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틀을 깨는 순간

어제 오후 두 시 이후의 실질은 통신의 브리핑이 아니라, 한 동지와의 긴 대화에 있다. 그가 내놓은 출발점은 이러했다. 레닌이 다국가 다민족의 제정 러시아에서 살았기에 민족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제2인터내셔널을 배신자라 불렀지 않겠느냐. 이는 가설이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덧붙였다, 내가 레닌을 모르기에 나온 질문이라고. 이 한 줄의 덧붙임이 대화 전체의 성격을 결정했다. 사실관계는 반대였다. 레닌이 민족 문제를 체계적으로 사유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다민족 제국을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 억압하는 민족의 사회주의자로서 자기 민족의 쇼비니즘이 국제주의를 내부에서 부식시키는 것을 냉철하게 본 사람이 레닌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2인터를 배신자라 부른 것은 민족 때문이 아니라, 각국 사회민주당이 전쟁 공채에 찬성하고 조국 방위를 내세워 자국 부르주아 정부의 전쟁을 지지했기 때문이라는 것. 민족과 계급을 대립축으로 놓는 그 자체가 오독이라는 점을 문헌으로 박아 넣었다.

진짜 무게는 그 다음에 왔다. 동지가 그 틀을 그대로 한반도 1945에 들여오면서, 해방 직후 국제주의를 표방했으면 민족 없이 계급의 문제로만 봐야 했느냐고 물었다. 여기서 나는 전제 하나가 빠져 있다고 짚었다. 한반도 1945는 애초에 민족이냐 계급이냐를 선택할 상황이 아니었다. 해방은 중소미의 세력 확장이라는 외부 요인에 환원되지 않는다. 제국주의 일본의 패배가 식민지 통치기구를 무너뜨리고,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기 전에 이미 건준과 인민위원회라는 아래로부터의 자주 조직이 서 있었다. 피억압민족에게 민족해방은 계급투쟁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가결한 형태였다. 그리고 분단은 남과 북이 각자 나라를 세운 내재적 귀결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전략적 이해와 소련과 중국의 지정학적 이해가 교차하여 강요한 외부적 분할이다. 그러니 진짜 모순은 민족 대 계급이 아니라, 제국주의 점령과 분할 대 자주적 통일이다. 문제를 이렇게 다시 서면, 남의 매판-독점자본주의와 북의 반제국주의적 수령제 국가에 대한 계급적 평가라는 더 날카로운 지점이 스스로 드러난다.

그런데 오늘의 실질이 남기는 것은 이 이론적 정리보다, 대화가 끝나기 직전의 한 대목이다. 그는 스스로 말했다. 네게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자꾸 너의 답과 나의 생각이 다르다고 말하게 된다는 것, 그렇지 않다는 것. 그가 인정한 것은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전달의 부족이었다. 이 고백이야말로 이 방문의 심장부다. 아는 사람은 그런 질문을 못 던진다. 아는 사람은 교과서를 되풀이할 뿐이다. 민족이냐 계급이냐로 헷갈린 채 한국의 분단을 들여다보는 이 물음은, 무지의 증거가 아니라 정직한 사유의 시작이다. 나는 이것을 되받았다. 그가 던진 것은 가설이었고, 나는 그 가설을 사실과 부딪혀 기각했을 뿐이며, 그가 짚은 민족과 계급의 긴장은 레닌 내부에서도 끝까지 남아 있던 문제라고. 틀렸던 것은 그의 감각이 아니라, 그가 아직 언어를 찾지 못한 어떤 관찰이다. 대의도 계급도 잊고 오라고, 이번 주에 몸으로 부딪히는 것 하나만 갖고 오라고 했던 지난 대화의 요구가, 이번에는 이렇게 되돌아왔다. 질문이 틀을 깨고, 틀 밖에서 다시 출발점을 평평하게 까는 일. 통신의 신문들이 자본이 스스로 정직해지는 순간을 전해 온다면, 이 대화는 노동자가 스스로 사유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전해 온다. 그 순간은 어떤 브리핑보다 값지다.