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ssemblement du peuple français (RPF) · 1947–1955

프랑스 인민연합

Rally of the French People

1947년 샤를 드골이 창당하고 1955년 활동을 정지시킨 프랑스의 정당. 좌우 구분을 거부했으나 흔히 우파로 분류되며, 바이외 연설의 구상에 따라 행정권 강화, 주권주의·반공주의, 자본과 노동 사이의 「제3의 길」을 내세워 제4공화국에 맞섰다. 드골이 직접 만든 유일한 드골주의 정당이다.

상세

드골은 제2차 세계대전 중과 그 뒤 몇 달 동안 정당 창당을 거부했다. 1945년에는 인민공화운동이 여러 드골주의자의 피난처 구실을 했으나, 1946년 제도 문제(바이외 연설)를 두고 결별했다. 드골은 1947년 4월 7일 스트라스부르 연설에서 프랑스 인민연합 창설을 발표했고 4월 14일 공식 출범시켰다. 그는 공산당원과 비시 정권 협력자를 뺀 모든 정당 당원이 소속 정당을 유지한 채 가입할 수 있도록 이중 당적을 허용했다. 자크 수스텔, 앙드레 말로, 르네 카피탕, 자크 포카르, 루이 발롱 등이 초기의 주요 인물이었다.

1년 만에 당원은 전문가들의 추산으로 약 50만 명에 이르러 공산당 바로 다음가는 대중정당이 되었고, 당은 100만 명을 주장했다. 당원은 주로 장인·상인·중간관리자·사무원 같은 중간계급이었고 여성이 4분의 1 이상이었으며, 모라스주의 왕당파부터 좌파 공화파, 기독교민주주의자, 급진당원까지 다양했다. 창당 6개월 만인 1947년 10월 지방선거에서 인구 9천 명 이상 도시에서 38%를 얻었고, 파리·마르세유·보르도·릴·스트라스부르·렌 시청을 차지했다.

그러나 1947년 가을의 사회 소요를 제3세력 정부가 진압하면서 보수층과 재계가 드골에게 기댈 필요가 줄었고, 마르세유 시정의 평판과 라디오 출연 금지 등도 당을 약화시켰다. 1949년 캉통 선거에서 다시 성공했지만 당원은 크게 줄었다. 1951년 총선에서는 400만 표 이상(22%)과 117석을 얻었으나, 「연합 명부」 제도로 기대했던 200석 이상의 승리에는 이르지 못했다.

1952년 3월 의원 27명이 드골의 지시를 어기고 앙투안 피네 정부 신임에 찬성했다가 제명되었고, 7월에는 의원 45명이 더 떠났다. 1953년 5월 6일 지방선거에서 득표가 절반으로 줄자 드골은 의원들에게 자유를 돌려주고 다시 물러났다. 1954년 당 소속 의원들의 표는 공산당 표와 함께 유럽방위공동체를 무산시켰다. 당은 1955년 9월 13일 공식적으로 활동을 정지했고, 그 뒤 일부는 사회공화파(1955~1958)로 활동했다. 사무총장은 수스텔(1947~1951), 루이 테르누아르(1952~1954), 포카르(1954), 미셸 앙프롤(1954~1955)이었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출처

  1. fr.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fr.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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