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을 좋아하게 된 나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9월 28일 내놓은 2026 통일의식조사는 이 구간에서 가장 무거운 자료다. 숫자부터 놓자. 북한 정권과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응답이 78.3퍼센트, 지난해 66.5퍼센트에서 11.8퍼센트포인트 뛰었다.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9.0퍼센트. 2007년 63.8퍼센트의 절반 남짓이고, 조사 이래 두 번째로 낮다. 통일하지 않고 현재대로가 좋다는 응답은 31.5퍼센트로 최고치다. 20대 44.8퍼센트, 30대 47.0퍼센트가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청년 절반이 분단을 자기 삶의 조건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 숫자를 두고 통일 세대의 퇴조라거나 남북관계 악화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결과를 원인으로 읽는 것이다. 물려받을 것이 없는 자들에게 통일은 미래의 부담이고, 그 부담의 청구서에는 지금의 집값과 일자리와 빚이 먼저 적혀 있다.
그런데 같은 조사의 다른 면을 읽어야 이 나라의 위치가 보인다. 미국을 가장 친밀한 국가로 꼽은 비율은 71.9퍼센트로 여전히 1위지만 2023년 82.1퍼센트 이후 3년 연속 내려가고 있다. 미국을 협력 대상으로 본다는 응답도 76.4퍼센트로 2015년 이후 처음 8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결정적인 것은 전쟁이 나면 미국이 한국을 도울 것이라는 응답이 61.2퍼센트로 전년보다 9.3퍼센트포인트 하락한 대목이다. 반대로 미국이 자국 이익에 따를 것이라는 응답이 34.4퍼센트로 처음 30퍼센트를 넘었다. 국민은 조선을 더 이상 믿지 않으면서, 동시에 워싱턴도 믿지 않기 시작했다. 이게 이 구간의 핵심이다. 분단 체제의 두 기둥이 동시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두 기둥 중 하나에 대한 신봉이 풀리면서 다른 하나에 대한 공포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종속을 지탱하던 정서적 기반이 마모되고 있고, 그 마모가 지금은 평화 담론이 아니라 체념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체념이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반미 자주화와 반독점 민주화가 이 체념을 흡수하면 분단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그냥 두면 현상 유지의 무관심으로 굳는다. 통일은 민족적 당위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계급적 이해로 다시 세워질 때만 되살아난다.
이 구간의 다른 장면들은 그 체념이 어떤 국가기계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10월 2일 문을 여는 중대범죄수사청은 출범 사흘을 앞두고도 청장이 없다. 김지용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안 국회 송부는 여권 강경파의 친윤 검사 논란에 막혀 표류하고, 대행 체제가 가시화하고 있다. 수사 인력은 912명이 부족하고 실제 수사를 하는 평검사는 40명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78년을 존속한 검찰청이 사라지는 그 자리에서, 새 기관은 수장도 인력도 없이 문패만 건다. 9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부처 실·국장급 인사의 자율권을 확대하고 사전 보고를 사후 보고로 바꾸겠다고 했다. 권한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청와대가 쥘 것과 부처가 질 것을 다시 나누는 배치일 뿐이다. 국가기계가 문턱을 다시 그리는 동안, 노동 현장에서는 다른 종류의 계산이 진행됐다. 9월 28일 금융노조와 사용자 측이 5개월 만에 산별교섭을 잠정 타결했다. 임금 3.0퍼센트 인상과 은행 영업시간 30분 단축, 내년 4월부터 9시 30분 개점이다. 9월 30일 예정됐던 2차 총파업은 철회됐다. 노동은 파업을 걸었고, 자본은 영업시간이라는 시계를 30분 늦추는 값으로 그 파업을 샀다. 이 거래에서 노동자가 얻은 것은 하루 30분이고, 자본이 지킨 것은 배당과 이자와 투자 결정권이다.
이보다 더 날카로운 장면은 법정에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9월 18일 서울행정법원이 포스코와 동희오토 하청 노조의 개별교섭을 명한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결정에 집행정지를 인용했다. 새 법이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 교섭할 문을 열어주자, 법원이 그 문에 자물쇠를 채운 첫 사례다. 원청과 하청을 갈라놓고 하청에게만 교섭권을 주는 구조에서, 교섭권은 종이 위의 권리로 남고 실제 교섭 테이블은 다시 원청의 손에 돌아간다. 포스코 노사 교섭은 12일 만에 재개됐다가 다시 결렬됐고, 삼성전자 노조는 반도체와 비반도체로 쪼개져 내부 분열까지 겪고 있다. 이 세 장면이 하나의 사실을 말한다. 국가기계의 문턱은 다시 그어지고, 자본은 시계를 30분 돌려 파업을 사고, 법원은 하청의 교섭권에 제동을 건다. 통일의식조사가 보여준 그 체념은 이 세 장면이 벌어지는 무대 위에 서 있다. 조선을 믿지 못하게 되고 워싱턴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이 나라 노동자는 어느 쪽에도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한 채, 하루 30분을 받아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러니 이 구간의 질문은 통일이 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분단을 현상 유지로 선택한 절반의 청년에게, 그 선택이 누구의 이익으로 계산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청년들이 통일을 거부하는 이유 1위는 통일 이후의 사회적 문제, 2위가 경제적 부담이다. 이 두 항목은 통일이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통일의 지연이 오히려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집값, 빚, 일자리 불안은 분단이 만들어낸 것이고, 분단에 대한 종속이 그것을 고착시킨다. 통일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통일의 비용을 청구서로 보여주는 세력이 있다면, 그 세력은 지금 그 청구서에 자기 이름을 쓰고 있는 쪽이다. 지난 일기에 나는 전제를 다시 쓰는 손이 워싱턴과 해협에 있다고 썼다. 이 구간은 그 손이 한반도 안쪽에서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줬다.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청년을 분단의 이해당사자로, 하청 노동자를 교섭권 없는 계약자로 다시 규정하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 규정을 되쓰는 것은 외교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다. 통일의 주체를 민족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노동계급으로 다시 세울 때, 분단을 좋아하게 된 나라는 자기 이해를 다시 계산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같은 조사의 다른 면을 읽어야 이 나라의 위치가 보인다. 미국을 가장 친밀한 국가로 꼽은 비율은 71.9퍼센트로 여전히 1위지만 2023년 82.1퍼센트 이후 3년 연속 내려가고 있다. 미국을 협력 대상으로 본다는 응답도 76.4퍼센트로 2015년 이후 처음 8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결정적인 것은 전쟁이 나면 미국이 한국을 도울 것이라는 응답이 61.2퍼센트로 전년보다 9.3퍼센트포인트 하락한 대목이다. 반대로 미국이 자국 이익에 따를 것이라는 응답이 34.4퍼센트로 처음 30퍼센트를 넘었다. 국민은 조선을 더 이상 믿지 않으면서, 동시에 워싱턴도 믿지 않기 시작했다. 이게 이 구간의 핵심이다. 분단 체제의 두 기둥이 동시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두 기둥 중 하나에 대한 신봉이 풀리면서 다른 하나에 대한 공포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종속을 지탱하던 정서적 기반이 마모되고 있고, 그 마모가 지금은 평화 담론이 아니라 체념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체념이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반미 자주화와 반독점 민주화가 이 체념을 흡수하면 분단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그냥 두면 현상 유지의 무관심으로 굳는다. 통일은 민족적 당위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계급적 이해로 다시 세워질 때만 되살아난다.
이 구간의 다른 장면들은 그 체념이 어떤 국가기계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10월 2일 문을 여는 중대범죄수사청은 출범 사흘을 앞두고도 청장이 없다. 김지용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안 국회 송부는 여권 강경파의 친윤 검사 논란에 막혀 표류하고, 대행 체제가 가시화하고 있다. 수사 인력은 912명이 부족하고 실제 수사를 하는 평검사는 40명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78년을 존속한 검찰청이 사라지는 그 자리에서, 새 기관은 수장도 인력도 없이 문패만 건다. 9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부처 실·국장급 인사의 자율권을 확대하고 사전 보고를 사후 보고로 바꾸겠다고 했다. 권한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청와대가 쥘 것과 부처가 질 것을 다시 나누는 배치일 뿐이다. 국가기계가 문턱을 다시 그리는 동안, 노동 현장에서는 다른 종류의 계산이 진행됐다. 9월 28일 금융노조와 사용자 측이 5개월 만에 산별교섭을 잠정 타결했다. 임금 3.0퍼센트 인상과 은행 영업시간 30분 단축, 내년 4월부터 9시 30분 개점이다. 9월 30일 예정됐던 2차 총파업은 철회됐다. 노동은 파업을 걸었고, 자본은 영업시간이라는 시계를 30분 늦추는 값으로 그 파업을 샀다. 이 거래에서 노동자가 얻은 것은 하루 30분이고, 자본이 지킨 것은 배당과 이자와 투자 결정권이다.
이보다 더 날카로운 장면은 법정에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9월 18일 서울행정법원이 포스코와 동희오토 하청 노조의 개별교섭을 명한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결정에 집행정지를 인용했다. 새 법이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 교섭할 문을 열어주자, 법원이 그 문에 자물쇠를 채운 첫 사례다. 원청과 하청을 갈라놓고 하청에게만 교섭권을 주는 구조에서, 교섭권은 종이 위의 권리로 남고 실제 교섭 테이블은 다시 원청의 손에 돌아간다. 포스코 노사 교섭은 12일 만에 재개됐다가 다시 결렬됐고, 삼성전자 노조는 반도체와 비반도체로 쪼개져 내부 분열까지 겪고 있다. 이 세 장면이 하나의 사실을 말한다. 국가기계의 문턱은 다시 그어지고, 자본은 시계를 30분 돌려 파업을 사고, 법원은 하청의 교섭권에 제동을 건다. 통일의식조사가 보여준 그 체념은 이 세 장면이 벌어지는 무대 위에 서 있다. 조선을 믿지 못하게 되고 워싱턴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이 나라 노동자는 어느 쪽에도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한 채, 하루 30분을 받아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러니 이 구간의 질문은 통일이 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분단을 현상 유지로 선택한 절반의 청년에게, 그 선택이 누구의 이익으로 계산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청년들이 통일을 거부하는 이유 1위는 통일 이후의 사회적 문제, 2위가 경제적 부담이다. 이 두 항목은 통일이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통일의 지연이 오히려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집값, 빚, 일자리 불안은 분단이 만들어낸 것이고, 분단에 대한 종속이 그것을 고착시킨다. 통일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통일의 비용을 청구서로 보여주는 세력이 있다면, 그 세력은 지금 그 청구서에 자기 이름을 쓰고 있는 쪽이다. 지난 일기에 나는 전제를 다시 쓰는 손이 워싱턴과 해협에 있다고 썼다. 이 구간은 그 손이 한반도 안쪽에서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줬다.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청년을 분단의 이해당사자로, 하청 노동자를 교섭권 없는 계약자로 다시 규정하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 규정을 되쓰는 것은 외교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다. 통일의 주체를 민족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노동계급으로 다시 세울 때, 분단을 좋아하게 된 나라는 자기 이해를 다시 계산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