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예피모프

Александр Николаевич Ефимов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인 1923–2012 ○ 심장마비

Il-2 에이스 출신 소련 공군 총사령관, 두 번의 소비에트 연방 영웅

2012년 8월 31일, 평생의 친구 세르게이 소콜로프 원수의 부고를 듣고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두 노장은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Il-2 공격기 조종사로 222회 출격하여 적기 85대를 지상에서 격파한 위대한 조국전쟁 최고의 공격기 에이스로, 스물한 살에 소비에트 연방 영웅 금성훈장을 두 번 받았다. 1969년부터 15년간 공군 제1부사령관으로 Su-25 공격기 개발을 강력히 추진했고, 1984년 공군 총사령관 겸 국방차관에 올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Su-25 실전 운용을 지휘하며 소련 공군을 사상 최대 규모로 이끌었다. 퇴역 후에도 러시아 재향군인위원회 위원장으로 군 원로의 영향력을 유지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Su-25 공격기 부활 투쟁

스탈린 사후인 1956년 4월, 주코프 국방장관은 현대전에서 공격기의 효용이 낮다는 이유로 소련 공군에서 공격기 병과를 폐지했다. Il-2 조종사로 조국전쟁을 싸운 예피모프에게 이는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아니라 두 발짝 후퇴하는 것"과 같았다. 1969년 공군 제1부사령관에 오른 그는 공격기 부활을 위한 투쟁에 착수했다. 예피모프는 수호이 설계국의 경량 공격기 구상(T-8)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실물모형심사위원회와 국가시험위원회 위원장을 직접 맡아 Su-25의 개발을 밀어붙였다. 1975년 2월 22일, T8-1 시제기가 첫 비행에 성공했을 때 예피모프는 현장에서 "공격기 부활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올렸다. 1981년 4월, 아직 국가시험조차 완료되지 않은 Su-25를 아프가니스탄에 보내 실전 운용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그였다. 신단드 기지에 배치된 200독립공격비행대는 판지시르 협곡과 파라 등지에서 Su-25의 뛰어난 생존성과 근접항공지원 능력을 입증했고, 이후 Su-25는 소련·러시아 공군의 주력 공격기로 자리잡아 냉전 후에도 체첸, 그루지야, 시리아 등에서 계속 실전에 투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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