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률과 기대수명을 해부한 수리 인구학자
1987년 남성 기대수명이 3.2년 늘어 65세에 이르렀다는 계산은 정책 논쟁을 사망률의 언어로 바꾸었다.
예브게니 안드레예프는 수학적 엄밀성과 통계 실무를 결합해 러시아와 소련의 사망률을 연구한 인구학자다. 그의 기대수명 분해 방법은 연령과 사망 원인이 수명 변화에 미친 영향을 추적하는 표준 도구가 되었고, 1980년대 후반 남성 기대수명 반등을 3.2년, 65세까지로 산출한 작업은 금주 정책의 건강 효과를 평가하는 핵심 근거가 되었다. 그는 알코올 관련 사망률을 장기 자료와 방법론의 문제로 다루며, 정책 효과를 단순한 서사로 환원하지 않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67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수학 전공 졸업
- 1970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물리·수학 박사 취득
- 1970–1975소련 국가통계위원회 인구학 부문 선임연구원
- 1975–2000국가통계 연구기관 인구정보 연구실장
- 2000–2005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국민경제예측연구소 사망률 분석·예측 연구실장
- 2005–2011막스플랑크 인구학연구소 연구원
- 2017–현재국립연구대학교 고등경제대학 국제인구·보건연구실장
관련 역사 사건
수리에서 인구학으로, 그리고 전쟁 손실 계산 (1970~1990년대)
안드레예프는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역학·수학부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마치고 1970년에 물리·수학 후보 학위를 받았으며, 학위논문 주제는 로바쳅스키 공간의 볼록 다면체였다. 1970년 아내가 소련 중앙통계국 산하 연구소장 아론 보야르스키에게 수학자가 필요한지 물었고, 보야르스키가 그를 인구학으로 이끌었다. 같은 해 1970년 전연방 인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소련과 연방 구성 공화국들의 생명표를 작성하는 일이 첫 과제였는데, 당시 연구소의 표는 모두 계산기로 수작업 작성되었고 이를 맡을 인력이 없었다. 그는 1971년 인구학 분야 첫 연구를, 1972년 첫 논문을 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전쟁 손실 계산에 참여했다. 소련 국방부 역사가들의 저서 출간을 앞두고 당국이 민간인 손실 보고서를 요구하자 중앙통계국이 인구학자들을 모았고, 안드레예프는 레오니트 다르스키, 타티야나 하리코바와 함께 문서에 기초한 연구를 자원했다. 세 사람은 1939년 인구조사를 조정한 뒤 1946년 초까지 해마다 인구를 추계하는 인구 모형을 세웠다. 계산의 핵심 자료는 1939년 조사에 가해진 수정 내용을 통계 책임자들이 스탈린과 몰로토프에게 보고한 서한이었고, 기근 사망률의 연령·성별 양상은 19세기 말 핀란드의 기록된 기근 자료를 참조했다. 결과는 약 2,500만~3,000만 명이었다.
그의 평가는 1941~1945년 소련 인구 손실 2,660만 명으로 정리되었고, 이 수치는 학계와 이후 공식 논의에서 널리 인용되었다. 안드레예프는 정밀도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 인구 균형 방법으로 2,500만~3,000만 명의 범위를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전쟁 말기의 대규모 이민을 당시에는 충분히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같은 시기 우크라이나의 인구 손실 연구에서도 메레·발렌 팀의 요청으로 1933년 기근 등이 없었을 경우의 인구 규모를 추정하는 작업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