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대논쟁
Great Debate (Cuba)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쿠바에서 벌어진 사회주의 경제정책 공개논쟁. 급속한 공업화 4개년계획의 실패 직후, 피델 카스트로가 전 세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을 초청해 쿠바의 사회주의 이행 경로를 토론했다. 체 게바라는 물질적 유인 대신 도덕적 유인과 예산재원제를 통해 '주관적 조건'만으로 자본주의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고 주장했고, 대중사회당의 카를로스 라파엘 로드리게스는 소련식 독립채산제와 물질적 유인을 통한 점진적 이행을 옹호했다. 샤를 베텔하임은 분권적 시장요소를 옹호하며 게바라에 반대했고, 에르네스트 만델은 게바라 편에 섰다. 카스트로는 도덕적 유인을 채택하는 대신 공업화를 포기하고 설탕 경제에 집중하는 절충을 택했으며, 이는 1968년 혁명공세와 1970년 1천만 톤 사프라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상세
혁명 후 쿠바에서 사회주의 경제를 어떤 회계·재정·유인 체계로 운영할지 벌어진 논쟁이다. 가치법칙, 기업의 독립채산, 국가 예산을 통한 투자, 물질적·도덕적 유인의 관계가 쟁점이었다.
산업부를 이끈 체 게바라는 국영기업을 하나의 생산 체계로 묶는 예산재정방식을 옹호했다. 기업별 수익성을 중심에 두는 방식이 사회주의적 협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비용 계산과 기술·생산성 개선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논쟁에는 알베르토 모라, 샤를 베틀렘, 에르네스트 만델 등이 참여했다. 이를 단순히 계획 대 시장의 양자택일로 읽기보다 이행기 국유기업의 자율성, 사회적 투자 결정, 노동 동기를 어떻게 조합할지에 관한 논쟁으로 살펴야 한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overview of the Great Debate, its two main positions (Guevara vs. Rodríguez), and aftermath
- es.wikipedia.org Spanish Wikipedia article with details on the debate's origins, participants, and the Revolutionary Offensive
- cadtm.org Ernest Mandel's role in the debate and the positions of Guevara, Bettelheim, and Mora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 etheses.lse.ac.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