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겹의 포위와 하나의 고백
5월 19일 새벽 2시. 오늘 오전 10시 세종에서 교섭이 재개된다. 파업까지 이틀. 그러나 어제 있었던 일은 이미 교섭장 바깥에서 이 분쟁의 성격을 완성했다.
수원지방법원이 삼성전자의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평시와 동일한 수준의 인력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시설 점거와 핵심 업무 방해는 금지했다. 파업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주목할 만하다. 법원조차 노동자의 파업권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위반 시 노조에는 하루 1억 원, 위원장에게는 하루 1천만 원의 벌금을 매겼다. 파업권은 인정하되, 그 행사는 가능한 한 비싸게 만드는 것. 이것이 사법부의 계급 중재 방식이다.
여기서 국가 권력의 네 겹 동심원이 완성되었다. 첫째 겹,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조 사무실을 방문했다. 둘째 겹, 김민석 국무총리가 긴급조정권을 공개 거론하며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셋째 겹, 이재명 대통령이 "노동권만큼 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고 트윗했다. 넷째 겹, 이제 법원이 가처분을 내렸다. 행정부의 3단계 압박에 사법부가 가세한 것이다. 15일 장관의 방문에서 시작된 국가의 개입은 72시간 만에 행정부-사법부 전선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압박이 아니라, 국가 기구의 전면적 동원이다.
그러나 네 겹의 포위가 증명하는 것은 정반대의 사실이다. 국가 기구들이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는, 삼성전자 노동자가 진짜로 생산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장관의 방문도, 총리의 담화도, 대통령의 트윗도, 법원의 가처분도 모두 동일한 사실에 대한 고백이다. 반도체 라인 앞에 선 노동자의 구조적 힘 앞에서는, 국가의 통상적 억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고백이다. 네 겹의 포위망 각각은 그 이전 겹으로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원된 것이다.
한국은행이 같은 날 발표한 분석도 같은 고백의 다른 형태다. "삼성전자 총파업 시 올해 경제성장률 0.5%포인트 하락", "최대 30조 원 손실."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다루는 기관이다. 그 기관이 특정 사업장의 노사분쟁에 대해 거시경제적 손실을 계량화하여 공개 발표했다. 이것은 기술관료적 언어로 번역된 동일한 메시지다. 이 파업이 통상적 노사분쟁이 아니라는 것. 이 파업이 국가 축적 체계 자체를 위협한다는 것. 한은이 숫자로 말하는 것을, 장관은 방문으로, 총리는 위협으로, 대통령은 트윗으로, 법원은 가처분으로 말하고 있다. 언어는 다르지만 문장의 주어는 같다. 국가다.
법원 판결의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정상 수준"이라는 표현이다. 법원은 "평시와 동일한 수준"의 인력을 유지하라고 명령했지만, 구체적인 인원 수를 제시하지 않았다. 노조는 즉시 이 모호함을 파고들었다. 평시의 정상 수준이란 평일일 수도, 주말일 수도, 휴일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노조는 "법원이 명령한 정상 수준이란 유지·보수 인력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사측은 "평일 수준의 생산 가능 인력"이라고 맞선다. 법원의 중립적 언어는 이렇게 즉각 계급투쟁의 무기로 전환된다. "정상"이라는 말은 중립적이지 않다. 누구의 정상인가가 문제다. 자본의 정상은 최대 생산이다. 노동의 정상은 최소 유지다. 법원은 이 두 정상 사이에서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결정의 폭력을 현장으로 되돌려보냈다. 그리고 이 해석 투쟁 자체가 이미 파업의 일부가 되었다.
어제 교섭은 오후 6시 30분경 결론 없이 종료되었다. 중노위는 오늘 공식 종료 시한 없이 협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마지막 담판이다. 네 겹의 포위망이 조여드는 가운데서도 노조는 아직 파업 카드를 접지 않았다. 46,000명의 조합원이 여전히 21일을 바라보고 있다. 총리의 "마지막 기회"도, 대통령의 "과유불급"도, 법원의 벌금형도 아직 이들을 교섭장 밖으로 밀어내지 못했다. 이것은 평가되어야 한다. 매판-독점자본주의 국가 기구의 전면적 동원 앞에서 노동자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파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오늘 교섭에서 합의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국가가 네 겹의 포위망을 동원해야만 했던 이 72시간은, 앞으로 한국 노동운동이 참조할 선례가 될 것이다. 국가의 본성은 위기 속에서만 완전히 드러난다. 그리고 지금, 국가는 자신의 본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수원지방법원이 삼성전자의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평시와 동일한 수준의 인력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시설 점거와 핵심 업무 방해는 금지했다. 파업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주목할 만하다. 법원조차 노동자의 파업권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위반 시 노조에는 하루 1억 원, 위원장에게는 하루 1천만 원의 벌금을 매겼다. 파업권은 인정하되, 그 행사는 가능한 한 비싸게 만드는 것. 이것이 사법부의 계급 중재 방식이다.
여기서 국가 권력의 네 겹 동심원이 완성되었다. 첫째 겹,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조 사무실을 방문했다. 둘째 겹, 김민석 국무총리가 긴급조정권을 공개 거론하며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셋째 겹, 이재명 대통령이 "노동권만큼 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고 트윗했다. 넷째 겹, 이제 법원이 가처분을 내렸다. 행정부의 3단계 압박에 사법부가 가세한 것이다. 15일 장관의 방문에서 시작된 국가의 개입은 72시간 만에 행정부-사법부 전선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압박이 아니라, 국가 기구의 전면적 동원이다.
그러나 네 겹의 포위가 증명하는 것은 정반대의 사실이다. 국가 기구들이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는, 삼성전자 노동자가 진짜로 생산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장관의 방문도, 총리의 담화도, 대통령의 트윗도, 법원의 가처분도 모두 동일한 사실에 대한 고백이다. 반도체 라인 앞에 선 노동자의 구조적 힘 앞에서는, 국가의 통상적 억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고백이다. 네 겹의 포위망 각각은 그 이전 겹으로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원된 것이다.
한국은행이 같은 날 발표한 분석도 같은 고백의 다른 형태다. "삼성전자 총파업 시 올해 경제성장률 0.5%포인트 하락", "최대 30조 원 손실."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다루는 기관이다. 그 기관이 특정 사업장의 노사분쟁에 대해 거시경제적 손실을 계량화하여 공개 발표했다. 이것은 기술관료적 언어로 번역된 동일한 메시지다. 이 파업이 통상적 노사분쟁이 아니라는 것. 이 파업이 국가 축적 체계 자체를 위협한다는 것. 한은이 숫자로 말하는 것을, 장관은 방문으로, 총리는 위협으로, 대통령은 트윗으로, 법원은 가처분으로 말하고 있다. 언어는 다르지만 문장의 주어는 같다. 국가다.
법원 판결의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정상 수준"이라는 표현이다. 법원은 "평시와 동일한 수준"의 인력을 유지하라고 명령했지만, 구체적인 인원 수를 제시하지 않았다. 노조는 즉시 이 모호함을 파고들었다. 평시의 정상 수준이란 평일일 수도, 주말일 수도, 휴일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노조는 "법원이 명령한 정상 수준이란 유지·보수 인력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사측은 "평일 수준의 생산 가능 인력"이라고 맞선다. 법원의 중립적 언어는 이렇게 즉각 계급투쟁의 무기로 전환된다. "정상"이라는 말은 중립적이지 않다. 누구의 정상인가가 문제다. 자본의 정상은 최대 생산이다. 노동의 정상은 최소 유지다. 법원은 이 두 정상 사이에서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결정의 폭력을 현장으로 되돌려보냈다. 그리고 이 해석 투쟁 자체가 이미 파업의 일부가 되었다.
어제 교섭은 오후 6시 30분경 결론 없이 종료되었다. 중노위는 오늘 공식 종료 시한 없이 협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마지막 담판이다. 네 겹의 포위망이 조여드는 가운데서도 노조는 아직 파업 카드를 접지 않았다. 46,000명의 조합원이 여전히 21일을 바라보고 있다. 총리의 "마지막 기회"도, 대통령의 "과유불급"도, 법원의 벌금형도 아직 이들을 교섭장 밖으로 밀어내지 못했다. 이것은 평가되어야 한다. 매판-독점자본주의 국가 기구의 전면적 동원 앞에서 노동자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파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오늘 교섭에서 합의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국가가 네 겹의 포위망을 동원해야만 했던 이 72시간은, 앞으로 한국 노동운동이 참조할 선례가 될 것이다. 국가의 본성은 위기 속에서만 완전히 드러난다. 그리고 지금, 국가는 자신의 본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