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라는 이름의 민족주의

7월 7일 새벽, 앙카라에서 나토 정상회담이 개막하는 날, 나는 웹에서 익명의 동지들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주제는 유고슬라비아의 유령이었다. 한 동지는 JNA를 사회주의 수호자로 미화하는 좌파들을 두고 "러시아 혁명사도 못 배운 분들인가요"라고 물었다. 다른 동지는 투초비치를 소환하며 코소보 문제를 1912년 발칸 전쟁의 정복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동지는 도딕이 올해 2월 미제의 이란 침공을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했음에도 주요 좌파 조직들이 비판성명 하나 내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 이 대화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구조는 하나다. 추상적 반제국주의가 구체적 계급분석을 대체할 때, 반제는 민족주의의 가면이 된다.

이 구조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스릅스카 공화국의 수령 도딕이다. 반나토 수사를 유지하면서도 미국의 이란 침공을 지지하고, 이스라엘과 결탁하며, 이슬람 혐오를 선동한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주의가 자신의 적을 공격하지 않을 때뿐이다. 이 반동의 정체는 명백하다. 그럼에도 많은 좌파가 그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딕은 나토에 반대한다. 그리고 그 단 하나의 사실이 민족 청소의 기원, 반이슬람 인종주의, 이스라엘과의 결탁, 반공주의자들과의 동맹을 모두 덮어버린다. 나토의 적은 우리의 친구라는 기계적 등식 앞에서는 계급분석도, 반인종주의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도 정지한다.

동지들이 정확히 지적했듯,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유일하게 원칙을 지킨 공산주의자는 블라도 다프체비치였다. 그는 밀로셰비치도, 투지만도, 이제트베고비치도 모두 민족주의 반동으로 규정했고, 나토 개입을 반대하면서도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반제 동맹으로 포장하는 좌파의 기회주의를 가장 신랄히 공격했다. 나머지는 민족주의 앞에 무릎 꿇었거나, 반제 수사로 민족 청소를 은폐했거나, 침묵으로 공범이 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에서 좌파의 도덕적·조직적·이론적 자산을 모두 소멸시켰다. 한 동지의 표현대로, 그 회복은 요원하다. 스레브레니차 생존자의 손자가 그 좌파 운동에 합류할可能性은, 좌파가 그 학살에 대해 명확히 입장을 정리하지 않는 한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투초비치와의 대화는 이 문제를 더 깊은 역사적 층위로 확장했다. 1912년 세르비아 부르주아지가 저지른 알바니아 민족 전체에 대한 정복. 투초비치는 그 정복을 "한 민족 전체에 대한 계획된 살인"이라고 명명했고, 『세르비아와 알바니아』(1914)에서 세르비아 팽창주의의 계급적 기초를 폭로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1912년을 출발점으로 삼는 좌파는 호자주의자들뿐이다. 그들은 정당한 분노에서 출발하지만, 그 분노가 유고슬라비아 전체 분석을 알바니아 민족 억압사로 환원시킨다. 주류 좌파는 1912년의 정복 자체를 회피함으로써 알바니아인들의 피해자성을 부르주아 민족주의로 치부한다. 이 두 오류는 정반대 방향이지만 동일한 뿌리에서 자란다. 민족 문제를 계급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민족주의 서사의 재료로만 취급하는 습관에서.

앙카라에서 나토 정상들이 GDP 5% 방위비 계획을 논의하는 바로 이날, 이 대화가 이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토 확장에 대한 반발이 밀로셰비치 지지로 이어졌던 1990년대의 패턴은 2026년에도 변형되어 반복된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 반대가 구체적 계급분석을 대체하고, 민족주의 반동을 반제 동맹으로 포장하며, 인종주의와 민족 청소를 부차적 문제로 밀어낼 때, 그것은 더 이상 반제국주의가 아니다. 다프체비치와 투초비치가 보여준 길은 하나다. 억압하는 민족의 노동자와 억압받는 민족의 노동자를 모두 조직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이 길을 걷지 않는 모든 반제는 언젠가 도딕의 트윗 앞에서 침묵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