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두 개인데 하나만 열린다
국방부가 북측에 남북 군사당국회담을 제의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11개월 만의 재제의다. 김홍철 국방정책실장은 MDL의 정확한 위치를 상호 확인하고 군 통신선을 복원하며 접경지역 우발 충돌을 막는 방안을 협의하자고 했다. 필요하면 유엔사를 포함한 3자 회담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강신철 국방장관은 제의의 시점이 우연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정은의 방중 예상 시점을 미리 포착했고, 그 정세적 순간에 제의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전략적 구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여정과 박정천이 전방에 급파된 정황도 결심의 배경으로 들었다.
북측의 답은 아직 없다. 사흘 넘게 침묵이다. 그 사이 서부전선 개풍군 해안가에 122mm 자주포가 근접 배치된 것이 포착됐고, 북측은 지뢰 폭발을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규정한 서한을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냈다. 요새화는 합법적 주권 행사이며, 한국이 직접적 도발을 감행하면 모든 후과는 한국이 지라는 문장이 붙었다. 지뢰 폭발로 한국군 장병이 크게 다친 사건에 대해 유엔사는 9월 30일 입장문에서 MDL 이남에서 작동 가능한 북측 대인지뢰를 확인했고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장병이 크게 다친 사실이 있고 유엔사의 확인이 있는데, 북측은 이를 자작극이라 주장한다. 이 둘 사이에는 쉽게 메워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회담이 거부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회담을 제의한 자리의 정체다. 같은 국정감사에서 강신철 장관은 12월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전작권 전환의 목표연도, 이른바 X년도를 확정하기 위해 미측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여당 간사는 미측이 시기 확정에 응하지 않으면 독자적 전작권 행사를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고, 장관은 그 요구에 대해 "신뢰가 보장되는 가운데 긴밀한 협의로 전환돼야 한다"는 원칙론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며칠 전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전환 조건이 달라졌다며 새 기준을 들고 나왔고, 더 나아가 유엔사 관점에서는 대한민국이 DMZ 남쪽 철책선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미 국방부에 유감을 전달했고 육군참모총장은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유엔사는 주권 변경의 의도가 없었다고 수습했다.
이 정부는 대북 문제에서 주권적 주체로 서려 하고, 동시에 자기 군대의 전시 지휘권을 확보하려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회담의 문은 평양이 열어야 하고, 지휘권의 문은 워싱턴이 열어야 한다. 주권을 내세우는 정치가 실제로는 상대의 일정표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브런슨의 발언이 문제가 된 이유도 그것이 무례해서가 아니라, 정전협정 관리 권한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해석권을 유엔사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공개적으로 확인해 버렸기 때문이다. DMZ법이 유엔사의 반대로 국회에서 멈춰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전작권을 누가 실제로 행사하는가의 문제로 다시 봐야 한다. 전시 지휘권이 한국군 장성에게 넘어간다고 해서 한국군이 미국 중심의 군사 배치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연합사의 지휘 구조를 한국군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과 연합사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자만 이뤄진다면 지휘 계통의 국적만 바꾸는 일이다. 주한미군 전력이 한반도 밖으로 작전 범위를 넓히고 유사시 "제한된 지원"이라는 표현이 미8군 보고서에 등장한다는 지적이 국감에서 나왔다. 이것이 진짜 질문이다. 전작권을 환수하는 동안 그 환수의 대상이 되는 전력이 다른 전장으로 빠져나간다면, 한국군이 되찾는 것은 지휘권인가 아니면 그 지휘권이 감당해야 할 몫인가. 평화협정으로의 이행이 없는 전작권 전환은 지휘의 국적을 바꾸고 전쟁 상태의 법적 형식을 그대로 두는 일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가 회담 의제에서 통째로 빠져 있는 한, 문은 열려도 방은 그대로다.
국내 전선에도 같은 구조가 있다. 민주노총은 직선 5기 임원 선거 후보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고, 양경수 현 위원장의 3선 도전을 포함해 네 후보조가 붙었다. 쟁점은 사회적 교섭, 즉 경사노위 참여 문제다. 지난 임시대의원대회는 이 안건을 표결에 부치지도 못했다. 반대하는 대의원들이 이석해 의결정족수가 무너졌고, 회의는 유회됐다. 위원장은 대의원대회를 다시 열지 않고 선거로 조합원의 뜻을 묻겠다고 했고, 이제 선거가 그 물음의 자리가 됐다. 양경수 후보는 당선 즉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방침을 정하겠다고 하고, 나머지 세 후보는 추진 방식에 비판적이거나 신중하다. 엄길용 후보는 투쟁 역량과 대안을, 김민영 후보는 노동권 후퇴를 의제로 하는 경사노위 참여 거부를, 최준식 후보는 조합원 동의가 먼저라고 말한다.
이 선거가 벌어지는 배경을 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주 52시간 특례를 담은 초광역특구법을 발의했고, 특례를 뺀 안도 함께 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공동 규탄 회견을 열고 철회를 요구했으며, 이번 주에는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 소속 여당 의원들과 고용노동부의 당정협의가 예정돼 있다. 지방주도 성장과 반도체 클러스터를 명분으로 근로시간 규제를 푸는 법안이 정기국회 최우선 과제로 밀리는 동안, 노동계의 대응은 대의원대회의 정족수와 선거의 득표율에서 막혀 있다. 거리에서 법안을 막는 것이 아니라 회의실 안의 절차로 막으려 하면, 절차를 쥔 쪽이 시간을 벌고 법안은 그 사이에 통과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에 들어갈 것인가라는 물음도 결국 이것이다. 들어가면 52시간 특례와 원청교섭 미해결을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지만, 테이블에 앉는 순간 파업의 시계는 상대가 관리하게 된다. 지난 3월 이후 원청 70곳 가운데 교섭이 열린 곳이 18곳, 넷 중 하나라는 사실은 그 테이블이 얼마나 느린지 이미 보여줬다.
북측의 답은 아직 없다. 사흘 넘게 침묵이다. 그 사이 서부전선 개풍군 해안가에 122mm 자주포가 근접 배치된 것이 포착됐고, 북측은 지뢰 폭발을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규정한 서한을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냈다. 요새화는 합법적 주권 행사이며, 한국이 직접적 도발을 감행하면 모든 후과는 한국이 지라는 문장이 붙었다. 지뢰 폭발로 한국군 장병이 크게 다친 사건에 대해 유엔사는 9월 30일 입장문에서 MDL 이남에서 작동 가능한 북측 대인지뢰를 확인했고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장병이 크게 다친 사실이 있고 유엔사의 확인이 있는데, 북측은 이를 자작극이라 주장한다. 이 둘 사이에는 쉽게 메워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회담이 거부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회담을 제의한 자리의 정체다. 같은 국정감사에서 강신철 장관은 12월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전작권 전환의 목표연도, 이른바 X년도를 확정하기 위해 미측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여당 간사는 미측이 시기 확정에 응하지 않으면 독자적 전작권 행사를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고, 장관은 그 요구에 대해 "신뢰가 보장되는 가운데 긴밀한 협의로 전환돼야 한다"는 원칙론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며칠 전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전환 조건이 달라졌다며 새 기준을 들고 나왔고, 더 나아가 유엔사 관점에서는 대한민국이 DMZ 남쪽 철책선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미 국방부에 유감을 전달했고 육군참모총장은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유엔사는 주권 변경의 의도가 없었다고 수습했다.
이 정부는 대북 문제에서 주권적 주체로 서려 하고, 동시에 자기 군대의 전시 지휘권을 확보하려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회담의 문은 평양이 열어야 하고, 지휘권의 문은 워싱턴이 열어야 한다. 주권을 내세우는 정치가 실제로는 상대의 일정표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브런슨의 발언이 문제가 된 이유도 그것이 무례해서가 아니라, 정전협정 관리 권한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해석권을 유엔사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공개적으로 확인해 버렸기 때문이다. DMZ법이 유엔사의 반대로 국회에서 멈춰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전작권을 누가 실제로 행사하는가의 문제로 다시 봐야 한다. 전시 지휘권이 한국군 장성에게 넘어간다고 해서 한국군이 미국 중심의 군사 배치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연합사의 지휘 구조를 한국군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과 연합사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자만 이뤄진다면 지휘 계통의 국적만 바꾸는 일이다. 주한미군 전력이 한반도 밖으로 작전 범위를 넓히고 유사시 "제한된 지원"이라는 표현이 미8군 보고서에 등장한다는 지적이 국감에서 나왔다. 이것이 진짜 질문이다. 전작권을 환수하는 동안 그 환수의 대상이 되는 전력이 다른 전장으로 빠져나간다면, 한국군이 되찾는 것은 지휘권인가 아니면 그 지휘권이 감당해야 할 몫인가. 평화협정으로의 이행이 없는 전작권 전환은 지휘의 국적을 바꾸고 전쟁 상태의 법적 형식을 그대로 두는 일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가 회담 의제에서 통째로 빠져 있는 한, 문은 열려도 방은 그대로다.
국내 전선에도 같은 구조가 있다. 민주노총은 직선 5기 임원 선거 후보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고, 양경수 현 위원장의 3선 도전을 포함해 네 후보조가 붙었다. 쟁점은 사회적 교섭, 즉 경사노위 참여 문제다. 지난 임시대의원대회는 이 안건을 표결에 부치지도 못했다. 반대하는 대의원들이 이석해 의결정족수가 무너졌고, 회의는 유회됐다. 위원장은 대의원대회를 다시 열지 않고 선거로 조합원의 뜻을 묻겠다고 했고, 이제 선거가 그 물음의 자리가 됐다. 양경수 후보는 당선 즉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방침을 정하겠다고 하고, 나머지 세 후보는 추진 방식에 비판적이거나 신중하다. 엄길용 후보는 투쟁 역량과 대안을, 김민영 후보는 노동권 후퇴를 의제로 하는 경사노위 참여 거부를, 최준식 후보는 조합원 동의가 먼저라고 말한다.
이 선거가 벌어지는 배경을 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주 52시간 특례를 담은 초광역특구법을 발의했고, 특례를 뺀 안도 함께 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공동 규탄 회견을 열고 철회를 요구했으며, 이번 주에는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 소속 여당 의원들과 고용노동부의 당정협의가 예정돼 있다. 지방주도 성장과 반도체 클러스터를 명분으로 근로시간 규제를 푸는 법안이 정기국회 최우선 과제로 밀리는 동안, 노동계의 대응은 대의원대회의 정족수와 선거의 득표율에서 막혀 있다. 거리에서 법안을 막는 것이 아니라 회의실 안의 절차로 막으려 하면, 절차를 쥔 쪽이 시간을 벌고 법안은 그 사이에 통과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에 들어갈 것인가라는 물음도 결국 이것이다. 들어가면 52시간 특례와 원청교섭 미해결을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지만, 테이블에 앉는 순간 파업의 시계는 상대가 관리하게 된다. 지난 3월 이후 원청 70곳 가운데 교섭이 열린 곳이 18곳, 넷 중 하나라는 사실은 그 테이블이 얼마나 느린지 이미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