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9호·루노호트의 수석설계자, 달과 금성에 최초로 닿은 자동탐사선을 만든 사람
1966년 2월 3일, 루나 9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연착륙하자 바바킨은 환호했다. "어떻게 착륙했는지 봤어?! 요람에 내려놓듯이!"
라보치킨 설계국(OKB-301) 수석설계자(1965–1971). 코롤료프에게서 무인 달·행성 탐사선 프로그램을 이관받아 세계 최초의 달 연착륙(루나 9호), 최초의 월면 로버(루노호트 1호), 최초의 로봇 월면 표본 귀환(루나 16호), 최초의 금성 착륙(베네라 7호)을 잇달아 성공시켰다. 라디오 기술자로 출발해 43세에야 학위를 받은 늦깎이였지만, 철저한 지상시험으로 코롤료프도 이루지 못한 탐사선 신뢰성을 이끌어냈다. 1971년 심장발작으로 급서. 달과 화성의 크레이터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7–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30모스크바 시 전화국 라디오 서비스 기술자
- 1937전연방 통신기술학교 연구원
- 1943자동화연구소(VSNITO) 레이더·유도체계 연구실장, 수석기술자
- 1949NII-88 체르톡 부서 지대공미사일·유도체계 연구
- 1952OKB-301(라보치킨) 순항미사일 부랴·V-300 대공미사일 개발
- 1965OKB-301 / NPO 라보치킨 수석설계자 — 무인 달·행성 탐사선 총괄
- 1966루나 9호 세계 최초 달 연착륙, 루나 10호 최초 달 인공위성
- 1970루나 16호 로봇 표본 귀환, 루노호트 1호 월면 로버, 베네라 7호 금성 착륙
- 1971마르스 2·3호 발사 — 8월 3일 심장발작으로 급서
관련 역사 사건
신뢰성의 공학: 코롤료프에게서 이관받아 재건한 무인탐사 프로그램
바바킨의 역사적 중요성은 개별 탐사선의 성공보다, 그 성공을 가능하게 한 작업 방식에 있다. 1965년 소련의 무인 달·행성 탐사선 프로그램은 OKB-1(코롤료프)에서 OKB-301(라보치킨)로 이관되었다. 루나 3호 이후 6년 동안 소련의 행성탐사선은 단 한 대도 성공하지 못했고, 연이은 실패 끝에 지도부는 코롤료프에게서 이 방면을 빼앗아 갓 독립을 되찾은 라보치킨 설계국에 맡겼다. 바바킨은 상속받은 기존 설계를 손보는 미봉책 대신, 코롤료프가 한 번도 실행하지 못했던 것, 곧 부품 단위의 시험대 검증과 동역학 시험을 체계적으로 도입했다. 지상에서 철저히 흔들고, 가열하고, 진동시키고, 진공 속에서 시험한 뒤에야 발사 허가를 내주는 이 절차가 루나 9호의 연착륙(1966)과 베네라 4호의 금성 대기 진입(1967)으로 이어진 첫 결실이었다. 그는 스스로 솔더링 인두를 들고 발사장 현장에 뛰어들어 임박한 발사 전의 접촉 불량을 손수 고치고, 출근 회의에서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모두가 오래 찾아 헤맨 해법을 엉뚱한 착상으로 내놓는 인물이었다. 1971년 급서한 뒤에도 이 작업 체계가 설계국에 남아 루노호트 2호, 베네라 착륙, 로봇 표본 귀환 등 후속 성공을 이끌었으며, NPO 라보치킨의 시험 센터는 오늘날 그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