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의원에서 도시 게릴라 이론가로: 브라질 군사독재 최대의 적
“나는 두려워할 시간이 없었다” — 마리겔라의 묘비명
브라질 공산당 하원의원 출신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가로, 1964년 군사 쿠데타 이후 평화적 저항을 거부하고 도시 게릴라전 이론가이자 실천가가 되었다. 자신이 창설한 민족해방행동(ALN)을 이끌며 《도시 게릴라 소교본》으로 세계 혁명 운동에 영향을 미쳤으나, 1969년 상파울루에서 경찰의 매복 작전으로 사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68–1969 사회운동·조직
- 1934– 사회운동·조직 · 브라질 공산당
경력 연표
- 1932중재자 주라시 마갈량이스 비판 시로 첫 체포·투옥
- 1934공과대학 중퇴, 브라질 공산당(PCB) 입당
- 1936–1945반복적 체포·투옥 — 1939–1945년 장기 구금
- 1946–1948PCB 소속 연방 하원의원 — 당 불법화로 의석 상실
- 1953–1954중국 공산당 초청으로 중국 혁명 시찰
- 1967무장 투쟁 노선 갈등으로 PCB에서 축출
- 1968.02민족해방행동(ALN) 창설
- 1969.06《도시 게릴라 소교본》 집필
- 1969.11상파울루에서 DOPS의 매복 작전으로 사살
PCB와 결별하고 ALN을 조직하다
1966년 카를루스 마리겔라는 《브라질의 위기》에서 부르주아지와의 연합 및 선거를 통한 이행 노선을 비판하고, 노동자·농민과의 활동 및 무장투쟁을 주장했다. 그는 브라질 공산당(PCB) 집행위원회에서 사임했지만 당의 상파울루 주위원회에는 남았다. 1967년 8월 쿠바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연대기구(OLAS) 회의에 PCB의 불참 결정과 달리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고, 다음 달 당에서 제명됐다. 마리겔라와 조아킹 카마라 페헤이라가 이끈 상파울루 공산주의자 그룹은 1968년 2월 새 무장조직 결성을 선언했고, 이것이 민족해방행동(ALN)의 출발이 됐다. ALN은 도시 게릴라를 혁명 전략의 일부로 보았으며, 은행 습격으로 자금을 마련했다. 1968년 말 제도적 자유를 크게 제한한 제도법 제5호가 공포된 뒤 조직은 더욱 대담한 작전을 벌였다. 마리겔라가 1969년 6월 쓴 《도시 게릴라 소교본》을 전술적 지침으로 삼아, ALN과 10월 8일 혁명운동(MR-8)은 1969년 9월 4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미국 대사 찰스 버크 엘브릭을 납치했다. 이들은 성명서의 언론 게재와 여러 조직 소속 정치범 15명의 국외 석방을 요구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 작전과 무기 확보를 위한 병영 공격은 군사정권의 게릴라 조직 소탕을 촉진했다. 마리겔라는 1969년 11월 4일 상파울루에서 세르지우 플레우리 경감이 지휘한 경찰 작전 중 사살됐다. ALN은 조아킹 카마라 페헤이라의 지휘 아래 활동을 계속했지만, 지도자 체포와 조직원 검거가 이어지며 약화됐다. 무장투쟁의 필요성에 대한 마리겔라의 주장은 PCB의 기존 평화·선거 노선과 달랐고, 그가 세운 조직은 도시 게릴라 작전으로 군사정권과 직접 대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