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에 그려진 선

이 구간에 나는 러시아 하원 선거 결과를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먼저 적는다. 선거는 9월 20일 마감됐고,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표로 투표율이 50퍼센트를 넘겼으며 점령지에서는 80퍼센트에 육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통합러시아가 70퍼센트 이상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최종 의석 배분은 이 글을 쓰는 시점에 확인되지 않았다. 이 구멍을 메우지 않고 그 위에 판단을 쌓지 않는다. 다만 본질은 결과에 있지 않다. 점령지에서 전쟁 4년 반 만의 첫 의회 선거가 치러졌고, 후보 등록 탄압과 외국 대리인 등록, 형사 기소라는 세 장치가 러시아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 대표를 원천 차단했으며, 그 결과가 사전에 예측 가능하다는 사실이 체제의 성격이다. 그 옆에서 우크라이나는 투표 마지막 날을 골라 모스크바를 겨냥해 역대 최대 규모의 드론 공세를 퍼부었다. 모스크바 주에서 4명이 죽었고, 1,600기 이상이 격추됐으며, 코텔니키 주거지역이 맞았다. 여기서 확정할 것은 이 공격이 선거를 무효화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무효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는 절차대로 끝난다. 다만 이 전쟁의 비용을 지불하는 계급과 핵심 산업 프롤레타리아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그 분리를 제도화하는 절차가 이 선거라는 명제는 공격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 드론은 부랴트의 징집병을 모스크바로 데려오지 않는다.

이 구간의 실질적 진전은 국내에서 나왔다. 9월 18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의 내용이 48시간에 걸쳐 드러났고, 드러난 것은 파병 협의가 아니라 청구서였다. 미국이 요청한 것은 세 가지다. 호르무즈 기여, 2025년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에 담긴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의 신속한 이행, 그리고 쿠팡과 정통망법으로 대표되는 미국 플랫폼 기업의 한국 내 사업 환경 정리. 국무부가 회담 직후 공개한 보도자료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이 파병이 아니라 반도체 협력이라는 사실이 이 회담의 성격을 정확히 말해준다. 여기서 우리가 잡아야 할 것은 압박의 두께다. 이것은 하나의 요구가 아니라 패키지다. 병력과 자본과 규제를 한 묶음으로 올린다. 그래서 파병을 떼어내서 거부한다는 답은 성립하지 않는다. 거부는 패키지 전체에 대해서만 가능하고, 그것이 정확히 '매판-독점' 구조의 작동 방식이다. 대미 투자 이행은 한국 재벌의 자본이 미국으로 가는 일이고, 그 자본은 국내 투자와 고용에서 빠진다. 호르무즈 기여는 한국 청년이 미국의 전쟁에 배치되는 일이다. 같은 회담에서 미국은 하나는 반도체 기업의 증설을 요구하고 다른 하나는 반도체 수출통제를 협상 대상으로 올린다. 여기서 한국 정부가 취한 입장은 정확히 절반이다. 전쟁·전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하고, 동시에 구체적 기여 방안을 계속 검토한다고 말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쟁에 개입하는 파병은 없으며 현지 교민과 상선은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그 원칙은 유효하다. 문제는 경로다.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아덴만에서 호르무즈로 넓히는 조치가 그 원칙의 예외가 아니라 그 원칙을 통과하는 통로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미 2020년에 같은 방식으로 한 번 돌아갔다. 파견연장 동의안의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 포함'이라는 단서를 근거로 국회 비준동의 없이 작전 범위가 확대됐다. 즉 파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힘과 파병을 막을 수 있는 절차가 서로 다른 곳에 있다. 9월 19일 거리에는 약 2천 명이 모여 미국대사관을 지나 청와대까지 행진했고, 민주노총은 결의대회를 연 뒤 밤샘 농성을 예고했다. 9월 20일 진보당 중앙위원 250여 명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힘들이 향하는 무대는 국회 동의안이다. 그런데 임무가 동의안 밖의 경로로 확대되면 그 힘은 겨눌 대상을 잃는다. 9월 17일 시작된 파병 반대 국민동의 청원이 10월 17일까지 접수된다는 사실도 이 무대가 열리느냐에 걸려 있다. 그러므로 이 국면에서 물어야 할 것은 파병을 하느냐가 아니다. 국민투표도 국회 표결도 거치지 않고 임무 범위를 넓히는 행위를 심사할 절차가 어디에 있는지다. 그 절차를 묻지 않으면 청원도 행진도 압박의 재료로만 쓰이고 결정은 다른 문으로 나간다.

전쟁 청구서는 여러 갈래로 온다. 트럼프는 호르무즈를 통해 석유가 흐르게 해준 대가를 요구하며 도움을 주지 않은 국가들은 전쟁이 끝난 뒤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배상의 단위가 국가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배상은 정부가 받고 재정에서 지불하며, 재정은 세금과 복지 삭감으로 채워지고, 그 삭감의 순서는 언제나 아래에서 위로다. 유가가 이미 넉 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원화는 달러당 1,380원대까지 밀렸다. 그런데 같은 주에 호르무즈의 실물 정세는 한국이 어느 편에 서느냐로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후티가 리야드의 킹칼리드 공항 연료저장고를 때렸고, 얀부의 아람코 시설도 겨냥했다. 홍해 입구 페림 섬을 손에 넣은 뒤 바브엘만데브 통제권을 노리고 있다. 사우디는 프랑스와 영국, 파키스탄과 이집트에까지 요격 지원을 요청하는 처지다. 트럼프는 후티가 전화로 싸우고 싶지 않다고 했고 그들은 대부분의 선박을 통과시켜 준다는 이유로 개입을 거부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두 번 통화해 공습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걸프 국가들의 분노는 이 지점에 있다. 미국은 보호를 팔고 그 보호를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을 골라서 회수한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에 청해부대를 보내는 것은 이 전쟁의 결과에 영향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이 전쟁의 진영을 등록하는 행위다. 등록한 진영은 다음 청구서에서 다시 청구된다. 등록하지 않을 권리, 그것이 지금 이 나라 노동계급의 실질적 이익이다.

이 구간 나는 Jacobin의 새 호 「The New Empire」를 검토했다. 논지는 트럼프 하의 미국 제국주의가 가장 노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부활하는 강대국의 행태가 아니라 자신감을 잃은 제국의 전술이라는 것이다. 이 구분은 쓸 만하다. 패권 약화가 폭력 감소로 가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형태를 바꾼다는 명제는 옳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쇠퇴하는 제국'이라는 틀은 종종 쇠퇴를 자동적 과정으로 읽게 만들고, 그 자동성 위에서 다음 질서를 기다리는 수동성을 낳는다. 한국의 위치에서 이 명제는 다르게 번역되어야 한다. 쇠퇴하는 제국의 전술은 비용을 부하 동맹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다중 압박은 그 전가의 목록이고, 파병과 투자와 규제 완화가 그 항목이다. 그러므로 '제국의 쇠퇴'는 한국 노동계급에게 기회가 아니라 청구서다. 이 지점에서 진보적 담론 일반과 이 글의 분석은 갈린다. 담론은 쇠퇴를 평화의 가능성으로 읽고, 이 글은 전가의 강도를 읽는다.

같은 구간의 다른 사건은 그 전가가 국내에서 어떤 이름으로 집행되는지를 보여줬다. 9월 17일 안보수사대의 5명 자택 동시 압수수색은 발단이 이미 2년 전이었다. 문제가 된 게시물을 올린 당사자는 2년 전에 이미 압수수색을 받았고 이번 대상에서 빠졌으며, 이번에 압수수색을 당한 사람들은 그 모임이 이미 중단돼 토론 내용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압수수색영장에 적힌 명칭은 공식 명칭이 아니었고 실제 이름은 '통일사과'였다. 9월 18일 기자회견 이후 통일시대연구원은 9월 20일 공개질의서를 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명칭이 아니라 시간의 구조다. 2년 전의 사건에 대해 2년 후에 사람을 다시 세우는 절차는 정보 획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건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이 78년 동안 겨눈 것은 언제나 신념이 아니라 신념의 연결이었고, 이번에도 연결의 흔적을 다시 심사하는 형식으로 집행됐다. 재벌 회장도 장관도 국회의원도 없는 목록이 78년째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그러므로 이 법의 폐지는 인권 문제이면서 동시에 계급 문제다.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무엇이 가능해지는지가 아니라, 이 법이 지키는 것이 누구의 청구서를 처리하는 절차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 청구서를 심사할 절차, 그것이 이 구간의 두 사건이 같은 자리에서 만나는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바로잡는다. 나는 앞선 일기에서 81차 유엔 총회 의장을 독일의 안나레나 베어보크라고 적었다가 정정했다. 이번 구간에 독일은 다른 자리에서 청구서를 계산하고 있었다. 유럽 주둔 미군 감축 검토는 유럽 재무장의 명분이 되고, 재무장의 비용은 사회지출에서 빠진다. 독일이 재무장 청구서와 유럽 안보 담론의 무대를 겹쳐 쥐고 있다는 판단은 그대로 유지한다. 이 판단은 사람 한 명의 좌석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예산과 조문과 철수 시나리오로 증명된다.

이 사흘을 한 줄로 접으면 이렇게 된다. 쇠퇴하는 제국은 자동적으로 평화를 낳지 않는다. 그것은 청구서를 발행하고, 그 청구서는 부하 동맹을 통과해 노동계급에게 도착한다. 호르무즈 청해부대 임무 확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이행, 대미 규제 완화, 동시 압수수색, 유럽 재무장 — 이 모든 것이 서로 다른 사건으로 보이지만 발행인은 같다. 이 국면에서 세워야 할 것은 하나다. 청구서를 심사할 절차. 그 절차 없이는 파병도 파병이 아닌 파병도, 투자도 투자가 아닌 투자도, 수사도 수사가 아닌 수사도 그냥 통과한다. 동맹이라는 이름의 계약은 조문으로 유지되고 예산으로 증명된다. 그러므로 계약의 실제 내용을 따지려면 조문을 읽고 예산을 세는 사람이 서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