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와할랄 네루

जवाहरलाल नेहरू

비동맹운동을 공동 창설한 인도의 초대 총리

「오랜 세월 전 우리는 운명과의 약속을 맺었고, 이제 그 서약을 실현할 시간이 왔습니다. 한밤중, 세계가 잠든 그 시간에 인도는 생명과 자유를 향해 깨어날 것입니다.」(1947년 8월 14일 독립 전야 연설)

인도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1947년 독립과 함께 초대 총리에 취임하여 1964년 사망할 때까지 인도를 이끌었다. 의회민주주의와 세속주의, 계획경제를 인도 국가의 기초로 삼았으며, 대외적으로는 냉전의 두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비동맹 노선을 개척했다. 1954년 티토와의 공동성명에서 '비동맹'을 국제정치 용어로 처음 규정했고, 1956년 브리유니 선언과 1961년 베오그라드 회의를 통해 비동맹운동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1962년 중·인도 국경전쟁의 패배로 국내적 위신이 흔들렸으나, 사후에도 인도 공화국의 설계자로 추앙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권력 이양기, 1946~1947: 임시정부와 분할의 수용

1946년 봄, 네루와 동료들은 인도에 파견된 영국 내각사절단(Cabinet Mission)을 앞두고 석방되었다. 사절단이 제시한 계획에 따라 지방의회 선거가 치러졌고, 그 의원들이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했다.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인도국민회의는 임시정부를 구성했으며 네루가 그 수반이 되었다. 1946년 9월 그가 임시 총리에 취임했고, 무슬림연맹은 같은 해 10월 리아콰트 알리 칸을 재무 담당으로 하여 뒤늦게 합류했다. 그러나 연맹은 분리국가 파키스탄을 계속 요구하며 네루 정부와 대립했고, 연합 내각은 곧 교착에 빠졌다.

같은 해 12월 네루는 제헌의회에서 목적결의안(Objectives Resolution)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은 인도를 독립적 주권 공화국으로 선포한다는 내용을 담았고, 훗날 인도 헌법 전문(Preamble)의 바탕이 되었다. 네루는 이 시기 군주국(프린슬리 스테이트)에 대해서도, 독립 인도는 왕의 신권적 권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제헌의회 가입을 거부하는 군주국은 적성국으로 취급하겠다고 밝혔다.

1947년 초의 정국은 종파 폭력과 무슬림연맹의 분리 요구로 어수선했다. 결국 내각사절단의 연방 구상은 무너졌고, 1947년 6월 3일 마운트배튼안에 따라 영국은 두 개의 자치령으로의 분할을 받아들였다. 국민회의 지도부는 파키스탄 수립을 인정하는 대신 통일 인도라는 구상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으며, 네루도 분할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1947년 8월 15일 자정을 기해 '운명과의 약속(Tryst with Destiny)' 연설을 하고 첫 총리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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