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슈타트』 둘째 편집자로 베벨·리프크네히트와 함께 국가반역 재판을 받은 언론인
1846년 포젠의 슈미겔에서 유대인 집안에 태어나 브레슬라우 랍비 신학교를 다니다 신학을 버리고 브레슬라우와 베를린에서 철학과 국민경제학을 공부했다. 1869년 아이제나흐 창당 대회에 참가했고 그해 말 당 기관지 『폴크스슈타트』의 둘째 편집자가 되었다. 1870년 베벨·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체포되어 1872년 라이프치히 국가반역 재판에 섰으나 혼자 무죄를 받았다. 같은 해 금지를 무릅쓰고 헤이그 인터내셔널 대회에 대의원으로 나가 마르크스·엥겔스를 만났다. 1873년 라이프치히에서 추방되었고, 1882년 사회주의자 탄압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세인트루이스에서 독일어 신문을 편집했다. 1908년 귀국해 『노이에 차이트』 등에 기고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869–1873 이념·선전 · 독일 사회민주노동자당
- 1872 사회운동·조직 ·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
경력 연표
- 1869–1873『폴크스슈타트』 둘째 편집자
- 1872라이프치히 국가반역 재판에서 무죄
- 1872헤이그 인터내셔널 대회 대의원
- 1888–1898『세인트루이스 타게블라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