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ерманентная революция · 1905~

연속혁명

Permanent Revolution

후진국의 민주주의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권력으로 넘어가고, 그 생존은 다시 혁명의 국제적 확산에 달려 있다는 트로츠키의 이론. 1905년 혁명의 경험에서 정식화되었고, 일국사회주의 노선과 대립하는 축이 되었다.

상세

1905년의 문제

1905년 혁명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하나의 문제를 남겼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를 수행할 부르주아지가 지나치게 약하고 차르 체제에 종속되어 있다면, 그 과제는 누가 수행하는가라는 문제였다. 멘셰비키는 부르주아지와의 동맹 속에서 민주주의 단계를 완료한 뒤 장기간을 두고 사회주의로 이행한다고 보았고, 레닌은 노동자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라는 정식으로 답했다.

트로츠키의 답은 달랐다. 그는 「결과와 전망」(1906)에서 후진국의 민주주의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권력으로 넘어가지 않고서는 자신의 과제조차 완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토지 문제와 민족 문제의 해결이 노동계급 권력을 요구하며, 일단 권력을 잡은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적 과제에 멈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론의 세 요소

연속혁명론은 세 명제로 요약된다. 첫째,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은 단계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과정으로 연속된다. 둘째, 이 과정은 국내에서 완결될 수 없고 국제적 확산에 의존한다. 셋째, 혁명 이후에도 경제와 사회 관계의 변혁은 종결점 없이 계속된다.

두 번째 명제가 이후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후진국의 노동자 권력은 자원과 기술, 시장에서 국제적 지원 없이는 고립되며, 고립은 관료화와 후퇴를 낳는다는 예측이 여기에 담겨 있었다. 트로츠키는 1920년대 후반 소련의 발전을 이 틀로 해석했다.

논쟁과 수용

1917년 10월 혁명은 트로츠키의 정식에 대한 사실상의 확인으로 읽혔고, 그 자신도 레닌의 4월 테제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1924년 이후 이 이론은 당내 투쟁의 표적이 되었다. 일국사회주의 노선이 확립되면서 연속혁명론은 러시아 혁명의 성과를 부정하고 농민을 불신하는 이론으로 규정되었고, 좌익반대파의 강령을 지칭하는 부정적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트로츠키는 1929년 「연속혁명」에서 이 비판에 답하며 이론을 다시 정리했다. 이후 이 개념은 중국 혁명과 식민지 혁명의 전략 논쟁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었고, 20세기 후반의 종속이론과 불균등결합발전 논의에서도 참조점으로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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