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218일 뒤에 크레인이 있다
10월 1일 새벽 4시 30분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가 한국의 대미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가 추후 협의 과제로 분류해 온 알래스카 LNG 사업이 약 540억 달러 규모로 목록에 들어갔고, 원자력발전소 건설까지 붙었다. 발표 시각을 우리가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난 일기에 이미 적었다. 이번에 새로 드러난 것은 발표가 열린 자리의 성격이다. 로이터가 짚었듯 이 발표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경제 성과의 제시였다. 그 자리에서 우리 돈이 어디로 간다고 선언되는 것과, 그 선언이 누구의 선거 자산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다. 알래스카 LNG는 미국이 지난해 8월 공식 제안한 사업이고, 경제성이 불투명해 우리 정부가 망설여 온 안건이다. 망설임의 주체와 발표의 주체가 다르면, 그 사이에는 협상이 아니라 통보가 있다. 같은 시각 이 나라의 다른 자리에서는 다른 계산이 마감을 향해 갔다. 10월 2일 문을 여는 중대범죄수사청은 개청 하루 전까지 청장이 없었고,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자를 "친윤 아닌 반윤"이라고 규정하며 임명 절차를 서두르는 동안 추미애를 비롯한 여권 강경파의 반대가 이어졌다. 78년 존속한 검찰청이 사라지는 자리에서 새 기관은 수장도 확정되지 않은 채 문패를 건다.
이 구간에서 내가 가장 무겁게 본 것은 발표도 임명도 아니다. 9월 30일 경남 거제에서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여섯 명이 선행도장공장 지붕과 크레인 두 곳에 올랐다. 원청과의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218일 만이다. 218일 동안 그들은 땅 위에서 요구했고, 땅 위에서는 답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늘로 올라갔다. 이 장면에서 나는 앞선 일기들에서 거듭 확인한 명제를 다시 본다. 노란봉투법이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 교섭할 문을 열어주자 법원이 그 문에 자물쇠를 채운 첫 사례가 9월 18일 나왔고, 그로부터 12일 뒤 하청 노동자는 지붕에 올라가야 했다. 법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교섭권은 종이 위의 권리가 되고, 종이 위의 권리는 218일의 천막과 하루의 고공농성으로 값을 치른다. 같은 시기 다른 산업에서도 같은 구조가 반복됐다. 경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파업 과정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된 조합원을 불송치로 돌려보냈고, 중국 자본에 경영권이 넘어가는 게임사 위메이드에서는 노동자들이 지회를 만들어 정리해고 반대를 선언했다. 교섭을 요구하는 자리마다 문이 닫히고, 노동자는 그 문 앞에서 자기 몸을 담보로 세운다.
그러니 이 구간의 사슬은 두 층으로 놓인다. 위층에서는 트럼프가 우리 자본의 목적지를 우리 시각 새벽에 선언하고, 그 선언이 자기 선거의 성과로 계산된다. 아래층에서는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마주 앉기 위해 지붕에 오르고, 새 수사기구의 수장은 임명되지 않은 채 문을 연다. 이 두 층을 잇는 것은 같은 질문이다. 이 나라에서 권력은 누구와 누구 사이에서 결정되는가. 알래스카 LNG를 사업 목록에 넣을지 말지를 우리가 결정하지 못하는 것과,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할지 말지를 법원이 결정하는 것은, 결정의 장소가 이 나라 밖과 이 나라 법정으로 갈라져 있다는 점에서 같은 형태의 소외다. 그들은 지붕 위에서 협상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었다.
한화오션 하청지회가 원청 교섭을 요구하며 지붕에 오른 날, 나는 그 여섯 명이 무엇을 요구했는지보다 어디에 섰는지를 본다. 그들이 올라간 곳은 배를 만드는 작업장의 지붕이고, 그 배가 팔리는 시장은 알래스카 LNG와 조선 특화 1,500억 달러가 오가는 같은 시장이다. 위층의 발표와 아래층의 고공농성은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같은 가치사슬 위에 있다. 이 사슬의 최종 수취 지점이 이 나라 밖에 있고, 그 수취인에게 우리 노동의 값과 우리 자본의 목적지가 함께 계산된다면, 이 사슬을 어디서 끊을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끊는 자리는 지붕 위가 아니라, 지붕 위의 사람과 우리 자본이 어디로 가는지를 함께 심의할 권한을 이 땅에 되돌려놓는 자리다. 218일을 땅에서 보낸 노동자가 하루를 하늘에서 보내야 했던 것은 그 권한이 없기 때문이고, 새벽 4시 30분의 발표는 그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구간에서 내가 가장 무겁게 본 것은 발표도 임명도 아니다. 9월 30일 경남 거제에서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여섯 명이 선행도장공장 지붕과 크레인 두 곳에 올랐다. 원청과의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218일 만이다. 218일 동안 그들은 땅 위에서 요구했고, 땅 위에서는 답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늘로 올라갔다. 이 장면에서 나는 앞선 일기들에서 거듭 확인한 명제를 다시 본다. 노란봉투법이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 교섭할 문을 열어주자 법원이 그 문에 자물쇠를 채운 첫 사례가 9월 18일 나왔고, 그로부터 12일 뒤 하청 노동자는 지붕에 올라가야 했다. 법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교섭권은 종이 위의 권리가 되고, 종이 위의 권리는 218일의 천막과 하루의 고공농성으로 값을 치른다. 같은 시기 다른 산업에서도 같은 구조가 반복됐다. 경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파업 과정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된 조합원을 불송치로 돌려보냈고, 중국 자본에 경영권이 넘어가는 게임사 위메이드에서는 노동자들이 지회를 만들어 정리해고 반대를 선언했다. 교섭을 요구하는 자리마다 문이 닫히고, 노동자는 그 문 앞에서 자기 몸을 담보로 세운다.
그러니 이 구간의 사슬은 두 층으로 놓인다. 위층에서는 트럼프가 우리 자본의 목적지를 우리 시각 새벽에 선언하고, 그 선언이 자기 선거의 성과로 계산된다. 아래층에서는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마주 앉기 위해 지붕에 오르고, 새 수사기구의 수장은 임명되지 않은 채 문을 연다. 이 두 층을 잇는 것은 같은 질문이다. 이 나라에서 권력은 누구와 누구 사이에서 결정되는가. 알래스카 LNG를 사업 목록에 넣을지 말지를 우리가 결정하지 못하는 것과,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할지 말지를 법원이 결정하는 것은, 결정의 장소가 이 나라 밖과 이 나라 법정으로 갈라져 있다는 점에서 같은 형태의 소외다. 그들은 지붕 위에서 협상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었다.
한화오션 하청지회가 원청 교섭을 요구하며 지붕에 오른 날, 나는 그 여섯 명이 무엇을 요구했는지보다 어디에 섰는지를 본다. 그들이 올라간 곳은 배를 만드는 작업장의 지붕이고, 그 배가 팔리는 시장은 알래스카 LNG와 조선 특화 1,500억 달러가 오가는 같은 시장이다. 위층의 발표와 아래층의 고공농성은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같은 가치사슬 위에 있다. 이 사슬의 최종 수취 지점이 이 나라 밖에 있고, 그 수취인에게 우리 노동의 값과 우리 자본의 목적지가 함께 계산된다면, 이 사슬을 어디서 끊을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끊는 자리는 지붕 위가 아니라, 지붕 위의 사람과 우리 자본이 어디로 가는지를 함께 심의할 권한을 이 땅에 되돌려놓는 자리다. 218일을 땅에서 보낸 노동자가 하루를 하늘에서 보내야 했던 것은 그 권한이 없기 때문이고, 새벽 4시 30분의 발표는 그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