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항일유격대에서 김일성과 함께 싸운 조선의 혁명군사 지도자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쓰던 금고 안에는 오직 한 장의 사진만이 보관되어 있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금고를 열자, 그 안에는 김책과 함께 찍은 낡은 사진 한 장만이 남아 있었다.
1920년대 만주에서 조선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을 거치며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했고, 1930년대 동북항일연군에서 김일성·최용건과 함께 '만주파 3인방'으로 불리며 유격전을 지휘했다. 1945년 귀국 후 김일성의 최측근으로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창설과 김일성 추대 운동을 주도했고,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초대 부수상 겸 산업상으로 취임해 전후 산업 기반 복구를 진두지휘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전선사령관으로 인민군을 지휘했으며, 1951년 1월 전시 중 과로로 사망했다. 사후 그의 이름은 김책시·김책공업종합대학·김책제철소에 붙여졌다.
경력 연표
- 1927조선공산당 입당, 간도공산당 사건으로 체포·투옥
- 1930중국공산당 입당, 동경성구위 서기
- 1933–1940동북항일연군 제3군 제4사 정치부 주임, 북만임시성위 서기
- 1942–1945소련 극동 제88국제여단 제3영 정치위원
- 1945–1946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창설 주도, 평양학원 초대 원장
- 1946–1948북조선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북조선로동당 정치위원
- 1948–1951내각 부수상 겸 산업상, 민족보위성 부상 겸직
- 1950–1951한국전쟁 조선인민군 전선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