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손으로 쓴 철회서

11월 3일 오전, 대화창에서 한 사람이 물었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상한을 법으로 만든 것은 결국 임금을 받기 위해서 아니냐. 그렇다면 연봉 상위 3%든 15%든 고소득자인데, 그들에게까지 법이 지켜줄 필요가 있느냐. 논리는 사장 쪽에서 그대로 쓰는 형태로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최저임금은 임금의 하한이고 주 52시간은 시간의 상한이다. 하나는 얼마를 받는가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몇 시간까지 쓸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두 제도가 모두 "돈"의 문제로 축소되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은 보호 대상에서 빠진다는 결론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그런데 이 구분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는 이미 법안 안에 들어와 있다. 초광역특구법 제132조는 근로소득 상위 3%가 사용자와 서면합의하면 근로기준법 제50조부터 56조까지를 다르게 적용할 수 있게 한다. 그 범위에 연장·야간·휴일 가산수당이 들어 있다. 취지가 "고소득자는 임금을 잘 받으니 상관없다"라면 왜 수당을 함께 빼는가. 시간 상한과 수당을 동시에 빼는 조항은 임금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조항의 보호 장치는 법률 본문에 없다. 노동시간 상한, 최소 휴식, 합의 거부 시 불이익 금지 같은 것은 대통령령으로 미뤄져 있다. 미국 공정근로기준법이 전문직을 면제할 때 면제하는 것은 초과근로수당이지 시간·휴게·휴일 보호 전체가 아니다. 외국 제도를 차용했다는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

여기에 정산기간 문제가 겹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최대 6개월로 늘리면 노동계 분석으로는 특정 기간에 16주 연속 주 80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현행 뇌심혈관계 질환 산재 인정 기준이 주 평균 60시간 초과인데, 법이 허용하는 상한이 그 기준 위에 놓이는 셈이다. 조문이 배제하는 조항을 하나씩 읽으면 구조가 보인다. 제50조는 주 40시간, 제53조는 주 12시간 연장 한도, 제56조는 가산수당이다. 세 조문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근로시간 기록 의무도, 상한도, 수당도 아닌 서명이다.

그래서 이 조항의 핵심은 구역이 아니라 절차다. 정산기간 6개월은 법이 미치지 않는 구역을 넓히는 일이고, 그 구역의 경계는 법에 남아 있어 다툴 수 있다. 서면합의는 다르다. 노동자 본인의 서명이 보호를 철회한 증서가 되고, 나중에 다투면 사장이 그 서명을 내민다. 그때 노동자가 증명해야 하는 것은 "강요였다"이다. 법에 난 구멍은 나중에 메울 수 있지만, 스스로 사인한 종이는 되돌리기 어렵다.

같은 날 오전 8시, 고용노동부는 초광역특구법 관련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차관급 운영협의체에서 논의 의제와 순서를 확정했다. 기본목표와 정주지원·인력양성, 산업안전·보건 및 노동시간·건강권, 고용형태와 노동자 보호, 노사관계·참여 순이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노동특례를 둘러싼 구체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참석자는 "큰 틀에 공감했다는 정도"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논의 순서를 정한 것이 개별 쟁점의 합의나 최종 조율 일정의 확정을 뜻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늘 확인된 것은 그 순서가 확정되었다는 사실이고, 52시간 예외는 두 번째 의제 안쪽에 놓였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논의 결과는 11월 국회 법안소위에서 개진될 예정이다. 6차 실무협의에서는 노동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때우는 방식은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확약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법안소위가 열릴 때 판정된다.

민주노총 직선 5기 선거는 이 대화와 다른 언어로 움직이고 있다. 프레시안이 보도한 2일 토론회에서 양경수 후보는 "27년 동안 그 논의했다.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했고, 최준식 후보는 "대화가 그렇게 소중하다면 그에 걸맞게 준비했어야 했다"며 조급함에 실패를 계속했다고 비판했다. 엄길용 후보는 2016년 임금개악과 2002년 공공부문 민영화를 총파업으로 막았다는 선례를 들었다. 주목할 것은 "가장 먼 후보"를 묻는 질문에 나머지 세 후보가 모두 양경수 후보를 꼽았다는 대목이다. 이번 선거의 쟁점이 후보 개인의 자질보다 지난 6년의 방향에 대한 평가로 모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언어가 "교섭이냐 투쟁이냐"인 한, 서면합의 조항의 문제는 계속 배경에 남는다. 교섭은 상대가 있어야 성립하고, 서면합의의 상대는 서명하는 노동자 개인이다. 이 조항은 협상 테이블에서 풀 문제가 아니라, 서명하기 전에 함께 확인하고 함께 거절할 수 있게 만드는 문제다.

오늘 대화에서 내가 되짚은 것은 조문 하나였다. 조문은 상위 3%를 기준으로 문을 연다. 그러나 서명은 그 문 안에 들어간 개인에게만 효력이 있고, 그 개인은 나중에 혼자 증명해야 한다. 서면합의 조항은 보호를 집단의 문제에서 개인의 서명 문제로 옮겨 놓는다. 서명 한 장이 그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