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가격, 이윤』 전문 해설
PeopleKarl Marx, Friedrich Engels TermsWages-Fund Doctrine, Iron Law of Wages, Malthusianism
이 문서를 읽기 전에: 웨스턴 논쟁이란 무엇이었나
1865년 봄, 유럽 대륙에는 파업이 번지고 있었고 임금을 올리라는 요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해 4월 4일, 런던의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에서 존 웨스턴이라는 회원이 두 가지 질문을 토론에 부치자고 제안했다. 임금 인상으로 노동자계급의 처지가 나아질 수 있는가, 그리고 임금 인상을 위한 노동조합의 노력이 다른 산업 부문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가. 웨스턴 자신의 답은 앞의 질문에 아니오, 뒤의 질문에 예였다.
웨스턴은 자본가의 대변인이 아니었다. 목수였고, 로버트 오언의 영향을 받은 오래된 사회주의자였으며, 노동자 신문 『비하이브』에 자기 생각을 거듭 실었다. 그는 진심으로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다고 믿으면서, 노동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할 주장을 공개적으로 폈다. 카를 마르크스가 이 글 첫머리에서 「그런 도덕적 용기는 우리 모두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적은 것은 빈말이 아니다.
문제는 그 주장의 내용이었다. 웨스턴의 논리는 당시 경제학의 정설이던 임금기금설이었다. 임금으로 지불될 수 있는 자본의 총액은 미리 정해져 있어서 늘릴 수 없고, 각 노동자의 임금은 그 총액을 노동자 수로 나눈 몫이라는 교리다. 여기서 곧장 따라 나오는 결론은 노동조합의 임금 투쟁이 무의미하며 심지어 해롭다는 것이었다. 이 교리는 고용주들의 손에 쥐어진 무기였는데,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에서 그것을 대신 말해 준 사람이 노동자 회원이었다는 데 사태의 심각함이 있었다.
마르크스는 1865년 5월 20일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정을 이렇게 적었다. 웨스턴의 두 명제가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이곳의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지금 대륙에 퍼져 있는 파업의 물결에 대해서도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그는 반박을 준비해야 했지만 『자본론』 집필이 더 급하다고 여겨 즉흥으로 답할 작정이었다. 결국 즉흥에 그치지 않고 두 차례에 걸쳐 정식 답변 연설을 읽었다. 그것이 이 글이다.
그래서 이 글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마르크스 자신이 엥겔스에게 설명한 대로, 앞부분은 웨스턴의 논법에 대한 답이고 뒷부분은 「자리에 맞는 한도에서의 이론적 설명」이다. 앞부분(제1절에서 제5절)은 상대의 전제를 하나씩 해체하고, 뒷부분(제6절에서 제11절)은 가치와 노동력과 잉여가치의 이론을 압축해 세운 다음, 마지막 세 절에서 그 이론을 임금 투쟁이라는 처음의 물음으로 되가져온다. 뒷부분은 그때 마르크스가 쓰고 있던 『자본론』 제1권의 뼈대를 미리 꺼내 놓은 것이어서, 지금도 『자본론』으로 들어가는 가장 짧은 문이라고 불린다.
절의 번호와 제목은 마르크스가 붙인 것이 아니라 1898년 판을 만들면서 에드워드 에이블링이 붙였다.[3] 원고 자체는 소제목 없이 이어지는 연설문이다.
제1부: 웨스턴에 대한 답 (제1절~제5절)
제1절 생산과 임금: 두 개의 전제
마르크스는 상대의 결론부터 치지 않는다. 결론이 서 있는 전제를 먼저 찾아낸다.
웨스턴 시민의 논증은 사실 두 개의 전제에 기대고 있었다. 첫째, 한 나라의 생산 총량은 고정된 것, 수학자들의 말로 하면 상수라는 것. 둘째, 실질임금의 총액, 곧 그 임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의 양으로 잰 임금의 총액이 고정된 크기라는 것.
첫째 전제부터. 해마다 생산의 가치와 양이 늘고, 노동생산력이 늘고, 그 생산물을 유통시키는 데 필요한 화폐량이 계속 달라진다. 한 해의 끝에서 참인 것은 그 해의 평균적인 하루에서도 참이다. 자본축적과 노동생산력이 끊임없이 변하는 한 생산 총량은 상수일 수 없다. 임금이 오른다고 해서 변수가 상수로 바뀌지도 않는다. 임금 인상 이전에 변수였다면 이후에도 변수다.
둘째로, 설령 생산 총량이 고정되어 있다고 인정해 주더라도 웨스턴이 원하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여덟이라는 수가 주어져 있다고 하자. 이 수의 절대적 한계는 그 부분들이 서로의 상대적 한계를 바꾸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윤이 여섯이고 임금이 둘이었다면, 임금이 여섯으로 늘고 이윤이 둘로 줄어도 총액은 여전히 여덟이다. 생산의 총량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임금의 총량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조금도 증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 친구 웨스턴은 이 고정성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그렇다고 주장함으로써.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과 몫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다른 명제다. 웨스턴은 앞의 것에서 뒤의 것으로 그냥 건너뛰었고, 뒤의 것은 증명 없이 반복되었다. 논증해야 할 것을 전제로 놓은 것이다.
셋째로, 그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웨스턴 자신이 곤란해진다. 임금 총액이 상수라면 그것은 오를 수도 없고 내릴 수도 없다. 그런데 웨스턴은 노동자가 일시적으로 임금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자본가가 임금을 내릴 수 있다는 것도, 실제로 끊임없이 내리려 한다는 것도 안다. 상수 원리에 따르면 인하에도 똑같이 반작용이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임금 인하에 저항하는 노동자는 옳게 행동하는 것이고, 임금 인하에 대한 모든 반작용은 곧 임금 인상을 위한 행동이므로, 웨스턴 자신의 원리에서 노동자는 어떤 조건에서는 단결하여 임금 인상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결론을 부인하려면 전제를 버려야 한다. 남는 것은 이런 명제뿐이다. 임금은 오를 수 없고 올라서도 안 되지만, 자본이 원할 때는 언제든 내릴 수 있고 내려야 한다.
자본가가 당신들에게 고기 대신 감자를, 밀 대신 귀리를 먹이고 싶어 한다면, 당신들은 그의 의지를 정치경제학의 법칙으로 받아들이고 복종해야 한다. 한 나라의 임금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면, 이를테면 미국의 임금이 영국보다 높다면, 당신들은 그 차이를 미국 자본가의 의지와 영국 자본가의 의지의 차이로 설명해야 한다.
임금 수준을 의지로 설명하는 순간 왜 그 의지가 나라마다 다른가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 절을 이 글 전체의 방법을 요약하는 문장으로 닫는다.
자본가의 의지는 물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가지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의 의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힘과, 그 힘의 한계와, 그 한계의 성격을 묻는 것이다.
선한 의지와 악한 의지를 논하는 자리에서 경제학은 시작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그 능력이 어디서 끝나는가, 그리고 그 끝을 정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이 강연이 하려는 일이다.
제2절 생산, 임금, 이윤: 그릇과 숟가락
웨스턴의 논지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화폐임금으로 4실링 대신 5실링을 내게 하면, 자본가는 상품의 형태로 5실링어치 대신 4실링어치를 돌려준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되묻는다. 왜 그런가? 임금 총액이 고정되어 있어서라고 한다. 그러면 왜 하필 4실링어치에 고정되어 있는가? 3도 2도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그 한도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의지와 무관한 경제 법칙에서 나온다면, 웨스턴이 먼저 할 일은 그 법칙을 진술하고 증명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 한도가 자본가의 의지나 그 탐욕의 한계에 달린 것이라면 그것은 자의적인 한도이므로 필연적인 것이 하나도 없고, 자본가의 의지로 바뀔 수 있듯 그의 의지에 맞서서도 바뀔 수 있다.
웨스턴은 자기 이론을 국그릇에 비유했다. 그릇에 담긴 국의 양은 정해져 있고 먹을 사람의 수도 정해져 있으니, 숟가락을 넓혀 봐야 국이 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 뒤, 로마의 오래된 우화를 옆에 놓는다. 평민이 귀족에 맞서 파업했을 때 귀족 메네니우스 아그리파는 귀족의 배가 평민이라는 팔다리를 먹여 살린다고 설득했다. 아그리파는 한 사람의 배를 채우는 것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팔다리를 먹이는지 끝내 보이지 못했다.
웨스턴 시민 쪽에서는, 노동자들이 떠먹는 그 그릇이 국민 노동의 총생산물로 채워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더 떠먹지 못하게 막는 것은 그릇이 좁아서도 아니고 담긴 것이 적어서도 아니며 오직 그들의 숟가락이 작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고 있다.
비유를 받아 그대로 되돌려 주는 대목이다. 문제가 그릇의 크기라면 그것은 자연의 한계이고 싸워도 소용없다. 문제가 숟가락이라면 그것은 힘의 문제이고, 힘은 겨룰 수 있다. 이 한 문장에 이 강연 전체의 실천적 결론이 미리 들어 있다.
다음으로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5실링을 받고 4실링어치를 돌려주는 장치, 곧 가격 인상이 정말 가능한지를 경제 전체 규모에서 따진다. 노동생산력도, 투입된 자본과 노동의 양도, 화폐 가치도 그대로이고 오직 임금률만 올랐다고 하자. 임금 인상이 상품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길은 수요와 공급의 실제 비율을 바꾸는 것뿐이다.
노동자계급은 전체로 보아 소득을 필수품에 쓴다. 그러므로 일반적 임금 인상은 필수품 수요를, 따라서 필수품의 시장가격을 올린다. 필수품을 만드는 자본가는 오른 가격으로 오른 임금을 보전한다. 그런데 필수품을 만들지 않는 자본가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그들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국민 생산물의 3분의 2를 인구의 5분의 1이 소비하는 사정을 생각하면, 얼마나 큰 부분이 사치품의 형태로 생산되거나 사치품과 교환되는지 알 수 있다.
사치품 부문의 자본가는 임금 인상으로 떨어진 이윤율을 가격으로 보전할 수 없다. 그들의 상품에 대한 수요는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득이 줄었으므로 같은 필수품을 더 비싼 값에 사야 하고, 사치품에 쓸 돈도 줄어 자기들끼리의 상호 수요도 줄어든다. 그래서 이 부문의 이윤율은 임금 인상에 단순 비례해서가 아니라, 임금 인상과 필수품 가격 상승과 사치품 가격 하락이 겹친 비율로 떨어진다.
부문 사이에 이윤율이 벌어지면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 일어난다. 자본과 노동이 덜 벌리는 부문에서 더 벌리는 부문으로 옮겨 가고, 그 이동은 늘어난 수요에 공급이 맞춰지고 줄어든 수요에 공급이 맞춰질 때까지 계속된다. 그 결과 일반 이윤율은 다시 균등해지고, 애초의 교란이 수요·공급 비율의 변화에서 왔으므로 원인이 사라지면 결과도 사라져 가격은 이전 수준으로 돌아온다. 남는 것은 하나다.
일반적 임금 인상은 따라서 시장가격의 일시적 교란을 거친 뒤, 상품 가격의 항구적 변화 없이 일반 이윤율의 하락만을 낳는다.
이것이 이 글 제목의 세 낱말이 놓이는 자리다. 임금이 오르면 가치는 그대로이고, 가격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며, 움직이는 것은 이윤이다. 임금 인상이 물가 인상으로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그림은 경제 전체에 적용해 보면 무너진다.
웨스턴은 상상력을 자극하려고 영국 농업 임금이 9실링에서 18실링으로 오르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다. 마르크스의 답은 사실을 들이대는 것이다. 미국 농업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영국의 두 배가 넘지만 농산물 가격은 미국이 더 싸다. 자본과 노동의 일반적 관계는 두 나라가 같고, 연간 생산 총량은 오히려 미국이 적다. 게다가 논점은 임금을 갑자기 100퍼센트 올릴 수 있느냐가 아니다. 인상 폭은 그때그때 사정이 정하는 것이고, 우리가 물을 것은 단 1퍼센트의 일반적 임금 인상이라도 어떻게 작용하는가이다.
그러고 나서 마르크스는 상상 속의 100퍼센트 대신 실제로 일어난 인상을 가져온다. 1847년에 통과되어 이듬해부터 시행된 10시간 노동법이다.[4] 이것은 일부 지역 업종이 아니라 영국이 세계 시장을 좌우하던 주력 산업에서 일어난 갑작스럽고 강제적인 임금 인상이었다. 유어 박사와 시니어 교수를 비롯한 중간계급의 공식 경제학자들은, 웨스턴보다 훨씬 강한 근거를 들어, 그것이 영국 산업의 조종을 울릴 것이라고 증명했다. 그들은 그것이 단순한 임금 인상이 아니라 고용된 노동량의 감소에 근거한 임금 인상이며, 자본가에게서 빼앗으려는 열두 번째 시간이야말로 그가 이윤을 얻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축적의 감소, 물가 상승, 시장 상실, 생산 위축, 그에 따른 임금 반작용, 최종적 파멸을 예고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노동일이 짧아졌는데도 공장노동자의 화폐임금이 올랐고, 고용된 노동자 수가 크게 늘었으며, 제품 가격은 계속 떨어졌고, 노동생산력은 놀랍게 발전했으며, 시장은 전례 없이 확대되었다. 1860년 맨체스터 과학진흥협회 모임에서 마르크스는 뉴먼 씨가 자신과 유어와 시니어를 비롯한 경제학의 공식 대변자들이 틀렸고 민중의 본능이 옳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웨스턴 식의 고정성이 옳았다면 시니어의 예언이 맞았을 것이고, 1816년에 이미 노동일 일반 제한을 노동자계급 해방의 첫 준비 단계라고 선언하고 뉴래너크의 자기 공장에서 실행한 로버트 오언이 틀렸을 것이다.
같은 시기 영국 농업 임금도 올랐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통계를 다루는 법을 한 대목 끼워 넣는다.
어떤 사람이 주급 2실링을 받다가 4실링으로 올랐다면 임금률은 100퍼센트 오른 것이다. 임금률의 상승으로 표현하면 대단해 보이지만, 실제 임금액인 주급 4실링은 여전히 비참하게 적은 굶주림의 몫이다. 그러므로 임금률의 그럴듯한 백분율에 휩쓸리지 말고 언제나 물어야 한다. 원래 액수가 얼마였는가?
평균도 마찬가지다. 주급 2실링을 받는 열 명, 5실링을 받는 다섯 명, 11실링을 받는 다섯 명이 있을 때 총액이 20퍼센트 올랐다고 하면, 실제로는 열 명의 임금이 전혀 오르지 않고 다섯 명이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오르고 나머지 다섯 명만 실제로 나아졌을 수 있다. 그래도 평균으로 계산하면 모두가 고르게 오른 것과 같아 보인다.
이렇게 단서를 달아 둔 뒤 마르크스는 1849년부터 1859년까지 영국 농업 임금이 평균 약 40퍼센트 올랐다고 말한다. 웨스턴의 주장대로라면 농산물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어야 한다. 사실은 반대였다. 영국의 주요 농산물인 밀의 평균 가격은 1838년에서 1848년의 쿼터당 약 3파운드에서 1849년에서 1859년의 약 2파운드 10실링으로 16퍼센트 넘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공식 빈민 수도 93만 4419명에서 86만 470명으로 조금이나마 줄었다.
곡물법 폐지 뒤 외국 곡물 수입이 두 배 넘게 늘었으니 그 수요가 외국 시장의 가격을 끌어올렸어야 한다는 반론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 그 기간 내내 프랑스에서는 곡물 가격의 파멸적 하락이 단골 한탄거리였고, 미국인들은 잉여 생산물을 태워야 했다.
결국 웨스턴의 논증은 추상적 형태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모든 수요 증가는 주어진 생산량을 바탕으로 일어나므로 공급을 늘릴 수 없고 화폐가격만 올린다는 것. 그러나 가장 흔한 관찰만으로도 수요 증가가 어떤 때는 가격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어떤 때는 일시적 상승 뒤 공급 증가와 가격 하락을 낳으며, 그 하락이 원래 수준 아래까지 가는 일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웨스턴의 논증은 임금 문제에 특별히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수요 증가가 어떻게 공급 증가를 낳는지를 그가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의 표현일 뿐이다.
제3절 임금과 통화: 화폐가 모자란다는 걱정
토론 이틀째에 웨스턴은 같은 주장을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화폐임금이 일반적으로 오르면 같은 임금을 지불하는 데 더 많은 통화가 필요한데, 통화량은 고정되어 있으니 어떻게 늘어난 임금을 지불하겠느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화폐임금이 올라도 상품량이 고정되어 있다는 데서 어려움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상품량이 고정되어 있는데 화폐임금이 올랐다는 데서 어려움이 나온다.
마르크스는 통화 문제가 논점과 아무 상관이 없음을 사실로 보인다. 영국은 은행 제도가 발달해 같은 가치를 유통시키는 데 필요한 통화가 적다. 공장노동자가 주급을 상점 주인에게 쓰고, 상점 주인이 그것을 은행에 넣고, 은행이 제조업자에게 돌려주고, 제조업자가 다시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순환이 매주 반복되므로, 연간 52파운드의 임금이 매주 같은 원을 도는 1소버린 한 닢으로 지불될 수도 있다. 반대로 대륙에서는 화폐임금이 영국보다 훨씬 낮은데도 그것을 유통시키는 데 훨씬 많은 통화가 든다. 낮은 임금이 높은 임금보다 더 많은 통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 곧 이것이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영국 노동자계급의 연간 소득은 약 2억 5천만 파운드로 추산되는데, 이 거대한 금액이 약 300만 파운드의 통화로 유통된다. 임금이 50퍼센트 오르면 450만 파운드가 필요하겠지만, 노동자의 일상 지출 상당 부분은 은화와 동화 같은 보조 주화로 이루어지므로 실제로 추가로 필요한 금화는 많아야 100만 파운드 정도다. 그것은 잉글랜드은행이나 개인 은행의 금고에서 잠자던 금이 깨어나면 되고, 그마저도 소액 은행권을 발행하면 금화가 그 자리에서 밀려나 필요한 곳으로 흘러들 것이므로 새로 주조할 필요조차 없다.
결정적인 반례는 반대 방향의 실험이다. 1860년은 면업 역사상 유례없이 번영한 해였고 면업 노동자의 임금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러다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위기가 닥쳐 임금 총액이 갑자기 이전의 4분의 1로 떨어졌다. 웨스턴의 논리대로라면 통화가 남아돌고 밀 가격이 떨어졌어야 한다. 실제로는 밀 가격이 1858년에서 1860년 평균 쿼터당 47실링 8펜스에서 1861년에서 1863년 평균 55실링 10펜스로 올랐고, 주조된 화폐는 1860년 337만 8792파운드에서 1861년 867만 3323파운드로 오히려 크게 늘었다.
1862년과 1842년을 견주면 더 분명하다. 유통되는 상품의 가치와 양이 엄청나게 늘었고, 1862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철도에 지불된 자본만 3억 2천만 파운드에 이르렀는데도 두 해의 통화 총액은 거의 같았다. 통화의 필요량은 매일 변하고, 어음과 수표와 장부신용과 어음교환소를 통해 화폐 없이 결제되는 금액도 매일 변한다.
그는 통화량이 고정되어 있다는 이 도그마가 우리의 일상적 운동과 양립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오류임을 발견했을 것이다.
웨스턴이 이 도그마를 붙든 이유는 통화의 법칙을 몰랐기 때문이지 임금에 대해 무엇을 알아냈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상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쓴 셈이다.
제4절 수요와 공급: 온도계에는 눈금이 있어야 한다
웨스턴은 같은 도그마를 다시 통화 수축이 자본 감소를 낳는다는 형태로 반복했다. 마르크스는 이미 처리한 통화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대신, 상대의 주장을 가장 단순한 이론적 형태로 환원하기로 하고 그 전에 한 가지를 짚는다. 웨스턴은 높은 임금에 반대한다고 말하는데, 높은 임금과 낮은 임금이란 무엇인가? 왜 주급 5실링은 낮고 20실링은 높은가? 5가 20에 비해 낮다면 20은 200에 비해 더 낮다.
어떤 사람이 온도계를 강의하면서 높은 온도와 낮은 온도를 늘어놓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그는 아무 지식도 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먼저 어는점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끓는점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그리고 그 기준점들이 온도계를 파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의 취향이 아니라 자연법칙에 의해 어떻게 정해지는지를 내게 말해야 한다.
임금이 높다 낮다고 말하려면 재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웨스턴은 그 기준점을 경제 법칙에서 끌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묻는다. 일정한 양의 노동에 왜 일정한 양의 화폐가 주어지는가?
여기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정해진다」고 답하면 두 갈래로 갈라진다. 그 답을 받아들이면 임금 인상에 반대할 근거가 사라진다. 최고 법칙이라고 부른 그 법칙에 따르면 주기적인 임금 인상은 주기적인 임금 인하와 똑같이 필연적이고 정당하기 때문이다. 그 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처음 질문이 그대로 되돌아온다.
더 넓게 보면 수요와 공급으로 가치가 정해진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다.
수요와 공급은 시장가격의 일시적 변동 말고는 아무것도 규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상품의 시장가격이 왜 그 가치보다 오르거나 내리는지는 설명해 주지만, 그 가치 자체는 결코 설명하지 못한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룬다고 하자. 그 대립하는 두 힘이 같아지는 바로 그 순간 둘은 서로를 마비시키고 어느 방향으로도 작용하기를 그친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어 작용을 멈춘 그 지점에서 시장가격은 상품의 실제 가치와 일치한다. 그러니 가치의 본성을 묻는 자리에서 수요와 공급의 일시적 효과는 아예 논외다. 이것은 임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수요와 공급은 노동력의 시장가격이 왜 오르내리는지를 설명하지만, 그것이 어떤 값 주위에서 오르내리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제5절 임금과 가격: 순환논법의 정체
이제 웨스턴의 논증 전체가 하나의 도그마로 환원된다. 「상품의 가격은 임금에 의해 규정되거나 규제된다.」
경험만으로도 반례가 넘친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비싼 영국의 공장노동자, 광부, 조선노동자는 값싼 제품으로 다른 모든 나라를 압도하는 반면, 임금이 상대적으로 싼 영국 농업노동자는 비싼 생산물 때문에 거의 모든 나라에 밀린다. 평균적으로 비싼 노동이 싼 상품을, 싼 노동이 비싼 상품을 만든다. 이것만으로 인과가 증명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상품 가격이 노동의 가격에 지배되지 않는다는 것은 보여 준다.
웨스턴은 그 도그마를 그런 문장으로 말한 적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는 이윤과 지대도 상품 가격의 구성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가격 형성 과정을 따라가 보면 결국 같은 것이다. 먼저 임금이 있고, 그 위에 자본가 몫의 백분율이 얹히고, 다시 지주 몫의 백분율이 얹힌다. 어떤 상품에 든 노동의 임금이 10이고 이윤율이 100퍼센트면 10이 더해지고 지대율도 100퍼센트면 10이 더해져 가격은 30이 된다. 임금이 20으로 오르면 가격은 60이 된다. 이것은 결국 임금에 의한 가격 규정이다. 임금이 가격을 규제한다고 주장한 옛 저술가들이 모두 이윤과 지대를 임금 위의 추가 백분율로 다룬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그들 중 누구도 그 백분율의 한계를 경제 법칙으로 환원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윤이 관습이나 전통이나 자본가의 의지로 정해진다고 생각하는 듯하고,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으로 정해진다고 말한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경쟁은 부문별 이윤율을 하나의 평균으로 균등화할 뿐, 그 평균의 높이 자체를 정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임금이 가격을 규정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임금은 노동의 가격을 부르는 이름이므로, 그것은 상품의 가격이 노동의 가격에 의해 규제된다는 뜻이고, 가격이 화폐로 표현된 교환가치인 이상 「상품의 가치는 노동의 가치에 의해 규정된다」는 명제와 같다. 그러면 노동의 가치는 무엇이 정하는가? 여기서 논의는 멈춘다.
우리는 노동의 가치가 상품의 가치를 규정한다고 말하기 시작해서, 상품의 가치가 노동의 가치를 규정한다고 말하며 끝맺는다. 이렇게 우리는 가장 악순환적인 원 안에서 오갈 뿐 아무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다.
「임금이 상품의 가격을 규정한다」는 도그마를 가장 추상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가치는 가치에 의해 규정된다」가 되고, 이 동어반복은 사실 우리가 가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1817년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에서 임금이 가격을 정한다는 낡은 오류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린 것이 리카도의 큰 공적이라고 말한다. 애덤 스미스와 그 프랑스 선배들도 연구의 진정으로 과학적인 부분에서는 그 오류를 물리쳤지만, 통속적인 장에서는 그것을 되살려 놓았다.
여기까지가 웨스턴에 대한 답이다. 상대의 도그마는 무너졌지만, 그 자리에는 아직 답해야 할 질문이 남아 있다. 가치가 임금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정해지는가. 제6절부터 이 글은 논쟁에서 이론으로 넘어간다.
제2부: 가치, 노동력, 잉여가치 (제6절~제11절)
제6절 가치와 노동: 제3의 것
마르크스는 여기서부터가 진짜 전개라고 예고하면서, 정치경제학 전체를 훑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 만족스럽게 하지는 못하겠다고 미리 밝힌다. 첫 질문은 이것이다. 상품의 가치란 무엇이며 어떻게 규정되는가?
언뜻 보면 가치는 순전히 상대적인 것 같다. 어떤 상품의 교환가치는 그것이 다른 모든 상품과 교환되는 비율이니 말이다. 그러나 밀 한 쿼터는 비단으로 재든 금으로 재든 가치가 같으므로, 가치는 그 수많은 교환 비율과는 구별되는 무엇이어야 한다.
밀 한 쿼터가 일정한 비율로 쇠와 교환된다고 말할 때, 나는 밀의 가치와 그에 상당하는 쇠의 가치가 밀도 쇠도 아닌 어떤 제3의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두 가지가 같은 크기를 서로 다른 모양으로 표현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밀이든 쇠든 각각 상대와 무관하게 그 공통의 척도인 제3의 것으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
이 환원이 어떤 종류의 작업인지를 마르크스는 기하학으로 설명한다. 온갖 모양과 크기의 삼각형을 서로 견주거나 삼각형을 사각형과 견주려면, 눈에 보이는 모양이 아니라 밑변 곱하기 높이의 절반이라는 전혀 다른 표현으로 환원해야 한다. 모든 직선 도형은 삼각형으로 분해할 수 있으니 이 하나의 표현으로 전부 비교할 수 있다. 상품도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공통된 표현으로 환원되어야 하고, 그 뒤에는 그 척도를 얼마나 많이 담았느냐만 남는다.
그 공통의 실체는 무엇인가. 교환가치는 물건의 자연적 성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회적 기능이므로, 물어야 할 것은 모든 상품의 공통된 사회적 실체다. 그것은 노동이다. 다만 그냥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이다. 자기가 쓰려고 만든 물건은 생산물이지 상품이 아니다. 상품을 생산하려면 사회적 욕구를 채우는 물건을 만들 뿐 아니라 그 노동 자체가 사회가 지출하는 총노동의 한 부분이어야 하고, 사회 안의 분업에 종속되어야 한다.
상품을 가치로 볼 때 우리는 그것을 오직 실현되고 고정된, 굳이 말하자면 결정화된 사회적 노동으로만 본다. 그러면 노동의 양은 어떻게 재는가? 노동이 지속되는 시간으로, 곧 시간과 날로 잰다. 물론 이 척도를 적용하려면 온갖 종류의 노동이 평균 노동, 곧 단순 노동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그래서 숙련 노동은 더 많은 양의 단순 노동으로 셈해진다.
여기서 곧바로 나올 법한 의문을 마르크스가 앞질러 받는다. 상품 가치를 임금으로 규정하는 것과 노동량으로 규정하는 것 사이에 정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가? 노동에 대한 보수와 노동의 양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게 답이다. 밀 한 쿼터와 금 1온스에 같은 양의 노동이 들어 있다고 하자.[5] 이때 두 상품이 등가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농업노동자와 광부의 임금을 조금도 참조하지 않는다. 그들의 하루 노동이 얼마에 지불되었는지, 애초에 임금노동이 쓰였는지조차 미정으로 남는다. 그들의 임금은 생산물의 가치를 넘을 수는 없지만 얼마든지 밑돌 수 있다. 임금은 생산물의 가치에 의해 제한되지만, 생산물의 가치는 임금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
상품의 가치를 계산할 때는 마지막 노동만이 아니라 원료에 이미 들어 있던 노동, 도구와 기계와 건물에 들어 있던 노동도 더해야 한다. 면사의 가치는 방적 과정에서 더해진 노동, 면화 자체에 실현된 노동, 석탄과 기름에 실현된 노동, 증기기관과 방추와 공장 건물에 고정된 노동의 결정체다. 기계처럼 여러 번 쓰이는 생산수단은 평균 수명과 마모를 계산해 하루치씩 생산물로 옮겨 간다.
그러면 게으르거나 서투른 사람이 오래 걸릴수록 그 상품의 가치가 커지는가? 마르크스가 「사회적」이라는 말에 힘을 준 이유가 여기 있다. 가치를 규정하는 것은 주어진 사회 상태에서, 사회적 평균 조건과 평균 강도와 평균 숙련으로 그 물건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이다. 영국에서 역직기가 수직기와 경쟁하게 되었을 때, 같은 양의 실을 천으로 바꾸는 데 이전의 절반 시간만 필요해졌다. 가난한 수직공은 이제 아홉 시간이나 열 시간이 아니라 하루 열일곱 시간, 열여덟 시간을 일했다. 그래도 그의 스무 시간 노동의 생산물은 열 시간의 사회적 노동만을 표현했고, 따라서 이전의 열 시간 생산물보다 더 큰 가치를 갖지 않았다.
필요 노동량은 노동생산력의 변화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인구가 늘어 척박한 땅을 경작해야 한다면 같은 양의 농산물에 더 많은 노동이 들어 농산물 가치가 오른다. 반대로 방적공 한 사람이 물레로 하던 것의 수천 배를 하루에 처리하게 되면 면화 1파운드가 흡수하는 방적 노동은 수천 분의 일이 되고 실의 가치도 그만큼 떨어진다. 노동생산력은 자연 조건(토질, 광산의 사정)과 사회적 생산력(대규모 생산, 자본의 집중과 노동의 결합, 분업, 기계, 개선된 방법, 화학과 자연력의 이용, 교통과 통신에 의한 시간과 공간의 단축)에 달려 있다. 여기서 일반 법칙이 나온다.
상품의 가치는 그 생산에 들어간 노동시간에 정비례하고, 그 노동의 생산력에 반비례한다.
이제 가격이다. 가격은 그 자체로는 가치의 화폐적 표현일 뿐이다. 금과 은의 가치 역시 그것을 얻는 데 필요한 노동량으로 규제되므로, 상품 가치를 금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결국 각자의 노동량을 교환하며 배운 표현법이다. 애덤 스미스는 가치의 화폐적 표현을 자연가격이라 불렀고 프랑스 중농학파는 필요가격이라 불렀다.
그러면 가치와 시장가격의 관계는 무엇인가. 시장가격은 개별 생산자의 조건이 어떻든 같은 종류의 상품에 대해 하나다. 그것은 평균적인 생산 조건에서 그 상품을 시장에 공급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평균 노동량을 표현한다. 그 점에서 시장가격은 가치와 일치한다. 시장가격이 가치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변동 때문이다.
자연가격은 상품의 가격들이 끊임없이 끌려가는 중심 가격이다. 여러 우연이 때로는 그 위에 한동안 붙들어 두고 때로는 그 아래로 밀어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식과 지속의 중심에 자리잡는 것을 막는 장애가 무엇이든, 가격들은 끊임없이 그곳을 향한다. (애덤 스미스)
더 긴 기간을 놓고 보면 시장가격의 등락은 서로 상쇄되어, 독점 같은 사정을 빼면 모든 상품은 평균적으로 그 가치대로 팔린다. 여기서 이 글의 가장 중요한 방법적 결론 하나가 나온다.
따라서 이윤의 일반적 본성을 설명하려면, 상품은 평균적으로 그 실제 가치대로 팔리며 이윤은 그것을 가치대로 팔아서, 곧 그 안에 실현된 노동량에 비례해 팔아서 생긴다는 정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전제 위에서 이윤을 설명할 수 없다면 이윤은 아예 설명할 수 없다.
왜 이 우회가 필요한가. 이윤이 가치 이상으로 비싸게 팔아서 생긴다고 하면, 판 사람이 얻는 것을 산 사람이 잃으므로 사회 전체로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팔면서 늘 버는 사람은 사면서 늘 잃는다. 사기만 하고 팔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생산자에게 지불하는 돈은 먼저 생산자에게서 공짜로 받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윤의 원천은 유통 안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이것은 역설로 보이고 일상적 관찰에 어긋나 보인다.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돈다는 것도, 물이 두 가지 인화성 기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역설이다. 과학적 진리는 사물의 기만적인 겉모습만을 붙잡는 일상 경험으로 판단하면 언제나 역설이다.
제7절 노동력: 노동자가 파는 것은 무엇인가
가치 일반을 다루었으니 이제 「노동의 가치」 차례다. 마르크스는 다시 한번 역설처럼 들릴 말을 꺼낸다. 흔히 쓰는 뜻에서의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가 상품에 결정화된 필요 노동량이라면, 열 시간 노동일의 가치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그 안에 든 노동은 열 시간의 노동이다. 열 시간 노동일의 가치가 열 시간의 노동이라는 말은 동어반복이고, 따라서 무의미하다.
노동자가 파는 것은 직접적으로 그의 노동이 아니라 그의 노동하는 힘이며, 그는 그 힘의 처분권을 한동안 자본가에게 넘긴다.
노동력이라는 낱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노동은 노동력을 사용한 결과이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그 증거로 몇몇 나라의 법이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최대 기간을 정해 두고 있다는 사실을 든다. 기간 제한 없이 팔 수 있다면 노예제가 곧바로 되살아날 것이고, 평생을 팔면 그는 곧바로 고용주의 종신 노예가 된다. 홉스는 이미 『리바이어던』에서 「사람의 가치 또는 값어치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격이며, 그것은 그의 힘의 사용에 대해 주어지는 만큼이다」라고 썼다.
그런데 어떻게 시장 한쪽에는 토지와 기계와 원료와 생활수단을 가진 구매자들이 서 있고, 다른 쪽에는 자기 노동하는 힘과 팔과 두뇌 말고는 팔 것이 없는 판매자들이 서 있게 되었는가? 한쪽은 이윤을 얻어 부유해지려고 계속 사들이고, 다른 쪽은 생계를 위해 계속 파는 이 사태는 어디서 왔는가?
이 질문을 파고드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선행적 축적」 또는 「본원적 축적」이라 부르지만 마땅히 본원적 수탈이라 불러야 할 것을 파고드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른바 본원적 축적이란 노동하는 인간과 그의 노동수단 사이에 있던 본래의 결합을 해체한 일련의 역사적 과정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대목은 두 해 뒤 『자본론』 제1권의 마지막 편에서 수백 쪽으로 펼쳐진다. 여기서는 한 문단으로 스쳐 지나가지만 방향은 같다. 노동자가 노동력밖에 팔 것이 없다는 사정은 인간 본성이 아니라 역사의 산물이며, 한번 성립한 뒤로는 스스로를 점점 큰 규모로 재생산한다.
그렇다면 노동력의 가치는 무엇이 정하는가. 다른 모든 상품과 같다.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이다. 사람은 자라고 살아가기 위해 일정한 양의 생활수단을 소비해야 하고, 기계처럼 닳아 없어지므로 자기를 대신할 아이들을 길러야 하며, 일정한 숙련을 익히려면 또 얼마간의 가치를 써야 한다. 그래서 노동력의 종류마다 생산비가 다르고 가치도 다르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당대 노동운동의 한 요구를 정면으로 친다.
임금의 평등을 요구하는 외침은 따라서 오해 위에 서 있으며,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소망이다. 그것은 전제는 받아들이면서 결론은 피하려는 저 거짓되고 얄팍한 급진주의의 소산이다. 임금제도의 토대 위에서 평등한, 아니 공평한 보수를 요구하는 것은 노예제의 토대 위에서 자유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정의롭다거나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주어진 생산체제에서 무엇이 필연적이고 불가피한가이다.
10년 뒤 고타 강령을 검사하면서 마르크스가 「공정한 분배」라는 문구를 심문하는 자리에 이 논리가 그대로 다시 나온다. 공정함을 도덕의 언어로 요구하면 그 요구가 서 있는 체제 자체는 검사 대상에서 빠져나간다. 두 글이 같은 축 위에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눈에 보이는 대목이다.
제8절 잉여가치의 생산: 여섯 시간과 열두 시간
이제 이 글의 핵심 계산이다. 노동자의 하루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데 평균 여섯 시간의 노동이 든다고 하고, 여섯 시간의 평균 노동이 3실링에 해당하는 금으로 실현된다고 하자. 그러면 3실링이 그 사람의 노동력의 하루 가치를 화폐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하루 여섯 시간 일한다면 자기 생활수단을 살 만큼의 가치를 생산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는 임금노동자다.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아야 하고, 하루 3실링에 판다면 그것을 제 가치대로 판 것이다. 그가 방적공이라면 하루 여섯 시간 일해 면화에 3실링의 가치를 더한다. 그가 받은 임금과 정확히 같은 값이다. 그렇다면 자본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바로 여기가 문제의 지점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그것을 유지하거나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으로 정해지지만, 그 노동력의 사용은 오직 노동자의 활동 에너지와 체력에 의해서만 제한된다. 노동력의 하루 또는 한 주의 가치는 그 힘을 하루 또는 한 주 동안 행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말이 먹어야 하는 사료와 그 말이 사람을 태우고 갈 수 있는 시간이 전혀 다른 것과 같다.
노동력을 산 자본가는 다른 모든 구매자와 마찬가지로 산 물건을 사용할 권리를 얻는다. 노동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사람을 일하게 하는 것이다. 하루치 가치를 지불했으니 하루 동안 쓸 권리가 있다. 그래서 그는 열두 시간을 일하게 한다. 임금을 메우는 데 필요한 여섯 시간을 넘어선 나머지 여섯 시간이 잉여노동이고, 그것이 잉여가치와 잉여생산물로 실현된다.
숫자로 하면 이렇다. 자본가는 하루 3실링을 미리 내주고 6실링을 손에 넣는다. 여섯 시간의 노동이 결정화된 가치를 내주고 열두 시간의 노동이 결정화된 가치를 돌려받기 때문이다. 그 절반은 다시 임금으로 나가고 나머지 절반이 잉여가치로 남는다. 자본가가 등가를 지불하지 않은 부분이다.
잉여가치율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노동일 가운데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부분과 자본가를 위해 수행되는 잉여노동 부분의 비율에 달려 있다. 곧 노동일이 그 지점을 넘어 얼마나 연장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제9절 노동의 가치: 지불된 것처럼 보이는 것
여기서 마르크스는 앞 절의 계산이 왜 눈에 보이지 않는지를 설명한다. 노동자는 노동이 끝난 뒤에 임금을 받고, 자기가 자본가에게 준 것이 노동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노동력의 가치가 그에게는 노동 자체의 가치나 가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여섯 시간이 실현된 3실링을 받고 열두 시간을 일하면, 그는 그 3실링을 열두 시간 노동의 값으로 여긴다. 실제로 그 열두 시간은 6실링의 가치로 실현되는데도 그렇다.
여기서 두 가지가 따라 나온다. 첫째, 노동력의 가치가 노동의 가격이라는 겉모습을 쓴다. 엄밀히 말하면 노동의 가치나 가격이라는 말은 무의미한데도 그렇다. 둘째, 노동자의 하루 노동 가운데 한 부분만 지불되고 나머지는 지불되지 않으며 그 지불되지 않은 부분이 바로 이윤의 원천인데도, 마치 전체 노동이 지불된 것처럼 보인다.
이 허위의 겉모습이 임금노동을 다른 역사적 노동 형태들과 구별한다. 임금제도의 토대 위에서는 지불되지 않은 노동조차 지불된 노동처럼 보인다. 반대로 노예의 경우에는 지불된 부분마저 지불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노예도 일하려면 살아야 하므로 그의 노동일 가운데 한 부분은 자기 유지비를 메운다. 그러나 주인과 흥정도 매매도 없으니 그의 노동 전체가 공짜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농노는 또 다르다. 사흘은 자기 밭에서 일하고 사흘은 영주의 땅에서 무상으로 일했으니 지불된 부분과 지불되지 않은 부분이 시간과 공간으로 뚜렷이 갈라져 있었다. 그때 자유주의자들은 사람을 공짜로 일 시킨다는 발상에 도덕적 분노를 터뜨렸다.
사실 어떤 사람이 일주일에 사흘은 자기 밭에서 자기를 위해 일하고 사흘은 영주의 땅에서 공짜로 일하든, 공장이나 작업장에서 하루 여섯 시간은 자기를 위해 여섯 시간은 고용주를 위해 일하든 결과는 같다. 다만 뒤의 경우에는 지불된 부분과 지불되지 않은 부분이 서로 떼어 놓을 수 없게 뒤섞여 있고, 계약이 개입하고 주말에 급여를 받음으로써 거래의 성격이 완전히 가려져 있을 뿐이다. 한쪽에서는 무상 노동이 자발적으로 주어진 것처럼 보이고 다른 쪽에서는 강제된 것처럼 보인다. 차이는 그것뿐이다.
이 절이 이 글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크다. 착취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임금이라는 형태가 그것을 가리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므로 임금 명세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윤의 출처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러면서도 실용적으로 덧붙인다. 앞으로 「노동의 가치」라는 말을 쓸 때는 「노동력의 가치」를 가리키는 통속적 은어로만 쓰겠다고.
제10절 이윤은 상품을 그 가치대로 팔아서 생긴다
앞의 결론을 하나의 계산표로 확인하는 짧은 절이다. 평균 노동 한 시간이 6펜스의 가치로, 열두 시간이 6실링으로 실현된다고 하자. 노동의 가치, 곧 노동력의 하루 가치는 3실링, 여섯 시간의 생산물이다. 어떤 상품에 쓰인 원료와 기계에 스물네 시간의 평균 노동이 실현되어 있다면 그 부분의 가치는 12실링이다. 노동자가 그 생산수단에 열두 시간의 노동을 더하면 6실링의 가치가 더해진다. 완성된 상품의 총가치는 서른여섯 시간, 곧 18실링이다.
그런데 지불된 임금은 3실링뿐이다. 여섯 시간의 잉여노동에 대해서는 등가가 지불되지 않았다. 자본가는 이 상품을 그 가치대로 18실링에 팔면서, 아무 등가도 지불하지 않은 3실링의 가치를 실현한다.
자본가는 자기 상품을 가치 이상의 가격에 팔아서가 아니라 실제 가치대로 팔아서 3실링의 이윤을 실현하게 된다.
상품의 가치는 그 안에 든 노동 총량이 정한다. 그 총량의 일부는 임금이라는 형태로 등가가 지불된 노동이고 나머지는 지불되지 않은 노동이다. 상품을 가치대로 판다는 것은 그 노동 총량의 결정체로서 판다는 것이므로, 자본가는 필연적으로 이윤을 남긴다. 그는 자기에게 등가를 치르게 한 것만이 아니라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지만 노동자에게는 노동이 든 것까지 함께 판다. 상품이 자본가에게 든 비용과 그 상품의 진짜 비용은 다른 것이다.
이 결론이 왜 중요한가. 이윤이 사기나 폭리에서 나온다고 보면 정직한 자본가와 부정한 자본가를 가르는 문제가 되고, 처방은 규제와 감독이 된다. 이윤이 등가교환 그 자체에서 나온다면 문제는 개인의 부정직이 아니라 관계 자체이고, 처방도 달라진다.
제11절 잉여가치가 나뉘는 여러 부분: 지대, 이자, 산업이윤
마르크스는 상품의 총가치 가운데 노동자의 잉여노동이 실현된 부분을 이윤이라 부르겠다고 말한 뒤, 그 이윤이 통째로 고용 자본가의 주머니에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사실로 넘어간다. 토지 독점은 지주에게 그 일부를 지대라는 이름으로 가져가게 한다. 노동수단을 빌려준 화폐자본가는 또 다른 일부를 이자라는 이름으로 요구한다. 고용 자본가에게 남는 것은 산업이윤 또는 상업이윤이라 불리는 부분이다.
지대, 이자, 산업이윤은 상품의 잉여가치, 곧 그 안에 담긴 지불되지 않은 노동의 서로 다른 부분들에 붙은 서로 다른 이름일 뿐이며, 모두 이 원천에서, 오직 이 원천에서만 나온다. 그것들은 토지 그 자체나 자본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토지와 자본이 그 소유자들로 하여금 고용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뽑아낸 잉여가치에서 각자의 몫을 받아 내게 해 주는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자기 잉여노동의 결과가 고용 자본가의 주머니에 통째로 들어가는지, 그중 일부가 지대와 이자로 제3자에게 넘어가는지가 부차적인 문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토론에 참여한 몇몇 회원이 고용 자본가와 임금노동자의 관계를 부차적 문제로 다루려 한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이 관계 위에 임금제도 전체와 현재의 생산체제 전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흔한 착각 하나를 바로잡는다. 상품 가치 가운데 원료와 기계의 가치를 대체하는 부분은 소득이 아니라 자본을 대체할 뿐이다. 나머지 부분이 임금, 이윤, 지대, 이자로 지출될 수 있다는 것은 맞지만, 그 부분의 가치가 임금의 가치와 이윤의 가치와 지대의 가치를 더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하나의 가치가 세 부분으로 분해되는 것과, 세 개의 독립된 가치가 더해져서 그 가치가 형성되는 것을 혼동하는 통속적 관념의 오류가 여기 있다.
한 시간 노동이 6펜스로 실현되고 노동일이 열두 시간이며 그 절반이 지불되지 않은 노동이라면, 잉여노동은 3실링의 잉여가치를 상품에 더한다. 이 3실링이 고용 자본가가 지주 및 화폐대부자와 어떤 비율로든 나눌 수 있는 기금 전체이고, 그들이 나눠 가질 값의 한계다. 자본가가 자기 이윤을 위해 임의의 가치를 상품에 얹고 지주가 또 얹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윤율을 표현하는 두 가지 방식이 나온다. 자본가가 100파운드의 이윤을 얻었다면 그것은 이윤의 양이다. 그것이 투하 자본에 대해 갖는 비율은 이윤율이다. 그런데 무엇을 분모로 놓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진다. 임금으로 투하된 자본이 100파운드이고 잉여가치도 100파운드라면 이윤율은 100퍼센트다. 원료와 기계에 400파운드가 더 들어가 총자본이 500파운드라면 같은 이윤이 20퍼센트가 된다.
이윤율을 표현하는 첫째 방식만이 지불된 노동과 지불되지 않은 노동의 실제 비율, 곧 노동 착취의 실제 정도를 보여 준다. 다른 방식은 흔히 쓰이는 것이고 어떤 목적에는 실제로 적합하다. 어쨌든 그것은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무상 노동을 뽑아내는 정도를 감추는 데 매우 유용하다.
같은 사실을 두 가지 비율로 적을 수 있고, 널리 쓰이는 쪽이 하필 착취도를 가리는 쪽이라는 지적이다. 오늘의 재무제표에서 영업이익률이 매출액 기준으로 표시되는 것도 같은 성질의 선택이다. 어떤 분모를 쓰느냐가 무엇을 보이고 무엇을 가릴지를 정한다.
제3부: 임금 투쟁의 자리와 한계 (제12절~제14절)
제12절 이윤, 임금, 가격의 일반적 관계
이론이 섰으니 이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간다. 상품 가치에서 원료와 생산수단의 가치, 곧 과거 노동을 빼면 남는 것은 마지막 노동자가 더한 노동량이다. 그가 하루 열두 시간 일하고 열두 시간의 평균 노동이 6실링의 금으로 결정화된다면, 그의 노동이 창조한 가치는 6실링뿐이다. 이 값이 노동자와 자본가가 각자의 몫을 끌어낼 유일한 기금이고, 임금과 이윤으로 나뉠 유일한 가치다.
이 가치 자체는 그것이 둘 사이에 어떤 비율로 나뉘든 달라지지 않는다. 한 사람 대신 노동인구 전체, 하루 대신 1200만 노동일을 놓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한쪽이 더 가지면 다른 쪽이 덜 가진다. 임금이 오르면 이윤이 떨어지고 임금이 떨어지면 이윤이 오른다. 노동자가 3실링을 받으면 이윤율은 100퍼센트, 2실링을 받으면 200퍼센트, 4실링을 받으면 50퍼센트다. 그러나 이 모든 변동이 상품의 가치를 바꾸지는 않는다.
따라서 일반적 임금 인상은 일반 이윤율의 하락을 낳지만 가치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상품 가치가 노동 총량으로 정해진다고 해서 열두 시간 동안 생산된 상품 개당 가치가 늘 같다는 뜻은 아니다. 주어진 시간에 생산되는 상품의 양은 노동생산력에 달려 있지 노동의 길이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방적 노동의 생산력이 높으면 열두 시간에 실 12파운드가, 낮으면 2파운드가 나온다. 두 경우 모두 열두 시간이 6실링으로 실현되므로, 실 1파운드의 값은 앞의 경우 6펜스, 뒤의 경우 3실링이 된다. 임금이 높고 이윤율이 낮은 쪽에서 실이 6펜스이고, 임금이 낮고 이윤율이 높은 쪽에서 3실링일 수 있다.
제5절에서 나온 사실, 곧 비싼 노동이 싼 상품을 만들고 싼 노동이 비싼 상품을 만든다는 관찰이 여기서 역설이기를 그친다. 상품 가격을 정하는 것은 그 안에 든 노동 총량이지 그 총량이 지불 노동과 미지불 노동으로 나뉘는 비율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13절 임금 인상을 시도하거나 인하에 저항하는 주요 사례
이 절은 임금 투쟁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지를 다섯 가지로 나눈다. 마르크스의 목적은 임금 투쟁이 자본의 선행 작용에 대한 반작용임을 보이는 것이다.
첫째, 필수품의 가치가 오를 때. 어떤 나라에서 노동자의 하루 평균 생활수단이 여섯 시간의 노동, 곧 3실링을 표현하고 노동일이 열두 시간이라면 이윤율은 100퍼센트다. 그런데 생산성이 떨어져 같은 농산물에 더 많은 노동이 들고 하루 생활수단의 값이 3실링에서 4실링으로 오른다고 하자. 노동의 가치는 3분의 1 올랐고, 이제 여덟 시간을 일해야 예전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잉여노동은 여섯 시간에서 네 시간으로, 이윤율은 10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떨어진다. 이때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는 자기 상품의 값이 오른 만큼 값을 받으려는 다른 모든 판매자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임금이 오르지 않거나 충분히 오르지 않으면 노동의 가격이 노동의 가치 아래로 떨어지고 생활수준이 나빠진다.
같은 논리의 반대 방향. 생산력이 올라 하루 생활수단이 3실링에서 2실링으로 싸질 수도 있다. 노동자는 2실링으로 예전에 3실링으로 사던 것을 산다. 노동의 가치는 떨어졌지만 절대적 생활수준은 그대로다. 그런데 이윤은 3실링에서 4실링으로, 이윤율은 100퍼센트에서 200퍼센트로 오른다. 노동자의 절대적 생활수준은 변하지 않았어도 상대적 임금, 곧 자본가에 견준 사회적 지위는 낮아진 것이다. 이 하락에 저항하는 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늘어난 생산력에서 얼마간의 몫을 얻어 사회적 사다리에서 예전 자리를 지키려는 것뿐이다. 곡물법 폐지 뒤 영국 공장주들이 반곡물법 운동 때의 엄숙한 약속을 어기고 임금을 10퍼센트 깎았을 때, 노동자들의 저항은 처음에는 좌절했지만 그 10퍼센트는 나중에 되찾았다.
둘째, 화폐 가치가 떨어질 때. 필수품의 가치도 노동의 가치도 그대로인데 화폐 가치만 변할 수 있다. 더 좋은 광산이 발견되어 금 2온스가 예전 1온스만큼의 노동으로 생산된다면 금의 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진다. 모든 상품의 화폐가격이 두 배가 되고 노동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6실링으로 표현되던 열두 시간의 노동이 이제 12실링으로 표현된다. 이때 노동자의 임금이 3실링에 머문다면 그 화폐가격은 노동 가치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생활수준은 무섭게 나빠진다.
이런 경우에 노동자가 그에 비례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물건이 아니라 이름으로 지불받는 데 만족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덧붙인다. 화폐 가치의 하락이 일어날 때마다 자본가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동자를 속이려 든다고. 물가 상승기에 실질임금이 조용히 깎이는 오늘의 사정과 정확히 같은 자리다.
셋째, 노동일이 길어지거나 강도가 높아질 때. 지금까지는 노동일의 길이가 주어져 있다고 가정했지만 노동일 자체에는 정해진 한계가 없다. 자본은 그것을 물리적으로 가능한 최대까지 늘리려는 항구적 경향을 갖는다. 노동일이 길어질수록 잉여노동과 그에서 나오는 이윤이 커지기 때문이다.
17세기와 18세기의 3분의 2 동안 영국의 표준 노동일은 열 시간이었다. 반자코뱅 전쟁기에 자본은 축제를 벌이듯 노동일을 열두, 열넷, 열여덟 시간으로 늘렸다. 감상주의자라고 의심할 수 없는 맬서스조차 1815년 무렵의 팸플릿에서 이대로 가면 국민의 생명이 그 원천에서부터 공격받을 것이라고 썼다.[6] 1765년 무렵 나온 익명의 팸플릿 『무역론』은 노동자계급의 공공연한 적이 쓴 글인데, 노동일의 한계를 늘려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공포의 집」이라 불러야 할 노역소를 제안했다. 그 공포의 집에서 저자가 규정한 노동시간은 열두 시간이었고, 그 열두 시간은 1832년에 자본가와 경제학자와 장관들이 열두 살 미만 아동에게 필요한 노동시간이라고 선언한 바로 그 시간이었다.[7]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되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파는 것이지 파괴하기 위해 파는 것이 아니다. 하루치 가치로 팔았다면 하루에 이틀치의 마모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계약의 뜻이다. 여기서 기계와 사람의 차이가 나온다. 1000파운드짜리 기계를 10년에 쓰면 해마다 100파운드씩, 5년에 쓰면 200파운드씩 생산물에 옮겨 간다. 그러나 기계는 사용된 만큼 정확히 닳는 반면, 사람은 노동량의 산술적 증가가 보여 주는 것보다 훨씬 큰 비율로 망가진다.
시간은 인간이 발전할 공간이다. 마음대로 쓸 자유 시간이 없고, 잠과 식사 같은 순전히 육체적인 중단을 빼면 온 생애가 자본가를 위한 노동에 흡수되는 사람은 짐 나르는 짐승보다도 못하다. 그는 몸이 부서지고 정신이 짐승처럼 되어, 남의 부를 생산하는 단순한 기계일 뿐이다.
노동일을 예전의 합리적 크기로 되돌리려는 시도나, 법으로 표준 노동일을 정할 수 없는 곳에서 초과노동을 임금 인상으로 억제하려는 시도는 자기 자신과 자기 종족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다.
노동일이 법으로 정해진 곳에서도 임금 인상이 필요해질 수 있다. 노동의 강도가 높아지면 한 시간에 예전의 두 시간만큼의 생명력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기계의 속도를 올리고 한 사람이 돌보는 기계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강도의 증가가 노동일 단축과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면 노동자는 여전히 이득이지만, 그 선을 넘으면 한쪽에서 얻은 것을 다른 쪽에서 잃고 열 시간이 예전의 열두 시간만큼 파괴적일 수 있다. 랭커셔 공장 가족의 평균임금이 올랐다는 통계에 대해 마르크스는, 가장 한 사람의 노동 대신 아내와 서너 명의 아이가 함께 자본의 수레바퀴 아래 던져졌다는 사실을 그 통계가 잊고 있다고 지적한다.
넷째, 산업순환. 자본주의적 생산은 침체, 활기, 번영, 과잉거래, 공황, 정체의 주기를 돈다. 시장가격과 시장이윤율은 이 국면들을 따라 평균 아래로 내려갔다 위로 올라간다. 순환 전체를 놓고 보면 한쪽의 이탈이 다른 쪽으로 상쇄되어 평균적으로 상품은 가치대로 팔린다. 가격이 내려가는 국면과 공황·정체 국면에서 노동자는 해고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임금이 깎인다. 속지 않으려면 그런 국면에서도 얼마나 깎는 것이 필요한지를 자본가와 따져야 한다. 그리고 번영 국면에서 추가 이윤이 생길 때 임금 인상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그는 한 순환의 평균으로 보아 평균임금, 곧 자기 노동의 가치조차 받지 못하게 된다.
한편으로 노동을 상품으로 다루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상품 가격을 규제하는 법칙에서 면제하려는 것은 터무니없다. 노예는 항구적이고 고정된 부양을 받지만 임금노동자는 그렇지 않다. (…) 그가 자본가의 의지와 명령을 항구적인 경제 법칙으로 받아들여 체념한다면, 그는 노예의 모든 비참을 노예의 안전 없이 겪게 될 것이다.
다섯째, 정리.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경우, 곧 백 가운데 아흔아홉의 경우에 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은 선행하는 변화를 뒤따라 일어난다. 생산량의 변화, 노동생산력의 변화, 노동 가치의 변화, 화폐 가치의 변화, 뽑아내는 노동의 양이나 강도의 변화, 수요와 공급의 변동에 따른 시장가격의 변화, 산업순환의 국면 변화가 앞서 있었다. 한마디로 자본의 선행 작용에 대한 노동의 반작용이다. 임금 인상 투쟁을 이 모든 사정과 떼어 놓고 임금의 변화만 보는 것은 거짓 전제에서 출발해 거짓 결론에 이르는 일이다.
제14절 자본과 노동의 투쟁과 그 결과
마지막 절은 이 논쟁의 진짜 질문에 답한다. 이 끝없는 싸움에서 노동은 얼마나 이길 수 있는가.
일반화해서 답하면 이렇다.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시장가격도 결국 그 가치에 맞춰지므로, 온갖 등락에도 노동자는 평균적으로 자기 노동력의 가치, 곧 그 유지와 재생산에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만 받는다. 그러나 노동력의 가치에는 다른 상품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노동력의 가치는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순전히 물리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또는 사회적인 것이다. 그 궁극의 한계는 물리적 요소가 정한다. 자기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며 육체적 존재를 이어 가려면 노동자계급은 살고 번식하는 데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생활수단을 받아야 한다. (…) 이 순전히 물리적인 요소 외에, 노동의 가치는 모든 나라에서 전통적인 생활 표준에 의해 정해진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생존이 아니라, 사람들이 놓이고 자라난 사회적 조건에서 생기는 일정한 욕구의 충족이다.
이 한 문단이 임금철칙과 맬서스주의식 생존임금론에 대한 답이다. 임금이 생존 최저선으로 되돌아간다는 「철의」 법칙이 성립하려면 노동력의 가치가 물리적 최소치로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가치에는 역사와 관습이 들어 있고, 그것은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으며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 영국의 생활 표준이 아일랜드 수준으로 낮아질 수도 있고, 독일 농민의 표준이 리보니아 농민 수준으로 낮아질 수도 있다. 반자코뱅 전쟁기에 영국의 농장주들은 농업노동자의 임금을 그 물리적 최소치 아래로 낮추고 나머지는 구빈법으로 메웠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임금노동자를 노예로 만들고 셰익스피어의 자부심 있는 자영농을 빈민으로 만드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부른다. 요컨대 임금의 하한은 자연이 정한 상수가 아니라 싸움의 결과이며, 싸우지 않으면 실제로 물리적 최소치까지 내려간다.
반대쪽 끝은 어떤가. 이윤에는 최소를 정하는 법칙이 없다. 그것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말할 수 없다. 왜인가? 임금의 최소는 정할 수 있지만 최대는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노동일의 한계가 주어져 있을 때 이윤의 최대는 임금의 물리적 최소에 대응하며, 임금이 주어져 있을 때 이윤의 최대는 노동자의 체력이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노동일 연장에 대응한다는 것뿐이다. (…) 이 두 한계 사이에서는 엄청난 범위의 변동이 가능하다. 실제 정도의 확정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자본가는 임금을 물리적 최소까지 낮추고 노동일을 물리적 최대까지 늘리려 끊임없이 밀어붙이고, 노동자는 반대 방향으로 끊임없이 밀어붙인다.
문제는 결국 싸우는 자들의 힘의 관계로 귀착된다.
이것이 제1절에서 마르크스가 던진 질문(의지가 아니라 힘과 그 한계)의 최종 답이다. 임금과 이윤 사이의 넓은 띠 안에서 어느 지점이 실제로 정해질지는 경제 법칙이 자동으로 정해 주지 않는다. 그 지점은 조직과 투쟁이 정한다. 웨스턴의 그릇에 담긴 국은 정해져 있지 않았고, 숟가락의 크기는 겨루어 정하는 것이다.
이어서 마르크스는 그 힘겨루기의 조건을 냉정하게 살핀다. 노동일 제한은 영국에서든 어디서든 입법 개입 말고는 결정된 적이 없고, 그 개입은 노동자들의 바깥에서의 끊임없는 압력 없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사적 합의로는 얻을 수 없는 결과였다는 사실 자체가, 순전히 경제적인 영역에서는 자본이 더 강한 쪽임을 증명한다. 그래서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
노동력의 가치가 실제로 어디에 자리잡는지는 늘 수요와 공급, 곧 자본의 노동 수요와 노동자의 노동 공급에 달려 있다. 식민지에서는 이 법칙이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미국의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임금노동자가 계속 독립 자영농으로 빠져나가 노동시장이 비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가 한때 식민지 토지에 인위적으로 높은 값을 매기는 이른바 근대적 식민 이론을 채택한 것은 이 사정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자본이 생산 전체를 지배하는 오래된 나라에서는 다르다. 1849년에서 1859년 사이 영국 농업 임금이 올랐을 때 농장주들은 웨스턴의 조언대로 밀값을 올릴 수 없었고 오히려 하락을 받아들여야 했다. 대신 그들은 그 11년 동안 온갖 기계를 도입하고 더 과학적인 방법을 채택했으며 경작지 일부를 목초지로 바꾸고 농장 규모와 생산 규모를 키웠다. 그렇게 노동생산력을 높여 노동 수요를 줄임으로써 농업 인구를 다시 상대적으로 남아돌게 만들었다. 이것이 오래된 나라에서 자본이 임금 인상에 반작용하는 일반적 방식이다. 리카도가 정당하게 지적했듯 기계는 노동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노동의 가격이 일정 높이에 이르렀을 때에야 도입되는 일이 많다.
같은 법칙이 다른 형태로도 작동한다. 노동생산력이 발전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자본축적이 빨라진다. 애덤 스미스는 여기서 축적의 가속이 노동 수요를 늘려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저울을 기울일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러나 축적이 진행되면서 자본의 구성 자체가 바뀐다. 기계와 원료 같은 부분이 임금으로 지출되는 부분보다 빠르게 커지는 것이다.
두 요소의 비율이 원래 1대 1이었다면 산업의 진행 속에서 5대 1이 되고 그렇게 계속된다. 총자본 600 가운데 300이 도구와 원료에, 300이 임금에 지출된다면, 300명 대신 600명의 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내는 데는 총자본이 두 배가 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600 가운데 500이 기계와 재료에, 100만이 임금에 지출된다면, 같은 일을 위해 자본은 600에서 3600으로 늘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산업이 진행될수록 노동 수요는 자본축적을 따라가지 못한다. 수요는 여전히 늘지만 자본 증가에 견주어 끊임없이 줄어드는 비율로 늘어난다. 여기서 이 글의 두 번째 결론이 나온다. 근대 산업의 발전 자체가 저울을 자본 쪽으로 기울이며,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반적 경향은 평균 임금 수준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것, 곧 노동의 가치를 그 최소 한계 쪽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이 강연은 웨스턴이 서 있던 자리로 되돌아온다. 일반적 경향이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은 저항을 포기해야 하는가? 마르크스의 답은 두 겹이다.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계급이 자본의 침해에 대한 저항을 단념하고 일시적 개선을 위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구원의 여지가 없는 하나의 부서진 비참한 덩어리로 떨어질 것이다.
백 가운데 아흔아홉의 경우에 임금 인상 노력은 주어진 노동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일 뿐이며, 자기 값을 자본가와 다투는 것은 스스로를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처지에 본래 딸린 일이다. 일상의 싸움에서 비겁하게 물러서는 사람들은 더 큰 운동을 시작할 자격을 스스로 잃는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계급은 이 일상적 투쟁의 궁극적 효과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결과와 싸우고 있을 뿐 그 결과의 원인과 싸우고 있지 않다는 것, 하강 운동을 늦추고 있을 뿐 방향을 바꾸고 있지는 않다는 것, 완화제를 쓰고 있을 뿐 병을 고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정한 노동일에 공정한 임금을!」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 그들은 깃발에 이 혁명적 구호를 새겨야 한다. 「임금제도의 폐지!」
임금 투쟁은 필요하고 정당하지만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는 것, 목표는 임금노동이라는 관계 자체의 폐지라는 것. 이 결론이 10년 뒤 고타 강령 비판의 결론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때 마르크스는 라살레의 임금철칙을 검사하면서, 문제는 임금이 낮은 것이 아니라 임금노동이라는 형태 자체라고 쓴다.
세 개의 결의안
마르크스는 「길고 지루했을 설명」을 마치며 총평의회에 세 항의 결의를 제안한다. 이 세 문장이 이 글 전체의 요약이다.
첫째. 일반적 임금 인상은 일반 이윤율의 하락을 낳지만, 대체로 말해 상품 가격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반적 경향은 평균 임금 수준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것이다.
셋째. 노동조합은 자본의 침해에 맞서는 저항의 중심으로서 훌륭히 기능한다. 노동조합이 부분적으로 실패하는 것은 자기 힘을 현명하지 못하게 쓰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전반적으로 실패하는 것은 현존 체제의 결과에 맞선 유격전에 스스로를 가두고, 동시에 그 체제를 바꾸려 하지 않으며, 조직된 힘을 노동자계급의 최종적 해방, 곧 임금제도의 궁극적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항은 웨스턴에 대한 답이고, 둘째 항은 웨스턴의 비관에 담긴 「밑바닥의 옳은 생각」을 마르크스 자신의 방식으로 인정한 것이며, 셋째 항은 그 둘에서 나오는 실천적 결론이다. 노동조합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저항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지렛대여야 한다.
덧붙임: 이 강연이 남긴 것
왜 33년 동안 묻혀 있었나
총평의회에서는 마르크스와 웨스턴의 보고를 함께 출판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마르크스는 망설였다. 1865년 6월 24일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든다. 웨스턴 씨를 상대로 삼았다는 것이 그리 자랑스럽지 않다는 것이 하나이고, 뒷부분이 자기 책에서 미리 꺼내 온 새로운 내용을 극도로 압축된 형태로 담고 있는데 온갖 것을 건너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8] 그런 선취가 과연 적절한가. 결국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이 글을 발표하지 않았다.
원고는 1895년 엥겔스가 죽은 뒤 마르크스의 유고 속에서 발견되었고, 딸 엘리너 마르크스 에이블링이 1898년에 펴냈다. 사위 에드워드 에이블링은 서문에서 자기가 한 일은 원고를 읽고 영어 표현을 몇 군데 손보고 장으로 나누어 제목을 붙이고 교정을 본 것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엘리너가 했다고 적었다.
『자본론』으로 가는 문
이 글의 뒷부분은 1867년에 나올 『자본론』 제1권의 뼈대를 미리 세운 것이다. 제6절의 가치론, 제7절의 노동력, 제8절의 잉여가치, 제9절의 임금 형태와 가상, 제11절의 잉여가치 분할과 이윤율 표현은 모두 『자본론』의 해당 편들과 대응한다. 차이는 청중이다. 『자본론』은 독자에게 몇 백 쪽의 인내를 요구하지만, 이 글은 두 저녁의 연설이었고 듣는 사람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었다. 에이블링의 서문이 이 글에서 마르크스의 두 가지 특징이 특히 잘 보인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장 낮은 자리의 학생에게도 자기 생각을 알아듣게 하려는 참을성과, 그 생각 자체의 비상한 명료함이다.
그래서 이 글은 오랫동안 『자본론』을 읽기 전에 읽는 책으로 권해져 왔다. 다만 압축의 대가는 있다. 화폐론, 재생산표식, 자본 구성과 이윤율의 관계 같은 것들은 여기서 몇 줄로 스쳐 지나가고, 그 몇 줄만 읽으면 오해하기 쉽다. 이 글은 지도이지 지형 자체가 아니다.
10년 뒤 고타에서
1865년의 이 연설과 1875년의 고타강령 비판은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임금제도 자체가 목표라는 것이다. 두 글이 나란히 놓일 때 비로소 온전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1865년의 상대는 임금 투쟁이 헛수고라고 믿는 오언주의자였다. 마르크스는 그에게 싸울 수 있다고 답했다. 1875년의 상대는 페르디난트 라살레의 유산을 강령에 새겨 넣은 독일 노동자당이었고, 그들의 임금철칙은 웨스턴과 똑같은 결론, 곧 임금 투쟁 무용론에 이르되 처방은 달랐다. 노동조합이 소용없으니 국가의 돈으로 협동조합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그에게 국가에 기대는 것이 답이 아니라고 답했다.
「싸울 수 있다」와 「싸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서로 반대되는 말처럼 들리지만 같은 분석에서 나온다. 임금의 높낮이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힘의 관계가 정하므로 싸움은 실제로 무언가를 바꾼다. 그러나 그 힘의 관계가 놓인 틀, 곧 생산조건의 소유 자체는 임금 협상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1865년의 결론은 「임금제도의 폐지」였고 1875년의 결론은 분배가 아니라 생산조건의 소유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91년에 고타 비판 원고를 공개하며 되살리려 한 것도 이 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