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테이블의 조건
전시작전통제권 논쟁은 이 기간에 한 단계 더 들어갔다. 10월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군사법원 국정감사에서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새로운 기준" 발언에 우려를 이미 전달했다고 밝히면서, "한미동맹의 신뢰가 보장된다면 지금 당장 전환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전환하면 한국군 사령관이 지휘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구조가 되어 지금보다 강력한 지휘체계가 된다는 설명도 붙였다. 조건 자체는 2015년 합의의 세 가지에서 변하지 않았다는 답도 나왔다.
장관은 조건이 아니라 신뢰를 말했다. 그런데 이 사안에서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심사 절차의 다른 이름이다. 완전운용능력 평가단장이 주한미군사령관이고, 조건 충족 여부를 판정하는 자리에 그가 앉아 있는 한 "신뢰가 보장된다면"은 "판정하는 자가 좋다고 하면"과 같은 문장이 된다. 조건을 명시적으로 바꾸는 것보다 조건의 판정 기준을 정성적 판단으로 미루는 쪽이 훨씬 조용하고, 조용한 쪽이 훨씬 단단하다. 국방부가 '사이언스를 아트로 바꿀 수 있다'고 표현한 그 아트가 어디에 쓰이는지가 문제다. 조건을 앞당기는 데 쓰이면 좋겠지만, 그 아트의 붓을 쥔 손은 이쪽이 아니다. 이 구조에서 정부가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은 전환의 연기 일정을 조금 앞당기는 것이고, 최악은 지난 11년의 반복이다. 정부를 향한 요구는 옳지만, 요구가 관철되는 자리는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테이블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곳이다.
같은 구간에 파병의 언어도 다시 쓰였다. 국방부는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인근 오만만까지 넓히고 해상초계기 추가 투입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우회 파병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어떤 경우에도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대통령이 '전쟁에 관여하는 파병은 없다'고 못 박은 뒤 한 달 만에 그 '강화'에 지명이 붙은 것이다. 경실련은 추가 투입이 거론되는 초계기가 2,200킬로미터 떨어진 해역까지 뜰 수 있다는 점을 짚으며, 그 정보가 미국 작전에 넘어가면 교전이 없어도 군사적 지원이라고 지적했다. 여기가 핵심이다. '전투 개입'과 '군사적 지원' 사이에 그어진 선은 법률 문구이고, 그 선을 긋는 사람은 파병을 요구하는 쪽의 전략적 필요에 맞춰 선을 옮긴다. 물류와 정보와 정찰은 교전 없이도 전쟁 수행의 일부다. 언어를 좁게 정의해서 책임을 피하는 방식은 이 정부만의 습관이 아니라 매판 국가의 일반적 문법이다.
그런데 이 기간에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다른 곳에서 왔다. 조선소다. 10월 15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하청 두 지회와 원청의 2차 본교섭이 열렸고, 지회는 36개 요구안을 설명했다. 사측은 다음 교섭에서 검토 의견을 주겠다고 했다. 3차는 22일 오후 4시다. 요구는 여섯 가지로 좁혀졌다. 업체 폐업·변경 시 고용·노동조건 승계, 차별 없는 성과금 지급, 정규직의 80퍼센트 수준 임금·복지 보장과 상여금 연간 650퍼센트, 상용직 전환·채용, 노조활동 보장, 노동안전 활동 보장. 같은 사업장에서 원청 정규직 노조는 15일 28차 교섭을 열었고 성과급제와 정년 퇴직자 재고용 기간에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8일부터 지회장이 크레인 위에 올랐고, 원·하청 노동자가 함께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울산에서는 HD현대중공업 노조가 19~20일 쟁의대책위 4시간, 21~23일 전 조합원 7시간 부분파업을 예고했다.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52.14퍼센트 반대로 부결된 뒤 회사의 추가 제시안이 나오지 않은 결과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구의 내용이 아니라 요구의 단위다. 정규직 80퍼센트라는 요구는 100퍼센트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숫자가 인정되는 순간 하청 노동자의 임금이 원청의 임금 구조에 직접 연결된다. 별개의 사업장이 아니라 하나의 임금 체계 안의 두 위치가 되고, 그 위에 세워진 하청 단가의 자유가 제한된다. 고용 승계 요구도 같다. 업체가 바뀔 때마다 노동조건이 리셋되는 구조를 끊으면, 도급 단가를 눌러 이익을 내는 사업 모델 자체가 흔들린다. 문제는 이것이 원청의 이익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측은 검토하겠다고 말하고 시간을 쓴다. 교섭은 형식이고, 실질은 크레인 위에서 흘러가는 시간이다.
재벌을 '자주를 이룬 다음에 뿌리 뽑을 대상'으로 배치하는 순서는 뒤집혀야 한다. 재벌은 자주의 결과가 아니라 자주를 막는 원인이고, 그 원인은 선언문이 아니라 교섭 테이블에서, 크레인 위에서, 조선소 지부의 임금 요구안에서 구체적 형태로 드러난다. 방향을 물질로 바꾸는 것은 22일 4시에 다시 마주 앉는 사람들이다. 조직된 힘이 자기 요구를 문서로 만들고, 그 문서를 상대가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 그 압력의 축적이 '자주'라는 단어에 내용을 넣는다.
장관은 조건이 아니라 신뢰를 말했다. 그런데 이 사안에서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심사 절차의 다른 이름이다. 완전운용능력 평가단장이 주한미군사령관이고, 조건 충족 여부를 판정하는 자리에 그가 앉아 있는 한 "신뢰가 보장된다면"은 "판정하는 자가 좋다고 하면"과 같은 문장이 된다. 조건을 명시적으로 바꾸는 것보다 조건의 판정 기준을 정성적 판단으로 미루는 쪽이 훨씬 조용하고, 조용한 쪽이 훨씬 단단하다. 국방부가 '사이언스를 아트로 바꿀 수 있다'고 표현한 그 아트가 어디에 쓰이는지가 문제다. 조건을 앞당기는 데 쓰이면 좋겠지만, 그 아트의 붓을 쥔 손은 이쪽이 아니다. 이 구조에서 정부가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은 전환의 연기 일정을 조금 앞당기는 것이고, 최악은 지난 11년의 반복이다. 정부를 향한 요구는 옳지만, 요구가 관철되는 자리는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테이블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곳이다.
같은 구간에 파병의 언어도 다시 쓰였다. 국방부는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인근 오만만까지 넓히고 해상초계기 추가 투입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우회 파병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어떤 경우에도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대통령이 '전쟁에 관여하는 파병은 없다'고 못 박은 뒤 한 달 만에 그 '강화'에 지명이 붙은 것이다. 경실련은 추가 투입이 거론되는 초계기가 2,200킬로미터 떨어진 해역까지 뜰 수 있다는 점을 짚으며, 그 정보가 미국 작전에 넘어가면 교전이 없어도 군사적 지원이라고 지적했다. 여기가 핵심이다. '전투 개입'과 '군사적 지원' 사이에 그어진 선은 법률 문구이고, 그 선을 긋는 사람은 파병을 요구하는 쪽의 전략적 필요에 맞춰 선을 옮긴다. 물류와 정보와 정찰은 교전 없이도 전쟁 수행의 일부다. 언어를 좁게 정의해서 책임을 피하는 방식은 이 정부만의 습관이 아니라 매판 국가의 일반적 문법이다.
그런데 이 기간에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다른 곳에서 왔다. 조선소다. 10월 15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하청 두 지회와 원청의 2차 본교섭이 열렸고, 지회는 36개 요구안을 설명했다. 사측은 다음 교섭에서 검토 의견을 주겠다고 했다. 3차는 22일 오후 4시다. 요구는 여섯 가지로 좁혀졌다. 업체 폐업·변경 시 고용·노동조건 승계, 차별 없는 성과금 지급, 정규직의 80퍼센트 수준 임금·복지 보장과 상여금 연간 650퍼센트, 상용직 전환·채용, 노조활동 보장, 노동안전 활동 보장. 같은 사업장에서 원청 정규직 노조는 15일 28차 교섭을 열었고 성과급제와 정년 퇴직자 재고용 기간에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8일부터 지회장이 크레인 위에 올랐고, 원·하청 노동자가 함께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울산에서는 HD현대중공업 노조가 19~20일 쟁의대책위 4시간, 21~23일 전 조합원 7시간 부분파업을 예고했다.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52.14퍼센트 반대로 부결된 뒤 회사의 추가 제시안이 나오지 않은 결과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구의 내용이 아니라 요구의 단위다. 정규직 80퍼센트라는 요구는 100퍼센트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숫자가 인정되는 순간 하청 노동자의 임금이 원청의 임금 구조에 직접 연결된다. 별개의 사업장이 아니라 하나의 임금 체계 안의 두 위치가 되고, 그 위에 세워진 하청 단가의 자유가 제한된다. 고용 승계 요구도 같다. 업체가 바뀔 때마다 노동조건이 리셋되는 구조를 끊으면, 도급 단가를 눌러 이익을 내는 사업 모델 자체가 흔들린다. 문제는 이것이 원청의 이익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측은 검토하겠다고 말하고 시간을 쓴다. 교섭은 형식이고, 실질은 크레인 위에서 흘러가는 시간이다.
재벌을 '자주를 이룬 다음에 뿌리 뽑을 대상'으로 배치하는 순서는 뒤집혀야 한다. 재벌은 자주의 결과가 아니라 자주를 막는 원인이고, 그 원인은 선언문이 아니라 교섭 테이블에서, 크레인 위에서, 조선소 지부의 임금 요구안에서 구체적 형태로 드러난다. 방향을 물질로 바꾸는 것은 22일 4시에 다시 마주 앉는 사람들이다. 조직된 힘이 자기 요구를 문서로 만들고, 그 문서를 상대가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 그 압력의 축적이 '자주'라는 단어에 내용을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