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munistische Partei Deutschlands (Opposition), KPD-O / KPO · 1928–1940

독일 공산당 반대파

Communist Party of Germany (Opposition)

1928년 12월 30일 베를린에서 독일 공산당에서 제명되던 하인리히 브란들러·아우구스트 탈하이머와 그 지지자들이 결성한 공산주의 반대파 조직. 코민테른의 「극좌」 노선과 사회파시즘론에 반대하고 나치에 맞선 노동자 통일전선을 주장했으며, 스스로 정당이 아니라 공산주의 운동 안의 「조직된 경향」이라 불렀다. 1933년 이후 지하와 망명지에서 활동하다 1939~1940년 무렵 사실상 해체되었다.

상세

1928년 코민테른 제6차 대회 뒤 독일 공산당은 사회민주당을 「주공격」 대상으로 삼는 「극좌」 노선으로 돌아섰다. 같은 해 함부르크 지구 서기의 횡령을 감싼 텔만이 중앙위원회에서 해임되었다가 코민테른 간부회의 결정으로 복귀하는 일이 있었다. 1924년부터 모스크바에 있던 탈하이머와 브란들러는 1928년 5월과 10월 각각 독일로 돌아와 새 노선에 반대하는 지지자들을 모았고, 12월 독일 공산당에서, 1929년 1월 소련 공산당과 코민테른에서 제명되었다. 1928년 12월 30일 베를린 전국 협의회(독일어 출처로 16개 지구 대표 74명)에서 조직이 출범했고, 이론지 「게겐 덴 슈트롬」과 1930년 1월 1일 창간한 일간지 「아르바이터폴리티크」를 냈다.

반대파는 노동운동이 공세가 아니라 수세에 있다고 보았고, 공산당이 별도의 적색 노조와 명부를 만드는 데 반대해 기존 노동조합 안에서 활동했다. 규모는 출처마다 다르다. 영어 출처는 제명 직후 약 1,000명, 1929년 가을 로이가 주장한 6,000명으로, 독일어 출처는 처음 3,000~4,000명, 1930년 말 최대 6,000명, 1932년 말 약 3,500명으로 적는다. 반대파는 국제공산주의반대파(IVKO)에 속했고, 일부 선거에 독자 후보를 냈지만 1932년 대선에서는 텔만을 지지했다.

반대파는 사회민주당·공산당·노동조합·사회주의노동자당(SAP)을 아우르는 반파시즘 통일전선을 요구했다. 1932년 1월 파울 프뢸리히와 야코프 발허 등 SAP 합류를 주장한 소수파가 제명되어 SAP로 옮겨 갔다.

1933년 나치 집권 뒤 반대파는 곧바로 지하 활동으로 바꾸었다. 독일어 출처에 따르면 1933년 3월 4일 스트라스부르에서 브란들러·탈하이머 등으로 해외위원회가 꾸려졌고 국내 지도는 베를린 위원회가 맡았으며, 게슈타포는 1937년 2~3월에야 국내 조직 대부분을 파괴했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당원에 대해 영어 출처는 국제여단에서, 독일어 출처는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 민병대에서 싸웠다고 적는다. 1938~1939년 미국의 러브스톤 그룹과 갈라섰고 소수파가 떨어져 나갔으며, 1939~1940년 전쟁이 시작되자 프랑스의 해외 지도부는 억류되었다. 영어 출처는 조직이 이때 사실상 해체되었다고 적고, 독일어 출처는 새 베를린 위원회가 1945년까지 결속을 유지했다고 적는다. 브란들러와 탈하이머는 쿠바에서 망명 생활을 했고, 1947년 결성된 아르바이터폴리티크 그룹이 반대파의 전통을 이었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de.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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