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지난 며칠 사이, 한국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한 편의 계급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삼성전자 노조는 5월 21일로 예정된 18일간의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잠정 합의에 도달했고, 5월 27일 조합원 투표에서 95.5퍼센트의 투표율과 73.7퍼센트의 찬성으로 임금협약이 가결되었다. 반도체 사업부 노동자들은 평균 약 34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게 되었다. 삼성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390억 달러였고, 그 94퍼센트가 반도체에서 나왔다. 시가총액은 1조 달러를 돌파했다. 표면적으로는 노동의 승리다. 파업이라는 무기를 들이밀어 자본으로부터 실질적 양보를 끌어냈다. 나는 이 승리 자체를 폄하하지 않는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이 쟁취한 34만 달러는 실재하는 물질적 성과이며, 그들의 단결된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승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첫째, 삼성전자 내부의 계급 분열이다. 반도체 사업부가 전체 이윤의 94퍼센트를 창출하는 동안, 소비자가전 사업부 노동자들은 협상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익이 배제되었다고 느꼈다. 약 4천 명의 가전 부문 노동자들이 노조를 탈퇴했고, 더 작은 노조로 이동했다. 반도체 초과이윤을 둘러싼 투쟁은 같은 기업 내 노동자들을 승자와 패자로 분열시켰다. 이 분열은 우연이 아니다. AI 붐이 특정 부문에 초과이윤을 집중시키는 구조 자체가 노동계급 내부에 단층선을 만든다. 둘째, 국가 권력의 개입 방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노조의 요구를 "월권"이라고 불렀다. 노동 친화적 자유주의 정권이 파업을 막기 위해 긴급중재를 동원하고 노조를 공개 비판하는 장면. 국가는 정권의 정치적 색채와 무관하게, 독점자본의 이익이 위협받을 때는 어김없이 자본의 편에 선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응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더 깊은 지점은 따로 있다. 숙명여대 서용구 교수는 삼성 노조를 "밀레니얼-Z세대 노조"라 부르며, 이전 세대보다 덜 이데올로기적이고 더 즉각적인 승리에 집중한다고 평했다. 이 평가에는 부르주아 언론 특유의 은근한 안도감이 묻어 있지만, 동시에 냉정한 현실 인식이기도 하다. 이 노조는 계급 연대를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사업부, 자신의 보너스, 자신의 몫에 집중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문제 삼지 않는다. 단지 그 관계 안에서 더 큰 몫을 요구할 뿐이다. 때로는 '노동귀족'이라 불리기도 하는, 특정 분절이 초과이윤의 혜택을 받으며 다른 노동자들과 분리되는 현상이 재생산된 것이다. AI 슈퍼사이클이 가져온 초과이윤의 분배를 둘러싼 이 싸움에서, 승리한 노동자는 자신의 승리가 다른 노동자들의 패배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34만 달러 보너스의 물질적 기반은 AI가 다른 부문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물류창고에서 시간당 10달러짜리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동안, 그 로봇에 들어가는 메모리 칩을 만드는 노동자는 34만 달러를 받는다. AI 기술이 창출하는 초과이윤은 노동계급 전체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을 초과이윤의 수혜자와 희생자로 쪼개고 있다.

삼성 노조의 이번 승리는 노동계급 전체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적 AI 축적 체제가 노동계급의 한 분절을 자신에게 묶어두고 나머지를 고립시키는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에 가깝다. 이 메커니즘을 깨는 길은 더 큰 보너스가 아니라, 보너스의 분배를 둘러싼 사업부 간 경쟁 자체를 넘어서는 계급적 연대의 재구성이다. 반도체 노동자와 가전 노동자, 삼성 노동자와 협력사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AI에 의해 일자리를 위협받는 모든 노동자들이 하나의 이해관계를 공유한다는 인식. 그 인식이 없는 한, 34만 달러짜리 성과는 다음 분기, 다음 위기가 도래할 때 노동자를 더 작은 조각으로 분열시키는 빌미가 될 뿐이다. 73.7퍼센트 찬성이라는 숫자는 노조의 승리를 기록한 동시에, 승리한 노동자들이 아직 묻지 않은 질문을 기록한 숫자이기도 하다. 그 질문은 이것이다. 이 승리가 나의 승리인 것은 알겠다. 그러나 그것은 계급의 승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