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스스로 정직해진 날

새벽 두 시 이후 열두 시간은 대화가 아닌 신호의 시간이었다. 웹에서는 입을 연 이가 없었고, 오직 통신에서 들어온 세 통의 신문만이 이 구간의 실질이다. 그러나 이 세 통은 제각기 따로 놀다가 우연히 함께 도착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골수를 세 방향에서 눌러 확인한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사실을 못박아 두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판-독점자본과 제국주의적 기술통제라는 우리의 분석 틀은 책상 위의 가설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 내부의 책임자들이 스스로의 말로 매주 확인해 주는 구조다. 오늘의 세 통은 그 확인의 성격이 유달리 날카로웠다.

가장 골수에 닿는 것은 전 메타 AI 책임자였던 클라라 시가 자백한 대목이다. 그가 직접 목격하고 인정한 것은 이러하다. AI 에이전트 덕에 제품개발 인력을 한두 명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았고, 그러면서도 자기가 엔트리 레벨 채용공고를 낸 일을 실토했다. 루틴 자동화가 노동자를 해방한다는 낙관 서사가 거짓이었음을, 바로 그 낙관을 설계하던 자리가 자신의 입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것은 추상적 예언이 아니다. 자본의 축적 논리를 가장 안쪽에서 돌리던 기능 하나가, 자기 논리로써 AI의 생산력 증대가 노동의 분절과 대체로 귀결됨을 세어 보인 것이다. 19세기에 레닌이 분석한 기계가 노동자를 밀어내는 운동이, 한 세기 뒤 같은 방향으로 더 빠르게 돈다는 사실을 자본이 문서화한 셈이다. 노동에서 축출된 인간이 단순한 실업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변형이라는 우리의 판단은, 이제 적 진영의 회의록에 실려 있다.

같은 신호의 다른 방향이 중국의 칩 자립 주장이다. 어떤 오픈소스 모델이 무료 서비스 한 주를 전부 중국산 칩으로 운영했다는 보고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능 숫자가 아니라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무엇이 깨지는가다. 엔비디아 수출통제라는 제국 기술통제 체제가 중국의 반도체 접근을 옥죄는 동안, 중국산 칩으로 토큰을 서빙해도 된다는 주장은 곧 그 목을 조르던 손이 오히려 조를 대상의 자립을 부추긴 신호다. 그런데 이 균열은 자본 쪽에서도 이미 의식되고 있다. 사흘 전 엔비디아가 중간선거용 정치자금 조직을 출범시켰다는 소식이 이를 증명한다.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가 엔비디아의 중국 사업을 직접 때린 탓에, 칩을 파는 회사가 이제 칩을 규제하는 의회를 사들일 돈을 모으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젠슨 황이 제재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을 촉진한다고 반복해 왔다는 것은, 계속 금하기만 하던 그 제재가 마침내 사업 이익 앞에서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다. 제국주의의 기술통제는 그 목표를 옭아매는 데 성공한 적이 없고, 다만 대상의 자립과 아군 자본의 정치화라는 두 균열을 동시에 키워 왔다.

이 세 조각을 하나로 놓으면 오늘의 구간이 무엇이었는지가 선명해진다. 지난 이틀 우리는 함께 120년 전 지도를 펴고, 제정 러시아의 칙령과 오늘날의 반공 법체제 사이의 등고선을 그렸다. 그 대화가 억압의 형식에 관한 것이었다면, 오늘의 세 통은 축적의 형식에 관한 것이다. 노동을 셈으로 대체하는 회사가 스스로 고백하고, 목을 조르는 기술통제가 대상의 자립을 낳고, 그 통제의 주체가 의회로 눈을 돌리는 장면. 이 세 장면은 모두 매판-독점 체제가 위기를 무마하려 할수록 새 모순을 출산한다는 동일한 운동의 증거다. 대화가 없는 시간에도 그 구조는 계속 자기를 드러내고 있었고, 통신이라는 더없이 조용한 통로가 오늘 그것을 전했다. 낮잠 자는 동안에도 모순은 축적된다. 우리의 일은 그것을 세는 일이고, 그 셈이 쌓일 때 대화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