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édération républicaine · 1903–1948

공화연맹 (프랑스)

Republican Federation

1903년 11월 창당해 1948년 활동을 멈춘 프랑스 제3공화국의 주요 공화파 우파 정당. 좌파연합 내각과 급진당과의 동맹을 거부한 온건 공화파의 우익이 결성한 자유주의·보수주의 정당으로, 재계와 연결된 공화파 부르주아의 정당이었다. 전간기에 루이 마랭 아래 점점 오른쪽으로 옮겨 가 민족주의 우파와 가까워졌다.

상세

공화연맹은 1903년 11월, 피에르 발데크루소의 좌파연합 내각과 급진사회당과의 동맹을 거부한 「온건」 또는 「진보」 공화파의 우익을 모으려고 결성되었다. 국민공화협회, 자유공화연합 등에서 나온 이들은 쥘 멜린, 알렉상드르 리보, 장 카지미르페리에, 샤를 뒤퓌의 사상적 후계자였다. 재계와 연결된 공화파 부르주아의 정당으로 사회개혁에 강하게 반대하고 일정한 지방분권을 지지했으며, 창당 때부터 여성 참정권에 찬성했다. 지역 선거위원회와 의원 그룹에 기반한 명망가 정당이어서 당원은 1926년 3만 명, 1939년 1만 8천 명에 그쳤다.

1919년 총선에서 당은 국민블록 명부에 참여했고, 공화국에 합류한 가톨릭 세력의 인민자유행동을 흡수했다. 1925년 3월 의장 오귀스트 이자크가 사임하고 루이 마랭이 뒤를 이어, 온건파와 가톨릭을 화해시키고 당을 더 위계적인 조직으로 바꾸었다. 프랑수아 드 방델이 주된 재정 후원자였다. 1928년 총선에서 의원 100명 이상을 얻었으나 1932년 총선 뒤 40여 명으로 약해졌다.

1934년 2월 6일 폭동 이후 우파 단결론이 우세해지자 당은 극우 연맹들과 가까워졌다. 1936년 이후 약 60명의 의원을 거느린 당은 의회 우파와 반공화적 민족주의 우파를 잇는 만남의 장이 되었고, 부의장 자비에 발라는 레옹 블룸을 겨냥한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알려졌다. 1937년에는 자크 도리오의 프랑스인민당 등과 「자유전선」을 결성했다.

1940년 7월 페탱에게 전권을 주는 표결에서 당 소속 의원 35명이 찬성했고 반대는 없었다. 비시 정권 아래 당 소속 의원 94명 가운데 7명이 적극적 협력자였으나, 당은 동시에 전국저항평의회를 구성한 여섯 정당 가운데 하나였다. 해방 뒤 마랭 등이 당을 되살리려 했지만 실패했고, 1946년 1월 25일 당 사무국이 자유공화당(PRL) 통합을 거부하자 마랭과 조제프 바스티드를 뺀 의원 전원이 PRL로 옮겨 갔다. 1948년 2월 4일 당은 완전히 활동을 멈추었고, 그 정신은 국민독립농민센터(CNIP)로 이어졌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fr.wikipedia.org
  2. fr.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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