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 서품을 받은 볼셰비키 유대인위원장이자 소비에트 민족정책의 설계자
1930년, 디만시테인은 유대인 민족지구에서의 강제 집단화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가 스탈린 노선에서 이탈한 유일한 순간이었고, 당 견책을 받았다.
예시바에서 수학하고 랍비 서품을 받은 후 1904년 볼셰비키에 입당한 세묜 디만시테인은 소비에트 정권 초기 20년간 유대인 민족정책의 핵심 설계자였다. 민족문제인민위원부 산하 유대인위원회 위원장(1918), 예브섹치야 의장(1918~1920)을 지냈으며,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과 소비에트연방 중앙집행위원회 민족연구소 소장(1932~1936)을 역임했다. 1926년부터 OZET 의장으로서 유대인 농업 정착을 추진하고 유대인 자치주 설립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혁명과 민족』 등 당대 민족정책의 주요 저널을 편집했다. 1938년 2월 대숙청 와중에 체포되어 그해 8월 처형되었고, 1955년 사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 1904빌나에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입당, 볼셰비키 합류
- 1918민족문제인민위원부 유대인위원회 위원장
- 1918–1920예브섹치야(전연방공산당 중앙위원회 유대인부) 의장
- 1920–1922투르케스탄 교육·민족문제 인민위원, 부하라 공화국 정치대표
- 1922–1924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장·조직국 위원
- 1924–1930전연방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
- 1926–1938OZET(유대인 노동자 토지정착촉진협회) 중앙이사회 의장
- 1932–1936소비에트연방 중앙집행위원회 민족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