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안 보내고 배를 보낸다

지난 일기에서 나는 순서를 적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파병을 빼고, 대통령이 원칙을 말하고, 외교장관이 그 통역본을 워싱턴에 내는 순서. 그 첫 항이 무효가 됐다. 17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안철수 의원의 "오늘 오전 회의가 열렸느냐"는 질문에 "열리지 않았다"고 답했고, 한미 외교장관 회담 전에 열릴 가능성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부 보도가 상정을 점쳤던 그 회의는 아예 소집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파병은 안건에서 빠진 게 아니라, 파병을 다룰 자리 자체가 취소됐다.

그런데 그 자리가 비는 동안 다른 자리에서 같은 사안이 처리되고 있었다. 부산에서 제29차 한미 통합국방협의체 회의가 16일부터 사흘간 열렸다. 국방부가 공지한 공식 의제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연합방위태세, 그리고 조선협력이다. 파병은 목록에 없다. 그러나 미국이 올해 초 전쟁 발발 직후부터 동맹국에 요구해온 항목이 이 회의에서 논의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고, 부산에서는 평통사와 부산여성연대,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회의장 앞에서 파병 반대 기자회견을 이틀째 이어갔다. 한쪽 자리는 비었고 다른 쪽 자리에는 의제가 올랐다. 국내 정치 절차에서 파병을 밀어내는 동안, 국방 실무 채널에서 파병의 시점과 규모와 임무가 다듬어지는 형국이다. 통역본을 만들어 내는 자리가 외교장관 회담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기간 가장 중요한 문장이 여권에서 나왔다. 병력을 보내는 대신 조선과 플랜트로 기여하자는 제3의 방안이다. 민주당 의원이 서울신문에 말했다. 파병에는 반대한다. 다만 종전 후 이란과 아랍에미리트, 카타르의 정유 시설과 유조선이 파괴된 상황에서 우리가 강점을 가진 조선과 플랜트로 재건과 복구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홍보소통수석도 기술적 지원을 언급했고, 국방위원장도 파병만이 선택지가 아니라고 했다. 이 제안을 파병 반대의 성과로 읽으면 안 된다. 파병 거부가 조선과 플랜트 수주로 대체되는 순간, 그 거부는 우리 산업에 기여한다는 이름의 자본 축적 경로로 흡수된다. 병력은 안 보내고 배와 공장은 보내는 것. 전쟁 수행의 물류와 재건 기능을 재벌 조선사가 대신 인수하는 것. 몸을 내놓지 않은 대가를 자본이 대신 청구하는 구조인데, 그 청구서의 발행인은 여전히 미국이다.

이 제안이 어디에 붙는지 보면 구조가 더 선명해진다. 작년 관세협상의 산물로 출범한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가 이미 돌아가고 있다. 미국 조선소의 생산성 향상과 인력 양성, 국내 조선소의 함정 유지·보수·정비 수주, 조선소 인수와 공동 건조까지가 이 트랙의 항목이다. 올여름에는 1,500억 달러 규모로 조선협력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데 통합국방협의체의 공식 의제에 조선협력이 들어 있다. 파병을 요구받는 회의의 의제에 함정 정비 수주가 함께 올라 있는 것이다. 우리 조선소가 미 해군 함정을 정비하고 미 조선소를 인수하는 것은 파병의 대체물이 아니라 파병과 같은 사슬의 다른 마디다. 병력이 가면 그 병력의 배를 우리가 고치고, 병력이 안 가면 그 배를 고치는 일만 우리가 맡는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파는 것은 우리 노동자의 노동이고, 그 노동이 향하는 곳은 남의 전쟁이다. 국민의힘이 당정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 지점이다. 반대 여론이 강한 파병을 정면으로 밀 수 없으니, 반대의 언어로 포장한 이행 방식을 찾는 것이다.

야당 쪽도 이 사슬 안에 있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은 파병 동의안이 본회의에 오르면 필리버스터까지 하겠다고 예고했다. 비전투 파병에 대해서도 전면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이건 실제 힘이다. 그런데 그 힘이 겨누는 대상은 동의안이고, 동의안이 안 올라오면 그 힘은 표출될 자리를 잃는다. 조선과 플랜트로 가는 대안이 동의안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된다면,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반대는 무대를 잃는다. 그래서 물어야 할 것은 파병 동의안이 오느냐가 아니다. 병력 없이 기여하는 방식이 결정되면 그것을 심사할 절차가 무엇이냐다. 함정 정비 수주와 조선소 인수는 국회 동의를 요구하는 파병이 아니다. 아무 절차 없이 진행된다. 파병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고, 그 국회에는 반대가 있다. 그런데 파병을 대체하는 지원은 그 관문을 지나지 않는다. 거부할 힘이 모이는 자리를 우회하는 경로가 준비되는 것이다.

시장은 이 기간에 그 값을 매겼다. 원달러 환율은 9월 11일 1,348원에서 17일 1,381원으로 올랐다. 닷새에 2.5퍼센트다. 코스피는 6,777까지 올라 이틀째 상승했지만, 그 상승은 환율 상승과 같은 방향이 아니다. 환율이 이렇게 오르면 달러로 사오는 원유와 원자재 값이 원화로 더 오르고, 그 인상분은 다시 임금과 물가로 내려온다. 브렌트유는 105달러, 서부텍사스유는 102달러다. 이 숫자들이 이 기간의 정치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환율 상승은 자본 유출의 신호이고, 자본 유출은 대외 의존의 정도를 드러낸다. 그 의존을 관리하는 방식이 대미 투자와 안보 협력이고, 그 협력의 항목 중 하나가 파병이다. 우리가 거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항목과, 거부하는 순간 그 거부를 흡수하는 항목이 한 세트로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이 숫자들이 증언한다. 조현 장관은 출국 전에 파병은 정해지지 않았고 여러 요소를 검토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파병 논의를 한미관계보다 항행 안정 측면에서 본다고 했다. 그 '여러 요소'와 '항행 안정'이 어디까지를 포함하는지가 다음 국면의 쟁점이다. 파병을 하느냐가 아니라, 파병을 대체하는 방식이 파병과 같은 일을 하도록 설계되고 있느냐다. 18일 같은 날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원칙을 말하고 장관은 워싱턴에서 이행을 내고 부산에서는 함정 정비와 조선소 인수가 마무리된다. 그 셋이 하나의 청구서라는 것을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느냐가 이 국면의 시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