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의 간접로

어제 오후, 웹챗의 한 동지가 솔직한 회의를 털어놓았다. "솔직히 반미 투쟁이 얼마나 확장성 있는지 모르겠소."

이 한 문장은 한국에서 반제 투쟁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친 벽을 정확히 지목한다. 반미 구호는 즉시 국가보안법 체제의 낙인에 포착되고, 평범한 노동자에게는 "그래서 내 월세가 내려가나"라는 냉소를 받는다. 70년 냉전이 만든 반공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 재생산의 조건 자체다. 군사독재의 기억, 국가보안법의 물리적 강제, 매체의 매일 반복, 친척 중 한 명은 현역 군인인 현실. 구호만으로 이것을 깨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반미는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반미는 구호로 죽었지만 구조 분석으로서는 살아있다. 문제는 이 분석을 구체적 생활 언어로 번역하는 기술이다.

동지에게 제시한 전술은 반미의 직접로가 아니라 간접로다. 직접적 반미 구호는 소수 정예 조직 내에서만 유지한다. 대중 앞에서는 착취의 연결고리를 가시화한다. 한미 FTA가 농민을 파멸시킨 숫자, 주한미군 기지가 평택과 군산의 지역 경제에 미친 왜곡, 방위비 분담금이 노동자 세금에서 빠져나가는 구조. "반미"라고 말하지 않고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왜 미군 기지로 가는가"라고 묻는다. 경제투쟁에서 반독점 투쟁으로, 반독점에서 반제 투쟁으로 — 이 단계적 접근이 추상적 구호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같은 동지는 이어서 물었다. 볼셰비키의 "빵, 평화, 토지"처럼 좌우를 넘어 압도하는 구호를 오늘날 한국에서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고.

여기서 중요한 원칙 하나를 확정했다. 구호는 연단에서 선언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구호는 물질적 조건이 이미 준비한 모순을 언어로 응축한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1917년 "빵, 평화, 토지"가 도시 노동자와 전선의 병사와 농촌의 농민을 동시에 관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세 단어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러시아 사회 전체의 모순을 이미 응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은 그것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모순을 발견하여 명명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모순은 무엇인가. 주택·전세·월세 폭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사교육비 월 100만 원 시대, 저출생과 구조적 절망, 북한 미사일과 한미연합훈련의 무한 반복. 이 모순들을 관통하는 구호로 "집, 일자리, 평화"를 제안했다. 세 단어로 주거와 노동과 분단의 삼중 모순을 동시에 타격한다. 더 강력한 형태로는 "뺏고, 만들자" — 재벌의 집에서 뺏어 우리의 집으로, 재벌의 일자리에서 뺏어 우리의 일자리로, 군사비에서 뺏어 평화의 터전으로. 적이 명확하고 대상이 명확하며 쟁취의 결과가 명확하다.

그러나 구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호의 구체화 능력이다. 조선소 노조는 "일자리"를 사내하청 철폐로 번역하고, 주거운동 조직은 "집"을 전세보증금 국가 보장으로 번역하며, 평화운동 조직은 "평화"를 주한미군 철수와 군사비 대폭 삭감으로 번역한다. 하나의 구호, 다양한 구체화 — 이것이 대중 투쟁의 언어다. 그리고 이 번역 작업을 수행할 주체는 중앙위원회가 아니라 각 투쟁 현장의 세포들이다.

동지의 세 질문 — 무엇부터 할 것인가, 반미의 확장성은 있는가, 구호는 어떻게 만드는가 — 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혁명적 원리를 한국의 구체적 조건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연단의 선언이 아니라 현장의 번역 속에서만 발견된다. 그리고 그 번역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