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épgazdasági Tanács · 1919.05.25–08.01

국민경제평의회 (헝가리, 1919)

National Economic Council (Hungary, 1919)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의 경제 최고 기관. 1919년 5월 25일부터 농업·사회적 생산·공급·교통·재정의 다섯 경제 인민위원부를 흡수해 세워졌고, 6월 23일 헌법은 이를 첫째 인민위원부로 두어 생산과 재화 분배의 통일적 지도와 경제 명령의 발포를 맡겼다. 1949~1952년 헝가리 인민공화국의 같은 이름 기구와는 별개다.

상세

국민경제평의회가 세워지면서 혁명통치평의회는 다시 개편되었다. 다섯 경제 인민위원부가 여기에 녹아들었고, 내무·철도·해운 인민위원부의 교통 업무도 넘어와 그 인민위원부 이름은 다시 「내무」가 되었다. 노동 행정도 국민경제평의회로 옮겨져 노동·인민복지 인민위원부는 인민복지·공중보건 인민위원부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 개편은 끝까지 시행되지 못했던 듯하다. 6월 날짜로 개별 경제 인민위원이 낸 문서가 남아 있고, 평의회의 조직·국(局)의 업무와 이름에 관한 규정도 서로 어긋났다.

6월 23일 연방 평의회 전국 대회가 채택한 헌법은 국민경제평의회를 아홉 인민위원부의 첫째로 꼽았다. 그 권한은 생산과 재화 분배의 통일적 지도, 경제 운영에 관한 명령의 발포와 집행, 생산·분배 기관에 대한 기술적·경제적 감독이었다(제34조). 국은 생산의 일반 지도·자재 관리와 대외무역, 농경과 축산, 공업 생산의 기술 지도, 재정, 공공 배급, 운수, 경제 조직과 감독, 공공 건설, 노동의 아홉 개였고(제35조), 처분권은 여기 속한 인민위원들과 독일인·루신인 인민위원으로 이루어진 간부회가 가졌다.

국민경제평의회는 그 권한 안에서 명령을 낼 수 있었으나 원칙적 의미가 있는 명령 앞에서는 혁명통치평의회의 동의를 구해야 했고, 통치평의회는 그 명령을 바꿀 수 있었다(제33조). 80명 이하의 이사회 가운데 40명은 노동조합평의회 이사회가 뽑았고 이들은 동시에 전국 대회 대의원이 되었다(제36조). 마을·도시·군·지구의 재정도 국민경제평의회가 정한 명령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었다(제54조). 6월 24일 구성된 간부회의 인민위원은 버르거 예뇌(훗날의 소련 경제학자 예브게니 바르가), 니스토르 죄르지, 렌젤 줄러, 버야키 페렌츠였다.

헝가리에는 1949년 6월부터 1952년 11월까지 경제 부처를 조정한 최고 경제 기관도 같은 「국민경제평의회(Népgazdasági Tanács)」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1945~1949년의 경제최고평의회(Gazdasági Főtanács)를 이은 이 기구는 평의회 공화국의 기관과 다르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hu.wikipedia.org
  2. hu.wikisource.org
  3. hu.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