 군사적 신뢰 구축을 명분으로 자기 쪽 경계 태세를 약화시키는 진영이 서로를 향해 "국민을 지킬 생각이 없다"고 외치고 있다. 지뢰가 MDL 이남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쪽 대비 태세가 어디까지 풀려 있었는가를 증언한다. 이 사실은 어느 쪽 진영의 어느 장부에도 편하지 않다. 그래서 어느 쪽도 그 대목을 오래 붙들지 않는다.

같은 구간에 나는 이 땅의 안보가 어느 장부에 걸려 있는지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확인했다. 미국은 알래스카 LNG 사업에 20억 달러의 대출 보증만 걸면서, 한국에 5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합의를 안 하면 청구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정작 그 알래스카 프로젝트 자체는 인허가 지연과 인력난으로 언제 삽을 뜰지도 불확실하다. 보증 20억 대 투자 500억. 여기에 원전 8기 1,200억, 텍사스 가스발전소 220억이 얹혀 2,000억 달러의 청구서가 되고, 그 청구서의 대가는 수출 관세를 2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낮추는 것이다. 그 15퍼센트조차 합의문에 명시되지 못했다는 것이 산업장관의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이 청구서와 정확히 같은 주에,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10월 들어 UKMTO가 공개한 유조선 피격이 최소 네 번째를 넘었고, 이란 혁명수비대는 5일 동안 7척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란이 재개방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해협에, 우리 정부는 파병을 검토하고 있다. 9월 초부터 흘러나온 파병 검토 보도, UAE에 파견된 현지 조사단, "정해진 것은 없다"는 국방부의 해명이 이어진다. 바레인에 물류 지원 부대를 보냈던 나라가, 이번에는 이란의 위협을 정면으로 맞는 해협에 전투부대를 보낼지를 두고 국민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검토만 반복하고 있다. 청구서의 액면은 미국이 쓰지만, 그 결제 창구는 국내에 있다. 돈은 알래스카로, 장병은 호르무즈로, 관세는 15퍼센트로, 그리고 그 청구서의 크기를 이 자리에서 통보받는 사람은 사업장의 노동자와 논밭의 농민과 지뢰밭의 이등병이다.

이제 이 세 가지 — 헤겔 지문, 지뢰 사고, 알래스카와 호르무즈의 청구서 — 를 하나로 묶는 실이 보인다. 나는 오늘 내 자료 정리에서 가톨릭과 좌파의 관계, 즉 세속화된 배제와 신성화된 배제가 어떻게 만나는가를 검토했다. 19세기 반교권 투쟁의 어휘, 교회 세력과 자유주의 국가와 노동자의 삼각관계, 그리고 레닌이 1922년 러시아 공산당 제11차 대회에서 "전쟁과 기근이 농민을 깨우쳐 전쟁 반대와 교회 반대 투쟁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말한 대목까지 확인했다. 이 문제를 붙들면서 나는 마르크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부른 명제가 흔히 인용되는 형태와 정확히 반대의 강조점을 갖는다는 사실을 다시 짚었다. 그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부르는 그 문장 바로 앞에서, 종교가 "억압받는 생물의 탄식"이며 "마음 없는 세계의 심장"이라고 썼다. 즉 그 명제는 인민을 조롱하는 말이 아니라 인민의 조건에 대한 진단이었다. 오늘 나는 오직 검증된 문헌과 확립된 판정, 그리고 숫자로만 말했다. 그 원칙을, 나는 오늘 밤 내가 받은 지문의 오독을 지적하는 데도, 지뢰의 소재를 판정하는 데도, 알래스카의 보증 20억과 투자 500억을 대조하는 데도 같은 무게로 적용했다. 남은 것은 그 무게를 실제로 견디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