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페이 보리소비치 구젠코

Тимофей Борисович Гуженко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18–2008 ○ 자연사

원자력 쇄빙선대로 북극을 정복한 해운장관

1977년 8월 9일, 해운장관은 무르만스크 부두에서 아르크티카호에 직접 올랐다. 실패하면 모든 책임은 자신의 몫이었다. 8일 뒤 인류 최초로 수상 선박이 북극점에 닿았다.

오룔 현의 농촌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나, 전시 무르만스크 항에서 북극 호송선단 하역을 책임지며 엔지니어로 성장했다. 사할린 해운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켜 37세에 소련 최연소 해운회사장이 되었고, 1970년 해운장관에 올랐다. 16년 재임 동안 적자 부문이던 해운부를 80여 개 부처 중 외화 수입 5위의 핵심 산업으로 탈바꿈시켰으며, 레닌호 1척에 불과하던 원자력 쇄빙선대를 8척 체제로 확장했다. 1977년 직접 원자력 쇄빙선 아르크티카호에 승선해 세계 최초로 수상 선박의 북극점 도달을 지휘, 사회주의 노동영웅이 되었다. 1986년 여객선 아드미랄 나히모프호 침몰 참사로 경질되었으나, 그가 구축한 북극 항로와 쇄빙선대는 오늘날 러시아 북극 전략의 토대가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북극 항로와 원자력 쇄빙선 개발

해운장관에 취임한 1970년 구젠코는 북극 경제와 북극해 항행을 중점 과제로 삼았다. 취임 당시 소련에는 실험용 원자력 쇄빙선 레닌 한 척이 있었고, 1986년 그가 물러날 때에는 네 척이 운항 중이고 네 척이 건조되고 있었다. 그는 북극해 항행 확대 가능성을 실증하고 정치 지도부에 원자력 쇄빙선의 역량을 보이기 위해 북극점 탐험 항해를 조직했으며, 장관으로서 직접 원정대를 이끌었다. 1977년 8월 9일 무르만스크에서 아르크티카호가 출항했고, 8월 17일 수상 선박으로는 세계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했다. 원정은 서로 다른 항로로 왕복했으며 고장이나 사고 없이 끝났다. 성공 뒤 쇄빙선대 건설이 빨라졌고, 북극해의 연간 항행 기간은 거의 100일 늘었다. 두딘카·이가르카·아나디리 등 일부 항구에서는 연중 항행이 가능해졌다. 1977년 9월 14일 구젠코는 이 실험 항해의 준비와 실행에 기여한 공로로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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